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일 월요일


긴 겨울잠을 자고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530분이다. 잠시 복식 호흡을 하고 맨손 세수를 한 뒤 몸을 일으켰다. 욕실에 들어가 간단히 세수하고, 아침을 먹었다. , 아침다운 아침을 좀 먹고 싶다! 이런저런 아침 의식 행사를 마친 뒤 모텔 현관 앞에 서니, 610분이다. 안내 프런트엔 문이 닫혀 있고, 열쇠를 놓고 가라는 바구니만이 입이 째지게 하품을 하고 있다. 꿈 속에서 계시를 받지 못한 ‘32’의 의미를 끝내 알 수 없게 됐다.


모텔 밖을 나오니, 주변에 아침 일자리를 구하는 듯한 분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괜스레 미안하다. 누구는 X 빠지게 일하러 갈 준비를 하는데, 누구는 이른 아침부터 여행 배낭 메고 놀러 가다니. 죄송합니다~. 앱을 켜고 상주 모동까지 길찾기를 누르니 29km에 도보로 7시간 42분 걸린다고 나온다. 오메, 상주 모동에서 점심다운 점심을 먹을 수 있겄네. 뭘 먹을까? ‘옛날 손짜장이란 데가 추천으로 나온다. 줄 서서 먹기까지 한단다. 그려? 그럼, 여기서 점심을! , ‘옛날 손짜장을 향하야, 출발! 이제는 본능만 남은 것 같다. 눈떠서 잘 때까지 그려지는 큰 그림은 오로지 식() (宿) ()밖에 없다. 혹시, 싱숭생숭의 어원이 여기서? 이 사람이 아침부터 같잖은 소리는.


읍내를 통과해 가는데 영동고등학교와 영동 학사가 눈에 띈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인적이 없다. 문득 학교를 나오기 전 출근 풍경이 그려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벽잠이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사 중에서 제일 일찍 출근했다. 간단히 교무실 청소를 한 뒤, 아침 교통 지도를 했다. 안전 업무를 맡고 있어 마땅히 할 일이었지만 업무분장엔 없는 일이었다. 으레 등교 겸 교통 지도는 학생부에서 하는 것으로 돼 있어, 교통 지도는 안전 업무 분장에 빠져 있었다. 안 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고 시간도 여유 있어 자원했다. 처음엔 많은 사람이 오가는 데서 교통 지도를 하는 것이 수줍음 많은 성격에 다소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작은 깃발 하나로 자동차의 흐름을 조절하고 학생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는게 즐거웠던 것. 그런데 이런 속내를 모르는 다른 이들은 자꾸 하지 말라고 말렸다. 늙다리가 아침부터 교통지도를 하니 젊은이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아침 시간이 철철 넘치는 데다 재미까지 있으니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게다가 교장 선생님이 과도할 정도로 칭찬과 격려를 해주셔서 더더구나 그만둘 수 없었다(교장 선생님의 고차원적인 용인술이었다). 어허, 이게 벌써 추억거리가 됐네! ‘영동학사가 요즘 드물게 보는 한자로 표기돼 있다. 永同學舍. 영원히 함께 할 벗들과 공부하는 집. 한글로 표기했으면 알지 못했을 의미가 분명하게 와닿는다. 평생 함께할 좋은 친구들과 다투지 말고 잘 지내길!



웅장한 스케일의 와인 카페를 지난다. 돈 좀 있는 이들을 꾀기 위한 카페 같다. 그런데 내겐 카페 건물보다 입구의 돌담에 더 관심이 간다. 비록 사각의 철망 안에 가둬놓은 돌담이지만 담쟁이넝쿨까지 어울려 있어 정겨운 느낌이 드는 것. 돌담, 한때는 가난의 상징이어서 모두 허물어 버리고 잘살아 보세의 상징인 브로크 담으로 대치되었던 담. 이제는 그 반대가 되어 돈 있는 사람이나 쌓을 수 있는 담.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더니, 돌담에서도 그것을 느끼게 된다.



