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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위의 서브캐릭터 육성 일기 1 - ~폐인 플레이어, 이세계를 공략 중!~, L Books
사와무라 하루타로 지음, 마로 그림, 이승원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과금으로 수천만 원은 예사고, 억대 그 이상을 쓰는 사람을 종종 보잖아요. 그렇게 투자해서 캐릭터를 강하게 키워 상위 랭커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인생과 돈을 게임이라는 데이터에 투자하다니 바보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일종의 취미로 존중해주시나요. 흑자는 이렇게 묻곤 합니다. 그렇게 게임에 인생과 돈을 투자해서 남는 건 무어냐고, 그럼 게이머들은 이런 말을 하죠. 꼭 남는 게 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냐고, 인생에 있어서 무언가를 하며 즐기는 방식은 개개인 다 다름에도 왜 게임에만 유독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대는 걸까라고 필자도 한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죠. 물론 필자는 과금이라고 해봐야 월 이용료 낸 게 다지만요. 아무튼 이 작품은 온라인 게임에서 폐인 짓을 하던 유저가 죽어서 이세계로 환생해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뭐든지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죠. 주인공 'seven(사토 시치로)'은 인생을 받쳐 온라인 게임 세계 1위 랭커가 되었습니다. 과금을 얼마나 했는지는 안 나오지만 세계 1위를 할 정도니 엄청나게 들이부었을 테죠. 그 정도를 들이부으면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이고요. 덕분에 그는 각종 타이틀도 1위를 지키는 등 세계가 주목하는 게이머라 할 수 있습니다. 자부심도 대단하겠죠. 그것과 맞바꾸듯 현실 28세라는 인생을 몽땅 게임에 투자하면서 방구석 폐인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게 되었지만요. 근데 이 작품에서 그가 방구석 폐인이었다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죠. 만약에 말입니다. 현실의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애정을 들여 키운 캐릭터가 한순간에 없어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분신 같은 캐릭터가 말이죠.
남들이 날 어떻게 보든, 노력이라는 형태는 비록 다를지언정 캐릭터 키우는데 있어서 감 나와라 뚝딱한다고 세계 1위 캐릭터가 하루아침에 툭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일이죠. 그런 캐릭터가 삭제되어 버렸습니다. 뭥미?!라는 말이 나올만하겠죠. 게임사에 항의해도 '그건 니 복이고' 라고 하니 미치고 졸도할 노릇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충격을 받다 못해 인생(the 자/살)을 포기해버립니다. 잘 읽다가 뜬금없는 전개에 황당하기 그지없더라고요. 뭐, 하기야 28살이나 되어서 기술 하나 없는데 지금부터 사회에 나간다고 변변찮은 일자리를 얻는 건 무리가 있겠죠. 근데 현실에 남겨질 시체는 어떡하라고, 부모님은 언급이 없지만 부모님 생각은 안 해봤나 하는 오만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주인공급이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건 사실 전대미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깨어나 보니 내가 하던 온라인 게임 속이네? 꿈은 이루어진다고 현실에서 그렇게 게임질을 하다가 진짜로 게임 속으로 들어오니 이 얼마나 기쁘겠어요. 근데 세계 1위 캐릭터는 어디 가고 창고로 쓰던 캐릭터네? 일명 서브 캐릭터라고 하죠. 일부 온라인 게임은 캐릭터의 숫자에 따라 창고 용량이 늘어나기도 하는데요. 주인공이 하던 게임도 그랬나 봅니다. 어쨌거나 창고 캐릭터라도 지금부터 키우면 되지라고 긍정적이 된 주인공 '세컨드(네이밍 센스가 괴멸적)'는 이세계에서도 세계 1위를 노리고자 합니다. 여기서 참 소설가가 되자에 연재하는 작품답다 싶을 정도로 스킬 트리와 스테이터스에 목숨을 겁니다. 짜증이 날 정도로 세세하게 표현하는데, 꼭 이래야만 했냐고 오태식이 이 작품에 출연한다면 딱 그런 말을 했지 않을까 싶을 정도랄까요.
사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이세게 전생 치트물이다 보니 노력이라든가 고생이라는 단어는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물론 주인공 한정). 이전 생에서 습득한 게임 지식을 이용해 남들은 모르는 치트로 별 어려움 없이 강해져 가는 이야기죠. 한마디로 식상, 게다가 주인공이 게임폐인에다가 자/살이라는 전대미문을 저질러 주면서 자칫 작품 이미지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기도 한데요.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자 한다면 초반을 잘 넘겨야 합니다. 이 작품의 진짜배기는 중반쯤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이 자기가 저지른 일들에 대한 죄책감과 살아온 인생이 잘못되었다는걸, 게임을 하는 순간은 재미있었을지언정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인생이라고 자조하는 장면은 여느 치트물하고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본론, 얼간이 여기사와 반푼이 고양이 수인 여학생을 영입해서 이들을 훌륭하게 성장시키는 장면도 눈여겨볼만하죠. 성장의 방향을 잘못 잡아 낙오자 인생을 걷고 있던 이 두 여자애들에게 주인공이 가진 지식을 이용해 성장시켜가는 장면들은 참 눈물겹다 할 수 있어요. 특히 고양이 수인 '에코'의 경우엔 마법학교에서 끔찍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죠. 고향 마을에서 기대를 받아 학교에 입학은 했는데 기대와 다르게 마법 실력은 영 신통찮고, 그러면 노력을 해서 인정받으면 되겠다 싶어 누가 봐도 괴롭힘임이 뻔한 일에도 뭐든지 노력하려는 에코의 모습은 정말 애잔하기 그지없죠. 부질없는 노력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을 외면하며 노력을 하고, 그 노력조차 인정받지 못해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원래는 주인공이 해야 될 노력을 에코가 보여주면서 이 작품에 대한 필자의 평가는 급상승하게 되었군요.
맺으며, 처음엔 주인공이 자/살하는 등 뭐 이런 작품이 다 있나 했군요. 거기에 치트로 노력과 고생은 하나도 안 하고 쑥쑥 커가는 거라든지, 이세계 주민들은 이것도 모르는 하등한 종족이라는 뉘앙스 하며(그 예가 얼간이 여기사와 고양이 수인 에코), 어딜 봐도 나무야 미안해라고 밖에 되지 않는 작품이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얼간이 여기사와 고양이 수인 에코가 성장하기 위해 보여주는 노력과 고생(라고해도 주인공이 쓰는 치트와 별반 차이 없지만), 그리고 성장에 있어서 이끌어 주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초반의 나무야 미안해라는 느낌은 쏙 들어가게 되더군요. 주인공도 방구석 폐인치고는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있다는 것에서 여타 작품과 차별을 두고 있다 할 수 있고요. 다만 역시 치트물이라는 것과 그놈의 스킬 트리와 스테이터스 열거는 학을 떼게 만듭니다. 장장 9페이지에 걸쳐 쉬지도 않고 떠드는 건 좀 아니잖아요? 게다가 뭐? 미남? 여자들이 다 돌아봐? 그놈의 외모지상주의는 진심 토하게 만듭니다. 이런 것들만 빼면 괜찮은 작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