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http://cafe.daum.net/modu2003 >

 

 

"(그의 시는) 기운이 따사롭고 지취가 뛰어나며 빛이 곱고 말이 담담하다. 그 곱기는 남위와 서시가 성복하고 밝은 화장을 한 듯하고, 그 온화함은 봄볕이 온갖 풀을 덮은 듯하며, 그 맑음은 서리 같은 물줄기가 큰 골짜기를 씻어 흐르는 듯하고, 그 울림의 통량함은 높은 하늘에서 학 타고 피리부는 신선이 오색 구름 밖을 떠도는 듯하며…"

 

고려시대 부터 유행하던 송시풍 - 의(意)를 중시하고 조탁(彫琢)을 경계하는 - 은 조선 중기에 이르러 당시풍으로 바뀌게 되죠. 이 당시풍을 주도했던 사람은 고죽 최경창, 옥봉 백광훈, 손곡 이달인데, 이들을 흔히 3당시인이라고 부르죠. 위 인용문은 손곡 이달의 제자였던 교산 허균이 스승의 문집 - 손곡집 - 서문에 쓴 내용이에요. 이달 시풍의 특징을 언급한 것인데, 확대하면 당시풍의 일 특징을 언급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과거의 문학비평은 촌평과 비유로 이루어지는 인상 비평이라 그 내용을 명확히 인지하기가 쉽지 않아요. 주관성이 강하기 때문이죠. 위 허균의 비평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이달의 시가 섬세하고 청신(淸新)하며 온화한 느낌을 주는 시라는 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이달의 시비예요. 표제에는 손곡시비(蓀谷詩碑)라고 되어 있어요. 시의 제목은 '예맥행(刈麥行, 보리를 베며)'으로. 먹을 것이 없어 힘들게 사는 한 농가의 모습을 그렸어요. 일종의 현실 비판적인 시예요. 그런데 시를 읽어보면 왠지 곤궁한 현실의 고통스런 느낌보다는 처연한 슬픈 느낌이 더 강해요. 그의 장기인 당시풍으로 지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시어만 봐도 전가(田家), 우중(雨中), 맥(麥), 아자(兒子) 등이 사용되어 전원산수시에 어울릴법한 시어들이 주로 사용되고 있어요.

 

그러나 이 시가 처연한 슬픔을 자아낸다고 현실 바판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오히려 처연한 슬픔을 자아내기에 곤궁한 현실이 더 절절하게 느껴지거든요. 마치 엉엉 우는 모습보다 눈물만 흘리며 소리죽여 우는 것에 더 안타깝고 절절한 느낌이 드는 것 처럼 말이지요.

 

이달은 불행하게도 기생의 몸에서 난 서자였어요. 원천적으로, 신분 사회에서, 자신의 뜻을 펴기 어려운 삶을 타고난 사람이었지요. 한때는 벼슬을 한적도 있지만 그리 오래 하지는 않았고 평생 떠돌이로 살며 여관에서 생을 마쳤어요. 시대가 껴안지 못한 불우한 인재였지요. 이달은 자신의 작품을 모아 두지도 않았어요. 손곡집은 사후 그의 제자였던 허균이 자신이 암기하고 있던 것과 한 인사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모아 펴낸 거예요.

 

허균은 손곡집 서문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어요: "위 아래 수백 년에 이르러 여러 노대가를 평하고서 옹[이달]을 언급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참월하여 한 시대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으나 오래되면 의논은 정해질 것이니 어찌 한 사람도 말을 아는 자가 없겠는가?" 뛰어난 문재를 가졌으나 불우하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스승에게 바치는 최대의 헌사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이상의 '손곡집' 서문 내용은 한국고전번역원의 '손곡집' 번역 인용 참조).

 

시비의 한자를 읽어 볼까요?

 

田家少婦無夜食   밭 전/ 집 가/ 적을 소/ 아내 부/ 없을 무/ 밤 야/ 먹을 식  

雨中刈麥林中歸   비 우/ 가운데 중/ 벨 예/ 보리 맥/ 수풀 림/ 가운데 중/ 돌아올 귀

生薪帶濕煙不起   날 생/ 섶 신/ 띠 대/ 축축할 습/ 연기 연/ 아니 불/ 일어날 기

入門兒子啼牽衣   들 입/ 문 문/ 아이 아/ 아들 자/ 울 제/ 끌 견/ 옷 의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乂(벨 예)와 刂(칼 도)의 합자예요. 칼을 가지고 초목을 벤다는 의미예요. 벨 예. 刈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刈草(예초), 刈穫(예확, 곡물을 베어 거둚)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艹(풀 초)와 新(새 신)의 합자예요. 땔감으로 쓰기위해 베어 낸 생[新] 초목이란 의미예요. 섶 신. 薪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採薪(채신, 땔 나무를 함), 薪炭(신탄, 땔나무와 숯)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옷자락을 겹치게[llll] 묶고[一] 양 끝을 가지런히 늘어뜨린[巾巾] 큰 띠라는 뜻이에요. 띠 대. 위 시에서는 띠처럼 띄고 있다란 의미로 사용됐어요. 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革帶(혁대), 帶狀疱疹(대상포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본래 물이름이에요. 산동성 우성 지역의 동무양이란데서 발원하여 바다로 들어가는 물을 가리켜요. 지금은 물이름 보다는 '축축하다'란 뜻으로 주로 사용하죠. 축축하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濕의 수량이 풍부해 주변 지역을 축축하게 만든다란 의미로요. 氵로 뜻을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으로 음을 표현했어요. 축축할 습. 濕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濕氣(습기), 除濕(제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소의 코에 고삐를 매어 끌고 간다란 뜻이에요. 牛(소 우)로 주된 뜻을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고삐를 그린 것으로, 보조 뜻을 표현했어요. 끌 견. 牽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牽牛(견우), 牽引(견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刈 벨 예   薪 섶 신   帶 띠 대   濕 축축할 습    牽 끌 견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除(   )   (   )引   (   )炭   (   )草   (   )狀疱疹

 

3. 다음 시를 읽고 풀이해 보시오.

  

   田家少婦無夜食  雨中刈麥林中歸  生薪帶濕煙不起  入門兒子啼牽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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