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간은 가열해라 1 - Shift Novel
사카이 타쿠마 지음, 토사카 아사기 그림, 이경인 옮김 / YNK MEDIA(만화)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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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주인공 나이 19세, 남자, 대학 새내기, 직업 오타쿠. 돼지의 생간을 처먹고 식중독에 걸려 길바닥에서 떼굴떼굴 구르다 눈 떠보니 이세계에 돼지로 환생했더라. 이 작품이 발매된지는 조금 되었습니다. 초반 인상은 한창 이세계물이 범람할 때 출시되어 자판기나 검 같은 무기물에 거미, 드래곤등 이종족으로도 환생 시키는데 돼지가 끼여도 문제없겠지 그런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이었는데요. 일단 세계관은 나중에 언급하고, 1권에서 주인공과 히로인 간 감정 표현 하라면 딱 이렇습니다. 오타쿠답게 전생에서 이성과 인연이 없었던 주인공은 히로인과의 접촉에 과하게 흥분하고, 색드립을 날리면서도 히로인이 보내오는 호감에 낚여 수치플(혼자 착각에 의한 창피) 당하지 않겠다는 양 진짜 호감인지 예의상 호감인지를 분간하기 보다 오는 호감을 다 막아버리는 통에 히로인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그런데 같이 지내고 여행하면서 그녀의 마음은 진짜 베기라는 것을 알아가지만 무엇 때문인지 주인공은 그녀를 놔주려 하죠. 이렇게 보면 인간과 돼지라는 이종족간 청춘 러브 코미디 같습니다만.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기 시작하죠.



눈을 떠보니 돼지 막사였고, 눈앞에 하얀 허벅지와 하얀 천이 주인공 눈에 들어옵니다. 처음 컬러 표지라든가 등장인물 소개란에 하나같이 색드립 등 판치라 같은 모습들은 이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어 인식을 깎아 먹는 거 같아 안타까웠는데요. 이 작품은 인권을 보장 못 받는 '예스마'라는 소녀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살던 곳을 떠나 왕도로 향하며 죽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결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죠. 돼지우리에서 주인공(이하 돼지)을 마주한 히로인 '제스'도 '예스마'입니다. 올해 16세가 되어 그녀도 왕도로 가야만 하죠. 그 전날에 돼지(주인공)를 만난 그녀는 마치 이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을 대하듯, 다정하게 돼지를 보살펴 주었습니다. 돼지가 날리는 색드립을 모두 받아주고, 브러싱을 해주며 애착 인형처럼 곁에 있어주길 희망했죠. 돼지는 처음엔 그녀가 처한 현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제스'가 조금씩 뭔가를 준비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그녀에게 인권이 없다는 걸 알아가고, 예스마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가면서 이세계에 오고 그녀에게 받았던 다정한 호의를 갚아주려는 듯 헌신적으로 변하게 되죠.



그리고 둘은 왕도로 길을 떠납니다. 예스마는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시종으로만 지내야 하며, 사는 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16세가 되면 반드시 왕도로 가야 하며, 걸어서 가야 합니다. 운송 수단은 타면 안 되며, 아이를 가져서도 안 됩니다. 이야기는 그녀들이 왜 이런 부조리를 겪는가. 그녀들은 왜 왕도로 가야 하는가. 예스마는 어디서 오는가 등 온갖 의문점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회귀하는 연어를 노리듯 왕도로 향하는 길목에는 '예스마 사냥꾼'들이 득시글 거립니다. 수많은 예스마들이 길을 떠나지만 왕도에 도착하는 건 극소수. 그런 상황에서 돼지와 제스도 왕도로 향하죠. 법률로 예스마를 범하는 건 금지되어 있지만 무용지물, 그녀들이 차고 있는 목걸이와 신체는 비싸게 팔린다는 것. 이런 상황을 뚫고 돼지는 제스를 무사히 왕도까지 호위할 수 있을 것인가. 참고로 돼지는 글자 그대로 돼지일 뿐이고,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있는 건 머리가 코난 급으로 좋아서 상황 판단이 빠르다는 것이군요.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위험을 돌파해가지만 평범한 신체인 제스와 돼지에게 있어서 사냥꾼들의 칼은 상당한 위협으로 다가오죠. 죽을 위기도 많이 넘깁니다.



돼지와 히로인이 처음 만난 날, 돼지는 어쩌면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서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 단서가 형태를 가졌을 때, 왕도에 도착한 그들에게 안타까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죠. 머리 좋은 돼지는 여행하면서 이런 안타까운 운명을 예상했을 수도 있겠다는 복선을 깔아 놓습니다. 그래서 제스가 보내오는 감정을 외면하고 애써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그녀가 어떻게든 사냥꾼들을 피해 왕도에 들어갈 수 있게끔 헌신적으로 노력하죠. 나 같은 건 잊으라는 식으로요. 처음 만난 날, 제스는 인권이 없는 자신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고 대해주는 돼지에게서 처음으로 인간의 정이 무엇인지 알았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던집니다. 만난 지 하루도 안 돼서 알몸을 보여줘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 돼지에 집착하죠. 그러나 왕도에 도착하면서 돼지는 알아챕니다. 자신이 이세계에 돼지로 전생한 이유를요. 그 이유가 하필이면 제스와 연관 있다는 것을요. 사실 스포일러라서 언급 안 하려 했습니다만, 이 작품은 연애적인 관점도 많이 들어가 있는지라 조금만 언급해 보자면, 제스는 바랐습니다. 왕도로 향하는 길에 함께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기도를 올렸었죠.



맺으며: '브레이스'라는 예스마를 이용해 이 작품에서 예스마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해두어서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여행 중 만난 브레이스는 돼지에 의해 구원받고, 돼지를 지키기 위해 산화해가는, 마지막으로 고마웠어요라는 대사는 꽤나 슬프게 하죠. 그리고 핵심 스포일러라서 언급은 힘들지만, 작중내내 작가의 감정 표현력이 좋습니다. 가령 왕도에서 돼지가 어떤 최후의 순간이 다가올 때 '저녁놀과 함께 다가온다'를 읊조리는 장면들은 비유적으로 심금을 울리는 게 있더군요. 그리고 여행 중간에 동물 사냥꾼 '노트'를 만나게 되는데, 이놈이 제스에게 술을 먹여 여관에 데려가 침대가 삐거덕 거리네 어쩌네 하는 장면에서 관음증을 증폭 시키는 작가의 능력이 정말로 대단했군요. 물론 필자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별 감흥은 없었습니다만. 돼지는 방 밖에서 그걸 지켜봐야 하는 무력감과 내 여친도 아닌데 같은, 애써 외면하는 장면들은 왠지 서글프다는 느낌을 들게 하기도 합니다.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직접 보시는 걸 추천하고요.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진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페이지를 빨리 넘기는 자신을 보게 된다는 것이군요. 이것만 해도 작가가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에 몰입 시킬 수 있는지 잘 알 고 있는 거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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