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슬레이어 8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칸나츠키 노보루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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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주인가 축복인가. 혼자 다녀도 무리 없이 해냈던 일들에 언제부터인지 동료가 늘어나 어깨를 부대끼고 한솥밥을 먹고 야영을 하고 고블린을 쓸어버리는 일이 이젠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동료라는 단어는 그에게 있어서 아직 낯설기만 하다. 그럼에도 등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함에 고블린 슬레이어는 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제자리를 맴돌 뿐 뭐하나 구원받은 것은 없고 누나라는 주박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몰려든 동료들은 그의 과거를 굳이 알려 하지 않는다. 딱 하나, 여신관은 그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엿보게 되고 그가 안고 있는 어둠에 슬픈 감정만을 보낼 뿐이다.

 

세상은 그를 고블린 성애자라 매도하지만 그가 안고 있는 슬픔과 분노는 헤아려주지 않는다. 왜, 다들 크고 작던 그러한 일을 겪고 있으니까. 일까? 그래서 검의 처녀가 그에게서 구원받아 서큐버스같이 닥돌하는 상황은 그에게 있어서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녀가 등장하면 고블린도 등장한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그녀의 의뢰로 들어간 물의 도시 지하 수로에서 단순히 고블린만을 퇴치할 줄 알았는데 날벼락을 선사해도 유분수지 같은, 고블린을 멸종 시키기 위해선 무엇이든 하겠다는 양인 검의 처녀,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높은 지위까지 올랐지만 되려 그것이 발목을 잡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아이러니가 그녀에게 있어서일까...

 

수도까지 호위 좀 해주세요. 난데없이 나타나 휴일을 방해해도 유분수지. 그녀가 나타나면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길목에 고블린이 나온답니다? 고블린?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있어서 사랑스러운 미끼를 물지 않을 리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을 터, 수하 신관들을 동원하면 그깟 고블린 따위 아무것도 아님에도 굳이 그(고블린 슬레이어)에게 의뢰를 하는 의도는 무얼까. 그것은 사모하는 남자를 곁에서 보기 위해? 농밀한 숨을 토해내고 허벅지를 비비고 그가 넘겨준 종이 쪼가리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그녀에게서 얀데레의 징조가 엿보인다. 농장 일을 돕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소치기 소녀에게 전하는 고블린 슬레이어, 그걸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검의 처녀...

 

아무튼 수도에 도착했습니다. 또다시 시작되는 여신관의 이야기. 고블린 슬레이어와 마찬가지로 과거 고블린에 의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녀는 아직도 과거의 주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첫 번째 모험에서 쓰러져갔던 동료의 무덤에서 현 상황을 보고하는 여신관, 눈을 돌리고 도망도 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마음과 내버려 둘 수 없는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언젠가 그에게 빛이 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그녀에게서 참으로 기구한 인생을 산다는 느낌을 받게 돼요. 같은 상처를 안고 있기에 모른척할 수 없는, 무섭지만 나아갈 수밖에 없는, 하지만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 두려움이 나아갈려는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 안타까움도 자아냅니다.

 

이야기는 제2막으로 넘어갑니다. 새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늘을 날듯이 모험가를 해보고 싶었던 어느 공주님의 이야기.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살아야 한다는 격언을, 새장을 벗어난 새는 굶어 죽는다는 걸 비웃듯 탈출을 꿈꾸는 공주는 여신관의 장비를 훔쳐 버립니다. 당연하게 이런 이레적인 일은 나쁜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 하지만 처음은 미약해도 끝은 창대 하리처럼 이것이 공주와 여신관에게 있어서 어떻게 해도 뚫을 수 없는 벽이라는 정체를 뚫고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거라고는 지금은 생각 못했겠죠. 스포일러를 싫어하는 분들이 계셔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자세히 못 쓰지만 뭐 결국은 고블린 퇴치라는 아이덴티티가 실행될 뿐입니다.

 

고블린 슬레이어와 같이 다니면서 고블린을 숱하게 쓰러트려도 벗어날 수 없었던 과거라는 주박,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그저 흘러가기만 했던 여신관은 공주라는 존재에게서 벽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얻게 됩니다. 비로써 자신이 해왔던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서 구원받는 이도 있다는 것을 비로써 알아가죠. 이런 점에서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를 연상케 합니다. 서투른 청춘의 방황의 끝에서 무얼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될지 모르는 막막함. 아마도 여신관은 처음으로 과거의 주박에서 벗어나는 1호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맺으며, 무엇에서?이라고 해도 스포일러라서 말씀은 못 드립니다. 아마 2호는 검의 처녀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고블린이 꿈에 나올까 무서워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던 그녀가 여전히 다리가 덜덜 떨리고 오한에 시달리고 무서우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던 후반부 그녀의 행동은 참으로 눈부시다 할 수 있었습니다. 흠... 뭔가 리뷰에 쓸 이야기들을 준비는 많이 했는데 정작 이런 꼴이군요.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짜임새가 좋습니다. 필자의 필력이 한참 모자라서 10%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는데 검의 처녀와 여신관이 과거의 주박에 묶여 괴로워하는 장면 표현은 참으로 구슬프기 짝이 없었군요. 초중반 고블린 슬레이어가 보여주는 다짜고짜 고블린인가?라는 부분은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중하며 쓰다 보니 두리뭉실해졌군요.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9점을 주고 싶습니다. 10점을 주고 싶지만 결국 고블린 퇴치에 있어서 틀에 박힌 내용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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