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가출한 딸내미 찾으러 나온 지 한참 된 거 같은데 아직도 못 찾고 있습니다. 그 딸내미는 사랑해 마지않는 오라버니 따라다니며 그 옛날 엄마(호로)가 그랬던 것처럼 지혜를 듬뿍 나눠주며 오라버니가 객사하지 않도록 도와주고는 있습니다만. 그것 때문에 부모가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가는 곳마다 여명의 추기경(콜) 소문이 끊이질 않아 낯간지럽고, 콜의 활약으로 인해 교회는 두 개 파로 나누어져 대립하는 통에 경제가 요통 치는 중이죠. 이교도(호로 같은)와의 전쟁이 끝이 나고 더 이상 먹거리가 없어진 교회는 사람들 등 처먹는 부패의 끝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해 가만히 있으면 온천장을 물려받을 텐데도 굳이 속새로 나와 교회 개혁에 앞장섰던 콜. 순진무구한 오빠가 객사하지나 않을지 몰래 따라간 뮤리. 다행히도 교회 개혁은 순조로워서 많은 교회들이 콜의 진영에 참여는 하였습니다만. 손에 들어온 기득권을 쉽게 놓지 못하는 교회도 많았죠. 어쨌거나 딸내미 부부 뒤를 쫓고는 있는데, 로렌스와 호로도 가는 곳마다 사건이 일어나서 휘말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관세 문제에 끼여 고생 좀 했죠. 이번 24권에서는 숲을 둘러싼 개발에 끼여 고생하게 됩니다. 17권 이후(18권부터)의 분위기를 설명 하라면,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유럽의 분위기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산업이 발달하다보면 그만큼 환경은 파괴될 수밖에 없죠. 언제더라 다람쥐 정령이 광산 개발로 피폐해진 산을 가꾸며 같이 지냈던 인간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에피소드는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군요. 호로는 풍작을 관장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정령이죠. 난개발은 그녀에게 있어서 끔찍한 재앙이나 다름없습니다. 17권 이전에도 이런 난개발로 동료들(정령)이 어딘가로 떠나버려 홀로 남겨졌다는 슬픔을 많이 표현하기도 했었죠. 현대의 환경 규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인식이 그에 미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숲이 벌목되고 길이 뚫리고 황폐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로렌스는 호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를 24권에서 보여줍니다. 비단 지금의 상황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 혼자 남게 되었을 때(정령은 무한히 살아가는 존재) 황폐해진 숲을 바라보는 호로의 마음까지 염두하게 되죠. 식당에서 로렌스는 어떤 의뢰를 받습니다. 풍요로운 숲이 지금 개간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어떻게든 막고 싶다고. 하지만 관활 영지의 영주는 숲을 개간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일이 왜 로렌스에게 넘어왔냐면, 이전에 관세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는데, 그땐 평화롭게 해결했다고 여겼습니다만. 관세를 낮추지 못해 빈궁하게 된 도시에서 숲을 개간하라는 압력이 들어온 것이죠.
관세 받으며 더 낫지 않나? 아뇨. 도시는 받는 쪽이 아니라 지불하는 쪽이거든요. 물건을 그만큼 비싸게 구입하게 되니까 좋지 않죠. 숲을 개간해서 우리에게 싸게 팔고 길을 내서 교역을 더 넓혀라 등등 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아주 난감한 게, 의뢰자는 숲 개간에 반대하는 중이고 로렌스의 온천장까지 들먹이며 해결하지 않으면라고 들고나오는 데다 호로는 숲이 살아 있는 게 좋다는 입장이죠. 호로가 있어서 협박해 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지만 상대는 그걸 모르니까요. 일단 로렌스가 저지른 일 때문이기도 해서 해결에 나서긴 합니다. 숲에 기대어 살아가는 농민을 만나 숲이 내려주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 듣고, 영주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는데 이게 또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빚 때문에 3대가 망하게 생긴 영주는 어떻게든 숲을 개간해서 나무를 팔고 길을 내서 교역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고 악덕 영주는 아니고 상식을 가진 좋은 사람이라는 게 로렌스에겐 안 좋았습니다. 흔한 악덕 영주였다면 호로가 한 입에 삼켜 버렸을 텐데. 더욱이 딸내미 부부가 이끄는 교회 개혁파 일원이지 뭡니까. 로렌스는 숲 개간에 반대했다간 천하의 나쁜 놈 될 판입니다. 그렇다고 개간 찬성했다간 농민들이 굶어 죽고(숲에서 여러 가지 얻는지라), 호로의 역성을 사게 될 테죠. 그래서 투입한 게 아직도 살아 있는 '에이브'였습니다.
맺으며: 그냥 숲 개간할지 말지였던 일이 상당히 커집니다. 사실 로렌스와 호로에게 있어서 양자택일이지만 쉽게 생각할 수도 없는 게 개간을 선택하면 호로가 불행해지고, 반대하면 영주가 파산해서 그로 인해 세간의 평판은 내려가겠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을까. 그래서 투입한 게 에이브인데, 에이브는 로렌스가 아직 상인 현역일 때부터 악연이 그득한 여상인이죠. 상인으로서의 솜씨는 일류라서 대상인으로 성장했지만 성격은 반비례하듯 약아빠진 여우이자 대범한 늑대로 표현될 만큼 엮이면 큰일 나는 캐릭터입니다. 로렌스는 현역일 때 에이브에게 진짜 물리적으로 두들겨 맞기도 했죠. 그런 여자가 왜 여기로 찾아와 머리를 들이밀까, 에이브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상당히 극복하게 돌아가고 그녀가 꾸미는 일로 인해 또 고생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에이브는 딸내미 부부가 이끌어 가는 늑대와 양피지에서도 출현했었죠. 직접 엮이기도 했고, 뭔가 또 꿍꿍이를 일으키는 등 사악한 면을 보여주긴 했으나 결국 딸내미 부부와 연을 계속 맺어 갔고, 이번에 딸내미 부부의 친선 대사쯤으로 온 건데 출연만으로 피가 말려 가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게 흥미 포인트가 되어 버립니다. 아무튼 둘(로렌스와 호로)이 십수년을 같이 살아서 그런지 이제 풋풋한 신혼의 느낌은 없고 현실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재미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