노근리 평화공원 이정표가 보인다. 아니, 노근리가 여기 있었어? 하여간, 무지하기는! 꽤 큰 규모로 노근리 사건을 기념하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잠시 돌아본 뒤, 사건 현장인 노근리 쌍굴다리를 가봤다.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총탄 자국들에 표시를 해놨다. 피난민과 현지 주민들을 이동시키던 미군이 그들 속에 북한군이 있는 것 같다며 갑자기 돌변하여 비행기로 폭격하고 기관총을 난사하여 거의 몰살시켰던 현장이다(당시 이동하던 사람이 500~600여 명 이었다고 한다). 아비규환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현장! 전쟁 중이라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면 무리한 판단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살아남은 자의 힘겨운 노력으로 후일 미 대통령(클린턴)의 사과까지 받아냈다고 하지만, 어디 마음속에 남은 한이 다 풀릴 수 있으랴! 보면 볼수록 착잡한 마음이 드는 현장이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비극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발길을 옮긴다. 황간면을 지난다. 번듯한 중학교가 중앙지에 있다. 그런데 왠지 이상하다. 멀끔하기만 할 뿐 괴괴한 느낌이 드는 것. 혹시? 역시나였다. 교문에 폐교된 학교이니 출입을 삼가 달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또다시 지방 소멸 인구 소멸의 현장을 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다니던 중학교도 폐교가 되어 인근의 다른 중학교와 통폐합돼 신축 건물로 이사했다. 언젠가 한 번 차를 타고 모교 곁을 지나는데 황폐해진 건물을 보니, 서글픔을 넘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정녕 지방 소멸 인구 소멸을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어디까지가 임계점일까? 임계점에 다다르면 극적으로 좋은 변화가 생길까? 아니면 그냥 소멸로 끝날까? 무거운 고민이(감당할 고민도 아닌데) 머리를 짓누른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가 어디냐? 앱을 켜고 확인할까 하다 귀찮아 그만뒀다. 제법 날씨가 뜨겁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바로 전에 지나갔던 다마스가 갑자기 멈추더니 슬금슬금 후진을 해온다. 내게 오더니, 창문을 내린다. 검게 탄 얼굴의 여천사(!)가 말을 건냈다. “태워 드릴까요?” 더운 날씨에 배낭을 짊어지고 터벅터벅 도로를 걸어가는 게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억양이 약간 어색하다. 얼굴을 보니 동남아시아 쪽에서 오신 분 같다. 시집을 오신 게 틀림없을 듯. 얼굴에 선함이 가득하다. 감사하지만, 도보 여행의 정도를 어길 순 없는 법.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X자를 표한 뒤 그냥 가시라고 두 손을 앞으로 밀어 보였다. 여천사도 웃음을 지으며 창문을 닫고 출발했다. 부디부디 행복하시고 잘 사시기를!


길가에 폐가가 보인다. 그런데 전남에서 보았던 폐가에 비해 서글픈 느낌이 덜 든다. 전남에서 본 폐가는 슬레이트 지붕의 다 쓰러져 가는 폐가였는데, 여기는 번듯한 양옥집 폐가인 것. 경북과 전남의 경제 격차를 폐가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문득 정치인이라면 한 번쯤은 제 발로 전국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체감적으로 나라 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것. 그러면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 그러나 저들이 과연 나라 사정을 몰라서 그럴까? 알지만. 하여간 조그마한 나라에 지방간 격차가 심하다는 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보쇼들, 제발 잘 좀 하쇼!



