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오라버니. 황태자를 향한 외침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유무죄를 가린다며 사자(라이온) 밥으로 던져졌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건만, '영림'에게 남겨진 건 허름한 창고와 풀이 무성한 밭 한떼기. 저주에 걸려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누구 하나 따라와 주지 않은 황량한 세계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희대의 악녀라고 손가락질 받던 혜월과 몸이 뒤바뀐 영림은 지금 뙤약볕 아래에서 열심히 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얼굴엔 비참함도 굴욕도 피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이전 몸에서는 누려보지 못한 자유와 힘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건강한 몸을, 몸을 바꿔준 혜월 님에게 감사를. 작중에 진짜로 이런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몸 바뀌기 전의 영림은 만병을 치르며 오늘 내일 하던 중이었거든요. 그럼에도 성격은 얼마나 야무진지 주변이 걱정할까 아프다는 내색을 거의 하지 않은 억척녀였죠. 그런데 지금은 전혀 아프지가 않습니다. 성격이 더해져 지금의 생활에 비참해 하기보다 기회로 보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중입니다(밭 가꾸기). 이게 얼마나 훈훈한지. 우여곡절 끝에 전속 궁녀가 되어준 리리와 티격태격하면서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몸이 바뀌었다고 성격까지 바뀌지 않는지라 몸 바뀜 소동은 들통이 나고 이 생활은 곧 끝을 맞이합니다. 참고로 지금의 영림은 악녀 혜월의 모습을 하고 있고, 혜월은 영림의 몸에 들어가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이것도 곧 끝이 납니다. 왜냐면, 영림을 모시던 필두 궁녀가 자신이 모시던 추녀(雛女, 병아리라는 뜻)의 평소 버릇을 모를 리가 없으니까요. 처음엔 참 극적으로 들통납니다. 그 궁녀가 제일 먼저 알아채고 달려와 엉엉 울며 그동안 못 알아 본 죄를 사죄하는 장면들은 유쾌하면서도 짠했었습니다(1권에서 나옴). 1권 초반 영림(혜월의 모습이 된)이 깜빵에 갇혔을 때 독약 먹고 뒈져버리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었거든요. 이번 2권에서는 창고 주거 개선한다고 난리 치는 장면도 재미지죠. 아무튼 이렇게 되었으니 당장 혜월(영림의 모습이 된)을 능지처참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영림은 자애의 성녀죠. 혜월이 건강한 몸을 바꿔줘서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는데,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능지처참이라니요. 그쯤 혜월은 이게 또 유쾌하게도, 만병을 앓고 있는 영림의 몸에서 오늘 내일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영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들은 꽤 재미집니다. 그런데도 몸을 원래대로 돌리지 않는 아집을 보여주죠. 그리고 대망의 황태자. 영림을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했던 그는, 몸 바뀐 줄도 모르고 사랑하는 그녀를 사자 밥으로 던지고 더러운 깜빵에 가두고 창고에 유폐까지 했으니. 자, 이제 몸이 바뀌었다는 진실을 알게 되면 그는 어떤 기분이 될까. 공명정대하다면서 꼭지가 돌아 진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영림(혜월의 모습이 된)을 업신여겼으니.
그런데 아무리 혜월이 주술에 일가견이 있다고 해도, 현 황후의 총애를 받고, 황태자가 끔찍이 아끼는, 차기 황후로 낙점이 된 영림을 죽이려 들고 몸을 바꾼다? 대체 무슨 깡으로.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강약약강으로 권력자에겐 아양을 궁녀와 환관들을 쥐잡듯이 했던 커뮤니티 장애(혜월)가 어떤 결단을 했길래. 그저 부러워서, 난 불행한데 넌 행복해 보이네?의 어긋난 감정으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좀만 생각해 보면 바로 들킨다는 걸 몰랐을까. 실제로 7~8일 만에 들통나버렸죠. 누군가 그녀를 부추긴 사람이 있지 않을까. 알고 보면 혜월은 그저 관심을 받고 싶어 떼를 쓴 거에 불과하다고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궁(宮)에서의 생활. 혜월에게 있어서 망가지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죠. 그런 혜월을 궁으로 들이고, 몸을 바꿔치기하라고 한 배후가 누굴까. 단순히 몸 바꾸기 해서 개그물로 끝났다면 필자가 흥분하면서 리뷰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영림은 자그마한 위화감에서 단서를 얻고, 혜월은 죽을 거 같은 자신을 그래도 치료해 주는 영림에 감복하여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같이 이 사태의 진실에 다가가죠. 진실에는 좀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만. 스포일러라서 생략하고. 중요한 것은 영림과 혜월의 관계가 개선된다는 것, 황태자는 망연자실에 빠진다는 것. 그리고 황태자에게 영림을 둘러싼 최대의 라이벌이 생겼다는 것. 이야기가 아주 극적입니다.
맺으며: 이번 2권에서는 황태자가 영림이 몸이 바뀌었다는 걸 알아 가는 과정이 참 극적이었습니다. 1권에서는 영림 필두 궁녀가 그랬고, 2권에서는 황태자가 그런 절차를 밟습니다. 몸 바꿔치기 진실에 다가간 끝에 너무나 황망하여 몸부림치는 황태자가 흥미 포인트죠. 1권에서 눈앞에 끔찍이도 아끼는 소녀가 있음에도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혜월의 모습)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고, 더러운 깜빵에 가두고, 사자 먹이로 던진 끝에 창고에 유배까지 시켰으니까요. 지금 품에 안고 있는 영림의 몸에 혜월이 숨어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죠. 진짜 영림이 아무리 호소하여도 들은 체 만 체, 그래서 1권에서 황태자의 이미지는 나락이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바뀌었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황태자는 어떤 기분일까가 이번 2권의 최대 백미입니다. 영림은 그런 황태자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죠. 않았지만 결국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삐지긴 했지만요. 이게 도 귀엽기도 하고. 공명정대하고 똑똑하다 그러더니만 눈치는 앞서 먼저 알아챈 궁녀만도 못한. 그래서 필자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황태자는 별로입니다. 근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밋밋했는지 추궁(雛宮)을 관리하는 진우(황태자 이복동생)를 1권부터 일찌감치 투입해서 역하렘 분위기를 만들더니 결국 2권에서 황태자 라이벌로 만들어 버리는군요. 리뷰에선 글 강약 조절 실패로 언급은 못 했습니다만, 여자를 돌같이 여기는 그가 영림에 푹 빠져 들어가는 장면들도 흥미 포인트인데요. 사실 이 진우도 영림의 몸이 바뀌었다는 진실에 다가가지만 황태자보다 한발 늦어 안타깝게 하죠. 진우에 대해선 3권에서 기회가 되면 더 언급해 보겠습니다. 아무튼 영림과 혜월이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도 참 풋풋하게 다가옵니다. 아파서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주변에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 영림과 관심을 받고 싶었던 어린아이 같은 혜월이 사건(몸 바꿔치기 진실)을 해결해 나가면서 서로 이해하고 친구가 되는 과정. 그리고 궁녀 리리도 스파이스 형식으로 분량을 차지하는 장면들이 재미있었습니다. 2권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