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일 목요일


센트럴 파크, 아니 새재 파크에서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5시다. 그 동네에선 달리기들을 하더만, 나는 밤새 산을 탔는지 무릎이 좀 아프다. 아니, 나 같은 건각(健脚). 맨손 마사지를 하고 멘소래담을 발랐다. 발도 좀 부어있다. 무릎만 마사지했더니 심통이 났나 보다. 살살 어루만져 달래줬다. 앱을 켜고 괴산 버스 터미널까지 거리를 살펴보니 76km에 도보로 21시간 2분 걸린다고 나온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조령 제3관문을 보고 수안보까지만 걷고 버스를 타야 할 것 같다. 살짝 아픈 무릎과 심통 난 발에겐 다행이다. 어제 산 간식거리로 아침을 먹고(, 아침다운 아침이여, 언제나 내게 찾아올 것이냐?) 세수를 한 뒤 제반 아침 의식 행사를 모두 마쳤다. 무릎과 발에게 힘내라고 봉지 커피도 한 잔 마셨다. 힘이 불끈! 파크 현관 앞에 서니, 65분이었다. , 제천을 향하야 출~~! 숙소는 드림 모텔로 정했다. 가성비 짱, 친절 짱이란다.


원흉 아닌 원흉, 스토리 모텔을 지난다. 그런데 어제와 달리, 건물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폐업을 결정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모르긴 해도 코로나19 여파가 아닐까 싶다.)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네 본다. “언젠간 호시절이 오겠죠. 너무 낙심 말고 기다려 보세요!” 부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磨崖二佛竝坐像)’이 보인다. 두 분의 부처님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 한 분은 필시 석가모니불일 터이고, 또 한 분은 누구실까? 고려 때 조성되었다는데, 불교 왕국 시절의 작품치곤, 미감이 형편없다. 서산에 살기에 나도 모르게 서산마애삼존불의 그 온화한 미소와 우아한 자태를 기준 삼아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 번 높아진 눈높이는 내리기가 쉽지 않다. 마애불은 귀족보다 서민과 가까운 조상(彫像)이다. 저 마애불도 그럴 터. 어떤 간절한 바램을 가지고 돌을 깎았을까? 그리고 그 바램은 이뤄졌을까? 부디, 이뤄졌기를! 아미타파~. 발걸음을 옮기다 다시 한번 뒤돌아봤는데, 무뚝뚝한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계신다. 아이고, 살가운 말씀 좀 한마디 해주시지. 서산마애삼존불님은 갈 때마다 살갑게 말씀해주시는데. 그러나, 무뚝뚝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말로 빚어지는 인간사 비극이 얼마나 많던가! 그래도 여전히 좀 서운하다. 길 가는 나그넨데,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시면 어디가 덧나시나. 괜스레 앙탈을 부려본다.



아니, 저 산 벼락에 점점이 박혀있는 것은 무엇이냐! 돌도 아니요, 나무도 아니요, 사람이었다! 무슨 공사를 하기에 저토록 위험하게 일을 하는 것인지? 안전장치야 했겠지만,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더구나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겐 더더욱 위험해 보인다. 짐작컨대, 낙석 방지 시설을 점검 보완하는 것 같다. 평소 무심하게 봐왔던 낙석 방지 시설이 저런 위험 속에서 만들어진 거구나! 생명을 건 작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부디 안전하게 작업들 마치시기를! 아들아이가 복무하는 JSA에서는 생명 수당이라는 것을 받는다. 부대를 방문했을 때 아들아이가 제 엄마에게 PX에서 화장품을 사주려고 하기에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했더니 생명 수당 받아서 괜찮다고 한 적이 있다. 느낌이 참 거시기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는 아들아이의 선물에 고마워하면서도 연신 거시기한 마음을 토로했다. “아이고, 이거 참, 아들내미 생명 수당으로 화장품을 사다니.” 저분들도 생명 수당을 따로 받으실까? 받으셨으면 좋겠다!



조령 제3관문으로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무릎과 발이 아우성을 쳐 살짝 망설여진다. 앱으로 살펴보니 9.1km45분 걸린다고 나온다. 왕복이니 2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냥 지나칠까? 그런데 그냥 가면 너무 서운할 것 같다. 왠지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 아우성을 싹 무시하고 관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산길 중간중간에 새재를 노래한 한시들을 예쁘장한 목판에 새겨 세워놓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있나! 하나씩 소리 내 읽어 보았다(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인적이 거의 없어 미친놈 소릴 들을 염려는 없었다). 그런데 시 한 수가 유독 마음에 와닿는다.


鳥嶺山路險 조령 산길 험한데

之子欲何之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天寒爲客日 추운 날씨 나그네 신세

月滿望鄕時 둥근 달 아래 고향을 그리네


추운 날씨 험한 산마루에 선 나그네의 처량한 심사가 절절히 느껴진다. 처량한 심사란, 개인사를 배경으로 보면 떠돌이 신세에서 오는 비애감일 테고, 시대사를 배경으로 보면, 힘든 정치 상황에 서 있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일 터이다. 아무려나, 읽을수록 처량함이 덧보태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난삼아 글자만 두어 자 바꿔 화답시를 지어봤다.


鳥嶺山路險 조령 산길 험한데

之子欲何之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天熱爲客日 더운 날씨 나그네 신세

日中望梅時 한낮 태양 아래 매실을 그리네


저 이는 떠돌이 신세라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나는 더워서 목마를 지경이라 매실을 그리워했다(매실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여 갈증이 해소된다. 망매해갈(望梅解渴). 조조가 전시 위급상황에서 발휘한 기지라고 전한다). 정영방(한시 작자, 1577-1650), 죄송합니다. 고귀한 님의 정서를 가지고 저급한 장난질 쳐서. 그나저나 예쁘장한 한시 목판 내용엔 띄어쓰기와 번역이 잘못돼 있다(뭐가 잘못돼 있는지는 사진을 보시며 각자들 판단해 보시기를!). 그리고 시의 제목도 달아놓지 않았다. 살짝, 아니 많이 아쉽다. 제작자님들, 설치물을 보통은 대강 보지만 저처럼 유심히 보는 사람도 있어요. 좀 더 세심한 제작 부탁드려요~.



드디어 역사적인 조령 제3관문 앞에 섰다. 태양을 보며 찍고 또 등지고 찍어보니, 관문에 대한 느낌이 상반되게 느껴진다. 역사적 사실과도 일치되는 느낌. 만약 신립 장군이 탄금대로 군사를 옮기지 않고 여기서 왜군을 방어했다면 어땠을까? 왜군도 당연히 여기서 조선군이 방어하리라 생각했고 힘든 전투일 것이라 생각했다는데, 너무도 쉽게 뚫린 관문에 그들도 의아했을 것이다. 여기서 신립 장군이 치열하게 방어전을 펼쳤다면, 후세 사가들이 말하는 대로, 선조의 의주 몽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후의 임란 전개는. 조령 관문을 보며 지도자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통상 국가에 분단국가에 4개 강국에 둘러싸인 반도 국가인 우리에게 지도자의 판단은 얼마나 중요한가. 해외에만 나갔다 오면 호갱이 돼 돌아오는 굥의 모습을 볼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게 어디 나만의 심정일까? 무거운 마음을 안고 하산 한다.



길가에 소박한 민가 한 채가 보인다. 넉넉해 보이진 않지만, 집 전체를 깔끔하게 가꿔 놓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상적으로 그렸던 전원의 삶이 그대로 구현된 듯한 느낌의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수염 허연 도인풍의 노인이 아무 말 없이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찰칵.



