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와 사냥개 1 - Novel Engine
카미츠키 레이니 지음, LAM 그림, 한신남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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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대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은 격변의 시대에서 중소 약소국(國)이 살아남으려면 무슨 짓을 해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기당천으로 일컬어지는 마법사를 독점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아멜리아 왕국'에 맞서 '캠퍼스펠로우'의 영주 '버드'는 대륙 곳곳에 있는 일곱(7) 마녀를 모아 대항하기로 합니다. 이 작품에서 마녀란, 꼬깔콘을 쓰고 빗자루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을 도우는 착한 존재가 아닙니다. 마녀란, 재해를 불러오는 만악의 근원이자 이야기 시작점에서 사람들을 살해하며 재산을 빼앗는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런 위험천만한 마녀를 불러 모아 '아멜이라 왕국' 마법사에 대항한다는 포부를 밝힌 젊은(아마도) 영주 '버드'는 이웃 나라 '뢰베'에서 '거울의 마녀'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이 나가버렸는지' 마녀를 양도받기 위해 '뢰베'로 떠나게 되죠. 그리고 이 발걸음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대사서시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주인공 '롤로(이하 주인공)'는 자신의 상관인 '버드'를 따라 '뢰베'로 향합니다. 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암살자로 키워졌고, '검둥개'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둥개'는 반세기 전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여 적국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있었죠. 적군에겐 두려움의 대상인 '검둥개'와 극악무도한 마녀와의 만남,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마녀와 사냥개'의 의미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런데 세상사가 다 그렇듯 내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잖아요? 이 작품엔 키워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발암(發癌)', 두 번째는 '불살(不殺)', 세 번째는 영주 버드의 친딸 '델리리움', 영주 '버드'는 마녀를 양도받기 위해 뢰베로 왔습니다. 그의 딸 '델리리움'도 같이요. 작중엔 14살쯤인 거 같은데(판타지에서 14세면 이미 성인 취급), 일단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설정(발암)입니다. 그래서 델리리움은 이 여행에서 소중한 것을 잃고 성장하는 캐릭터가 되어야만 하죠.

그리고 주인공은 반푼이 암살자로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다는 주제에 불살을 외치며 적을 죽이려 하지 않는 통에 사태를 키워 간다는 설정입니다(두 번째 발암). 그가 어렸을 때 암살자로서 장부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선 어떤 세례식을 치러야만 했고, 주인공은 그때의 트라우마로 사람을 죽이는데 망설임을 보입니다. 보통 이런 작품을 보면 주인공은 꽤 강하며 사태가 벌어졌을 때 돌파구를 찾아내 위기를 벗어난다는 설정을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반푼이에 지나지 않으며, 암살자로 키워졌다고 어느 작품처럼 혼자서 무쌍을 찍는 그런 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녀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목숨을 연명하며 히로인(델리리움 말고 또 있음)은 고사하고 주인(영주 버드)도 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죠. 사실 이런 게 발암일까?라는 논란의 여지는 있겠는데 어떻게 보면 참 현실적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주인공도 인간이고,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참혹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마녀는 왜 '뢰베'에 붙잡혀야 했는가를 그로테스크하게 풀어내는데요. 마녀 또한 인간이고, 인간이기에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휴머니즘을 보여주죠. 마녀란, 그저 선천적으로 마법을 쓸 수 있을 뿐이고, 나보다 우월한 인간을 보면 질투를 느끼는 사람의 심리에 따라 현실 중세 시대 마녀사냥이 그러했듯, 그녀는 아멜리아 왕국에 의해(마법 독점 중) 마녀로 몰려 도망자 신세가 되어야만 했죠. 그래서 이야기 초반 마녀의 악행은 블러프로서 이야기를 읽어가며 톱니바퀴를 맞춰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아니었나 합니다. 마녀는 있을 자리를 원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져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 그러나 그걸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누명을 뒤집어쓴 마녀는 화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영주 버드와 주인공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들이 찾아온 걸 기회로 본 '뢰베'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되고, 영주 버드와 그의 딸 델리리움 그리고 주인공은 휘말려 갑니다.

