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분명 대장부(財上分明 大丈夫), 재물에 대해 청명한 태도를 보이는 자, 그가 바로 대장부이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한 구절이에요. 이 말을 뒤집으면 졸장부의 정의가 될 거예요: 재물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자, 그가 바로 졸장부이다. 최근 언론 매체를 도배하는 이명박 전대통령의 다스 및 재산 관련 보도는 이 전대통령이 어떤 인물인가를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지요. 있는 X이 더한다더니, 정말 그런가봐요.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이 어찌 그리 재물에 대해 무한 욕심을 부린(리는) 것인지. 적어도 재물에 관한 한 이 전대통령은 졸장부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이 전대통령 못지않게 평범한 이들도 재물에 관한 한 졸장부를 자처할 때가 있어요. 바로 세금낼 때이죠.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덜 낼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잖아요? 지금이 연말정산 기간이니 직장인들은 여지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겠군요.

 

 

그러나 직장인들이 제 아무리 머리를 굴린들 과연 얼마나 세금을 덜 내게 될까요? 직장인들의 지갑, 특히나 공무원들의 지갑은 유리 지갑이잖아요? 괜시리 졸장부 되려 말고 대장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매일 이런저런 눈치보며 졸장부처럼 지내는데 일년에 한 번 이라도 대장부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철없는 소리 말라구요? 죄송합니다~

 

 

사진은 인근의 세무소에 들렸다 찍은 거예요. 읽어 볼까요? 청능유용 인능선단 명불상찰 직불과교(淸能有容 仁能善斷 明不傷察 直不過矯). 이런 뜻이에요: 심성이 맑고 깨끗하면서도 남을 포용할 줄 알고, 마음이 어질면서도 일에 대해서는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으며, 지혜가 총명하면서도 까다롭게 살피지 않고, 행동은 강직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나치게 따지지 않는다. 『채근담』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사진을 찍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저 액자를 쓴 이는 무슨 마음으로 『채근담의 문구를 인용한 것일까?' 소시민들에게 세무소의 이미지는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이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겐 악착같이 걷고 부유하고 힘있는 사람들에겐 관대하게 대하는 불공정한 기관, 이게 세무소에 대한 소시민들의 일반적 이미지죠. 이런 기관에 세금을 내려니 아까워 한 푼이라도 덜 내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것 아닌가 싶어요. 만일 세무소가 공정하다는 인식이 있으면 그런 잔머리 굴리는 졸장부 행동은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액자를 쓴 이는 세무소가 좀 더 공정한 세무 행정을 펼쳤으면 하는 바램에서 채근담의 문구를 인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겉으로는 중용의 인격 수양을 강조하는 내용을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세무 행정의 공정을 지켜달라는 바램으로 말이지요. 꿈보다 해몽이 좋은가요?

 

 

낯선 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能은 본래 곰의 한 종류를 그린 글자예요. 서있는 곰의 측면 모습으로 그린 거예요. 厶는 머리를, 月은 배를, 匕 2개는 다리를 표현한 거예요. 지금은 주로 '능력있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곰'이란 의미로는 거의 사용안해요. 능력있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능할 능. 能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賢能(현능), 才能(재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斷은 㡭(絶의 옛 글자, 끊을 절)의 약자와 斤(도끼 근)의 합자예요. 도끼를 사용하여 끊는다는 의미예요. 끊을 단. 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斷腸(단장), 斷絶(단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傷은 人(사람 인)과 昜(드러날 양)의 중첩자가 결합된 거예요. 타인에게 가한 상처나 타인에게 입은 상처란 의미예요. 人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昜의 중첩자는 음을 담당하면서(양→상)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상처는 쉽게 눈에 띈다는 의미로요. 상처 상. 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外傷(외상), 傷處(상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察은 宀(집 면)과 祭(제사 제)의 합자예요. 위에서 아래를 살펴본다란 의미예요. 宀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祭는 음을 담당하면서(제→찰)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제사를 지낼 때 신중한 태도를 취하듯, 그같이 신중한 태도로 살펴본다는 의미로요. 살필 찰. 察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觀察(관찰), 視察(시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矯는 矢(화살시)와 喬(높을 교)의 합자예요. 굽거나 지나치게 긴[喬] 화살[矢]을 바로잡고 길이를 줄인다는 의미예요. 바로잡을 교. 矯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矯正(교정), 矯角殺牛(교각살우,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채근담은 菜(나물 채) 根(뿌리 근) 譚(말씀 담)으로, '나물 뿌리같이 담담한 이야기, 혹은 나물 뿌리를 먹고 견딜 각오를 드러낸 이야기' 등으로 풀이할 수 있어요. 평범한 내용인 듯 싶지만 세파를 헤쳐나가는 담대함과 지혜가 담긴 책이란 의미겠지요. 사진의 낙관은 '갑신(甲申, 2004) 추일(秋日, 가을 날)  록채근담구(錄菜根譚拘, 채근담 구절을 쓰다) 일련(一蓮, 연 꽃 한송이. 글씨 쓴 이의 아호)' 이라고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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