월악산 휴게소라는 데가 보인다. 휴게소를 보니 갑자기 점심 생각이 난다. 시계를 보니 점심 시간에 가깝다. 그런데 휴게소라는 게 좀 걸린다. 정신없이 어수선한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엣다,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뭐라도 좀 사 먹고 가자. 밥 먹을 장소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머뭇거리던 발걸음을 돌려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별천지다! 어제 봤던 진남 휴게소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혹시 진남 휴게소를 운영하는 양반이 여기도 운영하는 건가? 메뉴를 보다 보니 간고등어 백반이 눈에 띈다. 경상도에서 못 먹은 간고등어를 여기서 한 번 먹어보자. 가격이 약간 세다. 만 이천 원. 도보 여행하며 이렇게 비싸게 먹어도 되는겨. 잠은 어쩔 수 없으니 그렇다 쳐도 먹는 것은 좀 싸게 먹어야지. 만 원 이상 되는 건 좀 곤란혀. 아니, 뭐여? 평생 일하고 모처럼만에 긴 여행 나왔는데 그깟 만 이천 원이 아까워서 망설이는 겨. 너무 자신에게 박하구먼. 두 놈이 또 다툰다. 결과는, 뒷놈이 이겼다. 여기도 식혜가 있다. 다행히 자제해서 먹으라는 문구는 없었다. 오만한 자세로 과감하게 3잔을 들이켰다. 주문한 것을 가져가라고 할 줄 알았는데, 가져다준다. 그것도 젊고 예쁜 아가씨가. 오매, 좋은 거. 하여간 이 자가. 정신 차려! 아가씨에게 물어봤다. 혹시 진남 휴게소 사장님이 여기도 운영하냐고. 내부 시설이 같은 걸 보니 그럴 것 같다며. 아가씨가 방긋 웃으면서 답했다. “아녜요, 달라요. 그때(휴게소 지을 당시) 이런 인테리어가 유행이어서 그래요.” 그랬구나. 땀과 피곤으로 절어 있어서 그런가, 평소 화려한 시설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모처럼 눈 호강을 시켜주는 화사한 인테리어의 휴게소가 고맙게까지 느껴진다(간고등어 백반도 맛있었다). 나는 확실히 선비 체질은 아닌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서 그런지 약간 노곤하다. 발걸음이 느려진다. 수안보에 들어섰다. 신혼여행지로 왔던 곳이다. 넘들은 해외여행, 하다못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우리는 수안보와 충주호 설악산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이모가 해주신 반찬도 싸가지고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궁상을 피웠는지 모르겠다. 처가 택클을 걸었으면 절대 안 했을 텐데, 당시는 처의 눈에 콩깍지가 씌어져 내 말을 무슨 하느님 비서실장 말처럼 따랐다. 신혼여행에 그것도 피 뜨거운 젊은 남녀가 여행을 가는데 침실이 중요하지 그깟 화려한 경치가 무슨 소용이 있냐, 라고 강변도 해보지만 역시 궁상은 궁상이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조카가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도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가는 걸 보고, 처음에는 혀를 찼지만, 나중엔 그려, 잘했다하고 인정해 줬다(속으로). 그런데 재미난 건 처가 여태까지 그 궁상맞은 신혼여행에 대해 한마디도 불평을 안 한다는 것이다. 신혼여행 중 내가 짜증 낸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흉봐도. 이래서 천생연분인가? 아니다. 속에 품고 있으면서 언젠가 복수하기 위해 날을 갈고 있는지도 모른다. 궁상맞은 신혼여행에 대해 조금이라도 후회하는 빈틈을 보여선 절대 안 된다! 으흠!


한때 명성을 날렸던 온천 휴양지 수안보. 지금은 밥상머리에 앉은 파리 날리는 형국이다. 입구에 들어설 때 수안보 초등학교를 봤는데, 학교 건물 규모가 꽤 커 보였지만 정작 학생 수는 100명이 될까 말까 하단다(버스 승강장에서 어느 노인께 들은 말이다). 또 지방 소멸 인구 소멸의 현장을 본다. , 마음 아픈 얘기는 그만~.


수안보에서 축지법(버스 타는 거야 말로 축지법이 아닐까?)을 사용하야 충주를 거쳐 제천에 뚝딱 도착했다. , 뚝딱은 아니다. 수안보에서 충주까지 40분 정도 소요됐고, 충주에서 제천까지는 1시간 가량 소요됐다. 중간에 터미널에서 기다린 시간까지 합하면 근 3시간 버스를 탔다.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서 그런가 간간 졸았다. 제천에서는 버스 터미널까지 가지 않고 중도에 내렸다. 걸으면서 아버지의 체취를 맡아보고 싶었기 때문. 아버지는 왜 제천에 자주 오셨던 것일까? 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는 드림 모텔을 향해 걸으면서 제천의 공기 중에 섞여 있을 아버지의 체취를 맡아본다.



아버지는 한의사이셨는데(돌팔이 아니다. 정식 한의사이셨다) 이상하게 어머니께 살림할 비용을 내놓지 않으셨다(살림은 어머니가 바느질로 유지하셨다). 그리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출타하셔서 월요일 아침 녘에 돌아오셨다. 그때 어디 갔다 오셨냐고 여쭈면 때로는 조치원 때로는 이곳 제천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그러나 머리가 조금 굵어질 무렵 그 말씀은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의 가방엔 늘 마권(馬券)이 들어 있었는데, 조치원과 제천에는 경마장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조치원이나 제천에 아주 안 들르신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이곳에 있는 건재 약국의 달력을 가져오신 때도 있었기 때문. 아버지는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당연히 어머니와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어머니께서 일 년간 쓰신 일기장이 있는데, 매 페이지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넘쳐난다. 언제였을까, 여성에 대한 아버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여자란 외투와 같은 존재라고 하셨다. 인격적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필품 정도로 보셨던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의 힘듦(5남매 키우랴, 살림하랴) 정도는 안중에 없으셨던 것 아닐까? 그러면,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나? 그렇지는 않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희한한 것은,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이상하게 (아버지께) 못 해준 것만 생각난다고 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1년 동안 아버지 영전에 상식(上食)을 올렸다. 내 감정도 그렇고 어머니 감정도 그렇고 이성적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러나, 실제가 그런 걸 어쩌랴. 그러니 지금도 공기 중에 섞여 있을 아버지의 체취를 맡아 본다고 제천 시내를 걷고 있는 것 아닌가?


아름다운 충북이라 그런가, 제천 시내는 멀끔했다. 5시가 좀 못 되어 숙소로 점찍었던 드림 모텔에 도착했다. 평시엔 35천 원, 금요일과 토요일엔 4만 원이라고 써놓았다. 가격이 마음에 든다. 객실 점검을 마치고 내려오던 주인과 마주쳤다. 친절한 인상의 남주인이다. 혼자 여행 다니시냐면서, 예약하신 분이냐고 묻는다. 아닌데, 혹시 방이했더니, 있단다. 방에 들어갔는데, 규모는 작지만 깔끔하다. 그런데, 엄청난 크기의 TV가 벽에 걸려있다. 방 규모가 작다 보니 더 크게 보였다. 과장되게 말해 영화관 스크린만 했다. 샤워를 하고 제반 저녁 의식 행사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워 TV를 켰다. 그런데 화면이 너무 커서 외려 보기가 불편하다. TV와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기 때문. 채널을 여기저기 눌러보는데 역시 볼만한 게 없다. 영화도 뭐 나오기는 하는데 액션 종류만 나온다. 애고, 저거 보고 나면 꿈속에서 쌈박질만 할텐데, 그러면 내일 힘든디. 그래도 쉽사리 TV를 끄지 못하고 여기저기 누르다 결국엔 꺼버렸다. 그래, 정명론(正名論)을 한번 실천해보자. ‘드림 모텔에 들어왔으니 꿈이나 꾸지, . 혹시 알어, 꿈속에서 아버지를 뵐지


내일은 평창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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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일 수요일


달콤한 여왕님의 품속에서 잠이 깬 것은 아침 5. 다시 여왕님의 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위선적인 청정 선비의 자세로 돌아와 과감히 품속을 뿌리치고 빠져나왔다. 너무 과감히 빠져나오는 바람에 넘어질 뻔했다. 앱을 켜고 연풍면까지의 거리를 눌러보니 37km에 도보로 10시간 6분이 걸린다고 나온다. 숙박지는 어디로? 온천 모텔과 스토리 모텔이 있다. 오잉? 면 단위에서는 있기 어려운 모텔인데? 문경 새재가 유명 관광지라 있는 건가? 어쨌거나 잘됐다! (잘 되기는! ‘신기루모텔이었다). 청정 선비의 자세로 돌아왔지만, 달콤한 품속 여운을 잊을 수 없어, 달콤한 식사로 여운을 달랬다. 카스텔라와 초코 우유. 날씨를 잠깐 확인하니 주말까지 황사가 심하단다. 마스크를 쓰고 걸어야 하나? 여타 아침 제 의식을 마치고 모텔 밖에 서니, 6. , 연풍을 향하야 출발~!


