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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했더니 검이었습니다 5 - S Novel+
타나카 유 지음, Llo 그림, 신동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종족의 숙원인 진화를 이루기 위해선 때론 가슴 아픈 이별도 하고, 때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서 이슬이 되어 사라질지언정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우리 흑묘족은 시궁창 밑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작중 분위기가 바뀌어 갑니다. 그동안 스킬과 레벨업에 매진하는 통에 흔한 먼치킨 이세계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사건사고에 휘말려 강적과 싸우면서도 먹는 거라든지 등장인물들과 만담을 하듯 어딘가 가벼운 장면만 연출하였던 거에 비해 이번엔 진짜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고 가슴 아픈 이별도 하는 등 모험이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호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부모와 같이 살던 때부터 흑묘족이 처한 현실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던 프란. 불가촉천민이라는 수인족중에 최하위 지위에서 늘 노예의 삶만을 강요받았던 흑묘족. 진화만 할 수 있다면 이런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종족 비원을 등에 업고 많은 흑묘족이 진화에 나서나... 프란의 부모 역시 진화를 바라며 여행을 하였죠. 그러나 여행 중에 프란을 낳고 얼마 뒤 부모님은 객사, 남겨진 프란은 노예로 붙잡혀 많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반동이 있어서일까, 스승(검이자 주인공)을 만나 무슨 주박처럼 진화라는 현실을 붙잡고자 프란 역시 여행을 하였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울무토' 던전이 있는 마을, 여기서 진화의 단서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되는데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이 작품을 빗대어 보면 딱 그렇습니다. 보통 성장물이나 영웅물에선 흔한 패턴이지만 전생물에서는 흔하지 않은 것이죠. 프란과 스승은 그동안 여행하면서 강적들을 만나 정말로 죽을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의 특징은 소년물과 다르게 그걸 뛰어넘었을 때 강해진다는 클리셰는 이 작품에선 기용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잔챙이 모험가보다야 쑥쑥 자라긴 하는데 파워 인플레가 보통 소년물과 반대로 가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죠. 주인공이 강해지면 적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주인공(여기선 프란)이 뛰어간다는 성장이라면 적들은 날아다니는 격으로 강해져만 가요.
이번 울무토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려지죠. 마을에 들릴 때마다 만나는 길드 마스터가 강하다는 건 이제 식상하고, 던전 마스터를 만나러 갔더니 500년 묵은 흑묘족이 있질 않나. 던전에서 길빵 하려다 프란에게 된통 당해놓고 되레 복수한답시고 약물 도핑 해온 쓰레기 모험가라든지. 여장남자 오카마 '엘자'는 그나마 프란에 꼽혀 사족을 못쓰며 물심양면 지원해준다지만, 물론 언급한 것 중에 적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요. 아무튼 더욱 놀라운 건 프란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은 진화를 이룬 수인족들의 등장은 이전의 가벼운 분위기를 내던지고 새로운 '암울한 세계로'라는 타이틀을 던지는 게 아닐까 했군요. 프란은 원래는 울무토에서 수련을 하며 단서만 찾으려 했는데요.
하지만 운명의 수레바퀴는 프란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갑니다. 진화에 성공한 수인족 족장의 소개로 마치 게임 속 퀘스트 의뢰마냥 찾아간 던전 마스터의 영향으로 프란과 스승은 본격적으로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게 돼요. 흑묘족이 왜 진화에서 도태되었는가. 아직은 복선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다른 수인족은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진화하는 것에 비해 유독 흑묘족에게만 가혹한 조건이 붙은 이유는? 그리고 흑묘족이 노예로 전락하게 된 원인이 밝혀지죠. 그러나 지금의 프란으로써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힘이 없거든요. 아무리 먼치킨 주인공(스승)이 붙어 있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되는 거라는 것마냥 이야기는 상당히 암울하게 흘러갑니다.
힘의 차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먼치킨 주인공을 비웃듯 강적이 참 많이 나와요. 여기서 더욱 차원 높은 어찌할 수 없는 강함을 만났을 때 동물이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리듯 결국 프란의 가슴에 절망이라는 글자가 새겨집니다. 흑묘족을 노예로 전락 시키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받고 있는 수인족의 왕 '수왕'의 등장은 프란으로 하여금 힘의 차이가 무엇인지 똑똑이 알아가죠. 흑묘족의 원수 수왕, 하지만 이야기는 수왕만의 문제가 아니라 흑묘족에게도 죄가 있다는, 그렇기에 신은 공평하게 기회를 주듯이 흑묘족으로 하여금 시련을 돌파해보라는 복선을 던집니다. 시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암담한 미래에 가능성을 걸고 프란은 그걸 뛰어넘을 수 있을까.
맺으며, 역시 진화라는 단서에 근접하다 보니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수왕의 등장과 프란을 노리는 사인(교회 단어로 표현하면 이단자)들의 암약등 이전까진 놀면서 가벼운 장면들이었다면 지금부터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이랄까요. 하지만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처럼 그녀의 착한심성(?)과 귀여운 겉모습에 속아(?) 도와주는 이도 많다는 게 위안이죠, 이번에 등장하는 오카마(여장 남자) 엘자는 자칫 암울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에 빛을 내려줘요. B등급 모험가로 울무토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인 그녀(?)는 프란에 꼽혀 사족을 못 쓰는 모습이 상당히 유쾌합니다.
엘자에게선 혐오라는 단어는 찾을 수가 없었군요. 프란을 괴롭히면 누가 되었든 그게 설사 길드 마스터라고 해도 부X를 떼어 버리겠다고, 물론 클리셰마냥 쓰레기들도 등장하지만 엘자와 더불어 무섭지만 온화한 길드 마스터와 진화에 성공한 옆 종족 할아버지와 던전 마스터 흑묘족 '루미나'를 만나면서 그동안 성격에 있어서 무표정하고 뭘 생각하는지 도통 모르게 했던 프란이 울고 웃고 조금은 감정을 보이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프란을 위해 동행해주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응석 부릴 만도 하겠건만, 마치 그걸 잊어버렸다는 양 행동하는 모습은 참 안타깝게 합니다. 여담으로 프란의 일러스트가 이전에 비해 상당히 진화해서 귀엽게 나왔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