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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내 세계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가? 3 - 신들의 길, Novel Engine
사자네 케이 지음, neco 그림, 이경인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일단 세계관부터 간략하게 말씀 드려보자면요. 이 작품은 5대 종족이 사활을 걸고 싸움박질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인족, 엘프(드워프, 요정, 천사 연합), 슬라임(유령, 기타 등등 연합체), 악마족(어째선지 고혹적인 몽마만 등장), 그리고 인간(아저씨 많이 나옴), 이들은 싸움박질을 이어가다 인간족의 '시드'라는 영웅에 의해 인간족이 승리, 4종족은 평정되어 평화로운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주인공은 평화가 도래한 세계에서 소꿉친구와 알콩달콩 잘 살아가던 중 갑자기 세계가 일변, 다시 전쟁 중의 세계로 넘어가버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5대 종족이 한창 전쟁 중인 세계로 주인공은 던져진 것이죠. 전생이나 전이는 아니고 세계가 덮어쓰기 당한, 쉽게 설명하면 평행세계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할까요. 거기선 어째선지 똑같은 세계임에도 인간족 영웅 '시드'는 존재하지 않았고, 주변은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소꿉친구조차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하죠. 그런 세계에 던져진 주인공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일단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는 싶은데 정보가 없어요. 그래서 주인공은 그걸 알고 있을 거 같은 각 종족 영웅(판타지로 치면 용사)을 만나기로 하죠. 그런데 인간과 한창 전쟁 중인데 만나고 싶다고 냉큼 만나줄 타종족 영웅은 없어요. 그나마 악마족 영웅(어째선지 매우 고혹적인 몽마)은 조금이나마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긴 했습니다만. 그다음으로 엘프족 영웅인 '주천(희한하게 남정네를 기용)'은 누군가에 의해 정신이 나가버려서 미친놈처럼 날뛰며 주인공과 싸우다 저세상 가버렸죠. 이거 인간족 입장에서는 주인공만 앞세우면 날로 먹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도 하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인간족 리더는 없군요. 사실 날로 먹는 거나 다름없긴 하네요. 주인공이 가는 곳마다 타종족이 박살 나고 있으니까, 순간 퍼스트 건담의 아무로인가 했군요. 참고로 인간족은 세계 곳곳에 퍼져서 점조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조직마다 리더는 따로 있데요. 히로인 '잔'도 작은 조직의 리더를 맡고 있습죠.
아무튼 엘프족과 1년간 휴전을 맺은 주인공과 잔(히로인)과 그의 레지스탕스들은 다시 짐을 꾸려 이번엔 남부로 향하는데요. 그런데 어째선지 엘프족 무녀 레이렌도 따라오는군요. 길잡이로 고용된 듯한데 임무가 끝나면 돌아갈 것이지 계속 따라다니는 게 이번 3권의 키포인트로 작용합니다. 그렇게 주인공과 잔(히로인)은 남부 슬라임족과 대치 중인 레지스탕스를 만나 우애를 다지려고 하죠.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이야기가 이들 레지스탕스보다 슬라임에 집중되는데요. 슬라임이라고 해서 판타지의 흔한 잡몹 포지션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세계에서 당당히 5대 종족에 이름을 올린, 막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죠. 소리 소문도 없이 찾아와 인간들의 마을을 둥지로 삼고, 모든 것을 녹여 잡아먹는, 실제로 서양 판타지에선 굉장히 강한 몬스터로 표현되고 있는데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어째선지 귀여운 잡몹 스타일이 되어 버린 비운의 몬스터라 할 수 있는데요. 이 작품에서의 슬라임도 5대 종족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강한 몬스터로 표현되지만 결국 일본식 귀여움의 대명사가 되고 마는데 이게 두 번째 포인트죠.