문경시 불정길을 지난다. 도로 아래 재미있는 이름이 눈에 띈다. 도토리 방앗간. 우리들 식품이란 이름이 덧붙어 있는 걸 보니, 가공식품 상호 같다. 도토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듯. 도토리란 이름도 방앗간이란 이름도 정겹다. 도토리 세 알 가지고 소풍을 간다, 다람쥐야 다람쥐야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랴어릴 적 불렀던 노래와 익숙한 속담 때문일 터. 작명을 잘한 것 같다. 그나저나 예전엔 도토리묵이 귀하고, 귀해서 그런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는데, 요즘에 먹는 도토리묵은 왜 그리 밍밍한 것인지? 너무 쉽게 먹을 수 있게 되서 그런 건가, 내 입맛이 변한 건가?



새재란 선입견 때문인지 마주치는 산들의 위용이 그간 지나오며 본 산들의 위용에 비해 한결 더 위엄있게 다가온다. 사진 한 장 찰칵!



오미자 테마 터널이란 안내판이 눈에 띈다. 모처럼만에 관광을 한 번? 입장료를 내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시에서 운영하는 관광소가 아니고 사설 업체에서 운영하는 관광소이다. 옛 철도 터널을 오미자 테마 터널로 바꿔 놓은 것인데, 감성이 무뎌서 그런가, 왜 오미자 테마 터널이라고 했는지 알 수가 없다. , 있구나! 음료를 파는데 음료의 주재료가 오미자였다! 손님이 나 혼자였는데, 이른 시각부터 판매대를 지키는 분들이 안쓰러워 팩 음료 2개를 샀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휙 한 번 둘러보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11시가 돼간다. '진남 휴게소'라는데가 눈에 띈다. 휴게소 음식은 별론데그래도 누룽지보다는 나을 터. 딱 좋은 점심 타임이라 망설이지 않고 휴게소 문을 열었다. , 이게 웬 별천지냐? 휴게소, 하면 그려지는 그렇고 그런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화려한 장식이 번뜩이는 도심 한복판에서나 볼 수 있는 시설들이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내가 혹시 잘못 들어왔나? 문을 열고 나와 다시 간판을 보니 분명히 진남 휴게소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식당과 쇼핑을 겸한 휴게소인데, 장식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하다. 그나저나 내겐 점심만이 중요할 뿐. 식당 쪽에 가서 메뉴를 보니, 돌솥밥이 눈에 띈다. 1만 원. 무난하다.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판매 데스크 저쪽에 식혜를 비치해 놓았다. 오메, 내가 좋아하는 거. 직접 담갔다는 내용을 강조하는 문구가 붙어있고, 많이는 드시지 말란다. 이건, 맛있다는 반증. 어차피 손님도 없는데(내가 들어섰을 때 한 분이 식사하고 있었고, 뒤이어 연세 든 노부부가 들어왔다)살살 눈치를 봐가며 3잔을 먹었다. 자랑과 당부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점심다운 점심을 먹고(밥도 맛있었다) 휴게소를 나왔다. 나오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감동스러워서!



씨름 연습장으로 변한 초등학교 폐교를 지난다. 수많은 아이들을 지켜보고 그 애들이 들려주는 온갖 사연을 들었을 커다란 느티나무가 묵묵히 서 있다. 느티나무 잎 사이로 비치는 하얀 햇살이, 하얗기에 더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제 폐교의 아픈 사연은 그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황사가 심하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지날 때만 해도 몰랐는데 노변의 하얀 배꽃들 색이 바래 보일 정도다. 마스크를 써야 하나? 한동안 쓰고 걷다가 답답해서 벗어 버렸다. 코털도 있고 허파 꽈리도 있는데, 걸러지겄지! 야잇, 중국 놈들아, 대국 위세만 부리지 말고, 아름다운 덕으로 감화 좀 시켜봐라! 도대체 니덜도 힘들다매 왜 이리 황사 문제를 해결 못 하는 거냐! 무슨 무슨 타령들 하더만서도 내 보기엔 니덜 의지 문제 같다. 니들 황사 문제 해결하면 내 애정 보너스 점수 1점 더 준다! 알아들었지?



문경 새재 입구를 알리는 거대한 관문이 보인다. 글씨를 보니 박 대통령 글씨 같다(확인은 안 했지만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예전엔 저분 글씨를 여기저기서 봤는데, 지금은 드물게 본다. 90년대 만화 연수를 받으러 서울 남산에 간 적이 있는데, 흉물스럽게 가려진 박 대통령의 글씨를 본 적이 있다. 이 또한 세상만사 새옹지마로구나. 한때는 무슨 보석인 양 취급되던 것이 이제는 똥통의 휴지 조각 같은 대접을 받으니. 그나저나 남도 그렇고 북도 그렇고 그 위대한 지도자들의 글씨 때문에 금수강산은 만신창이 아닌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통일된다면 골칫거리들일 것 같다. 병영사회를 구현했던 지도자들의 기념물이라고 그대로 놔두려나? 잡스러운 생각을 하며 관문을 쳐다보다, 발길을 돌렸다. 나는 이화령 쪽으로 간다.



자전거 도로가 있어 걷기에 편하다. 그런데 관리가 안 된 듯 자전거 휴게소가 중간중간 있는데,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데크가 썩어있어 잘못 디뎠다간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졸속 행정 과시 행정의 슬픈 장면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무리한 4대강 사업에 아편 주사 격으로 만든 자전거 도로. 밀어붙였던 자 물러나고 감방 가니, 내가 언제 저 사업에 참여했냐고 시치미 뚝 떼는 지방 행정의 낯 두꺼운 민낯을 본다. 허기사 억지로 참여했으니 뭔 의욕이 있어 사후 관리를 허겄어?



모닝 차 한 대가 앞에 서 있다. 예쁘장한 아가씨가(?) 내리더니 사진을 찍는다. 음심이 발동해 수작을 부렸다. “찍어 드릴까요?” 셀카를 찍는 것 보다 누가 찍어주는 게 더 온전한 사진이 되기에 친절을 가장하여 음심을 발동한 것이다. “아녜요!” 샐쭉 대답하고 바로 차를 타고 이동한다. 오매, 창피한 거~. 부끄부끄. 그런데 얼마를 올라갔을까, 아까 만났던 그 아가씨가 또 사진을 찍는다. 그냥 지나치는 수밖에. 이 아가씨, 뒤에서 사진 찍기를 마쳤는지 다시 차를 타고 내 앞을 지나간다. 이러기를 3번 더했다. 그런데 의외로 내 걸음이 빨랐는지 이 아가씨가 늦장을 부렸는지 아가씨가 차를 세운 지 얼마 안 돼 바로 내가 따라잡았다. 원치 않은 스토커가 된 셈. 애라, 기왕에 버린 몸, 용기를 내어 다시 말을 걸었다. “무슨 연구를 하시나요?” 셀카를 찍는 게 아니고 도로 주변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녜요. 도로 관리 때문에 찍는 거예요. 걸음이 무척 빠르시네요?” 한다. “.” “어디 가세요?” “연풍 갑니다~” “.” 헤어지고 다시 걷는데, 차는 오던 방향 반대로 내려갔다. 문경의 공무원이었던 것 같다. 연풍은 충북 지역. 이화령 이전(以前) 지역의 도로 형편을 알기 위해 잠시 현장 출장을 나왔던 모양이다. 아까 오면서 봤던 그 형편 무인지경의 자전거 도로 휴게소 사진도 찍었을까? 부디 찍었기를! 조금 더 수작을 부릴 수 있었는데살짝 아쉬운 마음을 담고 다시 발길을 옮긴다. 하여간, 이 자가정신 차렷!


이화령 통과 터널이 보인다. 웅장하다. 터널을 지나기 전 올라 온 경북(문경) 쪽 사진을 찍고, 터널을 지나 저 아래 보이는 충북(괴산) 쪽 사진을 찍었다. 경북 쪽은 황사가 덜한데 충북 쪽은 황사가 몹시 심했다. 뭐여, 황사, 너도 지역 차별하는 겨! 그럼, 못 써!



이화령 휴게소에서 비싼 자판기 캔 음료(보통 1천 원인데, 15백 원 이었다. 큰 액수엔 둔감하고 작은 액수에만 민감하다. 찌질해서 어쩔 수 없다)를 한 잔 들이켜고 이화령 하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전거 도로가 잘 돼 있어 걷기 편했다. 난생처음으로 명박씨에게 감사를 표했다. 굴곡진 이화령 고개를 마음 편하게 내려와 드디어 연풍에 도착, 면내에 잠시 들려 간식거리를 사고, 목표했던 숙소로 향했다. 온천 모텔과 스토리 모텔 두 개가 있었는데, 왠지 스토리 모텔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보편적으로 구식 이름을 쓰는 곳보다 알 수 없는 야리꾸리한 외래 이름을 쓰는 곳이 시설이 더 낫기 때문이다. , 이 국어를 사랑하지 않는 자여, 그대 이름은 ㅇㅇ이로다!



