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학(道學)과 절의(節義) 그리고 문장(文章) 삼박자를 고루 갖춘 분이 있었던가? 아쉽게도 어느 하나나 둘이 뛰어나면 나머지가 부족했다. 그러나 하늘이 이 나라에도 그러한 인물이 태어나도록 마음을 쓰셔 드디어 그 인물의 출현을 보게 되었다. 그가 누구인가? 바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이시다(國朝人物道學節義文章忒有品差 其兼有而不偏者無幾矣 天佑我東 鍾生河西金先生 則殆庶幾焉)."

 

 

우암 송시열이 지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 선생의 신도비문 첫머리예요(의미 전달에 중점을 두고 의역했어요). 신도비에 과장이 들어가는것을 십분 감안한다 해도 "하늘이 이 나라에도 그러한 인물이 태어나도록 마음을 쓰셔" 운운은 대단한 상찬(賞讚)이 아닐 수 없어요. 전하기론 이 부분 때문에 김인후 선생의 명성이 더 치솟게 됐다고 해요.

 

 

김인후 선생은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의 세자 시절 스승이었어요. 스승과 제자 사이 나이 차이는 6살 밖에 되지 않았어요. 둘은 의기가 상통했고, 정치 혁신에 대한 열망이 컸어요. 인종이 등극 후 기묘사화로 숙청당한 조광조 등을 신원한 것은 그 한 예이죠.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종은 등극한지 9개월이 채 못되어 세상을 뜨고 말아요. 인종의 승하는 김인후에겐 더할 나위없는 큰 충격이었어요. 새로운 정치의 원동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죠. 당시 조정은 인종의 계모인 문정왕후와 그의 친동생(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한 상황이었고 후계자로 지목된 명종은 나어린(12살) 군주였으니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죠(실제 얼마 안있다 을사사화가 발생하죠). 이런 절망적 상황에 놓이자 선생은 벼슬을 내놓고 은둔을 택해요. 선생은 인종의 기일이면 매번 산속에 들어가 크게 통곡하고 내려왔다 해요. 인종의 조사(早死)에 대한 아쉬움과 불의(不義)의 시대에 대한 개탄 그리고 자신의 불우(不遇)한 처지를 슬퍼했던 거지요.

 

 

사진은 선생의 '致詩謝西齋(치시사서재, 시를 올리고 서제를 떠나다)'란 시예요.

 

 

散漫松間影   산만송간영    솔 숲 사이 그림자 어른 거리고

玲瓏氷下泉   영롱빙하천    얼음 아래 물 수정처럼 맑아라

尊傾調急管   준경조급관    술잔 기울이니 조급한 피리 소리 느슨해    

月側罷淸筵   월측파청연    달 이울어 맑은 모임 파해라

醉舞沿溪曲   취무연계곡    시냇물 굽이 따라 취하여 건들건들

狂歌遶樹邊   광가요수변    나무 주변 맴돌며 고성도 질러보네

歸來興不盡   귀래흥부진    돌아갈 참이건만 여흥이 식지 않아

嘯詠謝諸賢   소영사제현    콧노래 흥얼대며 인사를 드리네

 

 

고아(高雅)한 모임에 참석했다 떠나며 지은 시인듯 해요. 고아한 모임이라 그랬을까요? '취무(醉舞)'와 '광가(狂歌)'라는 말을 쓰고 있음에도 시 전체에서 느껴지는 풍모는 결코 이백류의 광달(狂達)한 풍모가 아니예요. 이는 취무와 광가에 어울리지 않는 '영롱(玲瓏)' '조(調)' '제현(諸賢)' 등의 시어 사용에서 빚어진 엇박자 때문이에요. 고의로 이런 엇박자를 낸 것일까요? 그런 것 같진 않아요. 시인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빚어낸 결과로 보여요. 여기서 송시열이 언급한 도학과 절의라는 말을 상기하면 좋을 듯 싶어요.