마녀의 이름은 '테레사리사'입니다. 아마 '델리리움'과 메인 히로인 자리 놓고 다투지 않을까 싶군요. 주인공은 '델리리움'을 필두로 해서 세상과 맞서 싸워간다는 설정이겠고요. 마녀는 이들을 도와주겠죠.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없는 아포칼립스 같은 작품입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이 작품과 유사한 작품을 찾으라면 '마탄의 왕과 바나디스'를 들 수가 있겠군요. 마탄의 왕은 주인공이고 마녀는 바나디스에 해당되겠습니다. 마녀는 7명이라고 했으니 얼추 숫자도 맞군요. 델리리움은 '레긴' 왕녀쯤 될 테고요. 주인공이 힘은 있지만 전술에서 구멍을 많이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신화 전설이 된 영웅의 이세계담'과 비슷했습니다. 이 두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히로인들과 분골쇄신하는 것이죠. 사실 이거 하나만으로는 높은 점수를 줄만 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의 결과를 내려 한다는 것, 하지만 녹록지 않다는 걸 보여주죠.

맺으며: 종합적으로 보면 중세 시대를 모티브 한 마녀사냥이라는 우리에겐 다소 익숙한 내용을 보여줘서 읽는 데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마녀 또한 현실 중세 시대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죠. 다만 마녀의 임팩트가 강해서 주인공의 인상을 다 잡아먹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왜 불살로 만들었는지 모르겠군요. 할 땐 하지만 이야기를 질질 끌게 되어서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고요. 영주 버드는 자신이 가진 전술의 취약점을 개선하지 못해 결국 딸(델리리움)과 주인공에게 커다란 짐을 떠 맡겨 버리죠. 세상 물정 모르는 델리리움의 성격 개조도 꽤 힘들어 보이고요(사태가 일촉즉발이 되어 가는데 시장에 놀러 가지 못해 삐진다거나). 그리고 아멜리아의 마법사들은 원피스의 능력자들을 보는 듯한, 결국 판타지를 끼얹은 드래곤 볼 같다고 할까요. 이성 문제에서는 마녀를 끼얹은 하렘 같았고요.

아무튼 필자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 작품은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만 보시기 바랍니다. 안 그럼 단점이 너무나 많이 보여 욕을 하며 읽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다 밝히면 지면이 길어지고 재미없을 테니 일일이 열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주인공과 델리리움과 마녀의 행동에서 클리셰적인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발암적인 요소도 의도하고 넣어놔서 뒷일이 예상 가능하고요. 가령 결국 세상 물정을 몰랐던 델리리움은 정신을 차리고 여왕이 되어 나라를 되찾으려 하고 주인공과 마녀는 그녀를 보좌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녀와 주인공은 이번 1권에서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되거든요. 마녀는 있을 곳을 찾고 있었으니 이들을 도와 궁극적으로 주인공과 같이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될 테고요. 이렇게 이 작품은 뒷일이 예상 가능하다는 점이 단점이지만 오히려 이게 머리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장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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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묵시록 마이노그라 3 - ~ 파멸의 문명으로 시작하는 세계 정복 ~, S Novel+
카즈노 페후 지음, 준 그림, 손종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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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전 2권에서 느낌으론 이세계에 주인공만이 아닌 다른 유저들도 전생했고 그로 인해 '즉사 치트'라는 작품처럼 서로 골육상쟁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해서 참 두근거리게 했는데요. 그야 현실 법체계가 통용되지 않는 세상에서 인간들은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이고 마법이나 힘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배틀 로얄'을 찍는 건 당연한 수순이 될 테니까요. 사실 필자는 이런 걸 바랐기도 한데요. 그래서 3권을 매우 기다렸습니다만, 결론부터 언급해 보자면 반은 맞습니다. 그게 전생한 사람들이 게임 유저나 현실 방구석 폐인이라는 실제 인간이 아니라 게임 내 'NPC'들이었다는 것에서요. 여기에 그 게임 고유의 시스템이 적용되어 시스템적으로 절대 방어 불가라든지 절대 피할 수 없는 무적기가 고스란히 적용이 되어서 주인공급이라도 이 기술에 걸리면 여지없이 당한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보여주는데요. 그것도 그냥이 아니고 다크 호러 분위기를 풍기는, 뭔가 2권까지는 심시티 같은 도시 만들기였던 것이 3권부터는 사이버 테크노 바탕에 판타지 속성의 그로테스크와 시리어스를 동반한 세상 멸망급이 되어 버립니다.

