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재악의 아발론 03 - S Novel+ ㅣ 재악의 아발론 3
나루사와 아키토 지음, KeG 그림, 박정철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12월
평점 :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반 대항전이 시작되었습니다. 1학년 A~E반에게 퀘스트를 내어 일주일 동안 누가 많은 점수를 내었는지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운동회 같은 것입니다만, 동료애를 보여주며 서로 협동하고 웃으며 진행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쉽게 말해서 배틀로얄 같은 것이 이 반 대항전의 실체입니다. 특히 E반의 경우 아주 가혹한 대항전이 되죠. 상위반 및 상급반의 아이들은 누군가의 발목을 못 잡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고, 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걸리지만 않으면, 증거만 없으면 무엇이든 저질러도 된다는 마인드로 무장하여 실력이 정의이고 레벨이 깡패인 아포칼립스 세계를 구축 중에 있었죠. 1권에서 던전과 모험가는 산업이 되고,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모험가를 양성하는 학교까지 있다 해서 그동안 무뢰배 일색이었던 판타지 모험가 이미지를 벗어던지나 했습니다만, 그런 이미지는 초반뿐이었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더 했으면 했지 못하지는 않다고 알려 주었죠.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있으면 몹 PK로 사람을 죽이고도 태연할 수 있는가. 사실 학교 왕따 같은 건 아예 없을 수는 없을 테니 실력이 출중한 상위반이 모자란 하위반을 괴롭히는 거 정도는 있을 수 있다 여겼긴 합니다만.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목숨을 빼앗으려는 건 어떨까 싶죠.
그런 세계에서 게임 지식을 가지고 남들보다 폭렙을 하여 실력을 키운 돼지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까. 상위반이 저지르는 부조리와 불합리를 해결해 주며 약자의 우상이 되어야 할까. 내가 왜? 돼지는 메인 스토리에 영향이 간다고 개입을 꺼리고 있죠. 약혼녀가 E반을 구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는 걸 보고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약혼녀 에피소드는 하나같이 암울하기만 하죠. 정작 돼지는 진학 초기에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손을 내밀어 줬다는 이유로 반 친구 히로인 둘에게는 게임 지식을 이용해 레벨 업을 시켜 줍니다. E반이 상위반에 의해 폭력을 넘어서 목숨의 위협까지 당하는데도 찐따 같이 복수해 줘야지 하면서도 일절 아무것도 안 해서 3권까지 오니 발암도 이런 발암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필자는 왜 이런 작품에 열을 내며 몰입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허무하더군요. 작가는 독자가 바라는 카타르시스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 같습니다. 필자는 이제 청소년이 아니지만, 라이트 노벨 특성상 독자층이 청소년 위주이고 한창때의 나이대 답게 이들이 원하는 영웅 심리를 적극 반영해야 흥미를 얻을 수 있을 텐데도 그늘에 숨어 아이들이 당하는 것만 바라만 볼뿐. 그 이면에는 개입으로 인해 메인 스토리가 어긋나면 지식을 더 이상 활용할 수 없다는 비겁함이 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E반의 위기에 적극 대응한 것은 돼지의 여동생이죠. 반 대항전이 열린다는 걸 알고 E반을 도우기 위해 원래는 불법(일반인 중3이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불법인 세계)이지만 조력자로서 참여하였고, D반 조력자에 의한 몹 PK로 퀘스트중인 E반 학생이 희생될 뻔한 걸 여동생이 구해주게 됩니다. 돼지가 가서 도우라고 했다면 그나마 선처의 여지가 있겠지만 끝까지 여동생이 조력자로 참여하는 걸 반대했죠. 참고로 여동생은 현재 돼지보다 1렙 낮은 19렙, 이 정도면 군대가 와도 여동생을 제압 가능할지는 미지수. 사실 돼지의 활약보다 위기에 빠진 E반을 구하기 위해 무쌍을 찍는 여동생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참고로 이 부분은 필자가 추천하는 장면이기도 하죠. 여기서 더 흥미로운 건 하필 돼지 약혼녀도 그 장면을 보게 되었다는 것. 물론 위장해서 여동생인지는 모르고 있지만요. 이렇게 보면 작가도 독자가 바라는 카타르시스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는 건데, 왜 돼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걸까 하는 의문이 엄청 샘솟습니다. 여동생처럼 위장 시키면 될 텐데? 나중에 타이밍 봐서 도울 거라는 복선을 깔고 있지만 대체 언제? 상급반(선배)에게 불려가는 등 나름대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인맥을 쌓고 있다는 설정을 넣고는 있는데, 문제는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군요.
맺으며: 다른 남자에게 웃음을 보이는 약혼녀가 신경 쓰이는 돼지, 그런 돼지는 반 친구인 히로인 둘과 어울리는 시추에이션. 참 재미있더군요. 돼지와 같은 출신(전이자)인 남자 플레이어가 약혼녀를 NTR 하려고 호시탐탐 노린다는 걸 알면서도 방관. 초반 E반이 궁지로 몰렸던 배후에 그 남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관. 웃긴 건 그 남자로부터 멸시를 당하는 돼지를 변론하는 건 고사하고 어떻게 하면 결혼 계약서를 찢을까를 고민 중인 약혼녀. 그래서 그런가 돼지는 반 친구 히로인 둘과 희희낙락, 최애라며 A반 성녀 꽁무니 쫓아다니기 시작하죠. 여기서 두 번째로 웃긴 건 플로어 보스의 등장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그 성녀로부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팽당하는 돼지. 아주 혼돈의 도가니가 따로 없습니다. 던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증거만 없으면 OK인 상황에서 E반을 괴롭히는 D반을 혼내 줄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은 작가, 돼지가 나서면 상급반에 찍혀 E반이 더욱 궁지로 몰리니까?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군요.
돼지의 존재 의의는 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3권이었는데요. 실력을 드러내면 메인 스토리에 영향 간다고 괴롭힘당하면서도 바로 잡지 않는 비굴한 모습까지 보입니다. E반이 상위반으로부터 괴롭힘당하는 이유도 밝혀지긴 하는데(위에서 언급한 배후 남자 플레이어 말고), 작가가 스케일을 너무 크게 잡는 거 아닌가 했습니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사회 전반이 E반의 존속을 바라지 않는다는 건, 돼지로 하여금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런 느낌을 들게 하였군요. 이런 작품의 특징이 자기 스토리에 감당이 안 되어 얼마 못가 소리 소문 없이 출판이 종료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3권까지도 이 이야기를 대체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고? 그런 느낌이 장난 아니었군요. 돼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미래가 바뀌었고 더 이상 그가 가진 지식이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그걸 극복하는 돼지라는 이야기는 너무 클리셰적이라 안 한 건가? 아, 제목이기도 한 재악의 의미가 2권에서 밝혀졌습니다만, 3권을 읽고 그래서 뭐 어쩌라는 느낌이라서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