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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 3 - J Novel Next
아이자와 다이스케 지음, 토자이 그림, 한수진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개나 소나 다 가는 이세계 전생, 나잇값 못하는 중증 중2병, 어떻게 하면 착각할 수 있는지 의문인 착각물, 밤에 활동하니까 다크 판타지, 사지가 썩어 들어가는 코즈믹 호러, 개(犬) 발이라도 빌리고 싶은 노후 보장, 히로인이 무려 666명 + 몇 명 더.
표지 설명: 수백 년 묵은(묵지 않았습니다.) 여우, 요호 '유키메'와 주인공 '시드'.
이렇게 강렬한 표지가 또 있을까요. 이 작품이 전하는 포인트를 제법 잘 표현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겉모습만 보고 속지 말자.
스포일러 주의
이번 이야기는 별것 없습니다. 누나 클레어의 손에 이끌려 곧 부활한다는 시조 흡혈귀 [피의 여왕]을 토벌하러 무법 도시로 향하는 주인공 시드가 하라는 토벌은 안 하고 [피의 여왕]의 보물창고에 들어가 금화를 도둑질한다는 것과, 죽으나 사나 중2병을 사수하겠다는 것마냥 이번엔 조직을 배신하는 역할에 심취해 자신의 부하들이 일궈낸 세계 유수의 대상회를 짜부려 트리려는 계획을 짠다는 것이군요.
그럼 표지모델인 요호 유키메는 언제 나오나, 표지의 강렬함 때문에 작중에서 가련하고 임팩트 강한 모습을 보여줄까 내심 기대를 하였었는데요. 그냥저냥입니다. 주인공과 손잡고 위조지폐를 만들어 유통하는 것뿐, 그녀의 과거가 나오면서 뭔가 기구한 인생을 걸어온 비련의 여주인공 포지션 같은 그런 인상도 들지만, 좀 인위적인 느낌도 강한 게 설익은 보리밥 같다고 할까요.
그건 그렇고 주인공 부하들도 참 눈치 없는 게요. 돈을 벌었으면 자신들의 우두머리(주인공 시드, 이하 주인)에게 좀 나눠 주던가, 작중에 한 번도 그런 표현이 없는 걸로 보아 땡전 한 푼도 주지 않았나 봅니다. 주인은 도적들을 때려잡아 근근이 생활하고, 학교에서는 왕녀가 땅에 던져준 금화를 줍는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들은 호의호식하고 주인은 나 몰라라.
이번에도 그래요. 무법도시에 가서 도적들을 때려잡으면 일확천금을 손에 넣을 수 있겠지? 이 얼마나 순수하단 말인가요.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결국 무법도시에 가서도 건진건 없고, 요호 유키메와 짜고 위조지폐를 유통해 떼돈을 벌었지만 부하들이 죄다 주워가버리니 이보다 불쌍한 주인공이 또 있을까 싶더라고요.
말 하나하나에 확대해석하는 건 주인공이나 부하들이나 여전하고, 조직을 배신한 어쩌구 콘셉트로 폼 좀 잡으려고 악당 연기를 했더니 코가 좋은 개(犬) 수인 델타(부하)에게 들통이 나서 산통 다 깨지고, 결국 땡전 한 푼 얻지 못하는 거지 신세를 못 면하게 되죠. 그건 그렇고, 멍청함의 끝판왕을 보여준 델타의 귀여움이 돋보이는 3권이 아니었나 합니다.
뜬금없이 등장인물의 기구한 삶을 조명, 스포일러 주의
주인공 누나 '클레어'가 재액의 마녀 '아오로라'를 품게 되면서 각성이라는 복선을 들고 왔습니다. 어릴 적 주인공 시드에 의해 [악마 빙의]가 고쳐졌다는 걸 모른 채, 병이 발병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이 없더라도 동생(시드)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여기저기 손을 쓰는 장면들은 매우 가슴을 아프게 하는데요. 그녀는 이번 시조 흡혈귀 [피의 여왕] 토벌에 참가하여 배에 구멍이 나는 등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히로인들 중 흔치않게 고생을 하게 되죠. 그 고생이 보람 없게도 동생에게서 중2병 선고를 받는 등 운이라곤 지지리도 없다고 할까요.