주인공이 이세계로 전생해서 사악 속성 제국을 건설하고, 인육 나무라는 식량조달 체제와 주변을 지옥도로 변모 시키는 것에서 그로테스크와 시리어스라는 밑밥을 깔려 있긴 했습니다만, 분위기와 다르게 주인공은 그럴 마음이 없는 착한 속성이어서 다소 방심하고 있었군요. 그러던 것이 본격적으로 다른 게임 NPC들이 등장하면서 호러가 무엇인지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해도 뭐 이번 3권에서는 '이슬라(히로인?)'가 사람(마족) 잡아먹는 장면을 좀 리얼하게 표현했다든가 다크엘프 자매의 저주로 녹아내리는 적(에너미)들을 표현한 장면이라든가 밖에 없지만요. 인육 나무 열매의 맛이 진짜 인육의 맛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요. 이러하듯 주인공의 진영은 파스텔톤이 난무하고 정의로운 진영이 아니라 파멸의 왕이라는 이명을 가진 엄연한 이 세계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이고 주인공이 소환하는 영웅 유닛은 세계의 위협으로 용사가 있다면 제거해야 될 존재가 되죠. 즉, 이세계 사람들에겐 재앙이라는 것인데, 주인공은 그럴 마음이 없으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착한 사람? 속성이라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뭐 그런 설정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명제가 생깁니다. 소환이든 전생이든 간에 이세계에 주인공만 오나? 답은 반 만 예스. 이 작품에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온갖 게임들에 속한 NPC들이 전생해옵니다. 여기서 NPC들이란 데이터 쪼가리 마을 사람들이 아니라 게임 유저들을 적대했던 가령 마왕이라든지 서큐버스라든지 마족이라든지 이런 잡다한 것들이 전생하여 자신이 속했던 게임에서의 속성 그대로 행동 원리 그대로 이세계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죠. 주인공이 만들고 속해있던 '마이노그라'라는 제국에도 마왕의 군세가 쳐들어오는데 당연히 주인공은 대응에 나섭니다. 이때까지 주인공은 중요한 하나를 간과하게 되고 그로 인해 뼈아픈 이별을 겪어야 되는 일이 벌어지죠. 이 작품은 주인공 만능설을 조금은 부정하고 있는 게 흥미로운데요. 이때까지 자신이 전생(현실)에서 했던 게임의 시스템이 이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쳐들어온 적들도 그런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RPG 게임에서 절대 피하지 못하는 궁극기가 존재하고 이세계는 게임 시스템에 영향을 받는다면?

맺으며: 이번 3권은 그런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세계 전생은 주인공만의 전유물은 아니며, 주인공을 중심으로 설정이 잡혀있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주인공도 결국 작품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시각일 뿐 전체적인 시스템을 돌리는 톱니바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다는 걸 보여주죠. 그 게임 내에서 세상의 이치나 다름없는 소프트웨어적 구동 시스템은 절대적이고, 그래서 주인공은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영웅 유닛 하나를, 다크엘프 자매에게는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를 시스템에 의해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그려갑니다. 이번 3권에서는 고전 RPG 게임에서 등장했던 마왕이 이세계로 전생해옵니다. 옛 시절 게임의 마왕은 세상을 멸망으로 이끄는 존재죠. 정석대로 4천왕이 오른팔로 등장하고 주인공 부하들과 전투를 벌여갑니다. 그제야 비로소 주인공은 게임 시스템이 적용되고 절대적이라는 걸 알게 되죠. 이미 때는 늦었지만요. 이 괴정이 좀 많이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이런 거죠. RPG 게임에서 용사가 동료를 모아 마왕을 무찌르러 가지만 소중한 동료 또한 잃게 된다.

마왕이 읊조렸던 '자유', 정형화된 데이터 세상(게임)에서 뛰쳐나가 내 의지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하여서 이거 하나는 좋았습니다만,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듯 뜬금없이 이세계 먼치킨 전생물에 등장하는 라노벨의 주인공까지 집어넣어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게 만드는 저의는 뭔가 싶군요. 결국 게임 NPC만이 아니라 현실 방구석 폐인도 소환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한데, 다크엘프 자매가 소중한 존재를 잃어 슬픔에 빠져있는 장면에서 굳이 경박스러운 먼치킨 전생자를 집어넣어 산통 다 깨는 바람에 바로 직전까지 묵직했던 분위기를 진짜 썰렁하게 만들어 버리는데요. 더욱이 신(神)? 진짜 일본 작가들은 이야기를 꾸리면서 신(神)을 집어넣지 않으면 집필을 아예 못하는 병이라도 걸린 걸까요? 설마설마했는데, 이세계에 소환되는 적대세력 이면에는 마치 흔직세의 신(神)처럼 유희를 즐기려는 신(神)이라는 흑막이 존재한다는 설정을 꼭 넣어야만 했나요. 이것 때문에 사악 속성을 가진 주인공은 세계의 위협이라는 다소 신선한 소재였던 것이 클리셰 범벅이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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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하극상 제5부 : 여신의 화신 2 - 사서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V+
카즈키 미야 지음, 시이나 유우 그림, 김봄 옮김 / 길찾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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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주의

