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간은 가열해라 5 - Shift Novel
사카이 타쿠마 지음, 토사카 아사기 그림, 이경인 옮김 / YNK MEDIA(만화)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마법사들이 득세하여 서로 싸움박질하던 암흑의 시대, 수천만 명이나 되던 인구가 수십만으로 줄어들 정도였다면 인류라는 종은 그냥 멸종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지금의 왕조를 다스리는 왕의 조상이자 시조인 '바티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태곳적 지보인지 뭔지를 손에 넣어 악의 마법사들을 도륙하고 세계에 평화를 가져왔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쁜 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을 일으킨 마법사이건만, 마법사라면 싸잡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마녀 사냥하듯 모조리 섬멸해버린 결과. 바티스 사후 백수십 년이 지나 그녀(바티스)가 이룩했던 평화는 거짓으로 판명되고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마법사 자질을 보이는 아이들(주로 여자애)의 기억을 지우고(봉인?) 8살에 각지로 보내 노예와 같은 삶을 살게 하고 16세가 되는 해에 왕도로 귀환하도록 한 예스마 제도. 또다시 암흑시대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마법사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나, 알고 보니 억압의 상징이었죠. 100명이 귀환 길에 오르면 1명이 도착할까 말까 한, 예스마들에게 있어서 지금도 고난의 행군으로 작용하는 이 예스마 제도로 파생된 비극의 주인공 노트(이캐맨). 그는 몇 년 전 연인(예스마)을 왕조의 탄압과 예스마 사냥꾼에 잃어야만 했죠.



사실 보통 여느 작품에서든 노트 같은 잘생긴 남자 캐릭터를 등장시킨다는 것은 작품의 주인공(돼지)과 메인 히로인(제스)의 관계를 가속 시키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 일이 많은데 이 작품에서 노트(이캐맨)의 경우 연애 계열보다는 본 이야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연인(예스마)을 왕조의 탄압과 예스마 사냥꾼에게 잃은 결과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었죠. 마침 돼지와 제스의 시간선에 끼어들어 왕도로 귀환하는 제스의 호위를 맡게 되었고, 제스를 노리던 어떤 예스마 사냥꾼을 없앤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왕조에 복수를 바라는 또 다른 복수귀의 태동을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인과관계가 상당히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어서 일일이 다 설명하는 건 무리가 있고, 노트의 행동으로 방아쇠가 당겨지게 되었다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군요. 그리고 그 복수귀에 의해 침공을 받아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왕조. 거기에 휘말리는 돼지와 제스. 노트도 자기가 방아쇠를 당긴 것인 줄도 모른 채 휩쓸려가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돼지와 제스가 왕도로 귀환 길에 올랐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죠. 머리 좋던 돼지는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하지만 귀환하지 않았다면 제스가 예스마 사냥꾼에 납치되어 죽었을 테죠.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싸움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이번 5권에서는 또 다른 복수귀에 의해 왕조가 함락되고 그 복수귀에게 지금의 왕의 몸이 빼앗기자 되찾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행하면서 예스마의 참상을 직접 두 눈으로 봤으면서도 예스마 제도라는 끔찍한 제도를 만든 왕조와 왕(조상이 도입했지만)을 구원하기 위해 움직이는 돼지와 제스. 시조 바티스가 남긴 기록을 따라 지금의 왕조와 왕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물론 쉽게 쉽게 해결되면 작품성을 의심받을 테죠. 그래서 예스마 제도가 도입된 배경을 밝혀가고, 그 과정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마법사들을 도륙했던 시조 '바티스'는 결코 선인이 아니라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금 왕조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원인도, 노트(이캐맨)가 복수심에 불타는 것도, 또 다른 복수귀가 태동한 것도 시조 바티스의 무차별 마법사 사냥이 시발점이었다는, 옳은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전체의 옳은 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래서 침공 받는 왕조가 피해자임에도 피해자 같지 않은 느낌을 보여주죠. 진짜 피해자는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과 예스마들(마법사). 그들을 헤아리지 않은 지금의 왕조와 왕. 필연적으로 저항을 받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완성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쓸쓸한 결말을 향해 달려갑니다.



맺으며: 리뷰에선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번 5권에서는 왕의 몸을 되찾기 위한 여정에서 내가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그 필요한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존재가 성립되는 이공간에서 돼지와 제스가 온전했던 이유. 그리고 온전하게 성립되지 못하는 한 사람. 이번 5권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어느 남자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아, 노트(이캐맨)는 아닙니다. 그를 강한 마음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살면서 좋아하는 사람,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를 묻고 있기도 하죠. 그리고 좋아한다는 것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게 아닌, 마주 보는 거라고. 돼지와 제스를 서로 마주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돼지의 팬티, 다리, 가슴으로 이어지는 색드립은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이긴 한데, 무거운 분위기를 누그러트리려는지 좀 화려하게 들어가 있어서 호불호가 좀 갈리지 싶군요. 아무튼 흥미로운 건 그동안 주인공(남자)을 돼지라는 식용 동물로 등장시켜 이종족간 연애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선을 지켜서인지 은근히 싸구려 느낌은 없는 게 희한하였습니다만, 5권쯤 오니 서로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되었고, 이종족간 연애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느낌으로 부비부비 대고 있어서 어쩌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