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바쁘실 줄 알지만 연락이 없어서…."

 

 없는 살림이지만 그래도 아이들 어렸을 때 흔적을 남기고 싶어 거금 100만원을 주고 캠코더를 구입했어요. 그런데 촬영 중 실수로 캠코더를 바닥에 떨어트렸어요. 이후 재생시 화질이 깨지는 거예요. 수리 센터에 수선을 부탁했는데 영 연락이 오질 않아요. 할 수 없이 수리 센타에 전화를 걸어 먼저 정중하게 말을 꺼냈어요. 연락을 주지 않는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한 것이죠.

 

 상대는 정중한 서두에 좀 당황한 것 같았어요. 보통은 다짜고짜 퉁명스런 말투로 짜증을 부리기 일쑤인데.

 

 "저희는 거금을 들여 샀는데, 제 때에 쓰지 못하면 사용의 의미가 없어서... 어려우셔도 이른 시일안에 수리를 좀 완료해 주실 수 있을런지요?"

 

 상대는 더더욱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답변을 했어요. "사실은 저희가 고쳐 보려고 했는데... 잘 안돼서... 다른 제품으로 교환을 하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본사에서는 교환을 잘 해주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그럴 때는 이런 식으로 적극 어필하세요."

 

수리  센터는 본사 산하일텐데 왜 반품 교환 요령까지 알려주는 걸까? 속으로, 의아했어요. 이후 수리 센터에서 먼저 본사에 잘 말했는지 본사에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고 제품은 교환됐어요. 벌써 십 몇년 전 일이네요.

 

그분과 통화할 당시 읽고 있던 책이 있었어요.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 핵심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인데 통화중에 그것을 활용했더니 생각잖은 좋은 결과를 얻은 거예요.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이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고 하죠? 예전에는 서비스를 하는 분들이 외려 고객에게 상전 노릇을 했는데 지금은 역전된 느낌이에요. 예전도 좋지 않지만 지금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아요. 상호간 예절있는 있는 말투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 갑을 관계가 되어 횡포를 부리는 것은 눈쌀을 찌푸리게 해요.

 

사진은 '겸수익 만초손(謙受益 滿招損)'이라고 읽어요. '겸손은 이익을 받고, 오만은 손해를 부른다'는 뜻이에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한 구절이죠. 겸손과 오만중 어느 것이 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좋게 만드는 것인지는 이익과 손해를 거론하지 않아도 잘 알수 있지만 굳이 이익과 손해의 관점에서 겸손과 오만을 말한 것은 피부에 와닿는 교훈을 주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겸손'과 '위선'의 구분이에요(오만은 어차피 자신의 직정(直情)을 표현한 것이니까 거론한 필요가 없구요). 상대에 대한 분노가 지글지글한데 겉으로 야들야들하게 대한다면 그건 위선이 아닐까 싶어요. 이 경우 겸손은 '이익'의 관점에서 택한 '위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정말(!)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말을 하는 것, 그것이 진짜 '겸손'이죠. 카네기도 그런 점을 강조해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謙은 言(말씀 언)과 兼(겸할 겸)의 합자예요. 겸손하다란 뜻이에요. 言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겸손한 행동이 우선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말씨'이기에 言을 사용했어요. 兼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내가 상대에게 겸손하게 대하면 상대도 내게 겸손하게 대한다는 의미로요. 겸손할 겸. 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謙遜(겸손), 謙讓(겸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損은 扌(手의 약자, 손 수)와 員(수효 원)의 합자예요. 덜어낸다는 뜻이에요. 扌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員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건을 덜어내면 그 수효가 줄어든다는 의미로요. 덜 손. 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損害(손해), 損失(손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그렇게 바꾼 캠코더는 이제 퇴물이 되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디카를 넘어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니 캠코더는 자연스럽게 손을 떠나더군요. 촬영해 놓은 테잎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고….

 

사진은 http://ushg.co.kr/board/bbs/board.php?bo_table=qna&wr_id=614  에서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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