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에서 시작하는 마법의 서 3 - 아크디오스의 성녀 - 하, NT Novel
코바시키 카케루 지음, 시즈마 요시노리 그림, 김혜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기적의 성녀 이면에 감춰진 진실 그 두 번째입니다. 성녀가 마녀인지 아니면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한 해답에 접근해가던 제로와 용병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성녀 살해 미수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되는데요. 그리고 도적들이 머물고 있다는 로터스 성채에 흘러들어간 제로와 용병은 성녀의 진실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추리했던 것과 동일했고 제로가 창조했던 마법 이론을 근간으로 한 기적도 뭣도 아닌 사기라는 것을...

 

하지만 워낙 순하고, 세상 물정 모르고, 의심이라는 것을 모르고, 남에게 기대며 살아갔던 성녀를 두고 과연 처벌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집니다. 사기를 치고 있지만 정작 그게 사기인지 모른 채 베풀고 있는 성녀, 그녀가 베푸는 기적의 진실은 병을 치료한다기보다 여러 사람에게 나눠줘서 병을 분산 시키는, 가령 흙탕 물에 맑은 물을 부어서 희석 시키는 방식의 치료가 성녀가 베풀었던 기적의 진실이었는데요.

 

제로가 마법을 배운 적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 성녀는 마법?이라며 마법 자체를 모르고 있었고 이에 흑막이 존재한다는 암시를 띄웠는지라 그래서 제로와 용병은 성녀 뒤에 마법을 배운 막강한 적이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추리를 했었는데요. 결국 이에 도달하는 해답엔 성녀는 흑막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 바지사장과도 같은 포지션이라는 것입니다.

 

조저야 되는 건 성녀 뒤에 있는 흑막, 하지만 몰랐다고 해서 무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병을 분산한다는 건 10식 받아오던 것이 언제가 100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자명하죠. 이것을 알아버린 사람들이 모여있던 곳이 로터스 성채였고 그들은 호시탐탐 성녀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녀 뒤에 흑막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녀만 죽이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지만 이미 병을 분산 받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소수, 그래서 실행범(?)으로 제로와 용병이 나서게 됩니다. 더 이상 세상 물정 모르는 성녀가 죄를 짓는 걸 막기 위해, 그리고 흑막을 잡고 제로의 서 사본을 회수하기 위해 성도로 향합니다. 거기서 제로와 용병은 흑막으로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복수 귀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파헤칩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오로지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일념을 이용해 못된 마법(1)인지도 모르고 그저 의심 없이 베풀며 살아왔던 성녀를 누가 욕할 수 있는가, 알고 있음에도 먹고살기 위해 병을 분산 시키는 매개로 작용하는 각인을 받아 여러 사람을 치료하면 할수록 자신의 몸이 망가진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극빈층을 누가 욕할 수 있는가, 성도를 둘러싼 호수 밑바닥엔 시체로 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철학적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지가 죄라면 이 세상 모두가 죄라는 것처럼 이용하고 이용당하면서 죽어가는, 성녀를 이용해 자신의 복수만을 바랐던 흑막의 복수가 복수를 낳는 연쇄가 되어 소용돌이칩니다. 그 와중에도 노력도 안 하고 무조건 성녀에 기대어 치료를 바라며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기심은 누가 정의이고 누가 악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게 합니다.

 

나비의 날갯짓으로 태풍이 된다는 것처럼 제로가 창조한 마법의 이론이 이렇게 태풍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었습니다. 제로가 염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죠. 하지만 잘못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물음도 동반합니다. 제로가 이론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13번이 제로의 서를 들고나가지 않았다면, 성녀가 조금만이라도 주변을 의심했더라면, 하지만 일은 일어나고 말았죠. 그러나 용병은 누구의 잘못인가 하는 물음에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차 사고가 차량 제조사에 있지 않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제로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자신의 잘못이 아닌 악용하는 사람의 잘못임에도 그 이론 창시자로써 책임을 다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숭고하고 의미 있는 일이기에 누구도 욕할 일은 아니라고, 보면 제로는 이런 면에서 많은 집착을 보여 조금은 측은함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용병은 제로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제로는 여느 히로인과 다르게 용병에게 고백이나 다름없는 말을 늘어놓습니다. 다이렉트로 고백을 뱉으며 용병의 품으로 파고드는 모습에서 그녀가 안고 있는 외로움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였군요. 가족 같은 동료들이 죽고 자신을 아껴주었던 13번은 광기에 휩싸여 미친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10년이나 동굴에서 홀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 외로움을 이루 말할 수 없이 컸겠죠. 그러나 용병은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제로는 용병을 신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고요.

 

어쨌건 슬픔과 분노, 그리고 희망이 공존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글이 길어질 거 같아 많이 생략했는데 뭐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것이군요. 분노로는 아무것도 이를 수 없고 슬픔만 낳는다는걸, 그리고 그걸 뛰어넘었을 때 빛으로 충만한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무슨 종교 같은 말이군요.

 

그래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게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인 기승전결 부재는 꼭 찬물을 끼얹는다는 겁니다. 1권 13번 에피소드도 그렇고 이번 성녀와 흑막의 에피소드도 기승전결로 끝나지 않고 '두고 보자'라는 전형적인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악당 클리셰를 동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뭐 이 작품 자체가 적과 아군을 구분해서 권선징악 하는 것이 아닌 인간 누구나 죄를 저지를 수 있고 그 죄를 용서하는 것도 관용이라는 이야기인지라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 하늘을 보며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만끽하려면 이 작품도 괜찮을 것입니다. 

  1. 1, 제로는 선의로 창조한 마법 이론이지만 사용에 따라 악용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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