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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나는 마왕도 쓰러뜨릴 수 있을지 몰라 2 - L Books
CHIROLU 지음, Kei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6년 12월
평점 :

라티나가 데일에게 구해져서 크로이츠에 온 지도 벌써 1년하고 반이 지났습니다. 발견 당시 뼈만 남아있었던 그녀는 데일과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극진한 보살핌으로 보통의 여자애처럼 건강히 자라게 되었고, 친구도 많이 사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마인족과 인간족은 살아가는 시간대가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인족으로 태어난 자신을 저주하는 등 비통함을 맛봐야 했습니다.
데일과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그 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라티나에게서 불안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학교를 오가고 범고양이 식당에서 요리를 배우고 급료도 받으며 조금식 저축도 하고 있습니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대단한 음치로 밝혀졌지만, 손재주가 좋아 자그마한 일상 물품과 수공예품을 만들기도 하고 요리에도 자신이 붙었습니다. 순탄하고 평범한 일상이 흘러갑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세월이 흘러 봄이 찾아오는 계절, 데일은 자신의 장비를 새로 맞추기 위해 라티나와 함께 귀향길에 오릅니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숲에서 라티나의 아버지로 보이는 마인족의 무덤에서 성묘를 하고, 항구도시에서 마인족 여성을 만나 라티나에 대해 여러 가지를 듣습니다. 그리고 라티나를 추방한 마인족의 이질적인 행태를 이해하지 못하던 그때 마인족의 여성이 인간과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 라티나는 자신의 미래를 엿봤습니다. 하지만 찰나의 시간 속에서 먼저 남편을 떠나보내야 했던 마인족 여성에서 핑크빛 미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 갑니다.
그러나 인간과 결혼했다는 것에 후회하지 않으며 지금도 남편을 사랑하고 있으며 남편의 고향인 항구도시를 떠나지 않고 지키는 마인족 여성에게서 라티나는 무엇을 봤을까, 찰나의 시간이라도 함께하는 시간은 분명히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이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째 호러 같은 이야기 같지만요.
여행길에서 새로운 것을 잔뜩 보고 느끼고, 새로운 음식을 접하며 유유자적 여행길은 순탄하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수인족 마을에서 미래를 예지하는 보라의 신이 내린 신탁으로 또다시 라티나의 과거가 떠오르면서 그녀가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트라우마가 수면으로 올라오고야 맙니다. 미래예지에서 불길하다는 이유로 부족에게 버림받은 아이가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을 잃고 혼자서 살아가야만 했던 지난 과거, 그 상처는 생각보다 꽤 깊게 다가옵니다. 늘 행동거지에서 철저하다시피 한 라티나가 동요를 일으키고 결국 울음을 멈추지 않는 모습에서 그녀가 안고 있는 슬픔의 무게와 또다시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라티나는 어딘가 어설프고 위태위태한 귀여움을 동반했다면 이번 에피소드는 한층 성숙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시작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소관(所管)이 뚜렷한 소녀는 뭔가를 배우는 자세에서, 남들과 대화하는 방식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것에서, 또래보다 차분한 어투와 군더더기가 없는 행동 그리고 지식 흡수율이 뛰어난 모습에서 돌이켜보면 왜 이렇게 자신을 몰아붙일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였는데요.
그것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녀의 행동거지가 고등 교육을 받은 것에서 오는 파생적인 모습일 수는 있으나 크로이츠에 온 후 처음 알게 된 저금을 한다거나 요리를 배운다 거냐 하는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은 어딘가 필사적인 느낌을 받게 하였군요. 그야 라티나가 하고 있는 일들은 보통 그 나이대 여자애에게 시킬 일들이 아니고 생각에 미칠 일도 아니거든요.
여튼 수인족 마을에서 친구를 사귀고, 다시 여행길에 올라 드디어 데일의 고향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작가만이 아니라 여타 비슷한 작품에서도 언급되곤 하는 일본풍을 생각나게 하는 마을 설정은 빠지지가 않는군요. 오는 길에 벚꽃으로 보이는 나무도 있었고, 물론 자신의 작품에 무얼 넣든 상관없긴 합니다만... 마을에 도착해 약 두 달간 체류하면서 데일 이상으로 라티나를 아껴주는 할머니나 딸바보기미를 보여주는 데일의 아버지라던가... 라티나는 사냥개와 환수를 자신의 기술로 길들여 버린다던지, 그리고 데일의 동생 결혼식등 별다른 소동 없이 소소한 일상이 흘러갑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 에피소드에서 라티나의 바른 성장과 이면으로 간직하고 있는 아픈 과거와 더불어 데일이 품고 있는 감정이 잘 표현되고 있는데요. 당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문을 잇기로 되어 있었지만 마을의 안녕을 위해 동생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도시로 나와 귀족에게 헌납되어 더러운 일을 해오면서 마음과 감정을 갉아 먹히고 있었고, 아는 이 없는 도회지에서 쓸쓸히 지내야 했던 지난 과거, 간간이 돌아오는 고향에서는 나만 빼고 흘러가버린 시간, 나만 모르는 일들, 홀로된 기분, 버려진 기분, 나날이 피폐해지며 인간으로서 결여되어가는 어느 날 동족에게서 버려진 한 소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더러운 일들을 하며 인간 비슷한걸 죽여온 데일에게 있어서 꿋꿋하게 항상 웃으며 자신을 대해주는 소녀의 모습은 자신이 지켜야 될 존재라고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어느새 온기를 나눠주는 그녀에게서 구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죽이는 것만 있었던 인생에서 소중하게 지켜야 될 존재는 그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딸바보가 되어버린 데일의 이면에는 이런 게 숨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항상 헤벌쭉 한 모습만 보여서 팔불출만 같았던 데일에게 이런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군요.
그래서 이번 에피소드는 데일에게 있어서 구원이나 다름없었던 라티나와 맺어지는 건 필연이라는 걸 일깨워주는 밑밥 투척인지도 모릅니다. 항구도시에서 인간족과 결혼한 마인족 여성을 만났을 때도 그랬고, 수인족 마을에서 신탁으로 인한 복선 투하를 보더라도요. 여행을 하면서 '지금 이 시간만을 유리상자에 가둬서 계속 보관하고 싶은()'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절망뿐인 미래라도 함께하면 두렵지 않다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라티나에게 있어서는 동족은 불길하다고 쫓아내었지만 언제라도 여기에 돌아와도 좋다는 사람(인간족)을 만났습니다. 판이하게 다른 이별과 만남에서 언젠가 마인족과 인간족간 전쟁이 일어나고 라티나가 마왕이 된다면 멸망하는 건 마인족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군요. 뭐 설령 자신을 쫓아낸 마인족이라도 나쁘게 대하지 않으려는 라티나의 성격상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여튼 이번 에피소드에서 유독 눈에 띄고 마음을 애잔하게 했던 건 라티나가 여행을 하면서 친구와 범고양이 주인 부부에게 편지를 보낸 대목이군요.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어서 오라며 맞이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기쁘다'라는 대목은 당연하면 당연한 부분이지만 그녀가 얼마나 인간들에게서 치유받고 있는지 잘 알 수 있기도 하였군요.
- 1, 모 애니메이션 오프닝 가사를 인용 해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