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http://media.daum.net/culture/art/newsview?newsid=20061005135311895
"형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어디 신성한 부처님 앞에서 술과 고기를..."
"아, 이 사람아, 내가 살아서는 왕의 형이고 죽어서는 부처의 형이 될 사람인데 꺼릴게 무에 있단 말인가!"
"..."
양녕대군의 왕형불형(王兄佛兄) 고사예요. 양녕대군이 사냥해 온 짐승을 가지고 출가한 동생 효녕대군의 수도처에서 파티를 열자 효녕대군이 난색을 표하며 뭐라고 하니 거기에 대꾸했다는 일화지요. 여기서 왕은 동생인 충녕대군, 곧 세종이에요. 이 일화는 양녕대군의 탈속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예요. 살아있는 절대 권력[왕]과 정신적 절대 권력[부처]을 뛰어 넘는 기개를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그의 이런 면모가 예정됐던 왕위 계승을 사양(혹은 탈락)하게 만들었을 거예요.
사진의 내용은 양녕대군의 시예요. 제목이 "묘향산의 스님 시축에 쓰다(題香山僧軸)"인데 묘향산에 기거하는 산승의 시문에 발문격으로 쓴 시가 아닌가 싶어요.
山霞朝作飯 산하조작반 산 노을로 아침 밥 짓고
蘿月夜爲燈 나월야위등 솔 숲 달로 등불을 삼네
獨宿孤庵下 독숙고암하 홀로 외로운 암자에서 기거하나니
猶存塔一層 유존탑일층 함께 있는 건 탑 하나 뿐
자연과 일체가 되어 홀로 살아가는 산승의 모습을 그렸어요. 마지막 구절의 '猶'는 홀로 사는 산승의 고적한 생활을 강화한 절묘한 시어예요. 번역을 '~뿐'이라고 했는데 속에 담긴 미묘한 의미를 담아내기엔 부족한 감이 있어요.
스님은 고적하게 살아가지만 그리움의 애욕에 흔들리지 않아요. 그것은 탑으로 상징되고 있지요. 함께 있는 대상은 바로 해당자의 분신이라고 할 터인데, 여기 탑은 바로 산승의 분신이라고 볼 수 있지요. 산승의 분신이 흔들리는 물체가 아니라 제 자리를 지키는 탑이라는 것은 바로 산승의 마음이 그리움의 애욕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에요. 스님의 시축에 쓴 최고의 상찬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무릇 상찬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상찬의 말이 하나도 없지만 더없는 상찬을 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모든 시는 그것이 비록 자신이 아닌 타인(물)을 대상으로 했다 하더라도 그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죠. 이 시 역시 그렇다고 보여요. 탈속적이고 그리움의 애욕에 물들지 않은 스님은 곧 권력과 종교의 한계를 넘어섰던(넘어서려 했던) 대군의 일면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지요.
사진의 글씨는 대군의 친필을 각자한 거예요. 내용 만큼이나 글씨도 기개가 넘치면서 탈속적인 면모를 보여요. 멋진 글씨예요. 그렇지 않나요? ^ ^
한자를 낱 글자로 하나씩 읽어 보고 몇 자 좀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죠.
山霞朝作飯 뫼 산/ 노을 하/ 아침 조/ 지을 작/ 밥 반
蘿月夜爲燈 여라 라/ 달 월/ 밤 야/ 삼을 위/ 등불 등
獨宿孤庵下 홀로 독/ 살 숙/ 외로울 고/ 암자 암/ 아래 하
猶存塔一層 오히려 유/ 있을 존/ 탑 탑/ 한 일/ 층 층
霞, 飯, 蘿, 層을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霞는 雨(雲의 약자, 구름 운)과 叚(빌릴 가)의 합자예요. 태양 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구름 기운이란 의미예요. 雨로 뜻을 나타냈고, 叚로는 음을 나타냈어요(가→하). 노을 하. 霞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霞彩(하채, 노을의 아름다운 빛), 霞舒雲卷(하서운권, 노을같이 펴고 구름같이 말린다는 뜻으로, 그림의 필법과 착색 등이 아주 묘함을 이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飯은 食(밥 식)과 反(返의 약자, 돌이킬 반)의 합자예요. 밥이란 의미예요. 食으로 뜻을 표현했고 反으로 음을 표현했어요. 反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다른 음식물도 마찬가지만 밥 역시 씹는 것과 삼키는 것을 자꾸 반복하여 먹게 된다는 의미로요. 밥 반. 飯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飯饌(반찬), 朝飯(조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蘿는 艹(풀 초)와 羅(그물 라)의 합자예요. 쑥의 한 종류를 뜻하는 글자예요. 艹 로 뜻을 표현했고 羅로 음을 표현했어요. 羅는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가는 실로 직조된 그물처럼 이 쑥의 어린 싹과 잎새도 매우 얇고 가늘다란 의미로요. 쑥 라. '여라(이끼)'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여라는 쑥과 비슷하다는 의미로요. 여라 라. 蘿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蘿徑(나경, 여라의 덩굴이 무성한 소로), 莪蘿(아라, 쑥의 일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層은 尸(屋의 약자, 집 옥)과 曾(거듭 증)의 합자예요. 이층 이상으로 된 집이란 의미예요. 曾은 음도 담당해요(증→층). 층 층. 層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階層(계층), 層間(층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霞 노을 하 飯 밥 반 蘿 여라 라 層 층 층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徑 ( )間 ( )饌 ( )彩
3. 다음을 읽고 풀이해 보시오.
山霞朝作飯 蘿月夜爲燈 獨宿孤庵下 猶存塔一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