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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슬레이어 1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칸나츠키 노보루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3월
평점 :

산이 있으니까 오르는 산악인이 있듯이 당연하다는 듯 고블린이 있으니까 죽이는 모험가가 있습니다.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모험가들은 고블린만 사냥하는 그를 고블린 슬레이어(이하 남자)라 부르게 되었지만 이것은 경외의 언어가 아닌 경멸의 언어입니다. 고블린은 쪼렙들이 사냥하는 것이라며 경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길드에서 퀘스트를 수령합니다. 언제부터일까... 무수한 나날을 꼬질꼬질하고 냄새나는 장비만 걸치고 늘 고블린만 잡아온 남자는 어느덧 중견 모험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가 있으니까 답을 내놓고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습니다. 남자에게 있어서 고블린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남자는 오로지 고블린을 죽이기 위해 살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을까 만을 생각해 왔습니다. 철저한 준비 끝에 그 수가 얼마가 되든 기어이 전멸 시키고 마는 그에게서 대체 어떤 연유가 있길래 이토록 고블린 퇴치라는 외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블린, 그것은 그저 칼 한번 휘둘러서 죽이고 경험치 얻는 것에 불과한 최약체 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판타지에선 이게 정석으로 통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개별 개체는 약해도 숫자의 폭력 앞에 설사 그게 사자라도 개미에게도 당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개미 한 마리 밟아서 찌브려 트렸다고 득의양양해진 마을 소년과 소녀가 초보 모험가가 되어 무리에게 도전했다가 전멸 당하는 걸 이 작품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매우 참혹하다는 건 덤으로 증정되고요.
남자는 그런 초보 파티에서 여신관을 구해줍니다. 파티원들의 죽음에 명복을 빌어줄 시간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되는 지독한 현실은 여신관의 어깨를 짓누릅니다. 그리고 금방 태어난 고블린이라도 용서 없이 죽이는 고블린 슬레이어와 그걸 막으려는 여신관에게서 인간과 고블린의 연쇄랄지 고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새끼 고블린이 가엽다고 살려주면 그 개체는 악의를 품고 자라 인간을 습격하게 되고, 인간은 그런 고블린을 죽이러 다닌다는 끝나지 않는 연쇄, 그 연쇄 속에서 고블린에게 죽임을 당한 가족의 복수를 위해 모험가가 되어 고블린만 죽이러 다니는 남자가 있습니다. 여담으로 고블린 슬레이어 2호를 만들려는지 여신관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남자의 기행을 엿볼 수 있습니다.
뭐랄까 열심히 고블린만 잡아대는 주인공 때문인지 좀 밋밋했습니다. 무뚝뚝함의 대명사처럼 '어, 그래, 그런가' 같은 말만 해대는 통에 분위기를 좀 띄워야 될 여신관은 어리바리합니다. 그래도 여신관 나름대로 실력은 있는지 중요한 때에 빛을 반짝여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주인공이 바뀌지 않았나 싶기도 했군요. 새끼 고블린을 죽이는 남자를 바라보며 연쇄의 고리가 왜 생겨나는지 모르는 장면에서 남자와 대립각을 세우나 했지만 실상을 알고 차츰 이해자로 변신해가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공기화 진행 중이어서 이후 어떻게 될지는...
남자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하이엘프/드워프/리자드맨과 파티를 짜고 오우거를 토벌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며 지낸 시간 동안 조금식 남자(고블린 슬레이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동료들을 만나가는 장면도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언제까지고 혼자였을 거라 생각했던 지난 나날,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를 불안한 미래 속에서 남자에게 다가온 손길에 얼어붙은 그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는지 앞으로가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맺으며, 코믹에서 보여줬던 처절함은 순화되었는지 그리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약하니까 죽는다. 같은 말은 인간이나 고블린이나 똑같이 적용되고 있어서 이건 좋았군요. 그리고 언제까지고 마음을 닫고 살 거 같았던 남자가 소꿉친구와 여신관과 하이엘프 그리고 길드 언니를 만나 조금식 주변과 동화해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일러스트가 수준급이군요. 어디서 읽기론 몇 장이 빠졌다고 하던데 아쉬울 정도로..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 보고 때론 뒤에서 오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건 어떨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