착각에서 시작하는 핑크빛 학원 라이프의 전형이었던 '로즈 오리아나'의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주인공 시드가 가짜 [섀도우 가든]이 펼쳤던 학원 점거 사건 때 자신을 지켜준 걸로 착각하곤 시드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무신제 때 [교단]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참살하고 모습을 감춰버렸죠. 오리아나 또한 비련의 여주인공 중 한 명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시드)이 생겼지만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 데다 정작 시드는 그녀의 마음은 털끝만큼이나 알아주지 않고 있으니... 그쯤 [섀도우 가든]에 어디선 많이 본듯한 사람이 666번 신입으로 들어옵니다.
개(犬) 수인 델타의 백치미 같은 귀여움이 폭발합니다. 그녀는 말귀 못 알아듣고, 떼쟁이에, 명령도 곧잘 잊어버려 주변을 난감하기 이를 데 없게 만드는 게 특징이죠. 하지만 실력은 진심을 낸다면 주인공 시드조차 고전할 거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우수하다는 것, 문제는 돌머리라서 생각을 안 한다는 것, 시키면 시키는 일은 잘 하는데 전략 같은 건 없고 그냥 돌진, 질이 나쁜 게 그녀를 이길 상대는 거의 없다는 것, 있다면 주인공 시드와 엘프녀 알파(직장 상사) 정도, 약한 놈을 무엇보다 싫어해서 친오빠의 목도 처 버리는 냉혹한, 독점욕은 없는지 생각이 없는지 시드 보고 신부 100명 들이라는 등 머리가 사차원, 꼬리 살랑살랑거리는 게 차밍 포인트.
요호 유키메는 아쉬웠습니다. 꼬리 아홉 개라는 요물의 상징이면서 정작 하는 일은 위조지폐 만들기. 시조 흡혈귀 [피의 여왕]이 1천 년 만에 깨어나면서 무법도시가 아수라장으로 변해가자 직접 토벌에 참가, 하지만 발려 버렸다는 거, 꼬리가 운다. 자신이 관리하던 업소녀들의 위기 때 주인공 시드에게 구해진 걸 계기로 친해졌군요. 요염함으로 그를 꼬시려 했지만 우리의 고자 시키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바람에 비참함을 맛봐야 했죠. 표지의 임팩트와 다르게 그냥저냥입니다. 14살 때 사람 보는 눈이 옹이구멍이었는지 남자에게 속아 일족이 도륙 당하고, 혼자 살아남아 창관의 길에 들어서서 두 자릿수 연도가 지나기 전 무법도시 정점에 올라섰을 만큼 수완가이긴 한데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기구한 인생을 살 팔자.
피의 여왕 [엘리자 베트], 시조이자 진성 흡혈귀이면서 사람의 피를 빨지 않는 온건파. 1천 년 전 인간과 공존을 모색하며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자부했지만 붉은 달이 떠오른 해에 부하의 농간에 넘어가 그날 몇 개의 나라를 궤멸 시키고 스스로 봉인의 길에 들어섰던 비운의 히로인, 현재 또다시 붉은 달이 떠오르려 합니다. 그녀가 부활한다면 세상은 또다시 피의 축제가 벌어질 터, 그래서 토벌령이 내려지는데... 그녀도 남자 잘못 만나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는 타입이랄까요. 안식의 땅을 찾아,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이 뜻을 이를 수 있을 것인가. 시드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면서 그녀가 선택한 길은...
맺으며, 이번 3권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컸군요. 시조 흡혈귀 [피의 여왕]과 요호 유키메의 이야기를 잘 살리지 못하고 사장 시켜버리다니. 원래 이 작품은 주인공의 중2병 위주의 이야기였긴 합니다만. 히로인들의 비화인 스토리를 간략 뉴스처럼 짤막하게 만 늘어놓다 보니 감정이입이라든지 의미를 찾는데 다소 고생을 하였군요. 그나마 주인공과 부하들의 착각 속에서 시작하는 이세계 라이프는 여전하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긴 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개고생해서 노후 자금으로 모았던 금화를 부하들이 착각해서 통째로 가져가버리는 대목은 압권이었죠. 결국 주인공은 땡전 한 푼 없는 거지, 개(犬)수인 델타가 보여준 백치미 개그와 일러스트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고요. 그 외엔 사실 무미건조했습니다. 4권에서 좀 재미있어질지 모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