사실 이 작품에서 다른 지역 레지스탕스와 우애를 다지는 건 어찌 되든 상관없어요. 진짜 이야기는 인간족을 제외한 4대 종족과의 화합이고 그 과정에서 이종족 히로인이 주인공 하렘이 들어오는가가 관심사일 뿐이죠. 거기에 갈수록 히로인들의 귀여움도 부각 중이고요.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인간족 히로인보다(사실상 없음) 악마족의 영웅(몽마)과 그녀의 부하(역시 몽마), 엘프족은 레이렌(린네는 납작이라고 부름), 정식 종족으로는 취급받지 않고 있는 혼돈족의 '린네(아마 메인 히로인?)' 그리고 이번엔 판타지하면 빼놓을 수 없는 슬라임이 등장하죠. 이렇게 써놓고 보니 먼치킨 이세계 하렘물인가 싶을 텐데 필자는 이런 거 극혐하는지라 이런 흐름이었다면 진작에 하차했을 겁니다. 이런 것에서 다소 절재하는 흐름이 묘한 매력이 특징인 작품이죠. 목적을 위해 달려가다 수단에 먹혀버리는 여느 하렘물하고는 조금은 궤를 달리한다고 할까요. 린네가 레이렌을 납작이라 부르며 놀리는 거라든지, 츤데레가 되어 아닌척하면서 은근히 주인공 소매를 잡아끄는 레이렌이 제법 귀엽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대망의 슬라임, 주인공은 인간족 히로인보다 이종족 히로인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숨겨진 뜻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얼핏 보면 이종족 하렘을 연상시키지만 적대하는 종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히로인 투입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죠. 결과적으로 보면 4대 종족과의 대립을 끊고 화합과 이해하는 역할로 이종족 히로인을 투입 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죠. 고대사를 보더라도 딸을 왕과 결혼 시켜 권력을 탄탄히 하는 것도 있잖아요. 그걸 반증하듯 이번엔 슬라임의 영웅 '쿄코'를 투입합니다. 어째서 슬라임 주제에 여자애 모습이 되는지는 의문이지만, 말도 유창하게 하고, 이 의문의 답이 위에 언급한 부분이 아닐까 싶은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3권입니다. 다른 말이지만 결국 이 작품의 작가도 일본식 슬라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아요.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쿄코(슬라임 영웅)의 등장으로 아포칼립스 상황을 다 말아 먹을 정도로 밝은 모습을 보이게 되죠.
맺으며: 리뷰에선 하렘을 부각 시켰습니다만, 실제적으로 이번 3권에서는 많은 복선이 회수되었습니다. 이번에 주인공의 원래 세계를 덮어쓰기 한 주체(흑막)가 누구인지 조금 밝혀지는데요. 크게 보면 4대 종족과의 싸움보다는 이들과 규합해 이 주체와 싸우게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이번에 그 주체에 의해 피폐해진 슬라임 영웅 '쿄코'에게 주인공이 감정이입함으로써 이 가설에 힘을 보탠다고 할까요. 물론 흑막은 따로 있을 거라는 느낌도 받았습니다만, 이건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듯하군요. 아무튼 결과적으로 보면 결국 주인공이 인간족 영웅이 되어 세계를 덮어쓰기 한 흑막을 없애고 원래 세계에서는 봉인했던 4종족을 봉인보다는 화합을 선택해서 다 같이 살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왕창 있어요. 주인공은 린네, 레이렌등 타종족 히로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있으며, 협상하러 가서도 싸울 땐 싸우더라도 차별을 보이지 않고 있거든요.
알고 보면 이 작품의 스토리와 짜임새는 매우 탄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메인 히로인격인 '린네'의 정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결국 그녀가 최종 보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있어요. 어리광 부리고, 주인공을 위해서라면 불에도 뛰어들 것처럼 조금식 맹목적 얀데레 되어 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군요. 종족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혼돈족으로서 5대 종족의 DNA를 모두 가지고 있는, 어쩌면 흑막이 실험으로 탄생시킨 결과물 중에 완성도 높은 개체가 린네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었군요. 본인은 기억이 안 나는 듯했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이 작품에서 최대 기믹은 린네라 할 수 있죠. 사실 바꿔 말하면 무지렁이 필자가 이렇게 예측 가능할 정도로 이야기가 허술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맞다고 해도 이걸 어떻게 풀어 갈지는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니까 뭐 넘어가고요. 아무튼 여기에 인간족에서 내놓은 히로인 '잔'의 헌신도 눈여겨볼만합니다. 슬라임 영웅 '쿄코'에 대해선 4권에서 다뤄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