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8박 9일 일정으로, 예정에(?) 없던, 라오스 여행을 다녀왔어요. 느낀 바가 있어 짤막한(?) 소감을 작성했는데, 한문으로 작성했어요. "짜식, 뭐야 한문으로 소감을 작성하다니…. 덜 떨어진거야 아니면 한문 아는 사람이 적다고 잘난체 하는 거야 뭐야." 이런 오해는 말아 주세요. 나름 이유가 있어 한문으로 작성했어요.

 

 

조동일 교수의동아시아 문명론을 읽다보니, 조교수가 한중일 나아가 한자 문화권 학자들은 논문을 '한문'으로 쓰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내용이 나오더군요. 주 이유는 공동학술대회에서 겪는 번역의 어려움 때문인데, 각기 자국어로 논문을 제출하다보니 주최국에서 제출 논문을 주최국어로 번역하기가 힘들고 아울러 저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견해가 십분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거예요. 어느 한 나라의 언어만으로 쓰거나 혹은 만국 공통어가 되다시피한 영어로 쓰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어느 한 나라의 언어나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이 용이치도 않거니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반대 의견을 피력해요. 그러면서 적어도 한자 문화권에서는 과거 공용문어였던 '한문'으로 논문을 쓰면 상기 난점들이 해소될 것 같다는 주장을 펴요.

 

 

처음에는 좀 황당한(?) 주장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나름 일리가 있는 것 같더군요. 글이라는게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게 주목적이고 나와 타인이 공유하는 익숙한 문자가 있다면 이를 사용하여 글을 쓰는게 상호 편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한문 작문이 그다지 어렵지 않겠지만 한글 전용으로 매진해 온 우리에겐 좀 어려운 제안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완전히 한자 한문의 전통이 끊어진 것은 아니기에, 더구나 학자들의 경우는 일반인과 달리 한자 한문에 얼마간 익숙할테니, 조금만 노력하면 중일과 같은 수준이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자, 제가 왜 한문으로 소감문을 작성했는지 조금 오해가 풀리셨는지요? 그래요, 조교수의 견해를 일반인의 입장에서 수용하여 한자 문화권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문으로 작성한 거예요(이 소감문을 한자 문화권 사람들이 볼 일이 거의 없겠지만서도요. 하하). 한문 작문이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건 고문체의 멋진 문장을 상정할 때의 문제이지, 단순 의사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아요. 제 소감문이 이를 증명해요.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한자들을 약간의 허사를 이용하여 조합했기에 아주(?) 쉬워요. 읽으면 바로 이해가 되죠. 얼마간의 한자 지식으로 한자 문화권 사람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한문 작문을 하는 것, 한 번 시도해볼만 한 일인 것 같아요.

 

 

읽으면 바로 이해가 되실 터이지만, 굳이 우리 말 번역을 붙여봐요. 혹 읽기가 어려우실 분들을 위해. 사진은 라오스에서 찍은 건데 소감문의 주제를 잘 반영하는 것 같아 올려 봤어요.

 

 

老撾是東南亞細亞之一國也  太國越南眞臘環繞其國  國力微弱時常常被害於此等國  而且到近代爲佛蘭西所勒絆 卽爲植民國  竊謂老撾之地政及近代狀況  與我國多少恰似  有同病相憐之情 

 

近者吾內外與近隣柳兄內外觀光此國  自萬象經由萬榮到琅勃拉邦以八泊九日間滯留  滯留期間中  攝取現地飮食  體驗冒險活動  訪問有名場所  然未有特別追憶  何也  所以余本是酷好思索觀察而不好運動體驗也  而且今番觀光爲內子所牽 不得已參豫 又有一要因焉  觀光期間中如下之生覺不離於腦裏  這箇思考 今番觀光追憶之追憶也 

 

老撾之貧富隔差極甚 都會生活水準與高山生活水準 天壤之差矣 自萬榮到琅勃拉邦時 處處目睹高山路邊住民生活狀 目不忍見 然而目擊特異點  住民擧皆 表情溫和  余甚怪焉  何以至此 竊謂重要因在於佛敎信仰 老撾國民擧皆深信佛敎  傳言約九十百分點以上信奉佛敎  佛敎强調現實受容[滿足] 此點使此國民甘受貧困現實而別無不滿  蓋發展者  開始於現實不滿  而現實不滿出發於比較他者  萬若無比較他者 將別無不滿于現實矣  吾國內戰以後 飛躍發展 然吾國民果然幸福比老撾國民  余不說確信也  發展刺戟不斷的欲望  不斷的欲望引導不斷的不滿足 不斷的不滿足惹起心的缺乏 心的缺乏招來不幸  余以爲吾國進入如此之惡循環  以老撾爲貧國卑下  此是短見乃至誤解也  觀光客常常掛念於此 是矣 而且深思熟考於發展之價値  發展未必謂之最善價値也  吾不說吾國民可以信奉佛敎乃至中斷發展  但强調反省乃至省察而已矣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이다. 태국과 월남 그리고 캄보디아가 이 나라를 감싸고 있어, 국력이 미약할 때는 항상 이들 나라에게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근대에 이르러서는 프랑스의 굴레에 매였으니, 식민지가 되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라오스의 지정과 근대 상황이 우리나라의 과거 상황과 다소 흡사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럴까 동병상련의 정을 갖게 된다.

   

 

근자 우리 내외는 이웃인 류형 내외와 이 나라를 관광했다. 브엔티엔에서부터 방비엥을 경유하여 르왕프라방에 이르렀는데 팔박구일간 체류했다. 체류기간중 현지음식도 먹고 액티브한 활동도 하고 유명 장소도 방문했다. 하지만 그다지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가 없다. 왜일까? 나는 본시 사색하고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액티브한 활동이나 체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관광이 안사람에게 이끌려 부득이 참여한 것도 한 요인이 된다. 관광내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생각이야말로 이번 관광에서 얻은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라오스의 빈부격차는 극심하다. 도회지의 생활 수준과 고산지대의 생활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방비엥에서 르왕프라방에 갈때 곳곳에서 고산 노변 주민들의 생활상을 목도했는데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매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주민 거개가 온화한 표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게 심히 의아스러웠다. 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특이한 점은 불교 신앙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라오스의 국민 거개는 불교를 신봉하고 있다. 전하기론 약 90%이상이 불교를 신봉한다고 한다. 불교는 현실 수용[만족]을 강조한다. 이 점이 이 나라 국민들로 하여금 빈곤한 현실을 감수하면서 별다른 불만이 없게 만든 것 아닐까 싶다. 대개 발전이라는 것은 현실 불만에서 시작되고, 현실 불만은 타자와의 비교에서 출발한다. 만약 타자와의 비교가 없다면 현실에 대해 별다른 불만이 없을 것이다. 우리 나라는 내전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 국민이 라오스 국민에 비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확신하여 말하기 어렵다. 발전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욕망을 자극하고, 끊임없는 욕망은 끊임없는 불만을 인도하며, 끊임없는 불만은 심적 결핍을 야기하고, 심적 결핍은 불행을 초래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라오스를 빈국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단견이요 오해다. 관광하는 이들은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울러 발전의 가치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발전이 반드시 최선의 가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 국민이 불교를 신봉해야 한다거나 발전을 중단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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