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향신료 20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아야쿠라 쥬우 그림,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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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렇게 가냘픈 몸에 들어갈 데가 어디 있다고 허구한 날 술 퍼마시고 고기며 각종 식자재를 먹어대니 로렌스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겠죠. 행상을 할 때부터 입은 고급이어서 꿀에 절인 복숭아라든지 사과라든지에 사족을 못 쓰는 데다 안 사주면 삐지고, 사실 로렌스가 호로와 결혼한 이유가 이런 먹보 호로랑 같이 행상 다녔다간 언젠가 빚을 지게 되고 빚쟁이에 쫓겨 노예로 전락할지 몰라서 그랬을 거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군요(1). 원래 로렌스는 내 가게를 내고 물건을 파는 상인으로써의 길을 가려고 했죠.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그녀의 고향에 갔더랬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들은 온천장을 차리죠. 예쁜 딸도 낳고 온천장도 성공 궤도에 올라가고 성공한 인생은 이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늑대와 향신료'란 늑대는 호로를 뜻하고 향신료는 상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상품이자 돈이 되는 것. 뜻을 이루지 못한 로렌스는 그녀의 고향 근처에 온천장을 차렸습니다. 이름하여 '늑대와 향신료' 얼마나 그가 상인에 대한 미련이 서려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그리고 얼마나 호로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딸내미는 콜을 쫓아 세상으로 나가 버렸고, 온갖 말썽이란 말썽을 다 부리는 말괄량이를 떠나보내 시원해야 될 판이건만 로렌스는 딸이 밥이나 제대로 먹고 있는지 매일이 걱정입니다(사실은 딴 걱정). 호로는 늑대의 화신답게 한번 품을 떠난 새끼는 더 이상 보살피지 않는다는 것처럼 무관심으로 일관 중이군요. 로렌스에게 있어서 서운한 부분이었겠죠. 그래서 매일 호로에게 핀잔을 먹고 있지만 지칠 줄을 몰라요.

 

오늘은 털갈이를 하는 호로를 위해 거금을 들여 빗을 대량으로 구입했습니다. 이게 또 기쁜 호로, 그러나 집안 온통 털을 날려대니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 결국 호로는 감금 당하기에 이르죠. 아직은 늑대라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이 시대에서 늑대가 어슬렁 거린다고 알려지만 온천장은 폭망하거든요. 남방에서 올라와 호로의 심기를 건드렸던 '세림(호로의 동족)'에게도 빗을 선물할까 호로에게 준 빗에서 고르던 그에게 이를 들어내는 그녀, 먹는 것을 억수로 밝히고 술을 달고 사는 데다 질투심은 어찌나 높은지 세림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으르렁대니 로렌스로써는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거기다 게으름뱅이로 일을 도와주는 둥 마는 둥, 얼굴 내비쳤나 싶은데 어느새 없어졌고 찾아보면 침실에서 술을 퍼마시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군요.

 

온천장을 경영하며 손님을 받고, 뒷산에 올라가 밤을 줍고 버섯을 따고 곰을 만나 토닥토닥해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그 속에서 문득문득 서로에게 흐르는 시간이 다르다는 걸 실감하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그래도 손잡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갈려는 모습이 참 애틋하게 합니다. 십수 년이 흘러도 여전히 15세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호로는 이젠 더 이상 대놓고 밖으로 나오질 못합니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허리에 모포를 둘러 늑대의 표식을 지우고 가끔씩 밖으로 나오지만 언제까지 이런 시간이 이어질까. 로렌스는 벌써 40줄에 들어섰는데... 그럼에도 언제까지고 우리들의 시간은 여전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밝은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두 사람이 품고 있는 불안은 조금식 싹을 틔우기 시작하죠.

 

질투의 화신이면서 동시에 외로움의 극치를 안고 살아가는 그녀가 나이를 먹어가는 로렌스를 바라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지금이라는 시간이 꿈은 아닐까. 꿈에서 깨어났을 때 여전히 자신은 보리밭에 매어져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그녀에게 직접 구운 과자를 그녀의 목에 걸치고 있는 주머니에 넣어주며 이 냄새의 끝에 내가 있으니 설령 눈을 떴을 때 보리밭이라고 해도 찾아오라는 그의 말에 그만 울어버리는 그녀. 그의 따뜻한 손이 그리워 놓지 못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그에게서 두려움을 느껴 같이 하길 거부했었던 그녀. 자신 때문에 상인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에게서 아픔을 느꼈던 그녀. 매일 술을 달고 사는 건 어쩌면 그런 아픔을 내비치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서글픈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맺으며, 여전히 장난을 잘치는 타카기양 처럼 둘이 투닥거리면서도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아플 정도로 와닿는 에피소드입니다. 특히 호로가 어느 동굴에서 발견된 미라(시체)를 보며 어쩌면 여기에 있는 건 행상하다 망해버린 로렌스가 아닐까, 지금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대목은 정말 소름 돋을 정도로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그만큼 그녀가 홀로 지내온 시간이 많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겠죠. 찰나의 시간 속에서 만난 애틋한 사랑이 꿈을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있는 그녀를  보며 마지막에 정말 어떤 느낌으로 헤어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군요.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별다른 내용은 없는데 이런 애틋한 마음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여전히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1. 1, 노파심에 쓰지만 무작정 먹어대지는 않고 로렌스의 지갑이 빵꾸나지 않게 자중을 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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