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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티아 이담 3 - 재회의 크로스로드, V Novel
타케오카 하즈키 지음, 루나 그림, 김정규 옮김 / 길찾기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주인공 '아이카와 리히토'에게는 유일한 친구가 있습니다. 같은 도서 위원으로 지내는 '미치바 쿄코', 그녀는 고등학교 입학식 날 지각하였죠. 이대로는 쪽팔려서 학교생활 끝이라는 생각에 집에 가서 방구석 폐인이나 될까 하며 전전긍긍하였고 마침 같이 지각한 리히토는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11살 때 이세계를 구하고 현실로 돌아와 타인과의 교류를 애써 거부하고 있던 그가 왜 하필 그때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운명은 그가 이세계로 갔던 11살일 때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건데요. 사람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있었다면 끝까지 관철할 것이지 왜 그녀에게만 마음을 열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죄를 묻는 것처럼 아외카와 리히토 방년 16살 때 또다시 이세계로 소환이 됩니다.
이번엔 '미치바 쿄코'와 함께, 쿄코는 입학식 날 그의 도움을 받은 이후 그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남들에겐 별것 아닌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날 그의 도움 덕분에 방구석 폐인이 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무난하게 학교생활에 녹아들게 되었죠. 그것을 계기로 마음을 키워 갔었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둬둬 호감도가 상승하는 히로인이라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군요.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고 16살이 되던 해, 드디어 고백하겠노라 다짐한 그녀는 그(리히토)가 있는 장소에 갑니다. 그리고 이세계에 소환 당하는 중이던 리히토를 발견, 오지 말라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달려갔다가 자신도 같이 휘말려 버립니다. 운명의 여신은 이들에게 장밋빛(주로 쿄코만이 느끼던) 인생은 개나 줘버리라는 식으로 이렇게 이별을 선사하죠.
하렘은 종말을 고하고.
리히토는 두 번째로 소환되어 눈치도 없이 부활한 마신을 다시 봉인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볼 일이 끝났으면 어여 현실 세계로 돌아가면 될 것을. 미치바 쿄코와 1년 반이나 교류하면서 이성에 대한 호감이라곤 쥐뿔도 없었던 주제에, 단 몇 개월간 생활했던 그것도 11살 때, '이슈안'과는 특별한 감정을 품고는 잊지 못해 방황하는 꼬락서니란. 사실 1권에서 이미 복선이 투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리히토는 11살 때 마신 토벌 때 죽어버린 이슈안을 잊지 못했고, 16살 때 마신을 쓰러트린 후 기적같이 그녀(이슈안)가 생환하였을 때는 세상 무엇보다 기뻐했죠. 하지만 11살에 멈춰버린 그녀의 인격에 괴리감에 방황하지 않을 수 없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심리묘사가 제법 괜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미치바 쿄코가 그의 마음에 파고들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는 소리.
리히토가 이세계에 소환될 때 휘말려버린 미치바 쿄코. 세상 아는 이 없고 문명이란 찾을 수도 없는 이세계에 떨어져 이 불안한 마음을 어찌할 수도 없이 찾아오는 정조의 위기. 이세계 먼치킨을 비웃듯 힘은 개뿔도 받은 게 없는 상황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해진 순간 그녀를 구해주는 인물은 누구일까. 맨 몸뚱이로 모르는 세계,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세계에 떨어졌다는 두려움.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현실에서 그녀가 마음이 꺾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무얼까. 살기 위해 처절한 발버둥을 치고 또 치고, 백조가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물 밑에서 처절하리만치 발을 굴리면서도, 이세계에 떨어져 도움을 받고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에게 황망하게 배신을 당해도,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이세계 어딘가에 '아이카와 리히토'가 있을 테니까.
오로지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둔 단 하나의 사람.