 

도학를 탐구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중용의 삶을 지향한다는 거예요. 중용의 삶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과불급(過不及)이죠. 시에서 '취무'와 '광가'를 등장시키는 한편 '영롱'과 '조'와 '제현' 등을 등장시킨 것은 바로 과불급을 조절하는 도학자의 의식이 발동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요. 절의의 관점에서도 이 엇박자를 바라볼 수 있어요. 선생은 시대와의 불화로 은거를 택했어요. 자신의 절의를 지키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선생은 도사나 선사가 아니예요. 사(士)예요. 사의 은거는 결코 도사나 선사와 같을 수 없어요. 사의 은거는. 더구나 고명한 사의 은거는, 또 하나의 사회 참여 행위이지 도사나 선사처럼 세상을 버리는게 아니거든요. 그것은 불의의 시대를 고발하는 한 증표지요. 이 시가 초일(超逸)한 듯 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여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㪔(나눌 산)의 합자예요. 잡다한 고기란 뜻이에요. 月로 뜻을 표현했어요. 㪔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여기저기서 토막난 것이 모인 잡다한 고기란 뜻으로요. 일반적으로 '흩어지다'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흩어질 산. 散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解散(해산), 散亂(산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曼(길 만)의 합자예요. 물길이 광대하다란 의미예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曼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광대한 물길은 그 길이도 길다란 의미로요. 일반적으로 '질펀하다'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질퍼할 만. 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漫畵(만화), 漫步(만보, 한가히 거니는 걸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令(아름다울 령)의 합자예요. 옥소리란 의미예요. 王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令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듣기에 아름다운[좋은] 소리가 옥소리란 의미로요. 옥소리 령. 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玲玲(영령, 옥이 울리는 소리), 玲玎(영정, 옥석이 울리는 소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酋(술 유)와 寸(手의 변형, 손 수)의 합자예요. 공손히 받들어야 할[寸] 술잔[酋]이란 의미예요. 지금 술잔 이란 의미는 樽으로 표기하고, 尊은 주로 '높이다'란 의미로 사용해요. 위 시에서는 술잔이란 의미로 사용했어요. 술잔 준. 높일 존. 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尊敬(존경), 尊嚴(존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調는 言(말씀 언)과 周(두루 주)의 합자예요. 의사가 잘 소통되어 화목하다란 의미예요. 言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周는 음을 담당하면서(주→조)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화목하여 사이가 긴밀하다란 의미로요. 일반적으로 '고르다'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고를 조. 調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調和(조화), 調節(조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罒(그물 망)과 能(능할 능)의 합자예요. 법망에 걸린 유능한 이를 관대하게 용서해 준다는 의미예요. 일반적으로 '파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파할 파. 罷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罷業(파업), 罷免(파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竹(대 죽)과 延(길 연)의 합자예요. 긴 대자리란 의미예요. '대'를 빼고 '자리' 혹은 '잔치'란 뜻으로 많이 사용해요. 자리 연. 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壽筵(수연), 經筵(경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沿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㕣(산속의 늪 연)의 합자예요. 물가를 따라 (내려) 간다는 의미예요. 물따라 갈 연. 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沿革(연혁), 沿岸(연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辶(걸을 착)과 堯(繞의 약자, 두를 요)의 합자예요. 에워싼다는 의미예요. 에워쌀 요. 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環遶(환요, 둥글게 에워 쌈), 圍遶(위요, 빙 둘러 앉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辶(걸을 착)과 自(부터 자)와 方(旁의 약자, 두루 방)의 합자예요. 자기가 있는 곳으로부터 걸어서 이를만한 곳, 즉 멀지 않은 주변 지역이란 의미예요. 가 변. 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周邊(주변), 邊塞(변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口(입 구)와 肅(엄숙할 숙)의 합자예요. 나즈막하게[肅] 입으로 가락있는 소리를 낸다는 의미예요. 휘파람 소. 嘯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虎嘯(호소, 범이 으르렁 거림. 영웅이 세력을 떨쳐 활약함을 비유), 嘯兇(소흉, 악한 무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言(말씀 언)과 者(놈 자)의 합자예요. 여러 대상[者]을 일컫는 말[言]이란 의미예요. 모두 제. 諸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諸君(제군), 諸般(제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시 한편을 가지고 침소봉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선생의 삶에 맞춰 견강부회한 것 같은 생각도 들구요. 시를 감상할 때 선입견을 배제하는게 중요한데 왠지 그와 반대로 시를 감상한 것 같은 느낌이….

 

 

여담 둘. 사진은  https://blog.naver.com/ldv1004/221091240335 에서 인용했어요. 낙관 부분은 '녹김인후선생시일수 소석 송형일(錄金麟厚先生詩一首 素石 宋亨日, 김인후 선생의 시  한 수를 쓰다. 소석 송형일)이라고 읽어요. 추사휘호대회에서 높은 상을 받은 작품이더군요. 시의 정서와 글씨체가 잘 어울리는 것 같긴 한데 글씨에 너무 힘이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작품도 훔쳐(?) 쓰는 주제에 객적은 품평까지 해서 혹 작가분의 노여움을 사는 건 아닌지…. (작가님, 혹 이 글을 보신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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