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 오늘 밤 천문을 본 결과 내 수명이 다했구나. 보아라. 삼대성좌(三臺星座)에 객성(客星)의 빛이 강하고 주성은 희미하니 주성을 보좌하는 별들도 빛을 잃고 있다. 이는 곧 내 수명이 다했다는 의미다."

 

 

 

삼국지에 나오는 한 대목이에요. 오장원에서 천문을 본 제갈량이 한 말이죠. 이 말 이후, 아시는 바와 같이,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숨을 거두죠. 소설 속에 나오는 대사라 실제인지 아닌지는 불명확하지만 제갈량이 천문을 보긴 봤을 거예요. 그리고 만일 제갈량의 말처럼 그 때 삼대성좌에 객성이 들었다면, 당대 천문 지식에 의거, 무슨 변고가 생긴 것으로 인식했겠지요. 설령 그게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할지라도요.

 

 

 

여기 제갈량의 말에 나오는 삼대성좌와 객성은 무슨 별일까요? 서양 별자리 이름으로는 큰 곰 자리의 일부에 해당하는 별이 삼대성좌이고, 객성은 혜성을 가리켜요. 그런데 제갈량은 왜 자신의 운명을 삼대성좌에서 본 것일까요?

 

 

 

동양의 별자리는 흔히 3원(垣) 28수(宿)라고 하죠. 3원은 3개의 영역이란 의미인데, 하늘을 북극성을 중심으로 세계의 영역으로 나눈 것을 말해요. 천제가 거주한다고 보는 자미원(紫微垣), 신하들이 거주한다고 보는 태미원(太美垣), 그리고 백성들이 거주한다고 보는 천시원(天市垣)이 그것이죠. 제갈량은 신하이므로 신하들이 거주한다고 보는 태미원에서 자신의 별자리를 본 것이고, 중에서도 정승에 해당하는 지위에 있었기에 삼대성[삼정승 별자리]에서 자신의 운명을 예측했던 것이지요. 28수는 하늘의 별 자리를 사방(四方) 7개씩으로 나눈 것이에요. 각 방위의 별들은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현무(북)의 형상을 한 것으로 보고 있죠. 아울러 이들 별자리는 각 계절의 별자리이기도 해요. 청룡좌는 봄, 백호좌는 가을, 주작좌는 겨울, 현무좌는 여름의 별자리이죠.

 

 

 

하늘의 별자리와 지리(地理) · 인사(人事)를 연관시킨 것이 동양의 전통 천문학이죠. 이상의 별자리에서 특이 현상이 발견될 때 지리와 인사에도 그에 상응하는 특이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죠. 과거 지식인들에게 천문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제갈량도 예외는 아니었겠지요.

 

 

 

그런데 위에서 얘기한 동양의 별자리 3원 28수를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만든 그림이 있어요. 이를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라고 하죠(오른 쪽 사진). 

 

'3원 28수도'라고 하면 쉬울 것을 왜 이리 어려운 이름을 붙인 것일까요? 당연히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천상'은 하늘의 형상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하늘의 조짐을 읽는다는 의미예요.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하늘에 나타난 조짐을 해석할까요? 그걸 알려주는 것이 '열차'와 '분야'예요. 열차는 목성의 공전 주기를 따라 하늘의 적도를 12개의 구역으로 나누었다는 의미이고, 분야는 땅을 나누었다는 의미예요. 하늘과 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 인식에 입각해 하늘의 별자리를 일대일로 땅에 대입시킨 것이지요. 하여 어떤 별자리에 특정한 천문현상이 생기면 그에 해당하는 지역(혹은 사람)이 영향을 받는다고 해석했던 것이지요. '도'는 그림이란 의미예요. 3차원의 천구를 2차원의 평면에 위치지워 복잡한 천체의 움직임을 한눈에 알아볼수 있게 했다는 뜻이지요(이상 손영달의 '별자리 서당' 99쪽 참조 정리).

 

 

한마디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에 지상의 영역을 반영시켜 지상의 조짐을 파악하기 위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설이 길었네요. 왜 이렇게 길었냐구요? 사진의 주인공과 천문이 관계있기 때문이에요. 사진은 '송곡서원'이라고 읽어요. 잘 아시죠? ^ ^ 서산시 인지면에 있는데, 이 곳엔 정신보 이하 몇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요. 그 중 한 분이 류방택(柳方澤)이란 분인데, 이 분은 여말 선초에 살았던 분으로 천문에 일가견이 있던 분이에요. 여말에 천문을 담당하는 서운관이란 관청에서 일을 했었지요. 조선이 개국하고 신정부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는데, 부득이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관계된 일 때문이었지요.