미치바 쿄코가 이세계에 와 있다는 걸 알아버린 리히토는 그녀를 찾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녀를 좋아해서가 아닌, 그저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리히토는 '용사'로 선택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구하고 위한다는 사명감 같은 마음. 그것이 때론 상대로 하여금 얼마만큼의 상처가 되는지도 모른 채 말이죠. 그리고 그녀(쿄코)를 발견합니다. 자,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1년 반이나 키워왔고, 이세계에 떨어져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정조의 위기도 수차례 맞았었습니다. 그런 불안한 생활 속에서 마음속에 담아둔 단 한 사람이 자기를 구하러 와줬어요. 이 얼마나 기쁘고 또 기쁠까요. 그러나 주인공 '리히토'가 보여준 '어떤 행동'은 이세계에 떨어져 절망만큼은 느끼지 않았던 그녀(쿄코)에게 절망을 선사해버리죠.
눈치 없는 동정 때문에 그렇게 하렘은 끝이 납니다.
맺으며, 여기서 하렘이란. 본처: 이슈안, 후처: 우르스라, 첩1: 쿄코, 첩2(가능성이 희박해서 첩2): 토토. 이슈안 그녀는 사실 대인배라 할 수 있습니다. 11살 때부터 줄곧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있지만 들어내지 않고 언제나 리히토를 우선시 해왔죠. 뭐랄까. 이 작품의 하렘도는 '스쿨 데이즈'를 보는 거 같다고 할까요. 이슈안은 쿄코의 존재를 알고부터 쿄코의 등을 밀어 주려 하죠. 이전엔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앙탈을 부리곤 했으면서 말입니다. 우르스라는 지하 도시에서 구해진 후 서방님 거리면서 뭔 생각하는 모르겠으니 일단 그녀의 마음은 접어 두고요. 토토는 지나가다 만난 인연으로 그냥 자기 갈 길 가면 될 것을 굳이 수라장에 뛰어드는 분위기입니다. 아무튼 11살 때부터 알아온 사이이니 사실 리히토가 이슈안에 마음이 먼저 가는 건 어쩔 수 없겠죠.
리히토는 첫 번째 마신을 쓰러트릴 때 그녀(이슈안)의 희생을 보고 마음에 스크래치를 안고 있었고, 이후 그녀가 생환하면서 마음의 응어리를 풀게 되자 더욱 그녀를 의식하게 되었죠. 하지만 무골충이 동정시키들이 다 그렇듯, 자신의 마음이 그녀를 이성으로서 좋아하는지 친구로서 좋아하는지 애매한 반응 일색이었다는 겁니다. 이런 판국인데 쿄코는 그냥 직장 동료 그 이상은 아닌 거였고요. 이걸 알게 되었을 때 쿄코가 받았을 충격이 얼마나 클지. 애초에 쿄코는 발암이죠. 이 작품에 나오는 히로인 대부분이 발암이지만 쿄코는 독보적입니다. 오지 말라는데 와서 휘말려 안 해도 될 고생은 다 하고, 자신의 마음을 평소에 밝히지 않아놓고 자신의 마음을 짓밟았다고 흑화 해서 주인공 리히토에게 있어서 최대의 적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남 도와주는 걸 삼시 세 끼보다 좋아하는 놈이 정작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한 주인공도 쓰레기고요.
그건 그렇고, 뭔 놈의 오타가 이리도 심한지 학을 떼겠습니다. 2권도 그랬고, 이번 3권도 출판사는 검수를 안 한 걸까요. 걸핏하면 오타가 보이는데 심지어 몇몇 페이지에서는 그 페이지에만 열댓 개가 들은 것도 있었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혼동했는지 일부러인지 A를 B로 부르질 않나. 하다 하다 대사까지 누락시키고, 뜻이 변하는 오역까지, 이걸 돈 받고 팔겠다니 기가 막혔습니다. 책벌레라는 작품을 내면서 그렇게 오타 오역으로 욕을 먹어놓고 왜 고치지 않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