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운탁월(烘雲托月)'이란 동양화 기법이 있어요. 달을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구름에 가탁해 달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달 주변의 구름을 어둡게 표현하여 달이 드러나게 하는 거죠.

 

 공자의 핵심 사상은 '인(仁)'인데, 그 정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죠. 묻는 이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답변했을 뿐 더러 그 조차 개념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이죠. 일례로 '인'을 묻는 안연에게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답해요. 자신의 올바르지 못한 욕구를 극복하고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 '인'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그 '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지 않아요. 마치 저 홍운탁월의 기법처럼 그저 무엇이 제거되어 달성된 그 지점이 '인'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죠.

 

 사진은 '단진범정 별무성해(但盡凡情 別無聖解)'라고 읽어요. 원래는 이 구절 앞에 수행지요(修行之要)란 말이 있는데, 여기서는 생략됐어요. 이 말까지 넣어 풀이하면 '수행의 알맹이는 범부의 생각을 떨어지게 할 뿐이지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있을 수 없다'라고 풀이해요(법정 스님 번역을 빌었어요).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나오는 말이에요. 여기서도 수행의 알맹이가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아요. 이 역시 홍운탁월의 기법처럼 '범부의 생각을 떨어지게 하면 그것이 수행의 알맹이다'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에요.

 

이런 표현은 언어의 한계를 인식한데서 비롯된 것 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관계'에 우선한 철학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모든 것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실상을 정의할 때 이런 정의 방식을 택한 것 아닌가 싶은 거죠. 사랑한다의 반대는 미워하다이고 미워하다의 반대는 사랑한다이죠. 그런데 사랑한다는 것을 그 자체로 '무엇무엇이 사랑한다이다'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미워함이 없는 것 그것이 곧 사랑이다'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거예요. 미워한다도 마찬가지겠죠. 이런 정의가 가능한 것은 둘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죠. 종교와 철학에서 중시하는 관념이 선과 악인데 동양의 종교과 철학에서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존재하지 않죠. 이는 선과 악이 상관 관계에 있다고 보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악의 이면이 선이고 선의 이면이 악이란 상관 관념하에서는 절대 악과 절대 선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낯선 한자를 살펴 볼까요?

 

은 人(사람 인)과 旦(아침 단)의 합자예요. 웃통을 벗는다는 의미예요. 人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旦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아침이 되어 동이 트면 사물의 형체가 명확히 드러나듯 웃통을 벗으면 그 같이 몸이 드러난다는 의미로요. 웃통벗을 단. 지금은 '다만'이란 뜻으로 주로 사용하는데, 이는 동음을 빌미로 뜻을 차용한 거예요. 지금은 웃통을 벗는 다는 의미를 袒으로 표기해요. 다만 단. 但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但只(단지), 但書(단서, 본문 다음에 그에 대한 어떤 조건이나 예외 따위를 나타내는 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皿(그릇 명)과 盡(燼의 약자, 탄나머지 신)의 합자예요. 타고 나면 남는 것이 없듯이 그릇 속의 음식물이 남김없이 다 비워졌다란 의미예요. 다할 진. 盡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盡力(진력),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乃(이에 내)와 一(한 일)의 합자예요. 첫 시작을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해요. 乃는 뜻을 연결지어주는 말이고, 一은 처음을 의미하는 말이지요. 무릇 범. '평범하다'란 의미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동음을 빌미로 뜻을 차용한 거예요. 평범할 범. 凡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平凡(평범), 凡例(범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冎(뼈발라낼 과)와 刂(刀의 변형, 칼 도)의 합자예요. 칼로 뼈에서 살을 발라내듯이 분해한다란 의미예요. 이 글자의 일반적 의미인 '다르다'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분해해서 구별했다란 의미로요. 다를 별. 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區別(구별), 別稱(별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耳(귀 이)와 呈(드러낼 정)의 합자예요. 귀로 소리를 듣고 실정을 이해하듯 온갖 사물의 실정에 통달했다란 뜻이에요. 그러한 경지를 '성스럽다'고 하지요. 성스러울 성. 聖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聖賢(성현), 聖經(성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角(뿔 각)과 刀(칼 도)와 牛(소 우)의 합자예요. 칼을 가지고 소의 머리에서 뿔을 해체한다는 의미예요. 풀 해. 解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解剖(해부), 解決(해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사진에 나온 글씨가 좀 그렇죠? ^ ^ 아는 분이 스마트 폰에서 제 폴더 폰으로 보냈는데 이것을 이메일로 옮겨 붙이다 보니 사진이 이렇게 됐어요. 그냥 옮겨 붙이면 화질은 좀 괜찮은데 글씨가 너무 작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확대하기를 택했더니 화질이 형편 없어진 거예요. 그런데, 처음엔 좀 이상했는데 자꾸 쳐다보니 나름대로 괜찮더군요. 그렇지 않은가요? 하하.

 

여담 둘. 이 사진의 내용을 가지고 글을 쓰기 위해 법정 스님의 『선가귀감』번역본을 구입했어요. 난해한 구절에 스님의 주석이 붙어있는데 단순한 글자 풀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 불교의 개탄스런 현실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어 흥미롭더군요. 아울러 스님의 대표 수필집으로 평가되는 『무소유』의 내용 원형도 이 주석에서 살펴볼 수 있었어요. 1,200원(원가) 짜리를 15,000원(판매가)에 샀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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