여전히 귀족원(귀족들만 가는 학원)에서 빼어난 실력으로 최우수를 따내며 종횡무진을 펼쳐가는 '마인(이하 여주)'은 다른 영지(領地)를 끌어들여 의식(儀式)에 관한 연구와 그에 따른 가호(加護)의 실험을 하며 바쁘게 지냅니다. 그 와중에 주인공 버프로 여주는 엄청난 가호를 받는 건 덤이고요. 하루라도 얌전히 지내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지 그토록 멀리 하라 했던 왕족들과 어울리고, 어떤 의식을 치르면서 마력이 폭주해 반짝반짝 온몸에서 네온사인이 뿜어져 나오는 무녀가 되어 사방팔방 성녀 전설을 더욱 퍼트리는 통에 보호자인 페르난디드의 이마에 핏대는 가실 날이 없고, 양부모의 위는 더욱 쪼그라들기만 합니다. 거기에 여주는 정변으로 소실된 왕(王)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증표가 있는 곳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인물이기도 해서 페르디난드는 전전긍긍, 페르디난드가 왕의 서자가 아닐까 하는 복선까지 합쳐져서 만일 여주가 증표를 손에 넣는 날에는 피바람이 불게 되겠죠(페르디난드가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측면에서). 정변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왕은 정통 후계자가 아니라는 의심을 받고 있어서 왕의 증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거든요.

이번 이야기는 페르디난드는 왕의 증표(전문 용어 있지만 어려워서 패스)에 다가가지 못하게 여주를 단단히 단속하려 하지만 그게 통할 리 없다는 것과 길베르타 상회 '벤노'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현장을 그립니다. 페르디난드가 왕족과 어울리지 말라고 하는 건 그와 그녀(여주)가 속한 영지 에렌페스트는 왕족이 기침만 해도 훌렁 날아가 버리는 약소 영지라서 고삐 풀린 망아지(여주)처럼 미쳐 날뛰다 왕족의 심기라도 건드리면 여주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죠. 거기에 왕족은 사라진 왕의 증표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서 지금은 하나라도 많은 정보를 얻으려 하고, 마침 도서관 지하 숨겨진 서고에 그 증표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요. 그 서고의 열쇠 관리인이 하필 여주. 페르디난드는 죽어도 지하 서고엔 가지 말라고 해두었지만 왕족의 명령은 신(神) 다음으로 지엄해서 훅 불면 날아가는 영지의 영주 후보생(여주)에게 거부할 권리 따윈 애초에 없었죠. 웃긴 게 이미 여주는 여주의 마력으로 왕의 증표 일부분을 구현 시킬 수 있다는 것, 왕족이 이걸 알면? 이게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여느 판타지 작품처럼 친구 같은 왕족, 친구 같은 귀족(여주는 친구같이 지내지만) 아니라 실제 중세 시대나 조선시대같이 왕족과 귀족의 권력은 절대적이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가족이라도 서로 호위 기사를 두며, 먹을 것도 독이 없다는 증거로 내가 먹어보고 상대에게 권하는 세상이죠. 귀족은 평민을 사람으로 안 보고, 영주의 자리를 놓고 친자식들 간 경쟁을 하며, 왕족은 정변을 일으켜 왕좌를 찬탈하는 실로 판타지 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중에 필자가 가장 큰 점수를 주는 부분은 위생 상태와 영아 사망률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부분이군요. 여주는 이세계에 전생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에 널려있는 똥과 그에 따른 냄새, 길거리에 파는 식재료의 위생 문제, 집돼지를 잡는 모습 등에서 졸도를 하기도 했죠. 옷은 누더기를 기워 입고, 7살이 넘으면 자신의 앞가림을 해야 하며, 문맹률은 매우 높습니다. 그나마 한 3부 넘어오면서 이런 점은 다소 누그러들었긴 합니다만, 여전히 암살과 납치가 횡행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선 남을 끌어내리는데 주저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이죠.

