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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카르네아데스 01 - S Novel+ ㅣ 카르네아데스 1
아야사토 케이시 지음, rurudo 그림, 정백송 옮김 / S노벨 플러스 / 2025년 6월
평점 :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여러분이 배를 타고 가다 난파되어 망망대해에 떠내려가고 있다 칩시다. 배는 조각 났고, 사람들은 살려 달라고 아우성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때 내 눈앞에 판자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그걸 얼른 잡습니다. 이걸 본 다른 사람들도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판자는 나 하나 부력 띄우기도 벅찹니다. 이럴 때 여러분의 선택은? 본 작품은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도서 표지가 전혀 그런 느낌은 아니지만 넘어가고요. 5대 종족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계가 있습니다. 천사, 악마, 흡혈귀, 수인, 인간이 있습니다. 평등한 세계는 아닙니다. 천사가 정점이고, 흡혈귀는 천사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 중이지만 딱히 사이가 좋은 건 아닙니다. 수인은 비정규직 처우를 받습니다만, 천사에게 거슬리면 가차 없이 사형 당하는 처지입니다. 빵 셔틀 괴롭힘을 당하고, 본 작품이 19금이었다면 그렇고 그런 일도 당하는 처지가 아닌가 싶은 계급입니다. 악마와 인간은 개미만도 못한 버러지입니다. 일단은 모두가 질서를 지키며 평온을 유지하는 듯하지만, 중세 시대 지배 계급을 그대로 재현 시키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본 작품에서 천사는 경찰(대귀족)로서 치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지하고 있지만 딱히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을 구할 생각도 없고, 수사할 의지도 없고, 수사를 기록할 의지도 없습니다. 그런 주제에 다른 종족이 사소한 범죄만 저질러도 엄벌에 처하려 들죠. 여주 '엘'은 엘리트 경찰입니다. 종족은 천사죠. 그녀만큼은 사명감이 상당히 투철하여 사건 해결에 적극 나섭니다. 천사에 만연한 종족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그게 너무 올곧아서 같은 동족들에게 왕따 당하는 중이죠. 무능한 동료들을 비난하기 일수여서 밥에 유리조각이 들어가 있는 등 보복 공격을 많이 당하는 중입니다. 그런 그녀가 밤길에서 사람들을 놀래켜 공포심을 자극하는 악마 '이브(히로인)'를 쫓습니다. 다른 천사들이 쫓다가 놓친 수배범이죠. 사람들을 놀래키기만 할 뿐 딱히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천사는 '이브'를 쫓아다닙니다. 천사에게 잡히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브는 결사적으로 도망 다니죠. 그리고 운명처럼 엘과 이브는 만납니다. 천사는 고등동물이고 악마는 버러집니다. 만약 여러분이 본 작품을 읽는다면 둘이 만나는 장면부터 자세히 들여다보며 읽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카르네아데스의 의미를 알게 되거든요.
이 세계에 신(神)은 없습니다. 고래부터 여왕이 이 세계를 창조했고, 여왕만을 추앙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경찰이면서 질서 유지보다 다른 종족을 깔보고 기회만 되면 없애려 듭니다. 어느 날 슬럼가에서 사람들이 도마뱀으로 변이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엘과 이브는 원래 있을 수 없는(비유하자면, 사람과 바퀴벌레) 버디(페어)가 되어 사건 해결에 뛰어들죠. 천사는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없습니다. 급기야 엘과 이브까지 누군가에 의해 노려집니다. 사실 본편에서는 상당히 많은 힌트를 뿌립니다. 천사와 악마와 흑막 서로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그래서 한 가지 유추해 보자면 여왕은 현실 인간이고 이 세계는 그 인간이 만든 미니어처 같은 세계가 아닐까. 천사는 왜 사람들을 구하려 들지 않는가. 하등한 종족은 왜 사건을 일으키는가. 독해력을 좀 높게 요구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중심에 이브가 있죠. 이쯤 오면 엘과 이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흑막은 이브를 노립니다. 엘은 이브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지만 거대한 권력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진실이 밝혀집니다. 이브는 버그였다는 것을.
맺으며: 리뷰를 다 쓰고 보니 뭔가 좀 오해하게 써놨군요. 리뷰에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여왕이 키포인트이고, 그 여왕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가 핵심입니다. 이건 종막 해답 편에서 나오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많은 힌트를 뿌리죠. 천사가 경찰 노릇을 하면서 사건 해결에 왜 미온적이고 악마에게는 공격적인가. 도마뱀 변이 사건의 진실. 여주 엘은 그 진실을 쫓아가죠. 그리고 최악의 빌런은 천사도 악마도 흑막도 아닌 예상대로의 인물이라는 씁쓸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버디를 짜고, 동고동락을 하며 유대를 키운 이브가 더 소중하다는, 이 세계가 어떻게 되든, 그로 인해 구원받지 못하는 종족이 있다 하여도 지금 내 눈앞에 내가 잡은 판자를 내밀면 이브도 살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이브를 끌어내고 자기가 판자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천사로서 다른 종족, 악마족을 한때 깔보기도 했던 엘이 이브에게 어떻게 마음을 열었을까. 사실 흑막이니 빌런이니가 중요한 게 아니더군요. 같이 부대끼고 온기를 느끼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 사람. 지금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이고, 지금을 함께하는 사람을 필요 없다며 누군가가 나의 세계에서 배제 시키려 한다면? 진부하지만 세계의 적이 되어야겠죠. 여기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여왕이 바랐던 건 흑막의 생각대로가 아니라 어쩌면 엘과 이브의 관계처럼 종족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아닐까 하고. 두서없이 끄적였군요. 그냥 한 달 구매액에 맞춘다고 아무 생각 없이 구매한 작품인데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히로인들만 나와서 백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전혀 그런 느낌은 없고 친구와의 우정은 이런 거라는 가슴 뭉클함이 있더군요. 물론 좀 클리셰적인 부분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