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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막달라에서 잠들라 1 - Extreme Novel ㅣ 막달라에서 잠들라 1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박소영 옮김, 나베시마 데츠히로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8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신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자기 마음에 안 들고, 세상에 없는 기술을 발명하면 배 아파서 이단으로 치부하는 게 신의 가르침인가? 이 작품은 이런 질문을 적나라하게 묻고 있죠. 세계관은 늑향을 계승하고 있으나 분위기는 몇 배나 어두운 게 특징입니다. 늑향에서 이단에 관한 건 어딘가 먼 나라의 이야기였지만 여기서는 이웃으로 자리 잡고 있죠. 수틀리면 암살해 버리고, 기득권을 빼앗기 위해 이단으로 몰아가고, 내가 이해 못 하는 기술은 신의 가르침에 반합니다. 하지만 기술은 탐나니까 내가(교회, 성가대) 가질 거고 너 님은 이단으로 화형, 같은 편이라도 돈이 얽히면 눈 돌아가는 모습들을 보입니다. 주인공인 쿠스라는 연금술사입니다. 교회의 칼날이 시퍼런 세상에서,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연금술사는 이단으로 찍히기 딱 좋은 직업이죠. 그래서 그들을 비호하고 기술을 독점해 부를 축적하는 기사단이 있습니다. 이단과의 전쟁에서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그들은 또 다른 세력권이죠. 몸집이 커져서 교회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권력을 손에 쥐었고, 결국 대립하게 되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대립은 그냥 알력 싸움이 아니라 죽고 죽이는 그로테스크한 상황을 일컫습니다.
늑향으로 잘 알려진 하세쿠라 아스나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이단과의 전쟁을 치르는 교회의 전성기를 다루고 있으며, 늑향에서는 쇠퇴하여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린 기사단과의 대립을 그리고 있죠. 그 대립 사이에서 연금술사의 애환을 보여줍니다. 납을 금으로 바꾸고,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는 그들의 능력은 돈이 되기 때문에 서로가 차지하려 혈한이 된 반면에 신의 가르침에 반한다는 이유를 들어 온갖 억압을 해대죠. 기사단조차 성가대라는 신을 찬미하는 조직을 두었으며, 그들 또한 교회 못지않게 이단 사냥에 혈한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으로는 이해 못 하는 재능을 보이는 연금술사는 이단에 불과하죠. 주인공 쿠스라도 그런 상황입니다. 상황이 그러면 몸을 좀 사려야 하는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메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죠. 일례로 성인의 뼈로 철을 제련하면 뭐 좀 달라지려나? 하는,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희대의 이단으로 가타부타 없이 사형 시켜버릴 일을 태연히 저지르려 하죠. 직전에 붙잡혀 죽을뻔하였으나 친구 웰란드와 함께 이단과의 전쟁 최전선으로 보내지고 거기서 그들은 철을 보다 고품질로 제련하는 일을 시작합니다만.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기사단 산하 조직 성가대에서 감시자가 파견 오죠. 이름은 페네시스, 어린 히로인입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맡은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죠. 곧바로 주인공 친구 웰란드에게 묵사발 나버리지만요. 신의 종복이라 자처하는 교회나 성가대나 연금술사와는 물과 기름의 사이입니다. 대놓고 흙 발로 짓밟으려 하니 아무리 어린 애라도 좋게 보이지 않겠죠. 그렇게 인생 최악의 경험을 치르고, 바들바들 떠는 그녀를 주인공 쿠스라가 보살피게 되면서 이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당연히 청춘 러브 코미디 같은 꿈같은 이야기는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녀가 성가대에서 처한 현실은 인생이 이대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있고,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주인공 일행이 이단이라는 증거를 찾아 상층부에 보고 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죠. 그녀의 출생은, 현재 교회와 기사단은 이단과 한창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이단이라 함은 나와 다른 모든 것이죠. 그렇기에 그녀는, 그녀의 부모와 가족, 일족 전체가 말살되어 버린 비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을 거둬준 성가대라는 있을 곳을 위해 필사적이 되어 갑니다.
맺으며: 있을 곳을 위해 필사적이 되어 가는 페네시스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그렇기에 허점 투성이이고, 주인공 쿠스라가 보기엔 모든 게 서툴러 보여서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게 되고요. 여기서 흥미로운 건 자상한 오라버니 같은 면이 아니라 짓궂은 장난을 치며 그녀의 호감을 깎아먹는 짓만 골라서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게 인생의 쓴맛이고, 어리광 부려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진리가 깔려 있어서 밉지 않는 인상을 신어줍니다. 페네시스는 주인공을 부모의 원수를 보듯이 해도 결과적으로 그의 곁에 있으면 인생이 조금씩 재미있다는 걸 깨달아 가죠. 하지만 성가대에서 자꾸 그들(주인공)에게서 이단이라는 증거를 찾아오라는 압박이 심해지고, 주인공도 어느 사건을 해결해야 되는 등 하루도 편할 날이 없죠. 참고로 성가대에서 주인공 일행에게서 이단의 증거를 찾으려는 건 이번 1권의 핵심 스포일러라서 언급은 힘듭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 그런 것보다 주인공 일행과 페네시스의 관계죠. 주인공은 궁지에 몰린 그녀를 구해주지 않습니다. 성격이 상당히 꼬인 것도 있고, 사실 주인공 일행과 페네시스는 연금술사와 성가대라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의 관계거든요. 그런데 그녀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그녀의 목숨은 바람 앞에 등불이라는, 생각보다 상당히 심각함이 생기기 시작하죠. 전체적으로 늑향 분위기를 내지만, 늑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생명의 무게와 삶의 진지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