 

 

 

선초,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 어수선할 때 태조 이성계에게 송악의 한 사람이 '천상열차분야지도'란 것을 바쳐요. 하늘에 있는 별자리를 그린 지도였지요. 본래 석각으로 돼있던 것을 탁본하여 바친 것이었다고 해요. 태조 이성계는 이를 마치 황하에서 나왔다는 '하도'나 '낙서'처럼 생각하여 새왕조를 기리는 길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쉽게도 원본 석각이 분실되어 찾지 못했다고 해요. 하여 당대의 엘리트였던 권근 등에게 명하여 이를 석각으로 만들게 했어요.

 

 

그런데 권근 등이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미비한 점이 있음을 발견 수년의 연구를 통해 바로 잡고 보완하여 태조 4년에 석각을 완성해요. 이 때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보완에 참여했던 일군의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류방택이에요. 신정부의 강력한 요청으로 부득이 참여하게 됐지요.

 

 

한동안 류방택은 권근 휘하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소소한 부분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 졌는데, 최근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수정 보완 작업을 실제적으로 주도한 사람으로 재평가되고 있어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수정하게 된 것은 진상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가 당시의 별자리와 위치가 달랐기 때문인데,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천문을 다시 측정했고 이 일을 류방택이 맡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재평가를 반영하여 송곡서원 옆에는 '류방택 천문 기념관'이 세워졌어요(아래 사진).

 

 

하늘(의 별자리)과(와) 지리 · 인사를 연결지웠던 천문의 전통은 단절됐지요. 흔히 단절된 전통에는 '비과학적'이란 딱지를 붙이죠. 그렇다면 이런 천문 전통도 당연히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단정짓겠죠? 

 

 

 

 삶이란 의미를 부여할 때 삶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생존에 불과해요. 마찬가지로 천문도 의미를 부여할 때 천문이지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별의 반짝임에 불과해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로 하늘(의 별자리)에 의미를 부여하든, 3원 28수로 의미를 부여하든 어떤 식으로라도 하늘(의 별자리)에 의미를 부여할 때 하늘(의 별자리)이(가) 우리에게 의미를 지닐 거예요.

 

 

 

그렇다면 하늘과 지상의 삶을 연결지었던 과거의 천문 전통은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고 되려 과학적인 것이 아닐까요? 과학적인 것이 꼭 원인과 결과 그리고 수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송곡서원(松谷書院)과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 나온 한자 중 낯선 자를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은 阝(언덕 부)와 完(완전할 완)의 합자예요. 사방을 언덕처럼 에워싼 담이라는 뜻이에요. 完은 음을 담당하면서(완→원)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담을 잘 쳐서 완벽하게 보안을 유지하게 됐다란 의미로요. 집이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사방을 담으로 잘 에워 싼 집이란 의미로요. 집 원. 院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病院(병원), 院長(원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코끼리의 옆 모습을 그린 거예요. 맨 위는 코, 그 밑은 두 귀, 이하는 몸체와 네 다리 그리고 꼬리를 그린 거예요. 형상이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코끼리 혹은 코끼리를 닮은 모습이란 의미로요. 형상 상. 지금은 형상 상을 像으로 표기하죠. 象과 像은 통용해요. 象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象牙(상아), 想象(상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刂(칼 도)와 冎(살발라낼 과)의 합자예요. 분해해 놓았다란 의미예요. 칼로 살을 발라내어 뼈와 분리시켰다란 뜻으로 분해의 의미를 표현했지요. 벌일 열. 列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列擧(열거), 列傳(열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欠(빠질 결)과 二(두 이)의 합자예요. 차선이란 의미예요. 최고가 되기에 뭔가 빠져있어 최고가 되지 못하고 두번 째가 되었다란 뜻으로 차선이란 의미를 표현했지요. 차례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차선은 두번 째 차례란 의미로요. 차례 차. 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次善(차선), 次席(차석)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里(마을 리)와 予(나 여)의 합자예요. 외곽지대[교외]란 의미예요. 도성으로부터 백리 떨어진 곳을 교(郊)라 하고, 이 바깥을 野라고 해요. 里로 뜻을 표현했고, 予는 음을 담당해요(여→야). 들 야. 野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野黨(야당), 野人(야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口(에워쌀 위)와 嗇(막힐 색)의 합자예요. 도모한다란 의미예요. 일의 진행이 도중에 막히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한다란 뜻으로 도모한다란 의미를 표현했지요. 그림이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어려운 일에 대비하기 위한 사전 계획을 나타낸 그림이란 의미로요. 그림 도. 圖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圖謀(도모), 地圖(지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집 원    형상 상    벌일 렬   次 차례 차    들 야    그림 도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席   (   )人   想(   )   (   )擧   (   )長   地(   )

 

 

 

3. 자신의 별자리를 소개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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