연풍면 소재지에서 물경(!) 50분을 걸어 도착한 스토리 모텔!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모텔 앞에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있고 건축 자재 같은 것도 널브러져 있다. 폐업!! 온천 모텔은 바로 옆에 있었는데, 이도 폐업!! 어쩌자고 세밀하게 살피지 않고. 땅을 치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무거운 발걸음을 되돌려 다시 연풍면 소재지로 향했다. 그런데, 나 같은 어벙한 자가 또 있었다. 아까 이곳으로 올 때 자전거 여행자인 듯한 사람이 지나갔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내가 한참 이곳으로 가고 있을 때 다시 나를 지나쳐 연풍면 쪽으로 갔던 것. 필경 나 같은 낭패를 봤을 것이다. 사람, , 같은 여행자끼리 친절 좀 베풀어 주지. 시간상으로 봤을 때 내가 숙소를 찾으러 가는 것으로 보였을 텐데. 애라, ×, 가다가 빵구나 나라! 애맨 사람에게 괜스레 화풀이를 했다.


연풍면 소재지엔 숙소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새재 파크. 후기 평이 안 좋아 스토리를 찾아갔던 건데 이젠 별수 없이 고개를 납작 숙이고 기어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4만 원을 달란다. 현금 운운하며 트라이를 하려다, 그만두고 얼른 값을 치른 뒤 방으로 들어갔다. 5만 원 아니 6만 원을 달래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지 않은가. , 나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ㅇㅇ이로다! ‘파크라는 말이 무색하다. 심하게 말하면 여인숙 수준이다. 그러나 역시 있을 건 다 있다. 샤워를 한 뒤 이하 모든 저녁 제반 의식을 치른 뒤 방바닥에 벌렁 누웠다. 아무래도 코털과 허파 꽈리 기능이 시원찮은가 보다. 샤워를 했음에도 뭔가 매캐한 느낌이 속에서 올라온다. 그놈의 황사. 예의 또 부질없이 TV를 켜고 이 채널 저 채널을 돌리다 그냥 꺼버렸다. 야들아, 제발 좀 재미난 것 좀 올리고 보라고 강요하렴! 옆 방에서 약간 다투는 듯한 소리가 난다. 나처럼 어벙한 서방 때문에 형편 무인지경의 모텔에 들어와 화가 난 마누라가 투정을 부리고 덩달아 짜증 난 남정네가 뭐라고 하는 듯싶다. 화해들 하셔, 그래도 댁들은 둘이 왔잖여, 나는 혼자라고~! 잘 들 주무시소. 불을 끄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내일은 제천까지 간다. 제천, 아버지가 생전에 주말마다 출타했다 돌아오셨을 때, 어디 갔다 오셨냐고 여쭈면 가장 많이 언급하셨던 고을! 과연 제천엔 무엇이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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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일 화요일


530, 눈을 떴다. 앱을 켜고 문경 시내까지 거리 검색을 했다. 48km에 도보로 12시간 30분 걸린다고 나온다. 오늘은 어느 모텔서 잘까? 이제는 눈만 뜨면 잘 곳부터 찾는다. 숙박지 앱 여기 어때를 켜고 문경 시내 일원의 모텔을 검색해 봤다. 저가 순으로 훑어가며 댓글 평을 읽는데, ‘퀸 모텔이 눈에 띈다. 시설은 약간 노후됐지만 가성비가 좋고 무엇보다 주인이 친절하단다. 그래, 여기로! 저녁 6시쯤 숙박지에 들어가려면 빨리 준비해야겠다. 어제 샀던 호박죽으로 아침을 먹고 간단히 세수를 한 뒤 제반 아침 의식을 끝내고 민박집을 나섰다. 630. , 여왕님 품을 향하야 출~!


날이 좀 어둑하다. 기분도 덩달아 살짝 눅눅해진다. 역시 사람은 자연의 일부분. 과수 전문 인력을 댄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그런데 작업 현장 관리 필수라는 말이 덧붙어 있다. 인력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못한다는) 불평이 많아 덧붙인 모양이다. 저기서 대는 인력은 십중팔구 외국인 근로자들일 것 같다. 이제 농촌에서 이분들 없이는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느 모텔에선가 지방 TV 방송을 보는데 농번기를 대비해 베트남과 인력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은 게 아니라, 됐다고 말해야겠다. 우리도 70년대 외국으로 그 나라에서 하기 힘들어하는 일을 할 근로자를 보낸 적이 있는데, 과문해서 그런지, 농업 관련 근로자를 보냈다고 들어본 적은 없다. 그것은 그 나라가 생명과 직결된 먹을거리에서만큼은 자주성이 필요하다고 여겨 인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 나라의 농촌 인력 외국인 의존 심화는 화근(禍根)을 갖고 있는 것 아닐까? 당장에야 언 발에 오줌 눗기로 인력 공급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결국은 농촌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 같다. 당국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플래카드를 보며, 대안도 딱히 없으면서, 머리 무거운 질문만을 던지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식량 주권만은 지켜야 하는데....



산모롱이 도로를 지나가는데 친근감 가는 문구의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할배요, 할매요 산불 내면 큰일납니데이~.” 봄철 논둑 밭둑 태우다 산불로 옮겨붙는 경우가 많아 경각심을 주려 붙였을 터이다. 경직된 문구보다 한결 호소력 짙어 보인다. 봄철 논둑 밭둑 태우기는 아무 효과 없다는 것을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농사짓는 분들, 특히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그게 다 마이동풍인 것 같다. 본격 농사 전 논둑 밭둑에 불을 한 번 싸질러야 개운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이 연례행사가 근절되질 않는다. 강력하게 처벌한다는 문구까지 써놨지만, 근절되긴 어렵지 않을까 싶다. 고정관념이란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운 것인가!



어둑한 풍경들을 계속 만난다. 저런 풍경의 그림을 어디서 봤을까? 컨스터블의 작품이었나? 먹물 빛 구름을 배경으로 검녹의 둔중한 산이 침묵에 잠겨있는데 그 아래 붉은빛 감도는 벚꽃 길이 실처럼 둘려있다. 얼마 가니, 이번엔 좀 밝은색인데, 그래도 여전히 색조는 어둡다. 옅은 먹물 빛 구름을 배경으로 검녹색 산 위에 연녹색을 살짝 터치하고 밝은 회색의 바위를 조금 드러냈다. 오늘은 하느님이 아무래도 살짝 우울하신 것 같다. 하느님, 기운 내세요! 화이팅!



상주 시내로 들어서는데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이 머물렀다는 객사(客舍) 상산관(商山館)이 보인다. 본래 있던 자리에서 이리저리 옮기다 이곳에 정착됐다는데, 꽤 웅장해 보인다. 더구나 어둑한 하늘을 배경으로 보니 더더욱 웅장해 보인다. 시간이 되면 한번 들려보고 싶은데, 마음이 바쁘다. 어서 빨리 여왕님의 품속으로!



배가 고프다. 아침을 죽으로 먹었으니, 당연한 일. 시계를 보니 1230분이다. 배낭에서 누룽지를 꺼내 씹으며 간다. 좀 부드러우면 좋겠는데, 딱딱해 얼마간 입에 옹물었다가 씹는다. 처음엔 멋모르고 우적우적 씹다가 입천장에 상처를 냈다. 요령이 생긴 것. 경험만큼 확실한 앎은 없다.


