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http://www.sheetzone.co.kr/shop/item.php?it_id=pp159 >
딸 아이는 프랑스에 가있어요.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자퇴한 후 일년간 집에서 홍스쿨링 비슷한 것 하다 프랑스로 어학 연수 떠났어요. 1년 정도 공부했고, 어학 시험에 통과해 올해 말에 대입 원서를 넣을 예정이에요. 전공은 미술사나 미학 계통을 할 예정이구요. 비용은, 생각보다 많이 안들어요.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해외 유학생에게도 생활 지원비를 주거든요. 대학에 들어가면 비용은 더 줄어들 거예요. 학비가 거의 안드니까요.
아들 아이는 고등학교 과정 대안학교 3학년이에요. 여행을 테마로 하는 학교라 3년 동안 국내 여행, 해외 여행 등을 다녔어요. 비용은, 생각보다 좀 들어요. 그러나 과외 시킨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비용도 아니예요. 아들 아이는 고졸 자격증을 얻을 수 없어요. 비인가 대안학교이기 때문이에요. 검정고시를 칠 예정이에요. 졸업 후에는 군대 갔다 온 후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 비용을 번 뒤 남미에 갈 예정이에요.
자랑이냐구요? 음, 자랑처럼 들린다면, 자식 교육에 그리 실패한 것은 아니네요. ^ ^ 이런 질문 자체가 어쩌면 자식 교육에 대해 실패했다는 생각을, 적어도 지금까지는, 안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입시에 목매지 않게 키웠어요. 학원도 본인이 보내 달라고 할 때 보냈고, 어떤 학원은 보내 달라는 걸 안보내기도 했어요. 대신 책은 많이 사줬죠. 이런 말을 하면서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하렴. 아빠가 빚을 내서라도 사줄게!" 또래 아이들에 비해 책은 비교적 많이 읽은 편이에요. 그러나 책 많이 읽은 것이 꼭 성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더군요. 아들 아이는 성적이 별로 좋질 않았어요. 그러나 둘 다 자기 생각이 분명해진 것은 책 읽은 효과인 것 같아요. 딸 아이가 프랑스로 가고 아들 아이가 대안학교를 택한 것은 독서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이런, 서설이 너무 길었네요. 사진의 한자는 무한불성(無汗不成) 무인불승(無忍不勝) 이라고 읽어요. 뜻은 옆에 나와있는 대로예요. "땀을 흘리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고, 인내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다." 좋은 내용이긴 한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땀을 흘리지 말래도 땀을 흘릴 것이고, 자신이 참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참지 말래도 참을 것이다. 성공과 승리는 그 부산물에 불과하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은 아무리 땀을 흘리고 싶어도 땀이 나지 않을 것이고, 강요에 의해서 참아야 된다면 참기 어려울 것이다. 설령 억지로 땀을 흘리고 참아 성공을 하고 승리를 해도 그 성공과 승리는 공허할 것이다." 무한불성과 무인불승은 그 앞에 '자발(自發)'이란 말이 전제될 때 의미를 지니지, '타의(他意)'란 말이 전제되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왜 자식 얘길 했을까요? 저는 성장기 중고등학교 시절에 너무 타의에 의한 땀과 인내를 많이 쏟았어요. 그래서 성취도 있었지만 왠지 공허했어요. 그래서 자식만큼은 성장기에 타의의 강요에 의한 땀과 인내를 쏟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스스로 원하는 일을 만나면 강요하지 않아도 땀과 인내를 쏟으리란 생각 때문이었지요. 이런 생각의 결과로 만들어진 아이들이 지금의 제 아이들이에요.
때로는 '아이들이 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할 때도 있긴 해요. 일반적으로 정해진 코스를 밟지 않기 때문이죠. 정해진 코스대로 가면,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뭔가 잡힐 것 같은 분명함이 있는데 우리 아이들 같은 경우는 그런 분명함이 없거든요. 그래도 아이들이 현재 자신들의 삶에 만족해 하는 것을 보면 그런 걱정은 나만의 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가 아들 아이에게 이런 고민을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그러더군요. "아빠, 돈이 많고 직위가 높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 대안학교 졸업생들이 비록 출세한 사람은 없지만 나름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요." 순간 누가 아빠이고 누가 아들인지 모르겠더군요. 속으로 생각했어요. '대안학교 보내길 잘했구나!' 딸요? 딸은 그런 얘기 한적은 없지만, 생활로 그런 것을 보여주죠. 생활비를 보내면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왜 이렇게 많이 보내세요!" 넉넉한 생활비가 아님이 분명한데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지요.
딸 아이나 아들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제 밥벌이를 할지는 미지수예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코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지 않고 나름 자신의 삶에 프라이드를 가지면서 살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그러면 적어도 성취는 있지만 공허하게 살고 있는 제 아비보다는 나을 것 같아요. 아비를 넘어서면 그게 성공이요, 자식 교육 잘한게 아닐까요?
자식 자랑 엄청했네요. 불편한 내용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꾸벅.
오늘은 읽기에 특별히 어려운 한자도 상세히 설명할 한자도 없는 듯 하여 한자 설명은 생략하겠어요. 괜찮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