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성애(小兒性愛)를 바탕으로 한 액션 활극에서 '삶과 행복'을 읽는다면 다들 이렇게 말하겠죠? "웃기네!" 하지만 어린 아이가 무심코 내뱉는 말에도 이따금 보석같은 말이 있듯 - 본인은 아무 생각없이 말했겠지만 - 그런 영화에서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놓치기 아까운 장면이나 말이 있을 거예요.

 

"사는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원래 그래."

 

영화 '레옹'에 나오는 마틸다와 레옹의 대화예요. 집에서 얻어맞아 입가에 피멍이 든 마틸다. 아파트 계단 베란다에 앉아 건들거리다 지나가는 레옹에게 무심코 건넨 말에 레옹이 감정없이 대꾸하는 장면이에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저는 삶의 진상(眞相)을 읽었어요. 삶은 결코 장미꽃을 뿌려놓은 탄탄대로가 아니라 가시 덩쿨이 뒤엉킨 골목길이라는 것. 종교, 중에서도 불교의 그럴싸한 외피를 빌자면 '고(苦)' 그것이 바로 삶의 진상인 거죠.

 

이런 삶에서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자신의 동생을 죽인 마약 단속 반장 스탠스의 뒤를 쫓다 되려 스텐스에게 죽을 처지에 놓인 마틸다. 약에 취한 스탠스가 총을 어루만지며 으스스한 저음으로 말하죠.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지. 죽기 직전에야 삶이 고마운 걸 느끼는 거야." 스탠스의 대사에서 저는 행복의 진상을 읽었어요. 행복은 살아있음 그 자체를 느끼는 것이지 그 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이란 바로 이 행복을 각성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사진은 '신통묘용 운수반시(神通妙用 運水搬柴)'라고 읽어요. '신비롭고 오묘한 일은 바로 물 긷고 나무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해요. 살아 움직이는 일상의 평범함이 바로 신비롭고 오묘한 일이지 그 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다란 의미지요. 통념을 뒤집는 이 언급은 저 영화 '레옹'의 대사와 일맥상통해요. 고(苦)인 삶에서 살아있음 그 자체가 행복이듯 신비롭고 오묘한 일은 바로 이 몸이 살아 움직인다는 평범한 일 이라는 것, 이 둘은 표현만 다르지 기본 인식은 같아요. 행복이나 신비는 먼데 있지 않다. 바로 여기에 있다!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神은 示(보일 시)와 申(번개 신)의 합자예요. 만물의 시원(始原)이 되는 자, 곧 만물을 지어내는 자란 뜻이에요. 만물이 형상을 드러냈다는 의미의 示를 가지고 뜻을 표현했어요. 申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이 자는 번개처럼 두렵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라는 의미로요. 귀신 신. 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鬼神(귀신), 神秘(신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通은 辶(걸을 착)과 甬(湧의 약자, 샘솟을 용)의 합자예요. 막힘없이 솟아 나오는 샘처럼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다닌다는 뜻이에요. 통할 통. 通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通行(통행), 通路(통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妙는 女(여자 녀)와 少(적을 소)의 합자예요. 나 어린 소녀는 순진하고 귀여워 다들 좋아한다는 의미예요. 묘하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확장된 의미지요. 묘할 묘. 妙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妙技(묘기), 妙數(묘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運은 (걸을 착)과 軍(군사 군)의 합자예요. 군사들을 위한 각종 병기와 보급품을 이동시킨다는 의미예요. 운전할 운. 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運轉(운전), 幸運(행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搬은 扌(手의 변형, 손 수)와 般(돌릴 반)의 합자예요. 물건을 옮긴다는 뜻이에요.  扌로 뜻을 표현했어요. 般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돌리는 것은 곧 옮긴다는 의미니까요. 옮길 반. 搬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搬出(반출), 반입(搬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柴는 木(나무 목)과 此(이 차)의 합자예요. 땔 감이란 뜻이에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此는 음을 담당해요(차→시). 땔감 시. 柴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扉(시비, 사립문), 柴奴(시노, 땔 나무 하던 머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레옹'에는 이 외에도,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 괜찮은 대사들이 꽤 있어요. 그 중의 하나는 마틸다의 다음 대사예요.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해요." 화분을 갖고 다니는 레옹에게 마틸다가 하는 말이죠. 상대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 하여 나로 인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랑이란 의미인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와는 좀 다르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일리있는 말이에요. 상대나 내가 아파서 흔들린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고통이죠. 사랑의 이름을 가장한(?) 고통. 이런 점에서 진정한 사랑은 결혼 이후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봐요. 사진은 어떤 지인의 작품이에요. 방온거사(龐蘊居士, ? - 808)의 시 일부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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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2017-12-01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 아주 좋습니다. 찔레꽃님의 한자 실력도 그렇거니와 삶에 대한 내공이 놀랍습니다. 하긴 제 와이프도 언젠가 이런 말을 했지요. ˝여보, 행복이라는 건, 별 일 없어서 다소 따분한 느낌의 나날들이 아닐까?˝

깊은 산속의 도사님들만 도를 깨치는 게 아니라는 데 동의합니다. 속세에 살면서도 충분히 도를 깨칠 수 있지요. 영화 레옹의 하찮은 대사와 방온거사의 일언이 통하는 원리이죠.


찔레꽃 2017-12-01 15:56   좋아요 2 | URL
무심 선생님, 오발에 꿩 잡는 수도 있다죠? 그 격 아닐까요? ^ ^ 선생님의 격려성 칭찬이 제가 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한 편 좀 걱정되기도 합니다. 실망시켜 드릴까 봐. 블로그라는게 자유가 전제되야 하는데 선생님의 격려성 칭찬은 한편으로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 부담을 주는 양면이 있네요. 선생님께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텐도 말이지요. 하하. 제가 좀 워낙 소심해서.... 날씨가 추워집니다. 늘 건강 잘 챙기셔요~ 꾸벅.

무심 2017-12-0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하하. 제 글도 항상 잘 풀리는 게 아닙니다. 발표해 놓고 나서 나중에 후회할 때가 있다니까요. 그렇다 해도 ‘삶을 성실히 사는 방법‘으로써 글을 써서 블로그에라도 발표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거지요. 그 동안 제가 10편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면 나중에 반 가까이는 만족 못하고 있습니다.
찔래꽃님. 글쓰는 일에 너무 부담 갖지 않기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