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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1 - L Novel
와타리 와타루 지음, 박정원 옮김, 퐁칸 ⑧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이 작품은 필자의 라이트 노벨 입문작 입니다. 벌써 2년하고 몇 개월이 지났군요. 그 당시 제대로 뜻을 이해하지 못해 대충 읽고 어디 짱박아 뒀던걸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지금이라면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펼쳤으나 여전히 필자에겐 유녀전기만큼이나 난해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이미 완결 직전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어서인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고 이때부터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이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픔을 진솔하게 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역자 분이 언급했던 것처럼 독자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소재로 이용되고 있어서인지 극적으로는 풀어놓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받아온 부조리가 서러움이 되어 폭발해 삐뚤어져버린 주인공 '하치만'을 갱생 시키기 위해 히라츠카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봉사부에 넣어진 건 좋은데 하필 잘난 외모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배척 당해 삐뚤어져 있는 유키노가 버티고 있었으니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라'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일하면 지는 거라고 장례 희망이 전업주부라 당당하게 말하는 하치만의 앞 날을 예고한 듯 유키노의 날선 독설은 거침이 없습니다.
그렇게 강제로 봉사부에 들어앉게 된 하치만, 으르렁 거려도 보고 빠져 나갈 구멍을 파보지만 알짤 없습니다. 이후 유이가하마 유이의 쿠키 대소동이 벌어지고, 토츠카를 만나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려 하는 이벤트가 벌어지고 테니스 코트 사용권을 놓고 하야마 패거리와 일전을 벌이기도 하는 등 청춘을 부정하는 하치만에게 있어서 이것이 청춘이라는 눈물겨운 다사다난한 일상이 흘러갑니다. 싫은척 하지만 꾸역꾸역하는 하치만으로 보고 있으면 히라즈카 선생님이 하치만을 봉사부에 집어넣은 건 갱생이라기보다 그가 초등학교 때부터 급우들로부터 받아온 아픔을 봉사부에서 치유받기를 염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빛나는 청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초등학교 때부터 축적한 대인관계 기분나쁜 경험으로 다시는 속지 않겠다며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 박혀 살아가는 하치만, 이 작품은 인간관계에서 은근히 시사하는 바가 넘칩니다. 같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괜히 얘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혹은 쳐다본다고 해서 저 사람이 나에게 호감이 있는 걸까? 하는 이런 착각 속에서 벌인 고백은 비참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다음날 전교에 소문이 퍼져서 조롱거리가 되어 있는 것을 청춘의 한 페이지라 불러야 할까요?
여러 사람이 과제를 푸는 모임에서 자기들끼리 잘 이야기하다가 내가 껴들자 바다보다 더 조용해질 때를 청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혹은 모두가 보는 앞에 나가 사과하라고 윽박지르는 클래스메이트들을 바라보며 이것도 청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웃음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웃음기를 빼면 음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치만은 자신이 받은 부조리 덕분에 타인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귀찮은 일을 피하는 스킬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대가 쓴 가식이라는 가면을 보게 되었기도 하고요.
하치만이 가지지 못한 자의 슬픔이라면 가진 자의 슬픔도 있습니다.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빼어난 미모 덕분에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초등학교 때는 여학생들의 찌질한 왕따를 당하고 중학교 때는 전교 여학생들이 달라붙어 그녀를 밀어내는 통에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하고 늘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방아쇠를 당겼는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당해온 일들이 수긍이 되지 않았습니다.
뒤에서 수근 거리기보다 정면으로 나서길, 남을 끌어내리기보다 자신을 갈고닦아서 올라서기를 바랐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보 같은 짓은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는 그녀의 지론은 하치만과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치만이 처음 봉사부에 들어왔을 때 이미 유키노는 그의 내면을 봤는지도 모릅니다. 그 왜 같은 아픔을 간직한 사람은 서로 알아본다고 하잖아요.
하치만과 유키노는 서로 상반된 아픔을 간직하고 나아가는 방법도 상반되다 보니 봉사부는 늘 지지고 볶습니다. 선빵은 유키노가 날리는 독설로 시작하고 하치만은 애써 외면하는 일상이 흐르고 어물쩍 유이가 들어앉으면서 봉사부는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건 단연 유키노인데요. 아마 어릴 적 트라우마에 비롯된 행동인지 친구하나 없이 잘난 맛에 살며 다가오는 모든 걸 날려버릴 듯 독설을 날리지만 능글맞은 유이의 애교에 녹아서는 친구로 인정해 나가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이러쿵저러쿵해도 상반된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역시나 같은 아픔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하치만에게도 1그램 정도 인간으로 봐주기 시작합니다.
하야마와 미우라 등 일찌감치 그들의 성격을 대변하는 에피소드가 나오는 등 1권에서 등장인물 대부분의 성격이 정립되었군요. 그러고 보면 제대로 된 인간은 아직 없어 보였습니다. 청춘? 눈꼴 시려 못 봐주겠네라는 하치만과 왜 삐딱하게 걷니? 똑바로 걸으렴의 유키노, 멍청함과 순수함을 겸비한 숯검댕이 과자 폭탄 제조기 유이, 만인이 평등한 하야마, 여왕님 미우라, 중2병 자이모 뭐시기, 여자인지 남자인지 귀여움 폭발하는 토츠카등등이 모여 청춘을 구가 합니다. 뭐 실상은 청춘이라 쓰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지만요.
- 1, 하치만은 정면으로 당당히 나서기보다 자신을 죽이며 나아가는 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