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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드 월드 2 - 하 - 사후보복의뢰 프로그램, Novel Engine
나후세 지음, 긴 그림, JYH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2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은 인류 멸망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슬럼가에서 밥 빌어먹던 꼬맹이 '아키라'고요. 히로인은 인공지능 내비게이터(홀로그램) '알파'입니다. 주인공은 유적(구시대 시가지)의 사정과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알파'에게서 어떤 의뢰를 받고 함께하게 되죠. 이 시대는 구문명을 부흥하기 위해 유적에서 유물(구시대 각종 물건들)을 모으는 도시(市) 기관이 있고, 그 유물을 모아와서 돈으로 바꾸는 헌터(모험가)가 있습니다. 여기서 헌터들은 유물을 모으기 위해선 유적에 가야만 하고, 유적엔 구시대가 만든 경비 로봇들이 오직 구시대 사람들이 입력한 명령만으로 유적에 접근하는 헌터들을 사냥하고 있습니다(심지어 진화 및 자체 생산도 함). 요컨대 판타지로 치면 유적은 던전이고, 경비 로봇들은 몬스터, 헌터는 모험가가 되죠. 그래서 항상 목숨은 위협받는 나날이 이어지고, 돌아오지 못하는 헌터들도 많습니다. 주인공도 그중 한 사람이 될 뻔하였으나 '알파'를 만나 생환하게 되죠.
이번 이야기는 유물 강탈범들을 만나 정말로 죽을 고생을 하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시 기관의 의뢰를 받아 유적에서 전갈같이 생긴 로봇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만난 강탈범들은 그동안 주인공이 만났던 그 어떤 적들보다도 강적이었고, 알파의 서포트를 받아 어떻게 이기는가 싶었더니 난데없이 난입한 동업자(헌터, 히로인)의 철없는 행동(트롤 짓)으로 인해 단숨에 궁지에 몰려 버리죠. 여기서 흥미로운 건 유물 강탈범은 둘째치고, 트롤 짓 한 히로인의 처분 문제를 매우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인데요. 보통 여느 주인공이라면 트롤 짓 했던 히로인을 감싸주거나 약간 타박하고 끝내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명확한 적으로 인식해버립니다. 그것은 주인공의 성격에 기인하고, 그 성격 형성에는 슬럼가에서 살아오며 겪었던 온갖 부조리에서 적이냐 아니냐는 이분법으로 구분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환경 때문이라는 비참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을 방해한 히로인은 적이 될 수밖에 없게 되죠.
그야 난입한 히로인 때문에 상황이 역전되어 강탈범에게 진짜 죽을뻔했거든요. 필자라도 때려주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건 이런 제반 사정을 모르는, 그러니까 트롤 짓 한 히로인 어떻게 할까 고민 중에 죽이려 한다고 오해한 다른 헌터의 난입으로 인해 사태는 꼬여만 가죠. 그 헌터는 앞으로 주인공의 적대자이자 동시에 대척점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2권 上편 표지 모델이기도 한 '카츠야'라는 신입 헌터는 미인 헌터들과 노닥 거리는(그렇지 않은데 카츠야 눈에는 그리 비침) 주인공이 못마땅하고, 자기(카츠야)는 파티(하렘)를 꾸려 윗선의 명령을 충실히 하고(실은 명령 무시를 밥 먹듯이 함), 사람들을 도와주려는데 저넘(주인공)은 혼자 나대는 게(그렇지 않은데) 영 못마땅한, 판타지로 치면 전형적인 용사 같은 포지션으로 웃는 얼굴로 부탁이라 말하며 명령하는 그런 부류죠. 이번 이야기에선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주인공을 난처하게 만드는 바람에 일촉즉발 상황까지 가게 되는데요. 이게 상당히 흥미로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군요.
어쨌거나 두 번째, 세 번째 유물 강탈범들을 만나 뼈와 살이 분리된다는 게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주인공의 모습이 참 처절합니다. 알파의 조력이 없었다면 진즉에 썰려 나갔을 상황에서 주인공은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몰려가죠.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알파의 존재를 모르는 적들의 반응입니다. 빈사상태인 주인공의 몸에 개입한 알파가 신기에 가까운 실력으로 컨트롤하고 있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알파는 주인공에게만 보임) 적들은 온갖 억측을 하며 매우 강해 보이는 주인공 정체에 대해 분석하고 그럴수록 자신들에게 불리해져가는 상황들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약간 착각물 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주인공 정체라든지(실은 도시 기관 에이전트? 단순히 슬럼가 꼬맹이일 뿐인데), 실력이라든지(진짜 실력은 알파가 내는데), 주인공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음에도 상대는 최악을 상정해 주인공 발 앞에 엎드려 비는 그런 시추에이션을 많이 보여주죠.
맺으며: 그렇다고 개그식은 절대 아닙니다. 상당히 리얼리티하고 시리어스 한 장면들을 보여주죠. 거기에 주인공의 정체라든지, 행동에서 오해를 불러와 비극(히로인의 트롤 짓으로 인한 상황 악화)을 그린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주인공은 타인을 멀리하고, 적이냐 아니냐고 구분해가게 되죠. 이게 참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파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주인공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극도로 꺼려 하며 히로인들과 엮이게 두지 않으려 하는 등 인간관계에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게 이 작품의 특징입니다(흥미 단어를 대체 몇 개나 쓰는지..). 그런데 주인공은 의문을 갖지 못하나? 그럴 머리는 있는데, 그런 생각은 깊게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아무튼 알파와 동류인 내비게이터도 등장하고, 트롤 용사 '카츠야'가 본격적으로 주인공과 적대하게 되면서 대결 구도가 어느 정도 보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히로인들도 개입되지만,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은 하렘이면서 아닌 요상한 포지션을 보여줍니다. 히로인은 많이 나오는데 주인공보다는 주인공을 적대하는 트롤 용사 '카츠야'가 하렘을 구성하게 되죠. 이것도 좀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