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skchung926/220742230275

 

 

신임 정세균 국회의장이 세균맨 인형을 선물 받았다는 기사가 있더군요. 정의장의 애칭은 세균맨인데 에니메이션 '호빵맨'에 나오는 캐릭터 세균맨과 정의장 이름의 발음이 동일해 붙여진 애칭이라고 해요. 정의장 본인은 자신의 성씨가 정이기에 정을 '바를 정[正]'의 의미로 풀이해 스스로를 '좋은 세균(맨)'이라고 부르고 있더군요(널리 알려진 사실같은데,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혹자는 농담으로 세균이 국회의장이 됐으니 이제 대장균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세균이 됐든 대장균이 됐든 본인이 말한대로 '좋은' 균이 되어 부패한 것들을 일소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국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사진은 세균맨 인형을 놓고 흐뭇해 하는 정의장을 찍은 것이에요. 정의장 앞에 국회의장 명패가 있는 것을 보니 국회의장 집무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저는 정의장이나 세균맨 인형 보다는 정의장 뒤에 있는 병풍이 눈에 먼저 들어 왔어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정의장 뒤에 있는 병풍에는 무슨 내용이 써있는 걸까요? 음, 사실 별 내용 아녜요. 별 내용 아니란 의미는 내용들이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라 널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내용을 써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예요. 어떤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창작한 내용을 쓴 것이 아니라 유명 글귀들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한 나라의 국회의장 집무실에 놓인 병풍치고는, 생각 밖으로,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정의장께서는 이 병풍의 내용을 알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만약 아신다면 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병풍의 내용을 하나씩 읽어 볼까요? 사진의 오른 쪽에서 왼쪽 순으로 읽어 보도록 하죠.

 

 

秋風惟苦吟 추풍유고음    가을 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나니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적구나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창 밖엔 한 밤의 비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등불 앞 내 마음 만리를 달리네

 

 

최치원 선생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이란 시예요. 자신의 꿈을 펼칠 시대를 만나지 못한 불우한 지식인의 슬픔 자화상을 그린 시이지요.

 

 

獨坐幽篁裏 독좌유황리    깊은 대나무 숲속에 홀로 앉아

彈琴復長笑 탄금부장소    거문고 타며 때로 휘파람도 부누나

深林人不知 심림인부지    깊은 숲이라 사람들 찾지 않고

明月來相照 명월래상조    밝은 달만 찾아와 바라 본다네

 

 

당대의 시인 왕유의 '죽리관(竹裏館)'이란 시예요. 은거자적하는 시인의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노래한 시이지요.

 

 

採藥忽迷路 채약홀미로    산에서 약을 캐다 길을 잃어나니

千峰秋葉裏 천봉추엽리    온 산이 가을에 물들었구나

山僧汲水歸 산승급수귀    산승은 물 길어 돌아가고

林末茶煙起 임말다연기    숲 끝에선 차 달이는 연기가

 

 

이이 선생의 '산중(山中)'이란 시예요. 산중의 가을 풍경에 동화된 물아일체의 경지를 노래한 시이지요.

 

 

衆鳥高飛盡 중조고비진    뭇 새들 다 날아가고

孤雲獨去閑 고운독거한    외로운 구름만 한가로이 떠가네

相看兩不厭 상간양불염    서로 보며 싫증나지 않는 건

只有敬亭山 지유경정산    경정산 뿐

 

 

당대의 시인 이백의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이란 시예요. 세속에 물들지 않고 고고한 기절을 간직한(하려는) 기상을 노래한 시이지요.

 

 

日落沙逾白 일락사유백    해 떨어지니 모래 더욱 희고

雲移水更淸 운이수경청    구름 옮기니 물 더욱 맑아라

高人弄明月 고인농명월    고인(高人)이 명월을 희롱하나니

只缺紫鸞笙 지결자란생    아쉬운 건 자란생(피리의 일종)이 빠진 것

 

 

이색 선생의 '한포농월(漢浦弄月)'이란 시예요. 앞서 읽은 왕유의 '죽리관(竹裏館)'과 유사한 풍모를 그린 시예요.

 

 

江碧鳥逾白 강벽조유백    강 푸르니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然 산청화욕연    산 푸르니 꽃 불타는 듯

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    올 봄도 또 그렇게 보냈나니

何日是歸年 하일시귀년    어느 해나 고향에 갈런지

 

 

당대의 시인 두보의 '절구(絶句)'중 한 편이에요. 타향에서 봄을 맞이했다 보내는 나그네의 쓸쓸하고 고단한 심사를 노래하고 있어요.

