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고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3 - L Novel
타오 노리타케 지음, ReDrop 그림, 이진주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불량 학생 '아야메 코토코' 갱생기 제3권입니다. 3개월 전 위험에 빠졌다 아라미야에게 도움을 받고 나서 한눈에 뿅 가버린 아야메가 평범한 학생이 되어 3차원 여자에겐 관심이 없는 아라미야에게 대시한다는 이야기는 여전하지만 보통 이런 청춘 러브 코미디물이라면 다 그렇듯 주변이 도와주질 않습니다. 총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 듯한 '스와마 이브'가 저지른 역강x 사태를 겨우 마무리했나 싶었더니 이번엔 아야메, 하츠바시, 스와마가 백합이 아니냐는 꼬리표가 나붙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소문이 요상하게 변질되기 시작하는데요. 아라미야가 위 소녀 3인방의 백합을 지켜봤다는 둥 부실에서 후기를 설파한다는 둥 불똥이 엉뚱하게도 아야메에게서 아라미야에게로 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소문이 날로 진화해서 급기야 전교 여학생 절반하고 잤다는 소문까지 번지게 되고요. 왜 이런 꼬리표가 붙는지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려고 해도 막연하고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 들겠지 했지만 그칠 줄을 모릅니다. 결국 소문은 교실에서 여학생들과 돌아가면서 난잡한 짓도 했다느니 하는 점입가경으로 치달아 갑니다.
한편 학생회 회장 '야오타니 아이리'는 2권에서 아라미야가 속한 부실을 짜부러 트리려 했다가 실패한 이후 이번엔 아야메를 자기 여자(백합)로 만들기 위해 거치적 거리는 아라미야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아라미야에겐 자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고요. 남자는 모두가 적이고 학교에는 온통 여자로만 채우겠다는 회장, 전교 여학생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으며 아야메가 자기에게 와야 비로써 행복해진다는 회장의 말에 그동안의 존댓말이 반말이 될 정도로 아라미야는 충격을 받습니다.
한마디로 회장은 미쳤습니다. 급기야 남자 연인은 아라미야, 여자 여인은 자신이 하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회장은 답을 정해놓고 아라미야를 공격 시작합니다. 반론은 용서치 않고요. 여기서 더욱 골 아픈 건 자신만이 정의라고 믿고 있는 회장의 성격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첫 번째로 피해야 될 인물이 바로 자신만의 정의에 사로잡힌 사람이죠. 마치 스토커처럼 나만이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하며 1차원적인 생각을 부딪혀 오면 이쪽은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선인인 척 학생들의 인망도 두터운 회장의 이런 이면을 고발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고 오히려 역공 당할 우려인 상황에서 아라미야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 방법은... 없어요. 보통 여타 작품에서 권선징악으로 최종적으로 주인공이 이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이런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는 기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적어도 1~3권은요. 아라미야는 그저 숨은 오타쿠일 뿐이죠. 거기에 용기(勇氣)라는 스파이스를 조금 치고요. 은근히 이런 면에서 현실적입니다.
어쨌건 날로 심해지는 소문도 어찌할 수 없는데 아야메를 독차지하기 위한 회장의 집요한 집착은 날로 심해지고, 그럴수록 적이 나타나면 물 처먹고 배를 불리는 복어처럼 '아라미야는 변태다.'라는 소문은 도를 더해 급기야 퇴학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뭐냐고요. 고등학생(또는 고등학교)쯤 되면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게 되는 걸까요? 피해자는 한 명도 없는데 가해자만 있는 거지 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답답한 게 간간이 소문을 뿌리는 듯한 학생을 캐치 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거군요. 나대면 나댈수록 수렁에 빠지는 늪 같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반격의 실마리를 보여 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군요. 근데 사실 잘 살펴보면 회장이 그랬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마치 회장이 아리야마를 만나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소문만 무성해질 뿐이죠. 아리야마는 회장이 소문을 퍼트리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행동으로 그것을 밝혀내지 않아 또 아쉽게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편으로는 청춘을 만끽하는 에피소드도 벌어지는군요. 니들이 그럴 상황이 아닐 텐데?라는 느낌일 정도로 여름방학이라는 이벤트를 위해 수영복을 사러 간다던지 아라미야 여동생 키요미의 농간으로 데이트를 한다던지하는 평화로운 일상도 흘러갑니다. 그렇기에 조마조마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군요. 카페에서 밥을 먹고 손을 잡고 바다를 거닐고...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함이랄지... 이것이 청춘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라는 것처럼 아련한 일상이 흘러갑니다. 보통 하렘물이었다면 여기서 깽판 치는 히로인들도 있었겠지만 이 작품은 그런 게 없어서 좋았군요.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미로운 에피소드가 생겨납니다. 지금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것처럼 아라미야 패거리를 만나고 나서 비로써 자신의 가치와 있을 장소를 알게 된 스와마, 초등학교 때 아라미야에게 트라우마를 지게 했던 그녀의 진심 어린 사과는 그녀를 다시 보게 한다는 것인데요. 순수하기에 주변의 악의를 느끼지 못했고 그것이 괴롭힘이라는 걸 알지 못했기에 행복했다는 스와마, 가슴 아픈 이야기죠. 여기에 와서 그런 괴롭힘 없이 대등하게 자신을 바라봐 주는 친구들이 있어 기쁘다는 그녀의 모습에서 잔잔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오빠를 동정/밥맛으로 여기던 키요미의 귀여움이 급부상하는데요. 내청코의 코마치가 성장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했습니다. 아직 중학생이던 코마치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오빠가 밥맛이라는 걸 자각하고 내치면서도 은근히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느낌, 또 내청코의 토츠카처럼 '오토코노코 사이타니'가 본격적으로 출연하면서 재미를 더해갑니다. 사이타니를 바라보는 아라미야의 반응이 딱 하치만이더군요. 이번에 수영복 에피소드에서 급기야 여자 수영복을 입고 마는 사이타니, 토츠카도 이런 경우는 아직 없었는데...
여전히 아라미야에게 대시하는 아야메, 해변을 거닐며 너를 3차원으로 끌어 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네가 다른 여자를 선택해도 괜찮다는 아야메, 1권에서 어떻게 단박에 아라미야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냐며 개연성이 부족한 거 아니냐는 말이 많았었죠. 필자도 그중 한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여튼 한눈에 반한다는 건 남자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비록 상대가 처녀충에 3차원 여자는 흥미가 없다지만 회장 측근에게 개털리면서도 자신을 구하러 와준 그에게서 이전부터 올곧고 상냥한 마음은 진짜라고 느꼈기에 확신했을 겁니다. 3차원으로 나와도 자신을 선택할 것이라는걸...
맺으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 작품은 다 좋은데 기승전결이 아니어서 많이 떨떠름 하다는 것입니다. 하츠바시와 스와마 사태도 그렇고, 회장 때문에 자칫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뻔하였는데도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장면은 솔직히 아니었습니다. 엔딩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지만 감정이입을 최고조로 올려놓고 찬물을 끼얹는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군요. 오늘의 적은 내일의 친구?
어쨌건 권력을 가진 자(회장)에게 일반인(아리야마)은 맞설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해서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소문의 진상 따윈 개나 줘버리고 가십거리로 즐기며 내 일 아니면 상관없어 하는 학생 등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어서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아리야마와 아야메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는 복선이 몇 개나 나오면서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