경천대(擎天臺)라 써 놓은 우람한 안내석이 보인다. 하늘을 떠받치는 누대라높은 곳에 있다는 뜻인가, 꼿꼿한 모습이란 뜻인가, 의미가 분명치 않다. 한문은 조사가 발달하지 않은 글이라 종종 의미 전달이 불분명하다. 게다가 압축력 또한 강해 의미 전달을 더욱 어렵게 한다. 자신의 무식은 탓하지 않은 채 의미가 불분명한 누대 이름을 한문 탓으로 돌려본다. (나는 우람한 안내석 밑에 쓴 새 상주 로타리 클럽이란 명칭만 보고 여기가 무슨 골프장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 관광지였다. 로타리 클럽을 골프 클럽 쯤으로 여긴 무지이니 '경천'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문경 가는 입간판이 보이는데 농암가는 노정도 안내해 놓았다. 농암, 아들아이가 다닌 대안학교 샨티가 있던 곳이다(지금은 서산으로 옮겨왔다). 낯익은 이름이라 친근감이 든다. 아들아이는 풀무 농업학교에 합격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이곳을 택했다. 아내와 나는 속으로 많이 아쉬웠지만 아들아이의 의견을 따랐다. 아내는 그래도 종종 샨티 학교에 들렀지만 나는 아들아이가 그곳을 졸업할 때까지 몇 번 안 가봤다. 아이가 미워서가 아니고 단지 너무 멀어서. 4시간이 걸리는 그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초주검이 됐다. 아들 아이한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들아이가 샨티 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대안 학교들이 호응을 받았는데 지금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대안 학교에서 시도했던 내용들이 공교육에 많이 들어왔고, 입시도 전만큼 경직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다 보니 대안 학교 학생 수가 많이 줄고 그만큼 학교 운영이 어려워져 문 닫는 학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정확한 내용은 아니다). 외국의 유명한 대안 학교, 서머힐 같은 학교가 우리나라에도 건재했으면 좋겠는데.

우리 내외가 아들아이를 대안 학교에 보낸 것은 학교 현장에서 보고 겪은 지긋지긋한 입시 교육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고교 시절이 큰 동기가 됐다. 당시 학교 시절을 흐뭇하게 추억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내겐 정말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푸르른 봄날 같은 시기를 온통 입시 공부라는 회색빛으로 물들인 시절을 아들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공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선생으로 제 자식을 대안 학교에 보낸 것에 부끄러움이 있었지만 정말 자식에게는 끔찍한 입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딸아이가 고교 1년을 다니고 자퇴한다고 했을 때 두말 않고 허락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들아이가 샨티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행복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너무 부모 의견만 강권해 아들 아이의 진로를 방해한 것인지도 모른다(강권했다고 했지만 윽박지른 건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 조성했다). 하여 나중에 원망을 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정말 아들아이에게는 끔찍한 입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끔찍이란 말을 벌써 두 번이나 사용했다. 내게 고교 시절은 그만큼 끔찍했다). 아들아, 후일 애비를 원망할지라도 애비의 이 절실했던 마음만큼은 이해해 주렴(아들은 지금 스물넷인데 군대에 가 있고 대학 1학년 휴학 중이다).



문경 시내에 들어섰다. 앱을 켜고 퀸 모텔을 찾았다. 방향을 확인하고 걷는데, 이상한 느낌이 든다. 왠지 목표 장소와 멀어지는 것 같은 것. 앱을 켜고 다시 확인해 보니, 아뿔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앱을 켠 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내가 있는 위치 방향과 가야 할 방향으로 일치시킨 뒤 걸어야 하는데, 대충 경로만 확인하고 걸었더니 이런 사단이 생긴 것이다. 하여간 이놈의 방향 감각은. 허벌나게 걸어 겨우겨우 퀸 모텔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7시였다. 모텔은 댓글에서 본 것과 달리 그렇게 노후돼 보이지 않았다. ()에서 인정하는 모범 숙박업소라는 작은 패가 붙어 있었다. 주인(여주인이다)도 친절했다. 가격은 4만 원. 방에 들어가니 리모델링을 한 듯 내부가 화이트 톤으로 깔끔하게 단장돼 있었다. 풀 먹인 듯한 약간 빳빳하고 하얀 침대 보를 대하니 후줄근한 차림으로 걸터앉기가 미안했다.


배가 고프다. 저녁을 한 끼 사 먹자. 모처럼 용기를 내어 모텔을 나와 식사할 곳을 찾는데, 모텔이 외곽 지대에 있어서 그런지 마땅히 먹을 만한 데가 없다. 순대국밥집이 눈에 띄어 들어갔는데, 여주인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내부를 보니 오픈하지 얼마 안 돼 보였다. 두 종류의 순대국밥이 있는데, 그냥 순대국밥을 시켰다(순대만 넣은 것을 달라고 했어야는데, 큰 실수였다). 잠시 뒤 나온 순대국밥. 오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잡다한 것들만 가득하네. 순대는 3개 밖에 없었다. 나는 순대국밥에 들깨를 많이 쳐서 먹는데 이 집엔 들깨 통이 없었다. 들깨 없냐고 물으니, 국밥에 넣었는데 부족하냐며 쥐꼬리만큼 퍼다 준다. 한 숟가락 뜨는데 조미료 냄새가 역하다. 끝까지 먹을 수 있을까 싶다. 분기탱천 악전고투하며 최선을 다해 먹었지만 끝내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내 생전에 이렇게 맛없는 순대국밥은 처음이다. 8천 원이었는데, 정말 본전 생각이 간절했다. 숙소로 돌아오며 파리바케트에서 내일 아침으로 먹을 카스텔라와 초코 우유를 샀다.


숙소로 돌아와 가족 단톡방에 소식을 전하고, 샤워 이하 제반 저녁 의식 행사를 마쳤다. 뽀송한 침대에 들어가니 더없이 기분이 좋다. ~ 이런 것이 여왕님의 품이구나. 느긋하게 베개에 기대 리모컨을 누르고 TV를 보는데, 오늘은 볼 만하게 나온다. 장사 천재 백종원. 이 양반을 모로코에 데려다 놓고 생면부지의 땅에서 장사를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궁금한데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성사시킨다. 장사에 천재적 감각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저 양반 이젠 아내(소유진)보다 더 유명하더구먼. 최근엔 예산 시장 살리기도 하는 것 같던데. 훌륭하고 멋져 보이는데, 다만 소심하고 걱정 많은 내겐(더구나 현미식과 채식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저 양반의 음식이 건강한 건지에 대해선 자꾸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맛있고 잘 팔리는 음식=건강한 음식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 이 사람아, 걱정 접어! 자네 건강이나 잘 챙겨! 그려, 맞어! TV를 끄고 불도 끄고 여왕님 품속으로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내일은 괴산 연풍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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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일 월요일


긴 겨울잠을 자고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530분이다. 잠시 복식 호흡을 하고 맨손 세수를 한 뒤 몸을 일으켰다. 욕실에 들어가 간단히 세수하고, 아침을 먹었다. , 아침다운 아침을 좀 먹고 싶다! 이런저런 아침 의식 행사를 마친 뒤 모텔 현관 앞에 서니, 610분이다. 안내 프런트엔 문이 닫혀 있고, 열쇠를 놓고 가라는 바구니만이 입이 째지게 하품을 하고 있다. 꿈 속에서 계시를 받지 못한 ‘32’의 의미를 끝내 알 수 없게 됐다.


모텔 밖을 나오니, 주변에 아침 일자리를 구하는 듯한 분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괜스레 미안하다. 누구는 X 빠지게 일하러 갈 준비를 하는데, 누구는 이른 아침부터 여행 배낭 메고 놀러 가다니. 죄송합니다~. 앱을 켜고 상주 모동까지 길찾기를 누르니 29km에 도보로 7시간 42분 걸린다고 나온다. 오메, 상주 모동에서 점심다운 점심을 먹을 수 있겄네. 뭘 먹을까? ‘옛날 손짜장이란 데가 추천으로 나온다. 줄 서서 먹기까지 한단다. 그려? 그럼, 여기서 점심을! , ‘옛날 손짜장을 향하야, 출발! 이제는 본능만 남은 것 같다. 눈떠서 잘 때까지 그려지는 큰 그림은 오로지 식() (宿) ()밖에 없다. 혹시, 싱숭생숭의 어원이 여기서? 이 사람이 아침부터 같잖은 소리는.


