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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6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아야쿠라 쥬우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여(女) 상인 '에이브'의 꾐에 빠져 호로를 상회에 저당 잡혀 큰돈을 대출받아 모피 사업에 뛰어들었던 로렌스, 결국 호로를 만나고 나서 되는 일 하나 없다는 걸 인증이라도 하듯이 에이브에게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거기에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는 로렌스에게 에이브는 품속에서 꺼낸 도끼를 들고 '너, 죽여버리겠다'라는 통에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도낏자루에 두들겨 맞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버린 로렌스의 기구한 삶은 계속되는데요. 부부 사기단의 진면목은 초반뿐이고 뒤로 내리 고생길입니다. 경우에 따라 목숨도 위협받기도 하고 이쯤 되면 호로는 행운의 여신이 아니라 악운의 저승사자가 아닐까 하는군요.
좌우당간 이번 에피소드는 상회에서 어찌어찌 호로를 되찾은 로렌스가 에이브를 뒤쫓아 강 하류 마을에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호로는 사실 로렌스가 에이브와 모피 사업이 잘 되든 안 되든 그의 곁을 떠나려 했습니다. 왜 이런 마음을 먹었는지는 이전에 언급했으니 여기선 패스하고, 그럼에도 로렌스는 그의 본심은 언제까지고 같이 여행이지만 지금은 그녀의 고향까지만이라도 여행을 같이 했으면 하는 마음에 호로를 되찾는 자리에서 그녀에게 '네가 좋다'라고 고백을 했고 호로는 그 말에 결국 울음을 터트리면서 그녀도 매한가지라는 마음을 드러냈었죠.
결국은 이런 겁니다. 좋아서 죽고 못 살지만 언젠가 찾아올 권태기가 무서워 같이 못 있겠다는 것입니다. 호로에게 있어선 권태기는 외로움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이번 에피소드는 이런 마음을 조금식 뛰어넘으려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로렌스는 호로를 되찾은 것에 만족하여 에이브를 뒤쫓지 않으려 했으나 여행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로렌스는 물론이고 호로도 마찬가지인지라 뭔가 계기가 필요했던 그녀 또한 애써 말로 표현하지 않고 복수라는 미명 아래 에이브를 쫓자는 그녀에게서 둘 다 모지리들이라고 혀를 끌끌 차게 하는 게 로렌스고 호로고 귀여워 죽을 지경입니다.
그렇게 에이브의 뒤를 쫓으며 수로를 지나는 배에 몸을 실은 두 사람(호로는 늑대라서 한 명과 한 마리로 표현해야 하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을 때 황화보다 더 넓었던 둘의 간격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로렌스의 고백이 주효했던 것이겠죠. 이것조차 호로는 놀림감으로 삼고 있는 모양이지만요. 그렇게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간 이들은 자신들의 미래는 분명한 엇갈림과 이별 밖에 없다는 걸 자각하고 있어도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많은 시간이 흘러 지난 나날을 회상하며 그리워할지라도 지금은 그저 여행을 만끽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로렌스가 홀로 상인을 길을 걷는 추억에선 호로는 그때도 나도 그의 곁에 있었더라면, 같은 아련함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준비된 이별, 머지않아 찾아올 이별을 대비하여 서로가 기댈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도트 콜'이라는 소년을 맞이합니다. 이미 완결이 났고 후속편(늑대와 양피지)에서 콜이 이들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지 다 밝혀졌으니 굳이 새로이 크게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그저 그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사기당해서 거지 꼴이 되어 지나가는 로렌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로렌스& 호로와의 인연의 시작이라고만, 미래에 이런 애가 자신들의 사위가 될 줄은 지금은 꿈에도 몰랐겠죠.
로렌스가 콜과 잠깐의 여행을 하며 평하길 순한 호로 버전쯤이라고, 그리고 콜의 등장으로 호로가 얼마나 외로움을 많이 타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그녀가 콜을 대하는 게 예사롭지 않아 애가 좋냐는 로렌스의 말에 그(로렌스)에게 안겨들며 거의 환장한 모습을 보인 것에서 쇼타콘이 아닌 진정으로 아이를 원하는 모습을 얼핏 느껴지기도 했군요. 하기야 로렌스와의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졌을 때 아이를 가지면 둘이 되어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니 그녀의 호들갑은 과장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에서 조금은 애처롭기도 했군요.
어쨌건 에이브를 뒤쫓으며 수로를 여행하는 게 이번 에피소드의 끝입니다. 다시 예전처럼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한 마디 하면 두 마디로 대갚음해주는 호로를 바라보며 언젠가 저놈의 콧대를 납작하게 비틀어주마 같은 마음을 먹지만 언제나 당하는 게 마치 장난 잘 치는 타카기양을 보는 것처럼 매번 당하는 건 로렌스, 언젠가 저 주둥이를 집게손가락으로 잡고 쭈욱 당기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다 로렌스가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면 삐치기도 하고, 말 한마디에 토라져 말을 섞지 않자 이러다 또 이별을 노래하지 않을까 말도 없이 떠나는 게 아닐까 하는 로렌스의 마음은 두 방망이질을 해대고 콜과 부대끼는 호로를 바라보며 애에게까지(지금은 콜은 10대 초반) 질투를 하는 등 로렌스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이 여간 웃긴 게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았고 이별도 준비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로렌스의 고백 덕분인지 둘은 대놓고 한 이불 덮고자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로렌스의 가슴팍에 기대어 개과지만 고양이가 그루밍 하듯이 뭉그적 비비는 모습을 작가가 참 리얼하게 표현을 해놨더군요. 사실 고백이 아니어도 쑥스러워서 둘 다 표현은 안 하고 있지만 진즉에 둘의 마음은 정해져 있었죠. 이별이라는 분기점을 싫어도 인식하고 있어서 서로가 다가가지 못하고 있을 뿐...
맺으며, 이번 에피소드는 둘의 마음을 최종 확인하는 버전입니다. 결국은 호로의 고향까지가 아닌 언제까지고 계속 여행을 하고 싶다가 되겠지만 들려오는 호로의 고향 요이츠에 대한 소문은 좋지가 않습니다. 아마 다음 행선지는 이와 관련 있을 듯하군요. 그런데 현명하다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서겠지만 요망한 짓은 그렇다 치더라고 모든 걸 꿰뚫어보고 있는 호로의 심안(?)을 보고 있자니 살짝 기가 질리기도 했군요. 현실에서 이런 여자를 만나면 아마 견대낼 남자는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