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엔 본시 나무라 부를만한 몸이 없고   菩提本無樹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라 부를만한 마음이 있는 것 아니라네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本來無一物

 어데서 먼지가 인단 말가   何處惹塵埃

 

 선종의 실질적 완성자로 평가받는 혜능(慧能, 638-713)의 시예요. 선배였던 신수(神秀)의 시에 맞불을 놓은 시로, 스승이었던 홍인의 의발(衣鉢, 도통의 전수를 상징)을 받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시죠. 혜능의 선은 이른바 견성성불(見性成佛, 본 마음을 깨치면 바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로 "그동안 하찮고 불완전한 것으로 여겼던 자기 자신과 일상적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한 특징이 있죠. (인용문, 한형조)

 

 스승의 의발을 전수받았으나 주변의 시기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감추었던 혜능은 15년 뒤 보림사(寶林寺)에 주석하면서부터 가르침을 펴요. 이곳에 흐르던 시내가 조계(曹溪)로, 이 때문에 혜능을 조계 혜능이라고도 부르죠. 현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인 조계종의 조계는 바로 여기서 가져온 이름이고, 승보 사찰인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의 조계 역시 여기서 가져온 이름이에요.

 

 사진은 송광사 성보박물관에서 찍은 거예요. 현대 고승의 한 분인 효봉(曉峰, 1888-1966) 스님의 친필 족자예요. "불락이변거 도무착각처 회봉무위인 정시본래여(不落二邊去 到無着脚處 會逢無位人 定是本來汝)"라고 읽어요. "양 쪽으로 떨어지지 않고 가/ 발 놓을 곳 없는데 이르러/ 머무는 자리 없는 사람 만나면/ 어와! 그게 바로 자네라네"라고 풀이해요. 낙관 부분은 "조계후학 효봉(曹溪後學 曉峰)이라고 읽어요. 조계는 혜능을 의미하고, 후학은 후배 ·  제자 정도의 의미예요. 효봉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굳이 번역하자면 '새벽 봉우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혜능의 종지는 성속 · 시비 · 선악의 분별을 떠나 본마음을 직시하는 것인데, 이 족자의 시는 혜능의 그 종지를 표현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마지막 구 "어와, 그게 바로 자네라네"는 "그 자리, 그게 바로 부처라네"와 같은 의미라고 할 거예요. 효봉 스님은 오도송을 통해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해 보였지만, 이 시를 통해서도 그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시를 읽어보면 깨달음에서 오는 스님의 확신이 느껴지고, 아울러 낙관의 '조계후학'이라는 말도 비상하게 느껴지거든요. 특히 '조계후학'은 '나는 선종의 승려다'라는 평범한 의미보다는 왠지 '나는 혜능의 의발을 전수받은 사람이다'라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느껴져요. 견강부회한 느낌일까요?

 

낯선 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邊은 辶(걸을 착)과 自(부터 자)와 方(방위 방)의 합자예요. 자신이 있는데서[自] 걸어가[辶] 어렵지 않게 이를 수 있는 곳[方]이란 의미예요. 가 변. 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川邊(천변), 周邊(주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着은 著의 속자예요. 著는 艹(풀 초)와 者(놈 자)의 합자예요. 드러나 보인다는 의미예요. 풀은 종류도 많고 늘 보이기에  艹로 '드러나 보인다'란 의미를 표현했어요. 者는 음을 나타내면서(자→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者가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듯, 그같이 숫자가 많으면 분별하여야 정체가 분명히 드러난다란 의미로요. 드러날 저. 이 경우 著名(저명)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著는 '붙다'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드러나 보이려면 이리저리 옮겨 다녀서는 안되고 한 곳에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요. '붙다'란 의미일 때는 '착'으로 읽어요. 붙을 착. 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附着(부착), 接着(접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脚은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却(물리칠 각)의 합자예요. 다리라는 뜻이에요. 무릎이하 복숭아뼈 까지의 부분을 가리켜요. 月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却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却에는 '뒤'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데, 다리를 포개고앉게 될 경우 뒤에 놓이는 부분이 脚이란 의미로요. 다리 각. 脚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脚線美(각선미), 健脚(건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曹는 술을 받을 구유(입구가 넓은 큰 그릇)를 표현한 거예요. 曰 윗 부분은 술지게미를 짜는 모습을, 曰은 술지게미에서 나오는 술을 받을 구유를 그린 거예요. 구유 조. 후에 '구유 조'는 木을 추가하여 槽로 표기하게 됐고, 曹는 주로 '무리, 마을'이란 뜻으로 사용하게 됐어요.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구유에 술이 모여있듯, 많은 이들이 한곳에 모여있다란 의미로요. 무리(마을) 조. 曹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法曹(법조), 吾曹(오조, 우리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曉는 日(날 일)과 堯(높을 요)의 합자예요. 해가 떠오를 무렵, 즉 새벽이란 의미예요. 日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堯는 음을 담당하면서(요→효)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새벽은 해가 높이 떠오르려는 하는 시각이란 의미로요. 새벽 효. 曉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曉星(효성), 元曉(원효, 신라 고승)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효봉 스님의 글씨는 '효봉'이라는 법명 낙관이 없으면 빛을 발하기 어려운 글씨라고 보여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또한 그가 선배(스승)로(으로) 삼았던 혜능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점이에요. 혜능은 문맹이었다고 해요. 위에 소개한 그의 시는 자신이 직접 지은 것이 아니고 그의 뜻을 다른 이가 대필해 준 것이라고 해요. 효봉 스님은 글씨에서, 혜능은 작문에서 '졸(拙, 못남)'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셈이에요.

 

여담 둘. 효봉 스님 시에서 '會'와 '定'은 각기 '마침내' '틀림없이'의 의미인데, 번역에서는 생략하거나(會) 바꿔서(定, 어와!) 풀이 했어요. 문맥의 흐름상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하긴 했는데, 왠지 쓸데없는 짓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시 번역은 쉬운 듯 하면서도(글자 수가 적기에) 어렵다는 것을(숨긴 의미를 잘 드러내야 하기에) 새삼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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