읍내를 통과해 가는데 영동고등학교와 영동 학사가 눈에 띈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인적이 없다. 문득 학교를 나오기 전 출근 풍경이 그려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벽잠이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사 중에서 제일 일찍 출근했다. 간단히 교무실 청소를 한 뒤, 아침 교통 지도를 했다. 안전 업무를 맡고 있어 마땅히 할 일이었지만 업무분장엔 없는 일이었다. 으레 등교 겸 교통 지도는 학생부에서 하는 것으로 돼 있어, 교통 지도는 안전 업무 분장에 빠져 있었다. 안 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고 시간도 여유 있어 자원했다. 처음엔 많은 사람이 오가는 데서 교통 지도를 하는 것이 수줍음 많은 성격에 다소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작은 깃발 하나로 자동차의 흐름을 조절하고 학생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는게 즐거웠던 것. 그런데 이런 속내를 모르는 다른 이들은 자꾸 하지 말라고 말렸다. 늙다리가 아침부터 교통지도를 하니 젊은이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아침 시간이 철철 넘치는 데다 재미까지 있으니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게다가 교장 선생님이 과도할 정도로 칭찬과 격려를 해주셔서 더더구나 그만둘 수 없었다(교장 선생님의 고차원적인 용인술이었다). 어허, 이게 벌써 추억거리가 됐네! ‘영동학사가 요즘 드물게 보는 한자로 표기돼 있다. 永同學舍. 영원히 함께 할 벗들과 공부하는 집. 한글로 표기했으면 알지 못했을 의미가 분명하게 와닿는다. 평생 함께할 좋은 친구들과 다투지 말고 잘 지내길!



웅장한 스케일의 와인 카페를 지난다. 돈 좀 있는 이들을 꾀기 위한 카페 같다. 그런데 내겐 카페 건물보다 입구의 돌담에 더 관심이 간다. 비록 사각의 철망 안에 가둬놓은 돌담이지만 담쟁이넝쿨까지 어울려 있어 정겨운 느낌이 드는 것. 돌담, 한때는 가난의 상징이어서 모두 허물어 버리고 잘살아 보세의 상징인 브로크 담으로 대치되었던 담. 이제는 그 반대가 되어 돈 있는 사람이나 쌓을 수 있는 담.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더니, 돌담에서도 그것을 느끼게 된다.



노근리 평화공원 이정표가 보인다. 아니, 노근리가 여기 있었어? 하여간, 무지하기는! 꽤 큰 규모로 노근리 사건을 기념하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잠시 돌아본 뒤, 사건 현장인 노근리 쌍굴다리를 가봤다.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총탄 자국들에 표시를 해놨다. 피난민과 현지 주민들을 이동시키던 미군이 그들 속에 북한군이 있는 것 같다며 갑자기 돌변하여 비행기로 폭격하고 기관총을 난사하여 거의 몰살시켰던 현장이다(당시 이동하던 사람이 500~600여 명 이었다고 한다). 아비규환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현장! 전쟁 중이라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면 무리한 판단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살아남은 자의 힘겨운 노력으로 후일 미 대통령(클린턴)의 사과까지 받아냈다고 하지만, 어디 마음속에 남은 한이 다 풀릴 수 있으랴! 보면 볼수록 착잡한 마음이 드는 현장이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비극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발길을 옮긴다. 황간면을 지난다. 번듯한 중학교가 중앙지에 있다. 그런데 왠지 이상하다. 멀끔하기만 할 뿐 괴괴한 느낌이 드는 것. 혹시? 역시나였다. 교문에 폐교된 학교이니 출입을 삼가 달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또다시 지방 소멸 인구 소멸의 현장을 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다니던 중학교도 폐교가 되어 인근의 다른 중학교와 통폐합돼 신축 건물로 이사했다. 언젠가 한 번 차를 타고 모교 곁을 지나는데 황폐해진 건물을 보니, 서글픔을 넘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정녕 지방 소멸 인구 소멸을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어디까지가 임계점일까? 임계점에 다다르면 극적으로 좋은 변화가 생길까? 아니면 그냥 소멸로 끝날까? 무거운 고민이(감당할 고민도 아닌데) 머리를 짓누른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가 어디냐? 앱을 켜고 확인할까 하다 귀찮아 그만뒀다. 제법 날씨가 뜨겁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바로 전에 지나갔던 다마스가 갑자기 멈추더니 슬금슬금 후진을 해온다. 내게 오더니, 창문을 내린다. 검게 탄 얼굴의 여천사(!)가 말을 건냈다. “태워 드릴까요?” 더운 날씨에 배낭을 짊어지고 터벅터벅 도로를 걸어가는 게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억양이 약간 어색하다. 얼굴을 보니 동남아시아 쪽에서 오신 분 같다. 시집을 오신 게 틀림없을 듯. 얼굴에 선함이 가득하다. 감사하지만, 도보 여행의 정도를 어길 순 없는 법.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X자를 표한 뒤 그냥 가시라고 두 손을 앞으로 밀어 보였다. 여천사도 웃음을 지으며 창문을 닫고 출발했다. 부디부디 행복하시고 잘 사시기를!


길가에 폐가가 보인다. 그런데 전남에서 보았던 폐가에 비해 서글픈 느낌이 덜 든다. 전남에서 본 폐가는 슬레이트 지붕의 다 쓰러져 가는 폐가였는데, 여기는 번듯한 양옥집 폐가인 것. 경북과 전남의 경제 격차를 폐가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문득 정치인이라면 한 번쯤은 제 발로 전국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체감적으로 나라 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것. 그러면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 그러나 저들이 과연 나라 사정을 몰라서 그럴까? 알지만. 하여간 조그마한 나라에 지방간 격차가 심하다는 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보쇼들, 제발 잘 좀 하쇼!



115. 드디어 목표했던 상주 모동의 옛날 손짜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점심 타임이 지났나 보다. 손님이 하나도 없다. ", 왔능교?"하는 눈빛의 여주인이, 눈빛과 다르게, 반갑게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어우, 짜장면집 주인답지 않게 날씬한 몸매에 예쁘장한 얼굴이다. 이 자가, 하여간에. 정신 차려! 짜장면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여주인이 한마디 한다. “저기 오뎅과 만두 있어요. 갖다 드세요.” ? 이런 서비스는 처음이다. ‘물은 셀프라고 써 붙였는데, 대신에 오뎅과 만두를 서비스하는 모양이다. 마구 먹고 싶지만 짜장면 먹을 것을 생각해 오뎅 2개와 만두 2개만 가져왔다. 조금 있으니 할머니들이 들어와 간짜장을 주문하는데, 왠지 주문이 익숙해 보인다. 오뎅과 만두도 자연스럽게 갖다 드시는 걸 보니 동네분들인 것 같다. 드디어, 짜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옛날 손짜장은 아니다. 간판만 그리 내건 듯싶다. ‘옛날 손짜장이든 지금 기계짜장이든 뭐가 대수랴! 모처럼 만에 점심다운 점심을 먹게 됐는데. 그야말로,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다. 나오면서(당연히 현금 결제했다. 6천 원) 자판기 커피도 한잔했다. 갑자기 힘이 불끈 솟는다. 배도 부르고 힘도 불끈 솟건만, 어디다 솟는 힘을 쓸데가 없다. 아니, 있구나! 아까 오다 보니 백화산 5km’란 안내판을 봤는데, 거기를 한번 가봐야겠다. 혹시 알아, 거기서 옹녀라도 만날지?



어차피 모동에서 묵기로 했으니, 숙소를 일단 정하고 배낭을 내려놓은 뒤 백화산에 가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모동 초입에서 부산 민박이란 데를 봤는데. 부산 민박 앞에 도착해 얼쩡거리는데 웬 연륜 깊은 미루나무 같은 남자분이 건물 안에서 나오더니 먼저 묻는다. “, 숙박하시게? 국토 순례하시나?” 나도 모르게 ""라고 답하고 도보 여행 중이라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다. 가격이 얼마냐니, 3만 원 달란다. 더더구나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다. 2층으로 올라갔는데(1층은 음식점이다) 안내 프런트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25천원에서 3만 원으로 올렸으니 양해 해달라는 문구를 걸어 놓았다. 방으로 안내하는데, 시설이 단촐하다. 그렇지만 이부자리가 깨끗하고 방에서 별다른 냄새도 나지 않는다. 길가 반대편 방이라 길가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TV도 있다. 방 밖에 샤워실도 있고. 내게 딱 맞는 숙소이다. 다만 방바닥 장판에 전기 열선 자국이 눈에 거슬리는데, 그거야 뭐(방에는 보일라 시설을 안 하고 전기온돌 필름을 깔아 그런 자국이 났던 것이다). 짐을 풀고 나와 백화산으로 향했다.