아무튼 이번 5부 2권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를 언급해 보자면요. 초창기 1부 때 길베르타 상화 '벤노'가 처음 여주의 가치를 알았을 때 필사의 각오로 여주의 정체를 숨겼었죠. 벤노를 떠나 페르디난드에 거둬진 후에도 그(페르디난드)가 정보 규제를 해주었고, 이후 영주의 양녀가 되면서 영주도 어느 정도 정보를 숨겼기도 하였는데요. 그 이유는 권력자들로부터 여주를 지키기 위함이었죠. 영주의 양녀가 되기 직전 납치될 뻔하였고, 그로 인해 친가족과 헤어지게 되었으면 자신의 가치라 얼마나 큰지 알아야 되지 않을까. 이 부분이 이 작품에서 유일한 옥에 티로 다가옵니다. 이 작품의 여주는 배움이 없는 거죠. 그만큼 책(모든 사건의 발단)에 환장하고 있다는 아이덴티티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결국 이번 5부 2권에서 여주의 가치는 약소 영지에 놔둘 인물이 아니라는 상위 영지의 영주 후보생이 여주를 빼앗으러 오면서 결국 우려한 일이 터지고 맙니다. 문제는 왕족까지 연루되는 이런 큰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여주는 사과나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그랬죠.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사과와 반성은 뒷전으로 밀려나서 좀 거식하더라고요.

맺으며: 하얀 가루를 이 작품에 비유하자면 책입니다. 여주는 책을 무척 사랑하죠. 그래서 쩝쩝 맛을 봅니다. 그리고 중독되어 끊지도 못하고 사방팔방 하얀 가루를 뿌려대죠. 뒷일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꽃(책)을 피우면 보기 좋잖아? 그래서 미친 듯이 다른 영지에 인쇄 기술을 퍼트리고 다 같이 길동무로 삼아 가죠. 책이 퍼지면 문맹률도 낮아지고 모두가 책(꽃)을 보면 얼마나 좋아? 뒷감당은 남에게 다 떠넘기면서. 그로 인해 자신이 속한 영지가 얼마나 위험해지는지(약소 영지 따위 밟아 버리고 기술을 빼앗자), 자신의 행동(고삐 풀린 망아지)으로 인해 다 같이 사이좋게 단두대에 올라설 수 있다는 자각도 없이, 이번에 왕(王)을 알현하면서 평소대로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는 걸 알게 되죠. 현실 지구에서 20살쯤까지 살았으니 왕이나 이웃집 아저씨나 다 똑같은 사람인걸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삼족이 멸족 당하고도 남았겠지만 그녀의 가치(신문물, 인쇄, 마력, 성녀) 때문에 살아 있다는 걸 여주만 모르고 있다 할 수 있는데요. 이래서 기술을 배워야 하나 봅니다.

상위 영지가 여주 빼앗으려는 장면들은 좀 갑작스러웠지만 꽤 흥미진진합니다. 권력은 이런 거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렇다고 마냥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듯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오징어 게임의 줄다리기처럼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장면들이 흥미롭죠. 다만 이런 흐름까지 오게 된 원인이 여주에게 있음에도(주변의 통제를 듣는 둥 마는 둥)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다소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왕의 증표는 아직 떡밥만 흐르고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건 한참 지나야 되지 않을까 싶군요. 이번 5부 전체의 주된 이야기가 되는 만악의 근원 아렌스바흐의 실질적 권력자가 된 '게오르기네(여주에겐 고모쯤 되려나요)' 관련해서는 골방에 틀어박혀 뭔가 꿍꿍이를 펼치는 복선이 투하되고 중앙 기사단이 애들 노는데 들이닥쳐서 여주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게 슬슬 뭔가 터질 거 같은 분위기를 뿌려댑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있었던 여주 납치 미수 사건 이면엔 고모가 자리 잡고 있기도 했죠. 아무튼 이제 여주는 어느 정도 자라게 되어 귀여움은 거의 없어져 버렸군요. 페르디난드가 데릴사위로 떠나면서 둘이 보여줬던 캐미도 많이 줄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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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팽 레이디 1 - 사상 최강의 용병은 사상 최악의 잔학 영애가 되어서 두 번째 세상을 무쌍한다, Novel Engine
아카시 칵카쿠 지음, 카야하라 그림, 이승원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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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오늘 소개할 작품은 노블엔진에서 신작으로 발매한 '새비지팽 레이디'입니다. 정보가 적어 구입을 망설였습니다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읽기에 무난한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요. 이 작품은 환생물로서 비슷한 작품을 꼽으라면, "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왕녀 전하는 화가 나셨나 봅니다", " 전생 왕녀와 천재 영애의 마법 혁명", "티어문 제국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분위기만 놓고 보면 '전생 왕녀'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군요. 내용적으로는 '왕녀 전하'와 좀 비슷하고요. 작중 주인공이 파탄뿐인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돼지 공작'과 '티어문 제국'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접하신 분이라면 본 작품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물론 그 반대(흥미 없다)도 있겠죠.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무슨 짬뽕 같은 작품인가 오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작품만의 분위기와 이야기도 있으니 편견은 가지지 말아 주세요.

