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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86 -에이티식스- 07 - 미스트 ㅣ 86 -에이티식스- 7
아사토 아사토 지음, 시라비 그림, 한신남 옮김 / 노블엔진 / 2023년 2월
평점 :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주인공과 그의 부대가 연방으로 온 지 2년이 흘렀습니다. 귀족이 뒷배가 되어 주고, 학교도 가고, 친구도 좀 만들었습니다. 연방은 공화국과 달리 그들을 인간 대우해 주고 있었죠. 공화국은 궤멸되었지만, 여주 레나가 철저한 항전을 해준 덕분인지 소수가 살아남은 듯합니다. 그럼에도 이번 7권에서 주인공 일행을 돼지로 취급하며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을 보여주죠. 아무튼 지금은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할 겸 이들에게 2박 3일 휴식이 주어졌습니다. 표지에서도 보이듯 청춘물이 되어 버리죠. 하지만 여주 레나의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습니다. 귀족 집안 연줄이 있다 해도(추측), 10대의 나이에 대령까지 올라갈 정도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귀족 영애가 평범한 연애는 해볼 기회가 없었겠죠. 그런 순백 같은 마음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하니,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핸들러로서 주인공과 직통으로 대화하고, 그의 닫힌 마음을 접하고, 차별로 있을 곳 없이, 인정받을 길도 없이, 그저 싸우는 것만이 긍지로 남아 버린 소년을. 사지로 내몬 표백제(공화국)를 원망하지 않고, 끝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명령을 받고 떠난 그를 향한 마음은 어느덧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전쟁만 해온 주인공이 이성에 대해 뭘 알까. 그래서 여주는 친구에게 묻습니다. 신(주인공)은 나(여주)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 같냐고. 필자는 손을 턱에 대고 생각에 잠겼군요.
주인공은 2년 전 공화국을 떠날 때 여주에게 바다를 보여주겠다고 했죠. 이것은 동료로서의 감정일까, 이성으로서의 감정일까. 아직 바다에는 못 갔습니다. 나중에 언젠가 가겠죠. 그보다 지금 궤멸된 줄 알았던 공화국 영관급 장교가 찾아오면서 레나의 감정은 이상한 데로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에이티식스(주인공 부대)를 향한 여전한 차별, 돼지(주인공 일행을 멸칭하는 단어)들을 훌륭하게 이끌었다는 그의 말은 여주로 하여금 싫어도 공화국 국민이라는 자각을 해야만 했죠. 결국 우리들은 표백제(공화국 멸칭)와 돼지(주인공 멸칭)의 관계가 아닐까. 여주로 인해 돼지들은 여전히 공화국 자산이고, 그렇다면 공화국 재건에 쓰여 마땅하다는 장교의 말에 결국 자신도 그들(주인공 일행)을 상처 입힌 장본인 중 하나라고. 그녀의 이런 감정은 급기야 자기를 두고 떠나 버리는 거 아닐까. 다른 여성과 이야기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내가 아니어도 같이 해줄 여자들은 있다 생각, 내겐 보여주지 않는 감정들,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고 비굴하게 가라앉는 모습은 사실 딱하기 보다 매우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거기다 주인공은 동료 여성들과 그저 일상적이고 작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수다를 떠는 거에 지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질투에 사로잡혀 가죠. 오늘 막 새로 부임해온 교관(여장 남자)과의 대화하는 주인공을 보며 저러다 빼앗기겠다는 망상까지 사로잡혀갑니다. 참고로 개그가 아니라 호러쪽 분위기랄지.
요컨대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인데, 그렇다면 주인공의 마음은 어떤가. 이성에 대한 감정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인, 오로지 싸우는 것에서만 긍지를 찾는 그에게 이성과 교감할 수 있는 감정은 있는 걸까. 뭐 7권이나 왔는데 감정이 없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죠(인간 대우를 못 받아오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어릴 적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감정이라도 몇 년이나 같이 살다시피 했는데, 보내오는 감정을 모를 리가 없겠죠. 그래서 주인공의 마음에 이성(여주를 향한)에 대한 감정은 싹트기 시작했었습니다. 다만 너무 무뚝뚝해서 직접 표현을 잘 안 할 뿐이었죠. 이것이 여주로 하여금 애간장 태우는 꼴이 되었고, 얀데레 같은 성격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제는 얀데레의 감정도 그 감정의 개념을 깨우치지 못해서 빼앗기겠다느니, 저 여자가 싫다느니 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눈물만 찔끔 거려 보는 사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죠(개그 분위기 아님). 작중에서 동료들에게 두 번이나 핀잔을 먹고도 정신 못 차립니다. 이게 좀 많이 답답하죠. 결국은 고백했다가 거절당할까, 자신은 돼지를 사육하는 표백제고, 상처 입힌 장본인이고 같은, 그들은 전혀 게이치 않는데도, 주변은 이미 둘의 관계를 다 알고 있는데도. 주눅 들어가는 장면들은 좀 그래요. 그렇다고 이대로 감정을 죽인 채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 부딪혀 봐야 상대의 감정을 알겠죠. 용기를 내어 당신을 좋아하다고 말해 보려는데 왜 이리 방해가 많은지.
맺으며: 주인공이 다른 여자와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조차 못마땅해 하는 모습은 좀 눈살이 찌푸려졌군요. 주변에서 그런 건 일상적인 일이라 알려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습은 좀. 물론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자기 성찰을 하지만, 그때뿐이고. 누가 주인공을 건드리는 것조차 용납 못 하고, 결국 내 것이라는 감정까지 내비치는 대목은 소름이 다 돋았습니다. 레나 팬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애를 왜 이리 망가트리는지 모르겠군요. 조국(공화국)이 그들에게 자행했던 차별을 갚고자 하는 부채감 때문인지, 기댈 곳 하나 없는 고립무원에서 있을 곳으로 여겼던 그들이 자신(여주)을 놔두고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고독 속에서 마음을 나눴던 이에게 거부 당할지 모르는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이런 것들이 집약되어 레나의 마음이 망가져 가는 장면들은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하였습니다. 6권까지 레나의 성격은 이렇지 않았던 거 같은데라며 필자가 쓴 6권 리뷰를 읽어보니 이전부터 그랬나 보군요. 뭐 물론 작가는 이대로 흘러가게 놔두지 않을 것이고, 결국 이번 7권에서 제정신 차려 가는 코스는 마련해두었습니다. 정신이 좀 망가지긴 했지만 불안함만 털어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이런 작품의 특징이죠. 나쁘게 보진 말아 주세요. 아무튼 주인공과 레나의 마음을 정립 시켜주는 7권이고, 6권에서 사로잡았던 레기온 '무자비한 여왕'에게서 무시무시한 정보를 얻게 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레기온이 탄생하게 된 배경도 밝혀지고, 밝혀진들 인간들이 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복선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