모처럼 만에 배낭을 떼놓고 걸으니, 걸음이 날아갈 듯하다. 날아갈 듯하다 못해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백화산 입구로 들어가는데, 사찰이 있다. 스님 한 분이 얼굴을 왼통 가리고 작은 포크레인을 운전하며 조경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낯선 모습이 신기해 실례를 무릅쓰고 잠깐 구경을 하는데 스님이 조작을 멈추고 내려와 뭘 살피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아이고, 죄송해라! 덩달아 엉겁결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답한 뒤 자리를 떴다. 절을 지나 조금 올라가는데 콘크리트로 징검다리를 해놓은 것이 보였다. 산에서 내려오는 수량이 꽤 많다. 반나절 걸어 성질이 날 대로 난 발가락들을 위로할 겸 잠시 징검다리에 앉아 발을 씻었다. 물이 차가워서 그런가, 성질 난 발가락들이 금세 얌전해지더니 제발 옷(양말) 좀 입혀달라고 아우성친다. 하여간 이놈의 변덕하곤. 백화산은 태안의 백화산과 이름이 같다. 한자도 같다. 들어올 때 입구에서 봤던 백화산 송이 있는데, 엄청나게 자랑을 해놨다(괄호 안 한자 병기가 너무 많아 읽기 불편했지만, 인내심을 갖고 읽었다. 괄호 안 한자 병기는 이제 무의미한 어문 현실이 됐다. 한자를 모르는데 병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냥 오해 오류를 무릅쓰고 한글 전용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 어지간하면 제 고장 자랑은 당연한 일. 약간의 뻥을 빼고 두 산을 비교해 보니 우열을 가르기 힘들었는데 이곳에 부가점을 줄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물! 산으로 올라가며 보니 작은 폭포도 있어 산의 운치를 더해줬다.



산 갈림길에 섰다. 정상인 한성봉으로 직통하는 길이 있고, 돌아가는 길이 있다. 당연히 직통이지! 그런데 중간마다 이정표가 분명하질 않다. 이거 맞게 가고 있는 건가? 겨우내 사람들이 별반 다니지 않았는지, 발자취도 그리 선명하지 않다. 꽤 올라와 아까 갈림길에서 확인한 한성봉까지의 거리에 거의 도달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정표도 안보이고 갈수록 길도 좁아졌다. 게다가 낙엽까지 푹푹 밟혀 더더욱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불현듯 불안감이 밀려온다. 이러다가 옹녀를 만나는 게 아니라 웅녀를 만나 남은 생을 산에서 사는 거 아닌가? 다행히 얼마 안 가 안내판 하나가 보였다. 하산 길 안내판. 불현듯 정상은 포기하고 빨리 하산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하산 길이 지금 올라온 길과 다른 방향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빨리 하산을! 열심히 하산을 하는데, 애가 타서 그런지 목이 말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떠먹었다. 다시 하산. 그런데, 이게 웬일! 하산 길도 이상하다. 처음엔 그럭저럭 사람 다닌 자취가 있었는데 내려오다 보니 갑자기 그 자취가 희미해졌다.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러나 어쨌거나 아래로 아래로만 내려가면 되니. 이런저런 개고생을 하며 산에서 내려오는데 쓰레기 봉지가 보였다. 세상에, 쓰레기 봉지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쓰레기 봉지가 있다는 건 사람이 다녔다는 자취이니, 지금 가는 길이 하산로인 것은 분명한 것이다! 마침내 올라올 때 걸었던 산 초입의 길이 보이는데, 보일 뿐, 거기로 가는 길은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중간의 내[]를 허겁지겁 무지막지하게 건너 등산로에 들어섰다. 안심! 옹녀를 탐하는 색심으로 등산을 했기에 산신령의 노여움을 사 개고생을 한 것이 틀림없다. 다시는 색심을 품고 산에 오르지 말아야겠다. 아까 지나왔던 사찰을 지나며 부처님께도 용서를 구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숙소까지 돌아와 시계를 보니, 6시다. 저녁을 사 먹을 까 하다 시간이나 메뉴가 마땅치 않을 것 같아 하나로 마트에서 끼닛거리를 사 해결하기로 했다. 하나로 마트로 가기 전에 동네에 혹 볼만한 것이 있나 싶어 한 바퀴 돌아봤다. 다 그렇고 그런 시설뿐인데,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백화 사진관. 이층집인데 낡은 흙벽의 가건물 형태다. 일본식 가옥이라 해야 하나? ‘백화 사진관이란 상호는 이층 벽체에 스프레이로 써놓았는데, 폐업한지 오래된 듯싶다. 흙벽의 가건물 형태지만 이층집이면 당시에는 꽤 잘나가던 집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제는 시대의 물살에 이리 할퀴고 저리 할켜 초라한 몰골로 서 있는 것일 터. 시대의 흔적으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어 그대로 둔 것일까, 아니면 돈 문제가 걸려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방(異方)의 나그네에겐 색다른 눈요깃거리를 제공해 주는 건물이다. 사진을 아니 찍을 수 없다. 찰칵!



하나로 마트에 들려 좋아하는 호박죽을 두 개 사고 간식의 왕 누룽지도 샀다. 매실 물도(매실 물, 이것 여행 중 최고의 음료이다. 물보다 낫다). 숙소에 들어와 호박죽으로 저녁을 먹고 샤워(민박이라 무시하지 마시라. 온수, 나온다)를 한 뒤 빨래까지 해 널고 방바닥에 누웠다. 차갑다. 전기온돌 필름을 가동하니 금방 따뜻해진다. 예의 또 부질없이 TV 리모컨을 눌렀다. 그런데, 안 나온다! 주인 분께 말씀드리려다 그만뒀다. 음심을 자제케 하니 이 또한 좋지 않을쏜가! 가족 단톡방에 소식을 전하고, 그냥 빈둥대다(이거, 쉽지 않다!) 이부자리를 깔고 일찍 잠을 청했다. 내일은 문경 시내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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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 일요일


이리스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무지개는 역시 허망한 것이로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5시 반이다. 10분 정도 복식 호흡을 하고 맨손 세수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아침을 먹고, 샤워를 했다. 여타 제반 의식을 치르고 잠시 침대 끝머리에 앉아 있는데, 불현듯 봉지 커피가 먹고 싶어진다. 어제 남겨 온 탕수육을 먹었기에 속이 약간 느끼해서 그런 것 같다. 갑자기 맹맹이 콧구멍 같은 주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든다. 아니, 그 봉지 커피 2(일반적으로 2개를 놓는다) 값이 얼마라고 그걸 구비 안 해 놓고.


630, 모텔 현관에 섰다. 맹콧 주인은 없고 부인인 듯한 황개(황소 개구리) 인상의 아주머니가 서성이고 있다. “일찍 나가시네요?” 인상과 달리 말씨는 상냥하다. “, 갈 길이 바빠서요.” 하면서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프런트 한쪽에 정수기와 봉지 커피가 눈에 띄었다. 먹고 갈까? 살짝 갈등이 생긴다. 마음을 접었다.


앱을 켜고 무주에서 영동역까지 길찾기를 누르니, 29km에 도보로 7시간 28분 걸린다고 나온다. 적당한 거리이다. 그렇다면, 머루 와인 동굴을 한 번 찾아가 볼까? 무주에서 와인 동굴까지 길찾기를 누르니, 7.3km에 도보로 80분 걸린다고 나온다. 멀지 않은 거리이다. 그런데 개장 시간이 10시이다. 8시나 9시 개장이면 한 번 가보겠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다음에! 그럼, 영동역을 향하야, 출발~!


날씨가 더없이 청명하다. 고려 때 시인 정지상은 청명한 하늘을 유리에 비유했는데[天色淨琉璃], 그이가 본 하늘이 바로 저런 하늘 아니었을까? (여기 유리는 지금 우리가 접하는 하얀 색의 유리가 아니고, 비취색의 유리이다.) 연신 청명한 하늘에 눈과 마음을 빼앗긴 채 걷는다. 간밤에 만나지 못한 이리스에 대한 아쉬움을 하느님께서 달래주시나 보다



무주를 벗어나는 걸 알려주는 표상이 서 있다. 그런데, 웬 해태상? 그러고 보니 지난 번 작천면에서 본 표상도 해태상이었는데, 혹시? 맞았다! ‘해태 제과에서 제공한 표상이었다. 그런데 회사명에 검은색을 덧칠해 놓았다. 무슨 사연인고? 공적인 장소를 알리는 곳에 사적인 회사명이 들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가린 것일까? 분명한 건 저 해태상은 지자체에서 세운 것이 아니라 해태 제과에서 기증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대기업에서 기증하니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 이름을 가린 것 같다. 아예 상()까지 들어내면 좋겠는데, 그건 좀 부담스럽고. 혼자, 멋대로 상상해 본다.