간단하게 시놉시스 형식으로 언급해 보자면, 우수한 용병으로 내전에 참여했던 '엔빌'이라는 남자가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지 못하고 죽은 뒤 환생해 보니 사상 최악의 귀족 영애 '밀레느'의 몸이더라라는 게 일단 기본 플롯입니다. 일단 뭔가 좀 획기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환생이라 하면 남자=남자, 여자=여자인 게 보통이잖아요. 근데 이 작품의 주인공(남자)은 여자로 환생하죠. 여기까지 보면 뭔가 좀 남녀 신체 차이에서 오는 좌충우돌을 보여줄까도 싶었는데 작가가 뒷심이 부족했군요. 획기적인 건 남자가 여자로 환생했다까지 만입니다. 그보다 미래에서 국가 멸망 원인이었던 '밀레느'의 몸에 깃들었다는 게 주인공에게 있어서 더 큰 문제라는 것인데요. 미래에서 밀레느는 독재자도 울고 갈 정도로 악정을 펼치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폭발한 민중은 밀레느를 단두대에 세웠더랬습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밀레느는 고향을 짓밟고, 그가 자랐던 고아원을 불살라버린 인물이었죠.

주인공은 눈 떠보니 아직 악정을 펼치기 전의 13세 밀레느의 몸이었지만 성격은 이미 미래의 밀레느 못지않게 주변의 두려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자, 여기서 그럼 자신이 깃든 밀레느의 평판을 올바르게 하고 미래에 악정을 펼치지 않게 지금부터 성격과 행동을 바꿔 가는 내용일까?라고 하시겠지만 주인공은 그런 거엔 관심이 없어요. 그저 힘을 길러 집을 나와 길을 떠나는 걸 목표로 하게 되죠.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인생은 언제나 내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고 하잖아요. 주인공에겐 약혼자가 있었고, 약혼자는 이 나라의 왕자라는 것, 쓰레기 아빠의 등쌀에 약혼자 만났는데 괜히 힘을 과시하는 바람에 미저리같이 들러붙기 시작하고(이게 압권), 그게 또 소문이 나서 이웃 나라 황녀 '콜레트'의 눈에 찍혀버리죠. 그리고 그녀(콜레트)를 만나 투닥 거리고, 이후 학원에 같이 다니자는 제안에 집을 나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학원에 입학했지만 차라리 쓰레기라도 집에 있을 걸 같은 일들을 겪는 이야기를 1권에서 풀어내고 있는데요. 뭔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싶지만 진짭니다.

일단 1권이고 하니 등장인물 소개와 약간의 흥미로웠던 점을 언급해 보겠습니다.

