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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먹는 비스코 4 - L Novel
코부쿠보 신지 지음, 아카기시 K 그림, 이경인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2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골적인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사람의 정의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지만 그 정의를 관철하자고 타인의 생명을 함부로 파괴한다면 악(惡)에 지나지 않는다를 보여줬던 3권으로부터 1년 6개월 만에 4권이 나왔습니다. 아마 1분기 때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기념으로 발매된 듯합니다만, 아무렴 어때요. 열혈물 팬으로서 기뻐 마지않는 소식이었습니다. 텍스트 글자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적인 액션과 입은 험해도 사람들을 구하려 불구덩이에도 뛰어드는 주인공들의 활약상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였었죠. 서로 의지하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재가 있어서 든든하고,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용기, 때론 근육으로 꽉 찬 머리를 대변하듯 간간이 터지는 개그 등 개성 강한 캐릭터와 어우러져 재미라는 시너지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3권에서 힘을 너무 준 것일까요. 보통 이전 권에서 스펙터클한 설정을 보여주게 되면 다음 권에서는 거의 쉬어가는 에피소드가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하던데 딱 그런 분위기의 4권입니다.라고 해도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액션신은 좋고, 물불 가리지 않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며 발 담그다 끌려 들어가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은 다 하고 다녀요.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식인귀가 되어 있고, 온 세상에 수배 전단지가 붙어 마치 원피스의 루피처럼 상금은 어마 무시. 주인공의 동료 '미로'도 언제부턴가 식인 판다로 불리며 세트로 묶여 다니는 처지죠. 그런 그들이 3권의 주된 이야기였던 [도쿄 대전]을 거치며 영웅으로 올라서고 수배가 풀리나 했습니다만.
그딴 건 모르겠고, 너 님 못생겼으니 징역!! 이번 4권의 이야기는 못생긴 얼굴 때문에 징역 20년을 선고받아 옥에 갇히는 비스코와 로봇 3원칙을 지킬 것인가 그 사슬을 끊고 진화할 것인가의 기로에 선 인조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잡혀간 동족 버섯 지기들을 구하러 [감옥 도시]로 향한 주인공 비스코와 미로는 뜻하지 않게 쫓기고 있던 어떤 소녀와 마주하게 됩니다. 운명은 언제나 갑작스럽게라는 CF가 있을 법한 만남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을 거역할 수 없는 노예로 만들어졌다고 마음대로 해도 되나?' '베니비시'라 불리는 인간이 해야될 노동을 대신할 인조인간과의 만남. 인간의 말은 거역할 수 없으며, 위해도 가 할 수 없는 로봇 3원칙이 적용되는 인조인간의 행복을 위해, 학대받는 동족을 위해 인조인간 소녀는 반란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비스코와 미로는 그녀와 그녀의 동족을 구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죠.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베니비시'들은 옥에 갇혀있고, 이들은 곧 처형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아무 죄가 없음에도 감옥에 투옥이 되었고 간수들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죠. 소녀는 이들에게서 자신의 아버지와 동족들을 구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넘어야 될 산은 많고, 특히 교도소 소장은 매우 강하여 비스코와 미로도 핀치에 몰려가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싸움 속에서 '베니비시'들이 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조금씩 밝혀지는 부분입니다. '베니비시'들은 인간들에게 학대를 당해왔고, 그들(베니비시)은 인간과 똑같은 신체와 감정을 가지고 있죠. 눈앞에서 어린 베니비시(이들에겐 자식)들이 인간들의 여흥에 죽어 나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할 때, 이 감정이 쌓일 대로 쌓였을 때.
그리고 자연계에서 필수로 작용하는 '진화'가 이들 '베니비시'들에게도 적용된다면?라는 주제를 가미하면서 베니비시들이 왜 갇혀 있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을 도출하게 합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감옥 간수들은 '베니비시'들을 그저 죄인이라고 치부하며,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 치부하며 인권은 무시한 채 온갖 고문과 괴롭힘을 일삼고, 베니비시들은 몸으로 견디고 있는 상황이죠. 그럼에도 이들 '베니비시'를 이끄는 왕은 인간들을 해치면 안 된다는, 종족의 안녕은 무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하려 합니다. 하지만 비스코에게 구해진 소녀는 진화를 바라며 인간의 손을 벗어나 종족이 행복하기만을 바라죠. 이 말은 무력을 쓸 줄 아는 로봇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의미이고, 인간을 적대시하는 이들이 풀려나게 된다면? 같은 물음을 던집니다.
소드 아트 온라인 엘리시제이션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들었다고 해서 창조주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 아니다' 인간의 손에 만들어진 '베니비시'들은 인간의 손을 벗어나려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풀려나면 그동안 쌓였던 울분이 인간에게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그와 상관없이 학대를 피해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 비스코와 미로는 무엇이 옳은지 알아가야만 하죠. 그러나 하나 알 수 있는 건, 폭력엔 폭력으로 맞서선 안 되며 우린(베니비시) 그들(인간)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같은 누가 더 인간적인가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이 행하는 진화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듯이 '베니비시'들은 진화를 이뤄가고, 인간과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는지 같은 조금은 긴박한, 근육 열혈 물 답지 않게 상당히 난해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맺으며: 이번 4권을 크게 보면 못생겼다고 징역 때리고, 버스에서 자리 양보 안 했다고 징역 때리고 법을 무슨 엿가락 늘이듯 마음대로 적용하는 옥장(교도소 소장)과 그에 맞서는 비스코와 미로, 맞서다 보니 죄수들 인권 문제도 얽혀있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마땅하지만 죄인 99%가 무고로 들어온 느낌이죠. 인상 돌아간다고 죄지은 거 있냐?며 윽박지르고, 3심제는 갖다 버렸는지 즉결 심판으로 너 님 징역! 근데 이건 블러프에 지나지 않아요. 중후반부터는 만들어진 존재라고,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말살 당해야 하는 노예의 처우를 다루며 조금은 시리어스 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오류가 생기는데요. 위험한 건 인간도 똑같을 텐데 왜 인간은 그냥 두나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만한데 작가가 설정에 구멍을 만들어 버렸는지 아예 언급조차 없군요.
물론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저런 1차원적이 아닌,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뜻이므로 인간들을 해칠 수 없다는 마음에 동족을 말살하려는 어쩌면 가장 인간 다운 건 이들 '베니 비시'가 아닌가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물로 만들어졌다면 그게 무엇이든 진화는 하게 마련이며 그 진화를 거쳐 그들의 마음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습니다. 머리 아프네요. 아무튼 액션은 이전보다 약해졌지만 인간다움은 배가된 느낌이랄까요. 근육 뇌가 뿜어내는 개그도 적절히 들어가 있고요. 다만 입만 열었다 하면 사기 치는 분홍머리 '티롤'은 어디 갔는지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쉬웠군요. 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고자가 아니었습니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