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지내는 집이 점점 줄어 든다고 하죠? 제사를 지내지 않는 명분은 대개 이런 걸 꺼예요. "아휴, 늦은 밤에 힘들게 음식 장만해서 뭐하려 제사를 지내. 제사의 의미가 뭐야?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것 아냐? 그저 좋은 날 택해 산소를 찾거나 식구들이 모여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면 되지 꼭 제사를 지낼 필요 있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맞는 말도 아닌 것 같아요. 의식 행위와 마음은 함께 붙어 다니는 것이기 때문이죠. 상대에게 공손한 태도를 취하면 마음도 공손해지죠. 행동은 거칠게 하면서 마음을 공손하게 갖기란 어렵잖아요? 제사라는 의식 행위를 가질 때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마음도 함께 갖게 되지, 제사라는 의식 행위를 폐하면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마음은 쇠할수 밖에 없을 거예요. 기성 세대는 제사 행위가 없어도 추모하는 마음을, 그간의 제사 행위에서 얻어진 결과로, 간직하겠지만 제사라는 의식 행위를 가져보지 못한 이후의 세대는 추모의 마음도 점점 희미하게 지닐 것 같아요.

 

옛 건물을 보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위 맥락과 같다고 보여요. 보수한 옛 건물을 통해 그 건물 주인이었던 이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기 때문일 거예요. 건물이 퇴락되거나 없어지면 그 건물의 주인이었던 이의 정신도 그같이 퇴락하거나 없어지지 않겠어요?

 

왼쪽은 사진은 임리정수호사적비(임리정수호사적비)라고 읽어요. 오른쪽 사진은 그 내용이고요. 임리정은 조선조 후기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 선생이 말년에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에요(아래 사진). 임리라는 말은 시경의 "여림심연 여리박빙(如臨深淵 如履薄冰: 깊은 연못에 임한 듯 살얼음판을 밟듯)"에서 따온 말로 행동거지를 조심한다란 의미예요. 예학의 대가가 머물던 집에 어울리는 이름인 듯 싶어요. 김장생은 율곡 이이에게 학문을 배우고 우암 송시열에게 학문을 전한 기호학파의 대가지만 실천적 유학 사상을 중시했던 분이죠.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책은 유학의 실천 윤리를 담은 '소학'이었어요. 후손들이 임리정을 수호한 것은 바로 이런 선생의 뜻을 계승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사진은 강경 처가에 갔다가 찍었어요.

 

 수호사적비의 내용을 읽어 볼까요?

 

 임리정사적 상재임리정기비 이후손이문학관광현 심근수호 청경대상현공 기기사각지석 자절충장군영철 중건임리정 변육릉지제 의팔괘지도 손참봉철수 경매대지 사재매수 증손용원 지방문화재지정 연사대수호 기공불소 금환종중 숭조지성 천고희사 고약기각석(臨履亭事蹟 詳載臨履亭記碑 而後孫吏文學官光鉉 甚謹守護 請經臺尙鉉公 紀其事刻之石 子折衝將軍永喆 重建臨履亭 變六稜之制 依八卦之度 孫參奉哲洙 競賣垈地 私財買收 曾孫容元 地方文化財指定 連四代守護 其功不少 今還宗中 崇祖之誠 千古稀事 故略記刻石)

 

 단기사천삼백십삼년 시월 일(檀紀四千三百十三年 十月  日)

 염수재 종중 김용주 근서(念修齋 宗中 金容儔 謹書)

 

 내용을 해석해 볼까요?

 

임리정의 사적은 임리정기 비문에 상세히 적혀 있다. 후손인 이문학관 광현은 이 정자를 매우 잘 보존했던 바, 경대 상현공에게 요청하여 정자의 사적을 기록하고 돌에다 새기는 일을 했다. 광현의 아들 절충장군 영철은 임리정을 중건했는데 육릉 형식을 변화시켜(건축 양식인듯 하다. 역자 주) 팔괘 형식을 따랐다(임리정 옆에 있는 팔괘정의 건축 양식을 이르는 듯하다. 역자 주). 광현의 손자 참봉 철수는 이 땅이 경매에 넘어가려 하자 사재를 들여 사들였다. 광현의 증손 용원은 이 건물을 지방문화재로 지정받게 했다. 4대를 연이어 이 임리정을 수호했으니 그 공히 적지 않다. 이제 또 종중에 헌납했으니 조상을 숭모하는 그 정성은 천고에 드문 일이다. 하여 그 대략을 써서 이 비석에 새긴다.

 

단기 4313년(서기 1980년) 시월 건물 보수한 것을 기념하며 종중 김용주 삼가 쓰다.

 

* 밑줄은 오역이 염려되는 부분입니다. 죄송.

 

현재 이 건물은 보존만 하고 있지 활용은 못하고 있어요. 건물은 사람의 훈기가 닿지 않으면 금방 퇴락하죠. 허물어져가는 빈집도 사람이 살면 그 상태에서 멈추는데 사람이 없어지면 금방 허물어지죠. 학생들의 체험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머물며 공부한 것을 학정으로 인정해주면 좋지 않을까요? 돌아가신 사계 김장생 선생도 그것을 바라지 않을까요? ^ ^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비석의 앞면(임리정수호사적비)에서 두어 자 알아 보도록 하죠. 뒷면 비문의 내용엔 낯선 한자들이 너무 많아서... ^ ^

 

은 臥(엎드릴 와)와 品(물건 품)의 합자예요. 위에서 몸을 구부리고[臥] 아래에 있는 것들을[品] 살펴 본다는 의미예요. 임할 임. 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臨時(임시), 臨瞰(임감, 내려다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尸(人의 변형, 사람인)과 彳(辵의 변형, 걸을 착)과 夊(辵의 변형, 걸을 착)과 舟(舃의 변형, 신발 석)의 합자예요. 사람이 신발을 신고 걸어간다란 의미예요. 밟을 리. 신 리. 履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履歷(이력), 履行(이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준다는 의미예요. 도와줄 적에 먼저 위로의 말을 하기에, 言(말씀 언)으로 뜻 부분을 삼았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보호할 호. 護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保護(보호), 護衛(호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발 자취란 의미예요. 足(발 족)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자취 적. 蹟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史蹟(사적), 奇蹟(기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임할 림    밟을 리    보호할 호    자취 적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時   奇(   )   (   )歷   (   )衛

 

3. '제사'에 대한 생각을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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