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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따위로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나요, 오빠? 1 - L Novel
카미시로 쿄스케 지음, 키린 카케루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우리나라에서 진성 얀데레라고 하면 미래 일기의 '가사이 유노'를 떠올릴 것입니다. 만화는 안 봐도 이름 정도는 들어 봤을. 미래일기 전에도 몇몇 작품에서도 얀데레는 있어 왔지만 국내에 더 많이 알려진 캐릭터라면 전무후무 '가사이 유노'를 꼽을 수 있죠. 그만큼 임팩트 있는 인물인 그 '가사이 유노'라는 캐릭터를 이 작품에 빗대면 주인공의 여동생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본 작품은 제목에서 러브 코미디가 아닐까라고 잘못 유추했다간 허를 찔린다고 할 수 있는, 이세계 전생 스릴러로서 공포와 호러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얀데레가 등장하는 부분은 개그와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은 전혀 없으며 얀데레 그 이상의 집착으로 목숨만 붙어 있다면 팔다리 다 잘라서라도 옆에 두고 싶어 하는 여동생의 오빠(주인공)를 향한 일그러진 애정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아직 1권이라서 그런지 여동생이 얀데레로 변한 이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빠와 둘이 남겨지자 여동생은 장장 5년간 오빠를 감금한 채, 오빠(주인공)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둔 이성(소꿉친구든 뭐든)을 납치해와 오빠 눈앞에서 고문과 살해를 아무렇지 않게 해댑니다. 그 이면엔 오빠의 곁엔 나(여동생)만이 있을 수 있고, 나만이 사랑할 수 있다는 일그러진 애정이 있었습니다. 연상이고 남자인 주인공이 여동생 하나 제압 못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주인공이 무언가 행동하면 할수록 눈앞에 자신이 아는 지인이 잡혀와 고문 당하고 죽는다면 제아무리 판타지 용사라도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을 것입니다. 주인공으로서는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문을 안 잠군 동생의 실수로 밖으로 나온 주인공, 길에서 주인공을 발견한 여동생은 서로 대치하게 되고...
본 작품은 더 이상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죽지 않길 바라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여동생을 죽여 악연을 끊으려는 오빠와 오빠와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여동생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이세계로 전생하여 귀족가 첫째로 태어납니다. 이미 여신으로부터 여동생도 이세계에 전생한 걸 알고 있었던 주인공은 1살 때부터 정령술을 배워 나만의 실력을 닦아 나가죠. 그런데 여기서 하나 또 허를 찔러주는 게 주인공이 1살이니까 여동생도 동년배거나 나중에 태어나겠지 하는 걸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 바탕에 세상 모든 여자들이 여동생일 될 수 있다는 전재를 깔아 버리죠(물론 그중 한 명만). 그게 엄마가 될 수 있고, 이세계에서 만난 소꿉친구가 될 수 있고, 정령술 스승이 그럴 수 있고, 다른 귀족가 영애가 그럴 수 있고, 시녀들이 그럴 수 있는, 마치 이토 준지의 공포 만화에 나오는 토미에 같은 존재가 되면서 누가 여동생일까 찾게 하는 몰입감이 제법 높습니다.
그 여동생과 이세계에서 첫 번째 조우. 여동생은 현실 지구에서 이미 윤리의식은 먹는 것으로 치부했고, 그게 이세계에 와서 고쳐지기는커녕 더 악화되었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빠와 남겨져 정서적 불안을 겪다가 오빠에게 애정이 생기고 그게 얀데레로 발전했는지는 나중에 차차 밝혀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1권에서 그 복선이 조금 투하되었긴 합니다). 1차전이라 할 수 있는 오빠와 여동생의 관계는 지구에서 무승부로 끝나고, 이세계에서 2차전을 맞이하게 된 주인공은 이역만리에서 만난 피붙이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처절한 싸움에 돌입합니다. 남매지간이라는 윤리보다는 적으로서 동생을 이대로 놔뒀다간 이세계에서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과 그 주변은 틀림없이 동생의 손에 다 죽을 테니 아기의 몸이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립니다. 이런 장면들을 리뷰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참 난감하기 그지없군요. 일상적인 남매의 투닥거림이 아닌, '가사이 유노'가 보여준 충격적인 장면들을 연출한다고 할까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1살에 싸운다는 다소 개연성은 부족하더라도 주인공이 여동생이라는 악연을 끊어내기 위해 모든 힘을 해방할 때, 두 번째는 여동생이 이마를 만지며 오빠가 비록 글자로지만 자신에게 말을 걸어줬다고 기뻐하는 장면인데요. 다시 말하지만 본 작품은 러브 코미디가 아닌 호러 공포물입니다. 즉, 주인공과 여동생이 만나는 장면들은 하나같이 호러의 끝판왕을 보여주죠(물론 필자 주관적). 그리고 주인공에게 있어서 가장 호러스러운 건, 지금 여동생을 퇴치해도 다시 환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게 일본에서 9권이나 나왔는데 1권에서 여동생이랑 악연이 끊어질 리 없잖아요. 게다가 이세계에는 전생과 환생에 관여하는 여신이 있고, 여신은 여동생에게 공포심을 느끼고 있으니 지금 퇴치한다고 다시 나타나지 않을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그럴까요. 주인공은 숲에서 정령술 스승(엘프)을 줍게 되고, 스승으로부터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는 대목은 언젠가 다시 나타날 여동생을 대비하는 그런 느낌을 받게 하죠. 그런데 주인공은 여동생이 다시 나타날 거라는 걸 간과하고 있는 듯하고, 세상 모든 여자가 나이 불문 여동생이 될 수 있는데 이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좀 옥에 티랄까요. 막연하게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얼핏 보이긴 합니다만. 2차전에서 실패한 여동생이 3차전은 그 이상의 지략과 윤리 의식 결여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 그것보다 이제 7살 주제에 동년배 '필리네(히로인)'에 푹 빠져서 이불 속에서 쪽쪽 거리고 난리도 아닙니다(참고로 본 작품은 15세 이상가). 정령술 스승(엘프女)의 외모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은근히 성(性)에 대해 거침이 없더군요. 아무래도 이런 관계는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군요.
맺으며: 작가의 필력은 중상급입니다. 라노벨 특유의 개그는 거의 들어가 있지 않으며(적어도 필자에겐 장점으로 다가옴), 인간이 이런 짓도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호러 공포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령 여동생이 자신의 신체를 뜯어... 아무튼 중반부터는 정령술 스승 밑에서 필리네(히로인)와 고난이도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으며 이후 다시 만날지도 모를 여동생에 대비하는 모습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다소 진행이 더딘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이런 부분들은 주인공에게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취득하게 하는 거라 어떻게 보면 다른 이세계 전생 치트물과는 차별을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신으로부터 스킬과 능력치를 받아 노력과 고생은 모른 채 성장하는 여느 치트물 주인공과는 정면으로 배치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주인공에게 있어서 지킬 것(필리네)을 투입함으로써 앞으로 더욱 치열하고 암담한 현실을 들이밀지 않을까 하는, 정말 오랜만에 기대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