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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슬레이어 외전 : 이어 원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아다치 신고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불편한 게 등장인물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그런지는 몰라요. 본편 작가 후기에 찾아보면 이유가 나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귀찮으니 패스, 이어 원은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전인데요. 외전이라고 해도 본편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 주인공 고블린 슬에이어(이하 '그'라 지칭)가 누나를 고블린에게 잃고 마을이 쑥대밭이 된 직후부터 그리는 이야기입니다.라고 해도 스승에게 끌려가 5년이라는 수련을 거친 이후니까 엄밀히 따지면 비기닝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봐야겠죠. 여신관을 만나기 전, 용사가 태동하기 전, 그가 모험가가 된 직후인 백자 등급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오로지 고블린만을 잡아 죽이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 쓰라린 과거를 떨쳐내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누나의 그림자에 속박되어 거길 쫓아가는 사람, 그는 본편에서 어딘가 광기 서린 모습을 보여줬었는데 외전에서는 더욱 지독한 광기를 보여줘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전략 따윈 없이 그냥 들이대면서 혹독한 경험을 얻어 가죠. 주변 사람은 이런 그를 기이하게 여기게 되고 초보들은 고블린만을 잡는 그를 외면해버립니다. 조소를 날리면서, 하지만 그는 그런 거에 안중에도 없이 스승에게서 치를 떨 만큼 지독한 교육을 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첫 임무를 무사히 마치게 되죠.
흔하디흔한 몬스터이면서 초보 킬러인 고블린, 마을 근처에 한두 마리 쫓아냈다고 별거 아니라는 듯 조소를 날리는 초보 모험가 태반을 초반에 리타이어 시키는 게 이 몬스터입니다. 그걸 알고 있기에 길드 접수원 누님은 그가 걱정이면서도 살아 돌아오는 것에, 초보 모험가들을 더 이상 잃지 않게 된 것에 안도하며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해요. 만남, 좀 아쉬웠던 게 비기닝이 아니다 보니 만남은 그렇게 극적으로 흘러가진 않습니다. 평범하게 일감을 주는 입장과 그걸 받아 처리하는 모험가, 그러다 어느새 눈으로 좇게 되는 일상이 이어지죠. 그러고 보면 많은 히로인 중에 접수원 누님이 먼저 선빵 치고 나가고 있었군요.
소치기 소녀는 5년 전 운 좋게 마을을 떠나 있어서 화를 면했습니다. 그와 이웃에 살며 소꿉친구 관계였던 그녀, 그날 그와 싸우고 헤어진 게 마지막이 되어 늘 가슴 언저리에 응어리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어느 날 가도를 따라 도시로 가는 그의 등을 보게 되죠. 그녀도 그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그와 연관된 미안함 같은, 그런데 우연히 가도를 지나는 사람들에게서 그를 만날 확률은 대체 몇일까. 눈물을 흘리며 그를 쫓는 그녀, 그리고 그녀는 그가 광기에 휘말려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작중 내내 슬퍼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과거에 연연할 수는 없는 노릇, 그녀는 알을 깨는 아픔을 견디려 합니다.
여신관은 아직 나이가 차지 않았습니다. 아마 운명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했는데요. 그와 처음 만난 건 신관 수습생 시절이었군요. 하지만 그는 기억하지 못하겠죠. 눈만 뜨면 고블린이라고 지껄이는데 한낱 수습 꼬마 소녀를 알아볼 리가, 그런데 어째서 외전 일러스트레이터는 '칸나즈키 노보루(본편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란 말인가요. 왜, 어째서...ㅠㅠ 귀여운 그녀를 왜 목각 인형 초기 폴리곤 게임 캐릭터같이 그려 놓으셨나요. 소치기 소녀도 그렇고 접수원 누님도 그렇고...ㅠㅠ 물론 이러면 실례인 줄은 압니다만. 순수하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견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좌우지간 운명의 여신이 개입이라고 했지만 글쎄요. 다들 한마을에 살고 있으니 싫어도 만나니까 운명이고 좌시고 없겠죠. 그런 와중에 그만이 홀로 시궁창과 진흙탕을 기며 고블린을 잡아대는 건 시리어스 그 자체로 다가옵니다. 사실 여기서도 일러스트 때문에 괴리감이 생겨요. 그가 고블린들을 맞이해 싸우는 장면을 그린 일러스트는 밋밋하기 그지없었군요. 필자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러스트도 그 작품을 빠져들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보거든요. 어지간해서는 일러스트에 좌지우지되지는 않지만 이미 본편을 봐버린 후에 일러스트가 틀려지면 몰입에 방해된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긴 해요. '마탄의 왕과 바나디스'라는 작품은 일러스트레이터가 세 번 바뀌는데 처음보다 세 번째가 월등히 더 좋은 아이러니가 있었죠. 그래서 집중에 더 잘 되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해서 이어 원이 후달리는 건 아닙니다. 장면 표현력에 있어서 오히려 본편보다 나은 점이 많아요. 예로 주인공이 그가 과거를 떠올리며 그걸 힘의 원천으로 삼아 고블린들을 유린하는 장면은 본편에 버금가는 떨림과 광기를 느낄 수가 있어요. 자신을 돌보지 않고 고블린에게 패배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피를 토하며 오로지 싸움에만 열중하는 모습은 지옥에서 돌아온 망자처럼 처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부터 이러니까 본편하고 뭐가 다른가 하는 의문점이 떠올라요. 고블린을 때려잡고 처음엔 삽질 좀 했지만 다음부터는 전략을 짜는 등 본편과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여주죠. 철 등급일 때나 은 등급일 때나 하는 짓을 똑같다 보니 이럴 거면 뭐 하러 외전으로 만들었나 싶어요. 본편에서 짬짬이 과거씬으로 넣어도 될 것을, 거기다 벌써부터 '그래, 그런가' 같은 단편적인 대사 밖에 안 하고 누군가가 자기를 걱정해주면 거기에 또 반응해주고, 살아서 돌아와 주고, 가려운데 긁어주니 자연스레 히로인들 호감도 올라가고, 외전은 그리 길지 않은 선에서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래도 감정 부분에서는 많이 와닿는 게 있습니다. 그가 과거를 회상하며 힘의 원천으로 삼아 가는 부분이나 소치기 소녀가 5년 전 그날부터 가슴속에 담아온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과거에 얽매여 지금을 돌아보지 않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 짖는 모습은 애틋하게 하죠. 그래서 그가 돌아와 주길 바라며 있을 곳을 마련해주고 돌봐주는 모습에서 또 아련하게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를 괄시하고 없는 사람 취급했던 동료 모험가들도 그의 진정성을 느끼고 지금은 안부 정도는 알아봐 주는 모습에서 사람의 정이란 역시 물보다 진하다는 걸 알게 해주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