115. 드디어 목표했던 상주 모동의 옛날 손짜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점심 타임이 지났나 보다. 손님이 하나도 없다. ", 왔능교?"하는 눈빛의 여주인이, 눈빛과 다르게, 반갑게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어우, 짜장면집 주인답지 않게 날씬한 몸매에 예쁘장한 얼굴이다. 이 자가, 하여간에. 정신 차려! 짜장면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여주인이 한마디 한다. “저기 오뎅과 만두 있어요. 갖다 드세요.” ? 이런 서비스는 처음이다. ‘물은 셀프라고 써 붙였는데, 대신에 오뎅과 만두를 서비스하는 모양이다. 마구 먹고 싶지만 짜장면 먹을 것을 생각해 오뎅 2개와 만두 2개만 가져왔다. 조금 있으니 할머니들이 들어와 간짜장을 주문하는데, 왠지 주문이 익숙해 보인다. 오뎅과 만두도 자연스럽게 갖다 드시는 걸 보니 동네분들인 것 같다. 드디어, 짜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옛날 손짜장은 아니다. 간판만 그리 내건 듯싶다. ‘옛날 손짜장이든 지금 기계짜장이든 뭐가 대수랴! 모처럼 만에 점심다운 점심을 먹게 됐는데. 그야말로,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다. 나오면서(당연히 현금 결제했다. 6천 원) 자판기 커피도 한잔했다. 갑자기 힘이 불끈 솟는다. 배도 부르고 힘도 불끈 솟건만, 어디다 솟는 힘을 쓸데가 없다. 아니, 있구나! 아까 오다 보니 백화산 5km’란 안내판을 봤는데, 거기를 한번 가봐야겠다. 혹시 알아, 거기서 옹녀라도 만날지?



어차피 모동에서 묵기로 했으니, 숙소를 일단 정하고 배낭을 내려놓은 뒤 백화산에 가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모동 초입에서 부산 민박이란 데를 봤는데. 부산 민박 앞에 도착해 얼쩡거리는데 웬 연륜 깊은 미루나무 같은 남자분이 건물 안에서 나오더니 먼저 묻는다. “, 숙박하시게? 국토 순례하시나?” 나도 모르게 ""라고 답하고 도보 여행 중이라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다. 가격이 얼마냐니, 3만 원 달란다. 더더구나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다. 2층으로 올라갔는데(1층은 음식점이다) 안내 프런트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25천원에서 3만 원으로 올렸으니 양해 해달라는 문구를 걸어 놓았다. 방으로 안내하는데, 시설이 단촐하다. 그렇지만 이부자리가 깨끗하고 방에서 별다른 냄새도 나지 않는다. 길가 반대편 방이라 길가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TV도 있다. 방 밖에 샤워실도 있고. 내게 딱 맞는 숙소이다. 다만 방바닥 장판에 전기 열선 자국이 눈에 거슬리는데, 그거야 뭐(방에는 보일라 시설을 안 하고 전기온돌 필름을 깔아 그런 자국이 났던 것이다). 짐을 풀고 나와 백화산으로 향했다.


모처럼 만에 배낭을 떼놓고 걸으니, 걸음이 날아갈 듯하다. 날아갈 듯하다 못해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백화산 입구로 들어가는데, 사찰이 있다. 스님 한 분이 얼굴을 왼통 가리고 작은 포크레인을 운전하며 조경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낯선 모습이 신기해 실례를 무릅쓰고 잠깐 구경을 하는데 스님이 조작을 멈추고 내려와 뭘 살피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아이고, 죄송해라! 덩달아 엉겁결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답한 뒤 자리를 떴다. 절을 지나 조금 올라가는데 콘크리트로 징검다리를 해놓은 것이 보였다. 산에서 내려오는 수량이 꽤 많다. 반나절 걸어 성질이 날 대로 난 발가락들을 위로할 겸 잠시 징검다리에 앉아 발을 씻었다. 물이 차가워서 그런가, 성질 난 발가락들이 금세 얌전해지더니 제발 옷(양말) 좀 입혀달라고 아우성친다. 하여간 이놈의 변덕하곤. 백화산은 태안의 백화산과 이름이 같다. 한자도 같다. 들어올 때 입구에서 봤던 백화산 송이 있는데, 엄청나게 자랑을 해놨다(괄호 안 한자 병기가 너무 많아 읽기 불편했지만, 인내심을 갖고 읽었다. 괄호 안 한자 병기는 이제 무의미한 어문 현실이 됐다. 한자를 모르는데 병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냥 오해 오류를 무릅쓰고 한글 전용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 어지간하면 제 고장 자랑은 당연한 일. 약간의 뻥을 빼고 두 산을 비교해 보니 우열을 가르기 힘들었는데 이곳에 부가점을 줄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물! 산으로 올라가며 보니 작은 폭포도 있어 산의 운치를 더해줬다.



