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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묵시록 마이노그라 2 - ~ 파멸의 문명으로 시작하는 세계 정복 ~, S Novel+
카즈노 페후 지음, 준 그림, 손종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한창 청춘을 구가해야 될, 낭낭 18세에 요절해서 이세계로 날려 왔더니 사악(邪惡) 속성이라는, 전생에 나라 팔아먹은 팔자를 얻어 맨땅 헤딩하듯 나라를 일으키는 주인공의 이야기 제2탄입니다. 구박데기로 전락해서 떠돌이 생활하며 오늘내일하던 다크엘프 무리들을 규합해 국민으로 만들어 '마이노그라'라는 나라를 창건하고 온 숲을 마기(魔氣)로 뒤덮어 여기가 지옥이라는 듯 세상과 동떨어진 기괴한 모습의 나라를 만들기를 몇 달.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나라다운 모습을 갖춰 갑니다. 하지만 국민이라고 있는 게 꼴랑 다크 엘프 500여 명 뿐이어선 국가 체면이 서지 않는 관계로 이웃 마을과 나라를 접수해서 인구를 늘려 보겠다는 구상을 펼치는데요. 사실 주인공은 속성이 사악이라도 평화를 사랑하는 중증 대인 기피증 환자여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싫어하고 있죠. 그래서 평화적으로 교섭해서 동맹을 맺고 인적 교류 등을 시도하게 되는데 사실 이런 이야기가 쭈욱 이어져서 조금 지루한 편입니다.
이번 이야기도 그 연장선에 있는데요. 인적 자원이 없다 보니 국가 중추를 담당할 관료가 없고, 그러다 보니 어쩌다 주인공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이유로 '에무르(히로인)'등 몇 명이 기용되어 혹사당하는 실정이죠. 이번엔 시종을 뽑는다고 어린 쌍둥이(히로인) 자매를 기용하는 바람에 만천하에 주인공은 로리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집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여느 라노벨에서 보여주는 흥미를 끌기 위한 장면일까 했습니다만. 쌍둥이 자매가 이세계에서 다크 엘프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하더라고요. 주인공에게 주워지기 전의 어떤 상황으로 인한 정신과 마음이 망가진,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서 조금은 섬뜩하고 안타까웠군요. 어쨌건 이 쌍둥이 자매가 중추적으로 나서서 이웃 마을과 소통하고, 주인공이 앓고 있는 대인 기피증을 조금식 케어하는 뭐 이런 이야기들이 쭈욱 이어집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읽는데 인내심을 요구하니 조금 많이 참아야 합니다.
참고 나면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우리나라에 정발해준 출판사가 3권을 내주려나 모르겠는데, 아마 3권 정발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지 않을까 싶군요. 그만큼 1~2권이 보여주는 이야기가 좀 지루해요. 주인공과 아투(메인 히로인)의 의미 없는 러브러브 신파극과 건물을 지으며 부가되는 능력치 등 이런 설명이 제법 많죠. 근데 건물을 지으며 부가되는 능력치를 받는다의 설정은 나름 신선했군요. 가령 진료소를 건설하면 상처 회복 속도가 올라간다던지. 그 외에는 나라를 건설하고, 인구 정책과 내정을 살피는 것으로 구구절절 말이 억수로 많아요. 나라 창건하는데 쉽지만 않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려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던 이야기가 이번 2권 중후반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는데요. 처음 숲에 왔던 시절에는 동물은 고사하고 그 흔한 고블린조차 없던 것에서 어느 순간 어떻게 나타났는지 고블린을 위시한 각종 마물이 등장하면서 사태가 예사롭지 않게 흘러간다는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합니다.
마물의 침공에서 어디선가 많이 본 시추에이션이라고 느낀 주인공이 기억을 더듬어 밝혀낸 진실은... 이세계는 주인공이 하던 게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계죠. 자, 근데 이세계로 넘어온 게임 유저가 주인공만이 아니라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펼친다면 어떤 흥미를 유발할까라는 실험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1권에서 나왔던 북방에서의 주인공과 유사한 속성의 마녀 출현, 그리고 본격적인 마녀의 침공과 마녀와 싸우는 성녀의 장면 장면에서 주인공과 그의 일행과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군요. 그동안 어딘가 가벼운 이야기로 따분하게 했던, 가령 주인공과 아투의 의미 없는 러브러브 신파극 같은 개연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던 이야기에서 본격적인 세계대전 발발 같은 웅장한 이야기로 바뀌어 가는군요. 작가의 말투도 좀 바뀌어서 이제야 이야기 다운 이야기를 보여줄까 기대를 하게 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아투(메인 히로인)에 버금가는 새로운 유닛이자 영웅 등급인 '이슬라(세컨 히로인)'의 등장이군요. 주인공이 소환했어요. 나라가 기틀이 잡혀가고 해서 도시 방어 목적으로 소환했는데요. 히로인이라고는 했지만 개미 여왕의 모습으로 사마귀와도 비슷한 마물형으로 등장시켜 상당히 충격을 줬죠. 그럼에도 성격은 성녀가 있다면 바로 그녀(이슬라)라는 것마냥 등장하자마자 만인을 보다듬는 국모(國母)로서 추앙받으며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죠. 작가의 성향을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아투(메인 히로인)와 은근히 기싸움을 벌이지만 엄마 속성으로 아투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은 흐뭇하기까지 하는, 편견이 있는 사람이 이 작품을 읽는다면 편견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흥미롭다고 할까요. 위에 언급한 쌍둥이 자매와 인연이 매우 깊게 형성되는데, 2부 스포일러를 접한 필자로서는 이 부분에서 어떤 플래그를 봐야 했군요.
맺으며: 주인공의 사상이기도 한, 사악이라고 해서 무조건 악당이 아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사악이라는 정의를 내린 부분은 꽤 와닫았는데요. 영화는 안 봤지만 조커가 떠오르기도 했군요. 그럼에도 착하게 살아가려는 주인공이 굉장히 흥미로운데, 타인을 판단할 때 그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라는 심오한 부분이 있다고 할까요. 주인공은 사악 속성에 맞게 타인에게 비치는 형상은 도화지에 아무렇게 그려 놓은 듯한 마왕 그 자체고 거기에 얽매어 편견을 보이는 이세계 사람들과 편견을 가지지 않는 쌍둥이 자매 등,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꽤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점들은 순수 필자의 개인적인 감상에 지나지 않으니 너무 깊게 파고들진 마세요. 솔직히 작품 내용 2/3는 그냥 흘러 보내도 무관한 이야기들인지라... 아무튼 3권부터 이야기뿐만 아니라 진도면에서 꽤 흥미로워질 거 같더군요. 북부 마녀의 등장과 성녀와의 대립이라는 3각 구도와 마물의 침공, 필사적으로 국력을 키우려는 주인공이 맞물려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