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마디 하시죠?"
"힘들 때 상담도 해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이렇게 떠난다니 너무 아쉽네요. 그래도 우리 만남은 순수한 마음으로 맺어진 것이었기에 떠나신다해도 다시 만날 것 같습니다. 이 자리는 정말 우리에게 딱 맞는 자리 같습니다. 벽지를 한 번 보세요. 차시유정일종화(此是幽貞一種花) 불구문달지연하(不求聞達只煙霞), 이 그윽하고 올곳은 한 송이 꽃/ 남의 알아줌 구하지 않고 오직 바라는 건 안개와 노을 뿐. 순수한 마음으로 만난 우리 모임의 송별연에 잘 어울리는 글귀예요. 아울러 떠나는 ㅇㅇㅇ님을 그대로 대변한 글귀이기도 하구요. 술집 정말 잘 고른 것 같아요(웃음). ㅇㅇㅇ님, 모쪼록 건강하시고 잘 지내시기를 기원드려요."
"(일동) 와~!"
"(아내) 유~후! 제 남편이에요(웃음)."
"(일동) 와 하하핫!"
사진은 지인의 송별연 술자리에서 찍은 거예요. 흡사 동양화 같죠? 그런데 동양화가 아니고, 벽지예요. 벽지에 쓰인 글씨를 한참 음미하고 있는데 송별연 사회를 보던 이가 제게 덕담을 하라고 하기에 얼떨결에 벽지의 글씨와 연관지어 덕담을 하게 됐어요. 하고 보니 나름 괜찮은 덕담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더군요. ^ ^
사진의 글씨나 내용이 심상치 않아 집에 와 인터넷을 찾아 봤어요. 아니나 다를까 글씨는 추사체이고 시는 청나라 판교(板橋) 정섭(鄭燮)이란 이의 작품이더군요(아래 사진 참고). 그런데 벽지의 글씨와 추사의 글씨가 동일하지 않아요. 벽지의 글씨는 추사체을 모방하여 쓴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가지 다른 점은 매화 가지를 그렸다는 점이에요. 정섭의 시에서 읊은 꽃은 난초인데 말이지요. 그런데, 제게는 왠지 추사의 난초 그림이나 글씨보다 벽지의 매화 그림과 모방 글씨가 더 멋져 보여요. 제게 덕담의 좋은 소재를 제공해줘서 그런가봐요. ^ ^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bgjeong45/150166017082>
최근 주변에 정년보다 일찍 퇴직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요. 이번 송별연의 주인공도 조기 퇴직하는 벗인데, 왠지 남의 일 같지 않더군요. 직장 생활 초기만해도 연배 있는 분들이 꽤 계셨던 것 같은데, 막상 제가 그분들 연배가 되고 보니, 주변에 제 또래들이 별로 눈에 띄질 않아요. 조기 퇴직하는 이들이 느는데는 이런 이유도 있지 않나 싶어요. 직장에 또래가 없는 것처럼 쓸쓸하고 힘든 일도 없으니까요.
이번에 퇴직하는 벗은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닌 듯 싶어요. 언젠가, 직장에서 또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푸념아닌 푸념을 한 적이 있거든요. 아마도 벗은 그나마 또래가 있는 지금 아쉬움 속에서 퇴직하는 것이 후일 또래도 없는 쓸쓸함 속에서 퇴직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퇴직하지 않았나 싶어요. 표면적인 이유는 '그냥 쉬고 싶다'였지만요.
사진의 한자를 뜻과 음으로 읽어 볼까요?
此是幽貞一種花 이 차/ 이 시/ 그윽할 유/ 곧을 정/ 한 일/ 씨앗 종/ 꽃 화
不求聞達只煙霞 아니 불/ 구할 구/ 들을 문/ 도달 달/ 다만 지/ 연기 연/ 노을 하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알아 볼까요?
幽는 山(뫼 산)과 幺(작을 요)의 중첩 자가 합쳐진 거예요. 작은 것은 그 자체도 알아보기 힘든데, 깊은 산 중에 들어 있어 더더욱 알아보기 힘들다는 의미예요. 이런 것을 '그윽하다'고 하지요. 그윽할 유. 幽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幽靈(유령), 深山幽谷(심산유곡)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貞은 卜(점 복)과 貝(조개 패)의 합자예요. 예물[貝]을 바치고 점을 친다는 의미예요. 점칠 복. '곧다'라는 의미로도 쓰이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점을 칠적에는 항상 사심을 버리고 바른 마음[곧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요. 지금은 주로 이 의미로 사용하죠. 곧을 정. 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貞淑(정숙), 貞烈(정렬, 정조나 절개를 지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種은 본래 심고 한참이 지나야[重: 거듭 중] 익는 벼[禾: 벼 화]라는 의미예요. 늦벼라는 뜻이지요. '씨앗'과 '심다'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모두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씨앗 종, 심을 종. 종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種子(종자), 種德(종덕, 다른 사람에게 은덕이 될 일을 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達은 辶(걸을 착)과 羍(아름다울 달)의 합자예요. 길을 갈때 서로 길을 양보하여 부딪히는 일이 없다는 뜻이에요. 辶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羍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서로 길을 양보하여 부딪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란 의미로요. 통할 달. 達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通達(통달), 到達(도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煙은 火(불 화)와 垔(막을 인)의 합자예요. 불을 피울 때 발생하는 연기란 의미예요. 火로 뜻을 표현했어요. 垔은 음을 담당하면서(인→연)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연기는 가별게 널리 펴져 사방을 꽉 채운다[막음]는 의미로요. 연기연. 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吸煙(흡연), 煙氣(연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霞는 雨(雲의 약자, 구름 운)와 叚(붉을 가)의 합자예요. 석양 빛을 받아 붉은 색을 띄는 구름 기운이란 의미예요. 노을 하. 霞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霞洞(하동, 신선이 사는 곳), 霞彩(하채, 노을의 아름다운 빛)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幽 그윽할 유 貞 곧을 정 種 씨앗 종 達 도달 달 燃 연기 연 霞 노을 하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通( ) 吸( ) ( )洞 ( )子 ( )淑 ( )靈
3. 다음 시를 읽고 풀이해 보시오.
此是幽貞一種花 不求聞達只煙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