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마왕 되었다고 우쭐해하다가 플레이어들이 들고 온 아티팩트에 쪽도 못 쓰고 죽어버린 여주. 쉽게 말해서 레이드 당한 건데, 분해서 눈물까지 보이다니 게임은 게임일 뿐 좀 즐기며 하면 안 되나? 싶은 게 지금까지의 느낌이었는데요. 자기는 NPC든 플레이어든 킬하러 다녀 놓고 정작 자기가 당하니까 억울한가? 아무튼 어떻게 하이엘프에서 마왕으로 테크트리 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에서도 그렇게 머리를 쓰면 기업을 몇 개나 설립했을 텐데 하는 지능을 게임에 올인해서 지금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넘볼 수 없는 마왕이 되었습니다. 게임 오픈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성질 급한 건 마치 한국인 게이머를 보는 듯했다니까요.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임 시스템 파악 능력도 탁월해서 솔직히 게임사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은 유저라 할 수 있죠(콘텐츠 소모율이 높음). 이에 게임 운영진은 예상보다 빠른 성장을 해대는 여주에게 황당함을 보이며 이렇게 된 거 우리 손잡고 게임 내 콘텐츠로서 활약해 보실 의향 있음?라며 컨택을 해왔죠. 여주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고요. 왜 마다할 이유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게임을 즐기기 위해 하는 건지, 누굴 지배해서 희열을 느끼는 건지 이런 부분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으니까요. 마침 있으니까 쓰는 것이고, 거기에 따른 만족감 같은 것도 없어요.
그래서 본 작품의 존재 의의가 항상 궁금하기도 합니다. 여주는 대체 무얼 위해서 게임을 하는 것인가. 사회생활에 찌든 회사원이 스트레스를 풀려고? 게임이 취미라서? 캐릭터를 키워 유저들의 정점에 선다는 목표는 있는 거 같긴 한데, 목적이 없어요. 1권에 나와 있나? 기억이 안 나는군요(마법의 단어). 아무튼 플레이어들에게 레이드 당하고 깨어나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더욱 꼼꼼하게 캐릭터를 육성해가는 여주. 부하들도 엄청 만들어 대고, 지금은 같은 성향을 가진 플레이어들과 합심해서 몇 개의 나라를 멸망 시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순식간에 재앙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죠. 이제 두 번 다시 레이드 당하지 않으리라. 좀스럽게 레이드 한 플레이어를 찾아내 묵사발 내주는 건 덤. 한 성깔 합니다. 3권에서는 장악한 필드와 멸망 시킨 나라를 던전화 해서 플레이어들을 유혹합니다. 내 경험치가 되어줘. 경험치가 곧 화폐 같은 거라 많이 벌어야 합니다. 이에 게임 운영진의 묵인하에 여주가 던전 콘텐츠 만들어 가죠. 본 세계관은 자유도가 엄청 높아서 게임사는 기틀만 제공하고 활용도는 전적으로 유저에게 맡기는 편입니다. 그래서 여주는 몬스터를 육성하고 지능을 높여 지역 관리도 맡기는 등 대기업처럼 사업을 문어발식 확장 중이죠. 여기까지 와서도 여전히 떠오르는 의문, 그녀는 대체 무엇을 위해?
맺으며: 이번 3권을 요약 하라면, 던전이라는 콘텐츠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짜고 부하들을 육성해서 던전 경영에 박차를 가한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던전마다 난이도를 매기게 해서 유도를 하고, 난이도 강약을 조절하여 맛집으로 소문나게 해서 자주 찾아오게 하자. 본 작품은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가능성을 점검하고, 실행에 옮겨 성공 시키는 결단력이 제법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물론 실패한다고 게임을 못하는 건 아니고, 여주는 결벽증이 있고 성질이 좀 급한? 한번 생각한 건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플레이어들에게 한번 레이드 당한 게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성을 들이죠. 여기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과제 하나를 놓고 고찰을 엄청 해댄다든지, 설명이라든지를 과할 정도로 열심히 한다는 것인데요. 사실 뭘 하든 계획은 철저히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예능이 되어야 할 이야기가 다큐멘터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은 웃지 못할 일이죠. 이걸 굳이 독자가 알아야 될 필요가 있나? 같은 느낌? 전략이자 전술을 표현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정작 처치 대상인 플레이어들은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쪼렙이라는 것. 플레이어들이 여주와 비등한 실력이라면 고찰이든 설명이든 개연성으로 보고 이해라도 할 텐데. e북 기준 580여 페이지나 되는 이야기 내내 웃음기 하나 없는, 요리로 비유하자면 퍽퍽한 돼지 등심(뒷다리살) 같은 이야기라서 콜라가 엄청 마려워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필자는 며칠에 걸쳐 읽으며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읽지 못해 콜라 사 오기도 했고요. 전체로 보면 비록 게임이 바탕이지만 주인공이 마왕이 되어 용사(플레이어)들을 무찌르는 이야기라서 신선한 느낌이 있는데, 용사 처치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에 너무 집착하는 느낌이 강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흔한 청춘 러브 코미디는 눈 씻고 찾을 수도 없고, 개그라도 있었으면 몰입이라도 될 텐데, 읽다가 어느새 잠든 게 몇 번인지... 근데 왜 읽냐고요? 2권에서 하차했는데 어느새 3권이 e북 리더기에 있더라고요. 아마 잠결에 구매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