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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연의 성자 3 - L Novel
마사미티 지음, 이코모치 그림, 이경인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용사 파티에서 주인공이 쫓겨나게 된 원인을 제공한 히로인 '에미'를 용서하고 받아들인 주인공은 여차저차 양산형 마왕도 무찌르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만, 본 작품을 읽다 보면 아쉬운 점이 꽤 많습니다. 성자(성녀 남자판)라는 용사급 사기 캐라는 직업을 얻었으면 그 역할을 다하여 굳이 용사 파티에 연연하지 말고 세상을 돌며 사람들을 구원해도 충분한 이야기 꺼리가 되었을텐데 굳이 어둠의 마법을 획득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계는 마물이 득실 거리고 여행을 하려면 무력이 필요하고, 성자는 후위직이기에 혼자서는 여행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또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데 있어서 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기에 고아원을 노리는 마물을 처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빌라'에게서 어둠의 힘을 받아야 했죠.
문제는 그로 인해 추방물이라는 아이덴티티가 희석되고, 성자라는 약체를 반전 시킴으로서 고행이라는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라이트노벨이라는 특성에 묶여 무능력 같은 주인공이 힘을 얻어 악과 맞서 싸워 간다는 청소년물에서는 흔히 있는 전개가 되고 맙니다. 요컨대 이 세계 전생 무능력 먼치킨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그 예로서 주인공의 마력은 무한대라는 클리셰가 들어가 있기도 하죠. 그래도 이런 틀에 박힌 이야기라도 작가가 얼마나 잘 풀어내느냐에 따라 흥미도는 달라진다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만, 그런 면에서 본 작품의 평가는? 솔직히 필자의 평가는 어떻게 5권(일본 기준)까지 나올 수 있었나 하는 의아함이군요. 그 집대성이 이번 3권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번 3권에서는 구원 요청을 받고 주인공 일행이 어느 도시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요.
도착해 보니 도시는 병들어 있는 거마냥 우중충하고 사이비 종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죠. 이 세계에서 믿는 여신의 교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대립하며 자신들의 붉은 신을 숭배하라며 사람들을 착취하던 사이비를 박살 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과정은 그리 대단한 건 없습니다. 오히려 지루할 뿐이죠. 솔직히 이번 3권 리뷰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주인공이 뭔가 큰 활약을 했으면 그걸 중점으로 쓰겠는데, 상황적 판단에 필요한 생각은 '시빌라(히로인)'에게 다 맡겨두고 주인공이 하는 거라곤 질문만 해대는 꼴이죠. 그나마 주인공이 한 행동을 꼽으라면 온종일 힐힐힐힐힐뿐이군요. 이거에 대해 히로인들의 호감도는 쑥쑥 올라가고. 거기에 뽕이 취했는지 사이비에 의해 도시가 점령되다시피 했으면 뭔가 깨달은 게 있어서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함에도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려 하고, 사이비를 뭉개버리려고 했으면 거기에 맞는 대응책도 마련해가야 하건만 온통 둘 쑤시기만 하고 그에 따른 리스크 따윈 모르겠다는 식.
그런 과정들이 흥미진진한가? 전혀 그렇지 않단 말이죠.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귀찮은데, 370여 페이지 중 300여 페이지를 그냥 허투루 쓴다고 보면 됩니다. 영양가가 하나도 없어요. 딴에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구구절절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고 무미건조하고 감성적으로 빠질만한 필력도 아니고 감히 말해보는데 총체적 난국입니다. 사이비 종교 단체가 만악의 근원처럼 표현하면서 그들이 하는 짓이 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도 않고 그저 사람들에게 독을 먹인다, 마물을 풀어서 사람들을 습격하게 만든단 등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주인공 일행의 입으로만 설명될 뿐입니다. 억지로 악당을 만든다는 느낌? 필자로서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전개를 꼽으라면, 갑자기 고아원을 책임지는 수녀가 알고 보니 어쎄신이고 딸이 사이비에게 붙잡혀 있다라거나, 뜬금없이 주인공의 고기 방패가 되고 싶은 수녀가 튀어나오고, 뒤로 갈수록 만인을 구하려는 성자의 아이덴티티는 고작 아이 한 명에게만 국환 되어 버리는다는 것입니다. 이쯤 오면 도시 사람들은 아웃 오브 안중이 되고 말죠. 성자(성녀 남자판)잖아?
맺으며: 분명 도서를 발매할 때 관계자들이 정독해서 상업성이 있는지 판단한 후 발매할 거란 말이죠. 아니면 계약할 때 후속권도 반드시 발매해야 된다는 조항이라도 강제 받은 걸까요. 필자는 여러 출판사에서 발매하는 도서들을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수 섭렵하며 리뷰를 써오고 있는데, 간혹 도서들을 읽다 보면 어떻게 이런 구성을 가지고 돈을 받고 팔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작품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예전에 도저히 못 참고 후속권은 절대 발매되어선 안 된다는 리뷰를 작성한 적이 있기도 한데요. 본 작품의 경우도 그러한 축에 속한다 할 수 있습니다. 본 리뷰로 인해 출판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솔직히 잘 모릅니다. 현대에 들어와 자신에 행동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강해진 지금, 본 리뷰로 인해 매출에 타격을 입은 출판사가 손해배상을 요구 해올 수도 있겠죠. 그러함에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2권에서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비(雨)로 표현하며 시적 감성을 불러와서 좋은 점수를 주었으나 3권을 읽은 시점에서 그 단 하나의 장점에 가려져 그동안 보아왔던 단점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고 할까요. 이번 3권에서는 하는 거라곤 거의 없는 주인공 띄워주기가 너무 심합니다. 히로인들의 개뜬금없는 주인공의 고기 방패가 되고 싶을 정도의 호감도 상승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고. 몰입도를 방해하는 여성향 식으로 풀어내는 주인공의 마음의 소리는 이건 진짜 나쁜 의미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딴에는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려 했나 본데 눈살이 찌푸려지다 못해 혐오감이들 정도였군요. 필자의 리뷰 역사 중에 필자가 이렇게 표현한 작품은 없을걸요? 주둥이(주인공)는 얼마나 가벼운지 본인(히로인)이 감춰온 비밀을 멋대로 까발리는 건 대체? 전투신은 밋밋하다 못해 지루하고, 갑자기 마신(魔神)의 등장? 작가에게 묻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체 뭔가요?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작품을 꼽으라면 본 작품을 0순위에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