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의 천사 1 - Until Death do them, L Novel
키나 치렌 지음, negiyan 그림, 사나다 마코토 원작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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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은 게임이라고 하죠? 해본 적은 없지만요. L노벨에서 코미컬라이즈와 더블어 이번에 발매된 라이트 노벨이라고 하기엔 좀 무게감 있는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제목이나 표지에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겠지만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런 이야기인데요. 하지만 아무리 무게감이 있어도 필자 기준이긴 한데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고 소설도 게임을 원작으로 하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게 있어 왔습니다. 이 작품도 솔직히 그런 것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느낌이었군요. 스타트해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려면 단서를 찾거나 퀴즈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때론 함정을 뛰어넘어 클리어해가는 듯한 이야기가 이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B7, 건물인지 벌판에 땅만 파서 만든 구조물인지 모를 지하 7층에서 여주인공 레이첼(13살, 이하 레이)이 눈을 뜨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곧 자신은 기억을 잃었다는 걸 알게 되고 여기를 벗어나기 위해 단서를 찾으며 돌아다닐수록 유쾌한 곳은 아니라는 걸 알아 갑니다. 그리고 B6(지하 6층)에서 사신이 들고 다닐법한 대낫을 들고 자신을 쫓아오는 붕대 귀신(?)을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인 시리어스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붕대 귀신을 피해 B5(지하 5층)에 올라간 레이에게 어떤 의사가 레이의 주치의라며 다가오는데...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B6의 붕대 귀신, 아니 B7에서 B6으로 올라갈 때 나온 방송에서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챌법한 앞으로의 전개도가 펼쳐지는데요. 옛날 90년대 한창 유행했던 공포 게임을 접해온 사람들이라면 쉽게 적응할만한 단서도 뿌려집니다. 요컨대 기억을 잃은 소녀가 B7에서 B6으로 올라간다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수많은 난관(살인자 등등)을 뚫고 지상으로 나아가는 게 이 작품의 골자가 되겠습니다. 여튼 B5에서 레이는 맛이 간 주치의에게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어떻게 된 일인지 B6에 있어야 할 붕대 귀신이 B5까지 올라와서 레이를 구출해주면서 시스템(1)에 의해 배신자가 된 붕대 귀신은 레이와 동행하게 됩니다.

 

붕대 귀신의 이름은 '잭'...

 

'나를 죽여줘'

 

B5에서 기억이 돌아온 레이가 잭에게 한 말입니다. 자신의 정체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어 혐오감인지 죄를 지었으니 죽어야 된다는 법의 원칙론(?)에 입각하여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곧 삶을 포기한 녀석에게 흥미를 잃은 잭은 거부하며 지상으로 나가면 죽여 주겠다는 대답과 함께 여기서 나가게 힘을 보태라고 합니다. 이로써 레이는 살인귀 잭을 동료로 맞아들이고 지상으로 나가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하지만 딱히 그런 건 없고 상황에 맞게 자연스레 나오는 답을 풀어갈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잭은 몸으로 때우느라 개고생하게 되고요.

 

그리고 조금식 밝혀지는 레이의 과거...라고하고 싶지만 고맙게도 이 작품은 꽤 불친절하게 응대를 해옵니다. 레이의 결정적인 과거는 뱉어내지 않고 '잭'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뉘앙스를 곳곳에 뿌려 놓는데요. 틀림없는 불행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엉뚱한 잭의 과거를 적나라하게 밝히면서 혹시나 그녀는 과거 잭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복선만 투하하다가 끝나 버립니다.

 

하지만 이 부분, 레이는 과거 잭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복선을 알고나서 뒤늦게 소름이 돋기도 하였습니다. 스포일러라서 정확히 언급은 힘들지만 초반에 레이가 과거를 잠깐 회상하는 장면을 기억했다가 후반 잭의 과거를 접하다 보면 이 둘의 과거는 어쩌면 연동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이군요. 어떻게 보면 알고 보니 어릴 때 헤어진 친남매이더라 같은 진행일 수는 있습니다. 물론 진짜 친남매일 수도 있고 잭이 저질렀던 과거의 어떤 일의 당사자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런지 레이는 자신의 죽음에 굉장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읽다 보면 적당히 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레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 중 70% 이상이 이것이지 않나 싶기도 하였군요. 그래서 다소 이야기가 살벌하고 밋밋해지기도 합니다. 뜬금없지만 살인귀 잭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몇 년이나 B6에서 B7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족족 죽이는 그저 그런 살인귀였고 과거에 어떤 시설에서 매우 부당한 대접을 받은 것에 트라우마를 지닌 어딘가 성격적으로 결여가 있는 20대 전후의 남자입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과 절망에 빠진 사람을 죽이는 것에 취미가 있는 잭에게 레이의 무뚝뚝한 표정과 죽고 싶어 하는 그녀의 성격에 혀를 내두르며 지상으로 나가면 웃는 모습을 보이는 레이를 죽일 수 있을 거 같아 동행중인데요. 머리가 나쁜 데다 글까지 읽을 수 없어 함정을 돌파할 때는 언제나 몸으로 때우며 레이의 지시를 받을 때마다 욱욱 거리지만 이게 또 살다 보니 정이 들었네! 같은 시추에이션이 발생하여 보는 이를 황당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아시는지요.(자세한 건 검색) 아무리 이해관계가 얽혀있다곤 해도 살다 보니 정이 들었네! 같은 시추에이션 발생은 보는 이로 하여금 허를 찌릅니다. B6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인간과 이해관계를 구축하고 나아가 두근 거리기 시작하는 건 레이나 잭이나 어딘가 망가지지 않았나 싶었군요. 그러고 보면 레이의 과거를 유추해보면 레이도 딱히 제정신으로 살아왔다고 할 수 없긴 합니다. 잭도 유년시절 때 보냈던 시설에서 겪었던 참상으로 망가져 버렸고요. 각층에서 상주하며 밑에서 올라오는 인간을 죽이도록 사주 받은 살인귀들도 하나같이 불행한 과거로 인한 성격 개조인 걸 보면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간 중에 제대로 된 인간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가 단순하면서 B5와 B3에서 B2로 올라갈 때 레이의 과거를 중점으로 중대한 복선이 투하되면서 꽤나 흥미진진해집니다. 궁금하면 2권을 보라는 듯 끝내 1권에서는 밝혀지지 않아 흥분하기도 하였군요. 하지만 머리가 나쁜 잭과 사랑을 알아가는 레이의 의미 없는 다툼이 조금 눈살을 찌푸리게도 합니다. 괜히 종점 없는 대화로 페이지 몇 장이나 잡아먹기도 하고요. 글자로만 되어 있다 보니 아무리 심각한 장면이라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는 게 작가의 필력이 모자란 건지 필자의 감정이 메말랐는지 헷갈리게 하였군요.

  1. 1, 이건 게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걸 유념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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