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이거 먹을게 없구나. 상을 물려라!"
신임 현감은 아전들에게 호통을 쳤어요. 아전들은 당황해서 부랴부랴 새 상을 차렸지요. 그러나 현감의 호통은 여전했어요. 아전들은 땀을 뻘뻘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지요. 그러자 현감이 말했어요. "내가 먹을 것은 오곡밥 한 그릇과 나물국 한 그릇이다!" 아전들은 어리둥절 했어요. 혹시 자신들을 시험하는 것 아닌가 싶었던 거지요. 어리둥절해 하는 아전들을 향해 현감이 다시 말했어요. "어허, 못들었는가? 내가 먹을 것은 오곡밥 한 그릇과 나물국 한 그릇이라니까!" 곧바로 내온 오곡밥 한 그릇과 나물국 한 그릇. 현감은 더없이 맛있게 먹었어요. 아전들은 신기한 눈초리로 신임 현감을 바라봤어요.
57살. 선조 6년. 토정 이지함은 생애 첫 관직으로 포천 현감을 제수 받았어요. 새로이 등극한 선조는 사화로 얼룩진 정치를 일신하기 위해 명망있는 재야 인사를 관직에 등용했어요. 토정 이지함도 이 때 발탁되었지요. 부임 첫 날 성대한 상차림을 대하고 토정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가슴이 아팠어요. 일개 현감이 이렇게 성찬을 대한다면 그 위의 벼슬아치들은 어떨 것인가 하는 생각과 재야에 있으면서 수없이 목격한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성찬은 자신이 먹을 음식이 아니었어요. 하여 먹을게 없다고 말했던 것이지요. 토정은 포천 현감으로 재직하는 동안 오곡밥 한 그릇과 나물국 한 그릇의 식사를 고수했어요.
지난 주말 보령가는 길에 토정 이지함 선생의 묘소를 찾았어요.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분이라 한 번 들려보고 싶더군요. '비결'의 주인공은 어떤 터에다 묘를 썼을까 궁금했어요. 선생의 묘소는 풍수지리에 일자무식인 제가 보기에도 좋아 보이더군요. 단순히 주변 지역을 정화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어요.
선생의 묘소는 일종의 가족 묘지인데, 선생이 생전에 잡아놓은 터라고 해요. 어머니를 이장하면서 조성하게 됐다는군요. 사진(왼쪽)에 보이는 산소가 바로 토정 선생의 어머니 산소예요. 토정 선생의 묘소는 뒷편에 있지요. 선생은 어머니를 이곳에 이장하면서 자신과 형제들의 득남 그리고 조카 중 한 명이 영의정에 오를 것을 예견했는데 실제 그 예언대로 실현되었다고 해요.
그러나 제가 토정 선생의 묘소를 찾으면서 감탄한 것은 그런 예언이나 묘터의 훌륭함 때문이 아니라 선생의 묘비명 때문이었어요(위 사진).
토정선생이공지묘(土亭先生李公之墓). 토정 이지함의 묘. 곤고한 백성들이 생각나 진수성찬을 마다하고 오곡밥 한 그릇과 나물국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웠던 그의 행동과 잘 어울리는 묘비명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조그만 벼슬 자리를 얻어도 묘비명에 치렁치렁 써대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신선한 묘비명인지요.
그런데 자신의 묘비명은 소박하게 썼지만 부인의 묘비명은 극진하게 썼어요. 공인완산이씨(公人完山李氏) 부좌(祔左). 공인은 정 6품이나 종 6품 벼슬을 지낸 관리의 부인에게 내리던 호칭이에요(부좌(祔左)란 돌아간 이를 왼쪽에 모셨다란 의미예요). 자신의 묘비엔 아무런 직책을 쓰지 않았지만 부인에게는 벼슬을 지낸 이의 아내였다는 것을 써주어 섭섭치않게 해줬어요. 이 역시 곤고한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안일을 뒤로 미뤘던 그의 행동과 일치하는 일이에요. 이런 묘비명이 생전에 그가 미리 말해 두었던 것인지 아니면 후인이 그렇게 한 것인지 알 길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삶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묘비명이란 거예요.
토정 이지함은 기인과 예언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은 대단한 현실 개혁가 였어요. 비록 우여곡절로 현실 정치에 몸담지 않았지만 ― 그가 현실 정치에 몸 담은 것은 생애 말년의 일이에요. 포천 현감으로 1년, 아산 현감으로 3개월을 봉직했지요 ― 조정 내외의 주요 인사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고 당대 조선을 개혁할 혁신적인 방안 ― 상공업의 진흥과 자원 개발 ― 을 갖고 있었어요. 말년에 그가 유일(遺逸, 숨은 인재)로 천거된 것은 그의 이런 면모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그가 가졌던 개혁안은 그가 온 몸으로 현실과 부딪히며 배운 것들이었어요. 기인이나 예언가로서의 면모는 이런 과정에서 나온 부스러기라고 볼 수 있어요. 포천 현감으로 부임하며 보인 에피소드는 그가 온 몸으로 현실을 체험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일이지요. 하지만 그의 개혁안은 당대에 수용되지 않았죠. 만일 그의 개혁안이 당대에 수용되었다면 우리는 토정을 달리 기억할 거예요. 기인이나 예언가가 아닌 개혁 정치가로.
오늘은 묘(墓) 한 자만 살펴 보도록 하죠. 다른 한자들은 많이 익숙할 것 같아서. 墓는 土(흙 토)와 莫(暮의 약자, 저물 모)의 합자예요. 흙은 쌓아 올리지 않고 평지와 동일한 높이로 만든 무덤이란 의미예요. 土로 뜻을 나타냈지요. 莫는 음을 담당하면서(모→묘) 뜻도 일 부분 담당하고 있어요. 시신을 묻은 무덤은 으슥하단 의미로요. 무덤 묘. 墓가 들어간 한자는 무엇이 있을까요? 墓地(묘지), 墳墓(분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오늘은 정리 문제가 필요 없겠죠? ^ ^ 다음 번엔 토정 선생의 시 한수를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