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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에서 시작하는 마법의 서 1 - NT Novel
코바시키 카케루 지음, 김혜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작금의 시대에서 마녀라 함은 칙칙한 움막에서 끓는 솥을 걸어놓고 저주를 퍼붓듯 주문을 외는 것부터 손오공식 마법을 쓰는 마녀와 발랄한 게 포인트인 어린 소녀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죠. 이 작품에서도 마녀가 나옵니다. 마법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마술만이 존재하는 세계, 인간에게 핍박받는 마녀가 있는 세계, 천재지변도 마녀 때문이라며 화형을 서슴지 않는 세계에 10년 동안 홀로 움막(동굴)에서 지내다 인간의 세계로 나온 마녀가 있습니다. 10년 전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만을 남겨둔 채 돌아오지 않는 동포 13번을 찾아 마녀는 여행길에 올랐고 숲 속에서 동료라 부를 수 있는 반인반수 짐승 용병을 만나게 되는데요.

마녀의 이름은 '제로(오른쪽)'입니다. 본명은 불명, 숲 속에서 만난 '짐승 용병(왼쪽)'도 본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본명은 곧 죽음과 예속에 관련되어 있어서 등장인물 대부분은 실명이 거론되지 않습니다. '짐승 용병'은 마녀가 고위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재료인 머리(글자 그대로 머리통)를 가졌다는 죄로 마녀에게 쫓기는 일상을 보내다 느닷없이 자기 밥을 강탈한 제로를 만나 여행길에 오릅니다.
제로가 여행을 떠난 이유, 10년 전 제로가 마법이라는 획기적인 마술을 집필해뒀던 마법의 서가 도난당합니다. 동포 13번은 그것을 찾고자 제로의 곁을 떠났고 제로는 기다리다 지처 13번과 마법의 서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인데요. 마술이란 무엇인가, 마녀가 부리는 주술과도 비슷합니다. 마녀는 고위 악마를 불러내 악마의 힘을 빌려 마법이나 주술을 발동 시킬 수 있으나 매번 마법진을 그리고 악마를 불러내 계약해야 하는 등 주술을 한번 쓸려면 매우 불편하였는데 제로가 이것을 단축 시켜서 집필한 게 마법의 서라고 합니다.
초반에도 서술했지만 이 시대에 마녀는 걸핏하면 인간에게 잡혀서 화형 당하던 때였습니다. 500년 전 참다못한 마녀들은 인간과 전쟁을 벌였지만 참패하였고 이걸 계기로 더욱 마녀는 나쁘다는 편견이 생겼는데요. 이건 지금도 진행형으로써 핍박의 강도는 날로 커져만 가던 때에 제로의 마법의 서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마법의 서는 쉽게 말해서 주술을 간략한 영창으로도 불러낼 수 있는 황금의 알이었던 것이죠.
그동안 주술로 사람들을 죽이려면 막대한 품을 팔아야 했으나 이젠 재능만 있으면 마법을 쓸 수 있으니 그동안 핍박받던 마녀들이 이걸 배우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풍전등화의 일이 지금 제로와 짐승 용병이 가는 왕국의 수도에서 벌어지려고 합니다. 어떤 일로 인해 고명한 마녀가 억울하게 화형 당하자 그동안 쭉 담아뒀던 물병이 깨지듯 들고일어난 마녀에 의해 전쟁의 분위기를 풍기고 그 중심에 제로가 집필한 마법의 서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태는 격랑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과 마녀간 얽히고설킨 이야기로 인해 제법 머리를 써야 되는 추리물을 방불케 합니다. 또한 마녀가 화형 당하는 시대를 표현한 작품에서 다 그렇듯 무지로 인한 서로가 피해자라 울부짖으며 서로가 헐뜯고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마녀와 인간도 있다는 걸 역설합니다. 누가 전쟁을 시작하였는가, 누가 먼저 빌미를 제공 제공하였는 가를 두고 앞과 뒤가 다른 전개가 펼쳐치면서 양측이 내세우는 정당성은 혀를 내두르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이게 이 작품의 포인트이자 백미)
제로는 짐승 용병을 고용해서 13번이 살고 있는 왕국의 수도로 향하면서 초보 마녀 '알바스'를 동료로 맞아 지금 왕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차츰 접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뼈아파 합니다. 사실은 마법의 서는 싸움에 이용하라고 만든 게 아닌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만든 것뿐인데 어째서 악용되는 것일까 매번 부싯돌로 불 붙이는 수고를 마법 하나로 붙이면 편하잖아? 같은 순수한 마음에서 만든 마법이 어째서 불의 화살이 되어 타인을 죽이는 것에 이용되고 있는 것인가...
언제까지고 침울해 있을 수는 없으니 범인이 있으면 잡으면 되는 것이고 행동에는 결과가 있듯이 마법의 서를 훔쳐 간 범인이 밝혀지고 왕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과 마녀 간 전쟁의 흑막이 밝혀지면서 모든 게 하나로 이어지는 장면은 결국 이럴 줄 알았다로 귀결되지만 이 과정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서술하다 보니 꽤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다 읽고 보면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어서 조금은 허탈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처음엔 일방적으로 마녀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짐승 용병이 제로와 알바스랑 지내며 마녀에 대한 편견을 치료해가는 과정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츤데레 같이 너 싫어했지만 마녀라고 다 같은 게 아닌 제로만큼은 특별하다는 감정이 생겨 갑니다. 철이 들 때부터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마녀의 동족인 제로와 상성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짐승 용병이 가지고 있는 내면을 꿰뚫어본 제로의 집요한 어택에 결국 손을 내밀어 주는 장면은 훈훈하게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알찬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육화의 용사처럼 용의점을 뿌리고 해답 편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것이군요. 그래서 앞의 내용을 잘 기억하지 않으면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을 수 있고요. 또한 마녀가 잘못 했네 했지만 알고 보니 인간도 잘못 했네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조리는 독자로 하여금 깨닫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독자를 위해 어물쩍 해답을 서술하는 등 작가의 치밀성이 돋보이기도 합니다.
맺으며, 필자의 주관적으로는 재미있었습니다. 이 한마디만 써도 될 정도로 이 작품은 가치가 있었군요. 그리고 중간중간 개그와 허를 찌르는 단어 표현은 혀를 내두르게 하였습니다(이것도 이 작품의 포인트). 그걸 글이 길어져서 표현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다만 흑막이 밝혀지고 권선 성악이 아닌 '모두가 좋으면 좋은 거' 같은 엔딩은 다소 김빠지게 합니다.
그 외 제로의 무뚝뚝한 할머니 같은 말투와 세상 물정이 어두워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재미있었고, 처음엔 진심으로 으르렁 거리다가도 본질은 그렇지 않다는 듯, 가면서 츤데레로 변하는 용병도 귀여웠습니다. 하지만 마녀사냥과 화형이라는 키워드가 내포된 작품에서는 삼가야 될지도 모를 단어(귀엽다느니)가 아닐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