우선 주인공의 약혼자인 왕자는 내청코의 '토츠카' 같은 포지션으로 '여장'이 매우 잘 어울립니다. 심약하지만 강단이 있어서 무서워하면서도 주인공 말은 드럽게 안 들어서 발암으로 다가올 때가 있죠(토츠카는 반대지만). 그러나 그게 정답일 때도 있어서 미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웃 나라 황녀 '콜레트'는 미래 내전에서 주인공을 죽인(어쩌면 안식) 당사자로서 주인공에게는 원수와 같은 존재인데요. 그러나 지금은 미래도 아니고 일어나지 않을 일로 척을 저 봐야 좋을 것도 없고 해서 사이좋게 지내기로 합니다. 까지는 좋은데 주인공은 그런 그녀에게 휘말려 학원에 가게 되고, 콜레트는 역시나 미래에서 나라를 이끄는 황녀답게 나대다 흑막에게 납치되고 주인공에게 구해진 이후로 뿅 가서 백합을 찍을 기세가 되죠. 여기서 흥미로운 건 겉모습은 여자라지만 내면은 남자인 주인공이 약혼자인 왕자와 나중에 결혼하면 잠자리를 해야 하나? 하며 질색하는 것과 호감도가 하늘로 치솟기 시작하는 콜레트와는 같은 여자인데 그렇고 그런 사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죠. 그러니까 내면이 남자인 주인공과 왕자는 BL이 될까, 주인공의 내면은 남자이지만 겉모습은 여자이므로 백합이 될까 이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맺으며: 신(神)의 총애를 받는다는 증표인 [스루베리아 머리칼(색)]을 가진 밀레느, 용병으로서 우수한 자질을 보여주며 [새비지팽(야만적인)]의 이명을 가진 주인공, 마력을 갖지 못했던 주인공이 신의 총애를 받아 마력이 충만한 밀레느로 환생하면서 괴물이 완성되었다.라는 게 1권 평이 되겠습니다. 여기에 집을 나가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었던 주인공은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주변과 엮이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나가게 되죠. 이것은 미래에 내란이 일어날까 말까는 오롯이 주인공에게 달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내란의 중심이었던 '밀레느'의 몸에 깃들은 내가(주인공) 올바른 행동을 해서 내란을 비켜가게 하면 되지 않을까도 싶지만 이런 작품이 다 그렇듯 흑막은 존재하고, 미래에 내란이 일어난 원인이 혹시 흑막 때문은 아닐까 하는 조금은 클리셰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왜 밀레느로 환생하게 되었을까 [스루베리아 머리칼]의 의미는 무엇일까 같은 고찰도 해나가는데 이건 2권 리뷰에서 언급해 보겠습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보면 좀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밀레느로 환생하면서 여자 몸에 대한 것과 생태를 이해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게 일절 없어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할까요. 그리고 환생할 때부터 밀레느의 주변 평가는 최악인데도 이걸 개선하는 장면이 미비하다는 것(요컨대 개연성 부족), 판타지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학원 라이프, 그 과정에서 틀에 박힌 내가 누군 줄 알아? 하며 시비를 거는 양아치들, 그걸 뭉개는 주인공, 나라를 파탄으로 이끌려는 흑막들, 거기에 엮이는 주인공. 물론 일본 작가들이 좋아하는 신(神)에 대한 것도 나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만 있는 건 아니고, 좋았던 점은 일러스트가 상당히 고차원 예술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구입 가치는 있어 보였군요. 그리고 주인공은 간간이 용병 때의 버릇으로 아앙?! 하며 양아치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특히 왕자가 말 안 들을 때) 귀족 영애와의 모습과는 괴리가 있어서 이게 또 귀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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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모드 1 - ~파고들기 좋아하는 게이머는 폐급설정 이세계에서 무쌍한다~, L Books
하무오 지음, 모 그림, 김성래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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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신작입니다. 사실 제목 때문에 구매를 엄청 망설였는데요. 시놉시스도 게임을 하다가 이세계로 전생하는, 이젠 개도 물어가지 않을 설정을 보여주고 있으니 더더욱 망설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도 L노벨(발매사)은 가끔 이런 우려에 허를 찌르는 작품을 내주고 있어서 이번에도 눈 딱 감고 구매했더랬죠. 다 읽고 난 소감은 '제목을 잘못 지었네'였습니다. 기본적인 플롯은 게임 오타쿠 35세 노총각(동정인지는 안 나옴)이 온갖 게임을 섭렵하고 지금 하던 게임도 섭종에 이르자 새로운 게임을 찼던 중 마치 다단계 같은 게임사의 홍보 글자에 낚여 게임을 실행했더니 이세계 전생이더라라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동안 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라노벨은 꽤 있었죠. 이 작품도 게임의 세계관이고 레벨과 스킬과 능력치(스테이터스)를 정석적이게도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는 능력이 곧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없어도 살 수 있음).

그렇담 주인공의 능력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가게 되는 게임 세계관(이세계)은 강한 직업을 얻을수록 낮은 신분계급 밖에 고를 수 없어요. 이렇다는 설명을 다 들었음에도 주인공은 신룡 소환하면 재미있겠다는 이유로 '소환사'를 선택했고, 소환사는 용사와 마왕보다도 더 강한 직업이라 신분 계급은 농노(노예보다 약간 나은 수준)밖 고르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선택, 그리고 난이도 설명을 들었음에도 헬 모드로. 요때까지는 자신이 이세계로 날려갈 거라는 걸 꿈에도 몰랐겠죠. 유저 편의성에 집중된 요즘 게임 시장에 오만 정이 떨어진 주인공은 즐겨 보겠다고 헬 모드를 선택했고 헬 모드에선 레벨 UP이나 각종 스킬 수련이 극악의 수준으로 노멀 모드보다 100배는 더 노력해야만 하죠. 요컨대 도끼로 자기 발등 찍어버렸지만 이때까진 몰랐죠. 이세계에서 개고생 할 거란 것을요. 그렇게 스타트 했더니 어머니 뱃속 양수에서 시작하는 이세계 라이프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전개는 허를 찔려 줬습니다. 보통 4~5살이나 15세쯤부터 시작하잖아요?