충북 입성을 알리는 입간판을 만난다. 감회가 좀 남다르다. ‘당신, 이제 전남과 전북을 지나 충북에 들어섰소. 축하하오!’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감사합니다! 입간판 아래,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데 적어도 내게는 그러기 어려운, 구호에 눈길이 간다. “함께 하는 도민 일등 경제 충북.” '함께 하는'은 괜찮은데, '일등 경제'는 눈에 거슬린다. 무릇 구호란 그렇지 못한 현실을 그런 현실로 바꾸기 위해 내거는 법. 일등 경제 충북이란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충북, 꼭 일등을 해야만 되겄어? 그냥 지금도 좋은 것 같은데. 입간판 상단엔 저 거창한 구호의 1/3 정도 크기 글씨로 아름다운 충북으로 어서 오세요라고 써놓았는데, 차라리 이 글씨로만 입간판을 해놨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저 거창한 구호는 기존 어떤 구호 위에 덧붙인 티가 역력하다. 쭈글거리는 것. 영환 씨가 충북도지사가 된 후 새로 내건 구호인 것 같다(영환 씨라고 하는 것에 반감 갖지 마시라. 영환 씨는 항렬 돌림자 사용상 내게 아들뻘이다). 영환씨, 시인이기도 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구호는 영 아니올씨다네? 시인다운 아름다운 구호로 바꾸던가, 아니면 아예 쓰지 말던가 하시면 안될까?



별 쓰잘데기 없는 훈수를 두며 걷는데, 하늘을 보니 진짜 너무너무 맑고 푸르다. 연암은 드넓은 평원을 보며 울기 좋은 장소[號哭場]라고 말했다는데, 철학도 표현력도 없는 나는 저 맑디맑은 푸른 하늘을 보니 그저 이 말밖에 안 나온다. ~, 미치겄네!



하늘만 맑고 푸른게 아니다. 물도 맑고 푸르다. ‘봉황 호수라는 곳을 지나는데 맑고 푸른 하늘이 그대로 물 위로 내려온 듯하다. 주변의 연푸른 신록 우거진 산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보여준다. 풍경화는 역시 자연이 그린 게 최고다!



포도나무 과수원을 지난다. , 그러고 보니 영동은 포도로 유명한 곳이잖아? 가지치기를 한 건지 밑둥을 잘라낸 건지 절단된 포도나무를 쌓아놓은 것들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이게 예술작품이다. 무슨 추상화 한 폭을 보는듯하다. , , ‘아름다운 충북이라고 하더니 농부님들이 다 예술가인가 보네. 대단들 허십니다(진심). 재배하는 포도나무들 위에 모두 비닐 차단막을 씌워 놓았다. 이런 건 처음 보았다. 일조량을 조절해 포도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 설치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비닐 차단막도 예술적으로 보인다. , .



학산면내를 통과한다. 길 한쪽에 눈길을 사로잡는 문구가 보인다. 팥빙수! 오매, 먹고 싶다. 아녀, 가격이 비쌀텐데, 그렇게 사치스런 음식을 먹으면 여행 취지에 어긋나. 아니 비싸봤자 얼마나 비싸다고 그깟 빙수 하나를 못 사 먹고 그랴. 자신을 위해 그 정도 쓰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두 녀석이 서로 다툰다. 승부는? 뒷 녀석이 이겼다!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가게에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좀 못 됐다. 그래, 이걸로 점심을 대체하자. 팥빙수도 열량이 적지 않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다. 주인에게 팥빙수를 달라니, 작은 걸로 드릴까요, 큰 걸로 드릴까요, 한다. 점심 대용이니 큰 걸로 해야 할 터. 큰 걸로 주세요, 하니 주인이 살짝 놀란 기색을 보인다. 얼마냐니, 만 이천 원이란다(작은 것은 칠천 원). 작은 카페인데, 손님이 없다. 주인이(여주인이다) 팥빙수를 내오며 빙수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한다. 그러면서 너스레를 떤다. “제가 제 입으로 맛있다고 하기는 그렇고, 한 번 드셔 보세요.” 이런, 선입견을 심어 주시네? 선입견을 심어 주는데 어이 반박을 하랴. 두어 입 먹어보고, 일단 맛있네요라고 화답을 해줬다. (그런데 혓바닥이 둔감하고 비교할 만큼 특별한 빙수를 먹어본 적도 없어, 게다가 살짝 배도 고프고 목마른 상태라, 진짜 맛있게 먹었다.) 한 참 먹고 있는데, 여주인이 다가온다. 좀 특별해 보인 손님인데다 다른 손님도 없어 말 상대를 해주고 싶은가 보다. 얼굴을 보니, 내 연배나 그보다 한 두살 많아 보인다. 대화하기 좋은 상대이다. “어디 가세요?” 를 시작으로 이것저것 서로 말을 섞는데, 귀에 와닿는 말을 한다. 자기 남편도 명예퇴직을 했다는 것. 전직 경찰인데 몇 년 남기지 않고 그것도 자식 혼사를 목전에 두고 명예퇴직을 했단다. 말리셨냐고 했더니, 이미 마음이 떠난 것 같아 말리지 않았단다. 지금은 뭘 하시냐니, 복숭아 농사를 짓는데 두 해는 죽을 쒔다가 지금은 제자리를 잡았단다. 남편이 지금 하고있는 일에 매우 만족해한다고 했다. 사장님은 원래부터 카페를 하셨냐고 물으니 마사지 샵을 하다가 업종을 바꿨단다. 으흠, 그래서 이렇게 사교성이 좋은 거구나. 다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팥빙수 그릇 바닥이 보였다. 자아, 얘기는 이제 그만~. 가게 문을 나섰다. , 팥빙수 값은 현금으로 결제했다.



또 하늘을 본다. 맑다! 푸르다! 미치겠닷! 한참을 가는데 배꽃들이 화사하다. 포도도 많이 생산하지만 배도 많이 생산하나 보다. 영동읍내로 들어선다. 사람들이 붐빈다. 오매, 반가운 거! 길가 좌판에 할머니들이 나물을 놓고 팔고 있다. 생각 같아선 다 사드리고 싶다.



시계를 보니, 310분이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왔다. 맑고 푸른 하늘과 물에 마음을 빼앗겨 지체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도 후회스럽지 않다! 언제 이런 안복(眼福)을 누릴 수 있으랴! 그나저나 어디 가기도 그렇고, 일찍 숙소에 들어가 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표했던 영동역(특별한 이유가 있어 이곳을 목표 지점으로 삼은 건 아니다. 숙박 시설이 많을 것 같아 정한 것뿐)에 거의 다 왔는데, 특별한 이름의 모텔이 눈에 띈다. 모텔 32. 호기심을 자아낸다. 무슨 뜻일까? 앳다, 저기로 들어가보자!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투숙이 가능하다. 방을 달라며, 얼마냐고 물으니, 4만 원이란다. 일요일 가격치곤 싼 것 같다(나중에 알게 됐는데, 모텔의 일요일 숙박 가격은 평일 가격과 같다. 금요일 토요일만 특별 요금을 받는다). 방으로 가는데 이제 갓 세팅을 마친 듯 객실마다 문이 열려있다. 문을 닫고 들어와 침대에 털썩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하늘과 물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런가, 그렇게 많이 걸은 것도 아닌데 피곤하다. 일단, 씻고 보자!


샤워를 하고 제반 저녁 의식을 치렀다. 저녁을 사먹으러 나갈까 하다가 포기하고 그냥 간식거리로 저녁을 때웠다. 이상하게 모텔 안에 들어오면 나가기가 싫다. 전에 아파트 살 때도 그랬는데, 아파트 형태의 폐쇄 공간은 사람 마음도 닫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 사는 곳은 문만 열만 바로 나가 땅을 밟을 수 있기에 여간해선 방에만 있기가 어렵다. 꼭 밖에 나가게 된다. 공간과 심리는 상관 관계가 많은 것 같다. 부질없이 TV를 켰다. 예의 시답잖은 프로들이 서로 자기를 봐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야들아, 좀 볼 만한 걸 내걸고 봐 달라고 허야지! 한바탕 혼을 내고 아우성을 등진 채 화면을 꺼버렸다. 갑자기 쥐 죽은 듯한 적막이 흐른다. 이따금 들리는 기차 지나가는 소리 뿐. 다시 곰의 후손이 되어 겨울 잠을 자기로 했다. 내일은 상주 모동까지 간다. 그나저나 ‘32’는 무슨 뜻일까? 꿈속에서 계시를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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