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향신료 21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아야쿠라 쥬우 그림,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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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꽤 많이 있으니 주의 하세요.





로렌스와 호로가 '늑대와 향신료'라는 온천장을 만든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온천장이 몰려있는 골짜기에서 이 정도 기간이면 어엿한 중견 사장님 소리도 들을만 하겠건만 여전히 신참 취급인 게 로렌스는 영 못마땅합니다. 마을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선배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굽신 거리는 게 이놈의 텃세는 세계 공통인가 봅니다. 그래도 뭐 예쁜 마누라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도 얻었고, 온천장은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듯하니 거렁뱅이가 지천에 널린 세계에서 이보다 성공한 인생이 또 있을까. 이대로 여생을 마친다 해도 억울하지는 않을 터, 영원을 살아가는 호로와 마지막엔 웃으며 헤어지자고 약속도 했으니 지금의 생활에 불안이야 있을 수 없으리라. 딸내미가 외간 남자(콜)를 따라 세상으로 나가버리기 전까진 말이다. 아빠 몰래 가출을 단행한 딸내미를 목놓아 찾아도 돌아오는 건 울음 섞인 메아리뿐.


매일 식음을 전폐하는 남편을 보다 못해 호로는 제안합니다. 딸내미 찾으러 가볼래?라고요. 호로는 갯과(늑대)답게 젖을 떼고 한번 품을 떠난 새끼는 더 이상 찾지도 않고 관심도 거의 없건만, 역시 순수 인간인 로렌스가 시들어가는 건 두고 볼 수만은 없었죠. 그래서 남방에서 올라온 호로의 동족 '세림(하얀 늑대)'에게 온천장 모든 걸 맡겨두고 길을 떠나기로 합니다. 여기서 참 여러 가지 복선이 나오는데요. 영원을 살아가는 호로가 둘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까지고 여행을 하고, 로렌스가 수명이 다 했을 때 그녀는 그대로 동료들을 찾아 떠나지 않을까. 십수 년 전 동족의 소식을 듣고 절망했던 호로가 다시 동족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면. 딸의 이름으로 예전 동료의 것을 붙여줄 정도로 각별히 여겼는데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 여행이 가지는 의미는 어쩌면...


사실 여행으로 끝을 맺는 건 둘에게 있어서 최고의 이별이 될 것입니다. 나이 먹지 않는 호로는 언제까지고 온천장에 머물 수가 없어요. 지금도 열너댓 살로 밖에 보이지 않는 호로와 다르게 남편인 로렌스는 나날이 늙어가고 있는데 주변에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리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대로 여행을 떠나버리는 결말'이라는 복선을 보여준다는 의미는 이런 엔딩이 작품을 끝내는데 있어서 어쩌면 가장 무난하지 않을까 작가 나름대로의 배려로 다가오죠. 비록 걱정 많은 '세림(하얀 늑대)'의 망상에 불과했지만요. 둘(로렌스와 호로)은 이미 약속한걸요.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삶의 끝에 로렌스가 수명이 다해 먼저 죽는다 해도요. 그래도 남겨질 호로에게 있어서 불안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그녀가 로렌스를 먼저 보내고 영원 같은 시간 속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까.


예전 18권 시놉시스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회상하듯 '그때는 정말 즐거웠지(대충 비슷함)' 이 말이 이제서야 대충 윤곽이 잡힙니다. 이 말 자체가 스포일러였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요. 사람의 기억이란 흐려지고 왜곡되기 마련이니 그렇다면 지금의 행복을 어떻게 미래로 가져가면 좋을까. 첫 페이지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은 글을 써서 미래로 가져가면 어떨까. 그리고 혼자 남았을 때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으며 그때는 즐거웠지 하며 추억할 수 있으리라. 분명 이러면 혼자 남아도 외롭지는 않을 테지. 17권 이후 호로 이야기만 나오면 계속해서 가슴 먹먹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근데 현실적으로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종이와 잉크 값이 장난 아니군요. 좋은 분위기였는데 누가 전직 상인 아닐까 봐 로렌스는 찬물을 끼얹어 버리죠. 하지만 이미 약속했으니까. 웃으며 헤어지자고. 그러니까 그녀가 계속해서 웃을 수 있도록.


결혼도 하고 딸내미도 얻은 아줌마는 여전히 꽃다운 나이를 살고 있습니다. 먹을 것에 일희일비하고, 용돈을 받으면 세상 다 가진 듯 해맑은 웃음을 보여줍니다. 이게 얼마나 귀엽던지요. 글로 되어 있음에도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그려진다는 걸 이걸 두고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묘사가 대단합니다.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서 몸이 굳었는지 불도 못 피워 뻘짓하는 남편을 보며 어이없어 하고, 기생벌을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일면도 보여줍니다. 딸내미가 콜을 따라 세상에 나가 성녀라는 소리를 듣고 급기야 그림(벽화?)으로까지 남겨진다는 것에 조바심을 내며 나도 그림!!이라며 로렌스에게 조르는 모습에서 어디가 현량이란 말인가 싶을 정도로 매우 유쾌하다고 할까요. 종이와 잉크를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고, 일터에서 알게 된 동료들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은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합니다.


맺으며, 다시금 옛날(1~17권)을 보는 듯한 에피소드였습니다. 식상한 게 아니라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는 의미인데요. 여전히 먹보 기질을 버리지 못하는 호로가 세림(하얀 늑대)의 오빠 집에 쳐들어가서 고기 전골을 얻어먹기도 하고, 딸내미 찾아 여행을 하며 이거저거 사달라고 떼쓰는 모습은 그때를 떠올리게 하였군요. 특히 용돈 받았을 때 꼬리로 풍차 돌리기(비유적) 하는 장면은 매우 압권이죠. 그러다 종이와 잉크 사기 위해 저축하는 게 어떻냐는 로렌스의 말에 그렇게 할게라는 보습은 영락없는 어린애를 보는 듯했고요. 슬슬 권태기에 접어들 때도 되었건만 언제까지고 신혼이라는 것처럼 티격태격 해대는 모습은 입가를 흐뭇하게 하는 게 있습니다. 집안의 행복은 마누라 기분에 달렸다는 것마냥 로렌스가 호로의 기분을 맞춰주는 모습은 이 시대의 영락없는 남편들의 자화상 같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비록 세림(하얀 늑대)의 망상으로 끝이 났지만 이번에 어쩌면 둘은 여행을 하며 끝을 맺지 않을까 하는 복선이 나와 버렸습니다. 이것 또한 괜찮은 엔딩이 아닐까 해서 여운이 좀 남았군요. 여행으로 만나 여행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호로는 동료들을 찾아 길을 떠나고. 이번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또한 로렌스가 호로를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모습은 애잔하기만 합니다. 언제까지고 같이 할 수 없다는 슬픔보다 혼자 남겨질 그녀를 위하는 모습은... 글을 쓴다는 의미라는, 지금 보고 느끼고 모든 것을 기록해 미래로 가져간다는 이야기도 꽤나 가슴에 와닿았군요. 여담이지만 둘이 여행을 떠나는데 세림(하얀 늑대)이 내가 개 썰매를 끌듯 둘의 짐마차를 끌까 독백하는 장면은 어이없으면서도 꽤나 웃게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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