자, 그럼 여기서 '제목을 잘못 지었네'를 설명해야겠죠. 이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무직전생'을 들 수 있습니다. 작품 자체가 호불호 갈리지만 무직전생이 효평과 인기를 끄는 주된 이유는 가족애(愛)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농노의 자식(직업 때문에 신분 계급은 농노로 고정)으로 태어나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주인공은 일단 기본적인 가족 관계는 유지하였으나 어딘가 남일처럼 가족을 대했고 그러다 아빠가 크게 다치는 기점으로 비로소 가족이 무엇이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갑니다. 이후 자나 깨나 스킬과 능력치 연습과 고찰에 빠져 있었던 주인공이 정신 차리고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어른들이 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솔선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죠. 그리고 아빠가 다치면서 식량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고, 영주에게 작물과 사냥물 6활을 세금으로 바쳐야 되는 등 농노의 삶은 꽤 비참하다는 걸 알아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을 꼽자면, 이세계 전생했다고 단숨에 먼치킨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신룡을 소환하면 재미있겠다고 선택했는데 현실은 메뚜기와 벌레만 소환해대죠. 그것도 엄마의 발에 밟혀 힘 한번 못 쓰고 소멸되기 일쑤고요. 헬 모드로 시작해서 스킬 수련은 극악이고, 레벨 UP은 요원하기만 하고, 알고 봤더니 나만 헬 모드네? <- 사실 이게 백미입니다. 헬 모드라고 해서 이세계 모든 사람이 헬 모드가 적용된 줄 알았더니 주인공만 헬 모드죠. 그러니까 주인공만 100배 노력해야 되는 처지가 상당히 측은하게 다가옵니다. 결국 이상(신룡 소환?)은 하늘을 뚫을 기세인데 현실은 시궁창(소환자 말도 안 듣는 메뚜기). 이점은 제목대로 이긴 하군요. 그리고 결정적이게도 소꿉친구인 '클레나(히로인)'는 직업이 검성이라는 것이고 이대로 성장하면 왕족에게 고용되는 특급 엘리트 코스이건만 주인공은 쩌리 취급. 그러나 '이세계에서 무쌍한다'는 부제목처럼 언젠가 주인공은 크게 성장하겠죠.

맺으며: 그렇담 제목을 무엇으로 해야 되었을까. 이게 참 어렵단 말이죠. 필자도 리뷰 쓸 때 도입부를 어떻게 쓸까만으로 2~3시간 고민한 적도 있거든요. 주인공이 성장하면서 소환사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는 복선을 제법 있었습니다만, 작중 주인공이 겪는 스킬 수련이 헬 모드라는 점, 그리고 농노로서의 삶이 더해져 이 작품의 본질은 '헬 모드'가 될 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사실 이 두 가지(스킬 수련, 농노의 삶)를 절묘하게 섞어 두기도 했고요. 결국 제목은 잘 지었다는 결론? 아무튼 완벽한 작품은 없다지만 좀 아쉬웠던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주인공이 사는 마을은 개척촌으로서 이제 생긴 지 몇 년 안 된 신생 마을이죠. 그럼 위생 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유아 사망률이 꽤 높을 텐데도 언급이 없다는 것(마법이 있는 거 같지만 마법사 고용할 돈이 없어요), 잡은 멧돼지를 해체하는 장면은 작가의 사전 조사가 미흡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멧돼지는 기생충의 온상인데도 이거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마물이니까 없나?), 책벌레의 하극상이라는 작품에서는 집돼지를 잡는데도 여주는 기절을 해버렸죠. 위생 상태와 유아 사망률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주었고요.

이런 작품에서 하렘이 빠질 수 없는데 특이하게도 이런 부분에서는 느릿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동갑 소꿉친구인 '클레나'는 오로지 칼만 휘두르며 걸핏하면 주인공을 찾아와 대련하자고 졸라댈 뿐이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영주의 딸 '세실'이 좀 부뚜막 고양이처럼 만나자마자 주인공에게 호감을 품는 거 같지만 어떻게 될지는 좀 두고 봐야겠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이들 관계에서도 무직전생의 편린을 볼 수 있는데요. 주인공 '알렌'은 말할 필요도 없이 '루데우스(심지어 비슷한 나이에 전생, 아기부터 시작)', 클레나는 '록시(나중에 만나는 역할)', 세실은 '에리스(나중에 떠날지는 두고 볼 일)', 전개도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주인공이 영주의 시종으로 가게 되면서 클레나와 헤어지고 세실을 만나죠. 세실은 에리스만큼이나 말괄량이고요. 부모님으로 넘어가면 주인공 아버지는 무직전생의 아버지만큼이나 주인공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엄마의 존재는 좀 약했지만요. 요약하면 19금 요소가 없는 무직전생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아류작 같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흥미롭다는 뜻입니다. 무직전생을 흥미롭게 보셨다면 이 작품도 흥미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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