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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간은 가열해라 2 - Shift Novel
사카이 타쿠마 지음, 토사카 아사기 그림, 이경인 옮김 / YNK MEDIA(만화) / 2023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돼지의 생간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 이세계로 넘어간 20살 오타쿠 청년의 이야기 제2탄입니다. 사실 제목도 그렇고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돼지의 생간도 그렇고 대체 얼마나 가벼운 작품일까 싶기도 합니다만.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스마'라는 소녀들이 8살에 각지에 팔려가듯 노예의 삶을 살다 16살에 목숨을 걸고 왕도로 귀환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거든요.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귀환율이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그녀들이 차고 있는 목걸이와 신체는 마력의 원천이 되어 아주 비싼 값에 팔리고 있죠. 왕도로 귀환하는 수많은 예스마들은 사냥꾼들에 붙잡혀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이 작품의 메인 히로인 '제스' 또한 예스마로서 16세가 되자 왕도로 가야만 했죠. 그녀는 전날에 기도를 올렸습니다. 같이 가줄 수 있는 사람을 내려 달라고. 눈을 뜨자 그녀의 앞에 돼지로 환생한 주인공(이하 돼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주인공은 돼지인가. 그리고 어째서 예스마는 16세가 되면 왕도로 가야만 하는가. 무사히 도착한 예스마들은 어떻게 되는가. 돼지는 '제스'를 왕도로 인도한다는 임무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돼지는 지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고요.
1권에서 예스마들의 여정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죠. 어떤 예스마는 조각조각 나서 알콜에 절여지고, 어떤 예스마는 산 채로 내장이 뜯겨 몸이 썩어가면서도 마지막 힘을 짜내어 '제스'를 도와주는 장면들은 처절함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정의 끝. 돼지는 돼지불고기가 되었죠(이건 이 작품 특유의 조크). 그리고 현재. 돼지는 오타쿠 모임(돼지도 오타쿠)에서 이세계 사정을 듣습니다. 흥미롭게도 이세계 전생은 돼지만이 아니었던 것이죠. 돼지가 지구로 돌아오고 나서 이세계는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제스를 왕도로 인도하는 여정에서 알게 된 이캐맨 '노트'. 한때는 제스와 야한 짓 한 거 아니냐는, 돼지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이야기의 주인공. 그놈이 예스마 해방 전선을 꾸려 레지스탕스를 하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 예스마 사냥에 애로사항이 꽃 핀 사냥꾼들이 북부에 제국을 세워 '노트'와 왕국을 견제하고 나선 것. 예스마를 관리하고 있는 왕국의 왕족. 이렇게 3파전이 되어 자중지란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돼지는 사실 한 발짝 물러서서 제스를 바라보고 있었죠. 건드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그는 다시 이세계 행을 택합니다.
돼지는 다시 이세계로 전생했지만 그의 앞에 제스는 없었습니다. 이번 2권 이야기는 이캐맨 '노트'를 도와 예스마들을 구하고, 제스와 재회를 그립니다. 여정은 쉽지만은 않지만 비상한 머리를 가동해 위기를 헤쳐 나가죠. 그러나 북부 제국은 어중이떠중이 사냥꾼들이 모여 나라를 세운 것치고는 힘이 강하여 노트의 해방군과 왕국을 옥죄는 상황이고, 왕국은 오랫동안 평화에 찌들어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상황이었죠. '제스'는... 돼지와 함께 했던 기억을 봉인 당했습니다. 돼지와 이별하던 날. 그녀는 폐인이 되어버렸죠. 예스마가 왜 각지로 팔려가고 나이가 차면 왕도로 귀한 하는가는 핵심 스포일러라서 언급은 힘들지만, 왕국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는 게 밝혀졌죠. 주인공은 그것을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노력보다 편한 길을 택하여 예스마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살아 돌아온 '제스'에겐 어떤 사명이 기다리고 있었죠. 그녀는 마법을 배우며 사명을 다해가면서도 기억 속에 꽂혀있는 책갈피(봉인된 기억)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럴수록 그녀의 마음은 커져만 가고, 그것이 그녀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돼지는 예스마를 관리하는 이세계의 왕을 다시 만납니다. 예스마들도 엄연한 백성임에도 사지로 내몰아 악덕한 인물인 줄 알았더니 사려 깊은 영감이라는 게 밝혀지죠. 왕에게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나라의 근간을 지키기 위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둠과 타협해온.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듭니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왕은 누구보다도 '제스'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제스에게서 예스마의 미래를 보고 있다는 것. 왕은 북부 제국과 싸우며 저주를 받아 곧 죽을 운명입니다. 죽어 가면서도 '제스'를 부탁하는 그의 인품은 좋아서 예스마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북부 제국군의 침공은 제스와 돼지에게도 화가 미칩니다. 전쟁의 한 가운데, 드디어 마주하게 된 돼지와 제스. 제스에겐 주인공에 대한 기억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왕은 그녀 스스로 풀길 바라고 있죠. 그러면 그녀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거라며. 감동의 재회를 하지만 돼지는 한 발짝 물러서서 그녀를 바라봅니다. '제스'는 기억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맺으며: 많이 축약했는데 사실 이번 2권 메인 히로인은 '셀레스(표지)'라는 13세 예스마입니다. 이캐맨 '노트'를 사모하여 그를 찾아 돼지(주인공)과 함께 길을 떠나죠. 하지만 필자에게 있어서 중반부터 이캐맨 노트와 더불어 별로 중요치 않아 뺐습니다. 그보다 주인공이 왜 돼지로 전생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좀 충격적이었군요. '제스'는 부정하지만, 예스마들이라고 해서 마냥 착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죠. 사실 그런 것들보다 이번 2권에서 흥미로운 점을 꼽으라면 당연히 제스와 돼지의 재회가 아닐까 하는데요. 좋아하는 여자를 다시 만나도 무언가가 깨지는 거 아닐까 싶어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남자, 그런 남자를 떠올리기 위해 마력 고갈을 일으킬 정도로 결사적인 마음이 되어 가는 여자. 여자를 지키기 위해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적에게 덤벼들었다 저주받아 죽어가는 남자, 그 남자를 구하기 위해 대신 저주받아 죽어가는 여자. 그리고 여자는 죽음 직전에서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들은 연애 드라마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사실 제목 때문에 약간 외면받는 거 같은데, 작가의 필력이 대단히 좋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라든지, 암울해져 가는 상황을 밝게 하려는지 오타쿠 특유의 저질 행동을 펼쳐놓는 솜씨가 좋죠. 그걸 리뷰하는 필자의 필력이 개판이라서 제대로 전달 못하는 게 결점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