 

 

春雨細不滴 춘우세부척    봄 비 가늘어 방울지지 않더니

夜中微有聲 야중미유성    한밤중 희미하게 들리는 빗소리

雪盡南溪漲 설진남계창    눈 다 녹아 남쪽 시내 불어 났으리니

艸芽多小生 초아다소생    초목의 싹들은 하 많이 돋았으리

 

 

정몽주 선생의 '춘흥(春興)'이란 시예요. 봄 날 생명의 눈부신 발아를 그린 시예요.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온 산에 새 나는 것 그치고

萬徑人蹤滅 만경인종멸    온 길에 사람 자취 없어라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외로운 배 삿갓 쓴 늙은이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홀로 찬 강에 낚시를 드리우다

 

 

당대의 시인 유종원의 '강설(江雪)'이란 시예요. 견결하고 고고한 지사의 뜻을 한폭의 풍경화를 통해 표현한 시예요.

 

 

어떠신가요? 이상의 내용을 읽으신 소감이. 한중의 대가 작품들을 하나씩 번갈아 소개한 것 빼고는 딱히 어떤 일관된 주제 의식을 느끼기 어렵죠? 민의의 전당인 국회 그리고 그곳의 수장이 있는 집무실에 어울릴만한 내용이라고 보기엔 좀 부족한 감이 있어요. 적어도 국회의장의 집무실에 놓일 병풍이라면 이런 탈속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의 시 말고 민의를 대변하는 그 어떤 내용을 담은 병풍이 놓여야 할 것 같아요. 너무 과한 생각일까요?

 

 

오늘은 정리 문제를 내지 않겠어요. 시 감상의 여운을 간직하시라고... 대신 국회의장실의 병풍에 써놓았음직 한 한시를 한 편 읽어 보도록 하시죠(이보다 더 좋은 것은 우리 말 시이겠는데 얼른 생각나는게 없네요. ㅠㅠ).

 

 

蒼生難蒼生難 창생난창생난   백성들의 어려움이여 백성들의 어려움이여
年貧爾無食 연빈이무식   흉년이 들어서 너희들은 먹을 것이 없구나
我有濟爾心 아유제이심   나에겐 너희들 구제할 마음 있어도
而無濟爾力 이무제이력   너희를 구제할 힘이 없구나
蒼生苦蒼生苦 창생고창생고   백성들의 괴로움이여 백성들의 괴로움이여
天寒而無衾 천한이무금   날씨는 추운데 너희는 덮을게 없구나
彼有濟爾力 피유제이력   저들은 너희를 구제할 힘이 있어도
而無濟爾心 이무제이력   너희를 구제할 마음이 없구나
願回小人腹 원회소인복   내 바라는 것 소인의 마음 돌려서
暫爲君子慮 잠위군자려   잠시 군자의 마음으로 바꾸고
暫借君子耳 잠차군자이   잠시 군자의 귀를 빌어다
試聽小民語 시청소민어   백성의 말을 듣게 하는 것
小民有語君不知 소민유어군부지   백성은 할 말 있으나 임금은 아지 못해
今歲蒼生皆失所 금세창생개실소   금년엔 백성들 모두가 살 집 잃어
北闕雖下憂民詔 북궐수하우민조   대궐에서 백성들 근심하는 조서를 내려도
州縣傳看一虛紙 주현전간일허지   주현으로 내려오면 공허한 종이일 뿐 
特遣京官問民瘼 특견경관문민막   서울 관리 보내어 백성의 고통 묻고자
馹騎日馳三百里 일기일치삼백이   역마로 날마다 삼백 리를 달려도
吾民無力出門限 오민무력출문한   백성들은 문턱을 나설 힘도 없는데
何暇面陳心內事 하가면진심내사   어느 겨를에 마음 속 일을 맞대 말하리
縱使一郡一京官 종사일군일경관   한 군에 한 사람의 서울 관리 온다 해도
京官無耳民無口 경관무이민무구   서울 관리는 들을 생각 전혀 없고 백성들은 말할 근력 없으니
不如喚起汲淮陽 불여환기급회양   차라리 회양태수 급암을 되살려 
未死孑遺猶可救 미사혈유유가구   그나마 남은 이들 살리는게 낫겠네

 

魚無迹(어무적), 「流民嘆(유민탄)」/ 인용 출처 http://snayper4502.blog.me/150093664774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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