산 갈림길에 섰다. 정상인 한성봉으로 직통하는 길이 있고, 돌아가는 길이 있다. 당연히 직통이지! 그런데 중간마다 이정표가 분명하질 않다. 이거 맞게 가고 있는 건가? 겨우내 사람들이 별반 다니지 않았는지, 발자취도 그리 선명하지 않다. 꽤 올라와 아까 갈림길에서 확인한 한성봉까지의 거리에 거의 도달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정표도 안보이고 갈수록 길도 좁아졌다. 게다가 낙엽까지 푹푹 밟혀 더더욱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불현듯 불안감이 밀려온다. 이러다가 옹녀를 만나는 게 아니라 웅녀를 만나 남은 생을 산에서 사는 거 아닌가? 다행히 얼마 안 가 안내판 하나가 보였다. 하산 길 안내판. 불현듯 정상은 포기하고 빨리 하산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하산 길이 지금 올라온 길과 다른 방향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빨리 하산을! 열심히 하산을 하는데, 애가 타서 그런지 목이 말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떠먹었다. 다시 하산. 그런데, 이게 웬일! 하산 길도 이상하다. 처음엔 그럭저럭 사람 다닌 자취가 있었는데 내려오다 보니 갑자기 그 자취가 희미해졌다.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러나 어쨌거나 아래로 아래로만 내려가면 되니. 이런저런 개고생을 하며 산에서 내려오는데 쓰레기 봉지가 보였다. 세상에, 쓰레기 봉지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쓰레기 봉지가 있다는 건 사람이 다녔다는 자취이니, 지금 가는 길이 하산로인 것은 분명한 것이다! 마침내 올라올 때 걸었던 산 초입의 길이 보이는데, 보일 뿐, 거기로 가는 길은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중간의 내[]를 허겁지겁 무지막지하게 건너 등산로에 들어섰다. 안심! 옹녀를 탐하는 색심으로 등산을 했기에 산신령의 노여움을 사 개고생을 한 것이 틀림없다. 다시는 색심을 품고 산에 오르지 말아야겠다. 아까 지나왔던 사찰을 지나며 부처님께도 용서를 구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숙소까지 돌아와 시계를 보니, 6시다. 저녁을 사 먹을 까 하다 시간이나 메뉴가 마땅치 않을 것 같아 하나로 마트에서 끼닛거리를 사 해결하기로 했다. 하나로 마트로 가기 전에 동네에 혹 볼만한 것이 있나 싶어 한 바퀴 돌아봤다. 다 그렇고 그런 시설뿐인데,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백화 사진관. 이층집인데 낡은 흙벽의 가건물 형태다. 일본식 가옥이라 해야 하나? ‘백화 사진관이란 상호는 이층 벽체에 스프레이로 써놓았는데, 폐업한지 오래된 듯싶다. 흙벽의 가건물 형태지만 이층집이면 당시에는 꽤 잘나가던 집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제는 시대의 물살에 이리 할퀴고 저리 할켜 초라한 몰골로 서 있는 것일 터. 시대의 흔적으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어 그대로 둔 것일까, 아니면 돈 문제가 걸려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방(異方)의 나그네에겐 색다른 눈요깃거리를 제공해 주는 건물이다. 사진을 아니 찍을 수 없다. 찰칵!



하나로 마트에 들려 좋아하는 호박죽을 두 개 사고 간식의 왕 누룽지도 샀다. 매실 물도(매실 물, 이것 여행 중 최고의 음료이다. 물보다 낫다). 숙소에 들어와 호박죽으로 저녁을 먹고 샤워(민박이라 무시하지 마시라. 온수, 나온다)를 한 뒤 빨래까지 해 널고 방바닥에 누웠다. 차갑다. 전기온돌 필름을 가동하니 금방 따뜻해진다. 예의 또 부질없이 TV 리모컨을 눌렀다. 그런데, 안 나온다! 주인 분께 말씀드리려다 그만뒀다. 음심을 자제케 하니 이 또한 좋지 않을쏜가! 가족 단톡방에 소식을 전하고, 그냥 빈둥대다(이거, 쉽지 않다!) 이부자리를 깔고 일찍 잠을 청했다. 내일은 문경 시내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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